책이 아닌 사람을 읽다, 휴먼 라이브러리


양 옆으로 펼쳐진 책장 사이를 걸어가는 외국인 청년의 사진. 책장에는 형형색색의 책이 가득 꽂혀있으며 청년의 히피스러운 옷차림과 장발이 눈에 띈다.
책을 읽는 것이 어려울 때, 사람을 읽는 것은 어떨까? 이미지 출처 : Peretz Partensky @Flickr

막막한 앞길에 고민하는 청춘이라면 책, 책, 책을 읽으라고 했다. 책에는 인생 선배의 조언이 가득 차 있어 삶에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당연하다 못해 이제는 너무 오래된 조언으로 여겨질 지경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면서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졌던 책이 보다 근본적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멘토가 쓴 글을 읽느니 차라리 멘토를 직접 만나서 소통을 해보라는 것! 인류역사 근 5500년 만에 책을 뛰어넘어 ‘휴먼 라이브러리’, 그리고 ‘휴먼 북’이 인생의 지혜를 전수하는 새로운 매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원정보도서관의 전경. 하얗고 세련된 외관을 지니고 있으며 건물 우측 위로 ‘노원정보도서관’간판이 약간 잘려서 보인다.
노원 휴먼 라이브러리는 노원정보도서관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다.

사람을 빌려드립니다, 휴먼 라이브러리

휴먼 라이브러리는 덴마크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이 2000년에 창안해 현재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신개념 도서관으로 이곳에서는 ‘책’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휴먼 북)‘을 빌린다. 독자들은 준비된 휴먼 북(사람책) 목록을 살펴보고 읽고 싶은, 즉 만나고 싶은 휴먼 북을 선택해, 정해진 시간에 휴먼 북과 마주 앉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즉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멘토를 마치 도서관에서 책을 꺼내 읽듯이, 휴먼 라이브러리에서 쉽게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종이책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휴먼 북은 쌍방향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 단순히 지식의 전승을 넘어 휴먼 북이 온몸으로 표현하는 감성과 그 내면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크다.

대한민국에는 현재 10곳 가량의 휴먼 라이브러리가 운영되고 있으며 그 숫자와 휴먼 북 또한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다. 이중에서도 노원 휴먼 라이브러리는 2012년 3월, 전국 최초로 운영을 시작했으며 현재 546명의 알찬 휴먼 북들이 멘티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다. 장래 희망, 진로 걱정에 가뜩이나 고민이 치솟는 그대라면, 휴먼 라이브러리에서 휴먼 북과의 만남으로 소중한 지혜를 얻어보자.

노원휴먼라이브러리 홈페이지의 휴먼 북 카테고리 페이지 스크린 샷. 주민부터 공무원까지 18개의 카테고리가 있으며 각 카테고리에 어울리는 사진들이 배치돼 있다.
노원 휴먼 라이브러리 홈페이지의 휴먼 북 카테고리. www.humanlib.or.kr/page_vnFc61

휴먼 북, 멘토와 만나는 특별한 경험

준비된 휴먼 북의 분야는 아주 다양하다. 소수자•종교인 등 마음을 치유하는 사람들, 지역주민•예술인•여행자 등 비일상적인 지식을 전수해주는 사람도 있다. 노원 휴먼 라이브러리는 특히 언론인•법조인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직업 체험이 중점적으로 구성돼 있어 진로를 탐색하는 학생들에게 더욱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휴먼 북도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휴먼 북이 되기 위한 최소 조건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줄 수 있는 능력과 의사가 있는 사람’이다. 반드시 해당 분야에 전문성과 권위를 갖출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남보다 앞서 체험한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 휴먼 북은 자신의 분야, 특기를 기입한 신청서를 제출한 뒤 운영위원회의 면접•승인을 거쳐 선정되며 정치 선전, 종교 선전, 영업 행위는 엄격히 금지된다.

휴먼 라이브러리 내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 벽에 ‘휴먼 북 초대석’ 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으며 곳곳에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돼있다.
휴먼 북과의 만남•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

휴먼 북을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노원 휴먼 라이브러리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하고 마음에 드는 휴먼 북을 선택해 열람(만남)신청을 한다. 열람신청은 열람 희망 일시, 휴먼 북에게 묻고자 하는 질문 세 가지를 제출함으로서 이루어진다. 물론 휴먼 북도 각자의 일정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가능한 일수와 시간이 제한돼 있어 이를 고려해야 한다. 열람이 확정되면 다음날 직원의 연락을 통해 정확한 대면시간을 공지 받는다.

노원 휴먼 라이브러리는 원칙적으로 노원구 주민을 위한 시설로 지어졌지만 다른 지역에는 휴먼 라이브러리가 거의 없고, 나눔과 공유를 실천하자는 의미에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상으로 열람이 가능하다. 실제로 대전 등 지방에서 찾아오는 열람자도 적지 않으며 대학생 열람자의 발길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단 휴먼 북을 만나는 장소는 무조건 노원 휴먼 라이브러리 건물로 제한된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정상훈 사서의 정면 인터뷰 사진. 오른손에 펜을 쥐고 약간 미소를 짓고 있다.
노원 휴먼 라이브러리 정상훈 사서. 그는 휴먼 북에 대해 이야기 하는 휴먼 북이기도 하다.

휴먼 라이브러리는 사람과 사람의 나눔•소통•공감을 목표로 한다. 노원 휴먼 라이브러리 정상훈 사서는 휴먼 라이브러리와 휴먼 북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사회 양극화가 심해서 아버지가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그 자녀도 변호사, 판사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할 수 있지만 사회적 지위가 낮으면 이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휴먼 라이브러리는 이러한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시켜 누구나 필요한 멘토를 만날 수 있고 서로 인간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죠. 휴먼 북들은 일체의 보상 없이 자신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며 공적인 기여를 한다는 보람과 기쁨이 그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 사람, 즉 멘토의 인생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은 책처럼 무수한 경험과 가치로 가득 차 있다는 것.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거나,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휴먼 라이브러리를 통해 내게 꼭 필요했던 멘토를 만나 귀중한 조언과 지혜를 얻어가는 건 어떨까? 그리고 이 지혜를 안고 성장한 먼 훗날에 스스로 휴먼 북이 되어 다시 타인에게 지혜를 나누어 보자. 이것이 휴먼 라이브러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나눔과 소통과 공감의 실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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