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이 말한다, 생각보다 괜찮은 외로움을

입학은 같았던 대학 동기들. 눈 깜짝할 사이에 A는 유학을 위해 먼 타국 땅으로, B는 인턴차 서울 소재 회사로, C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노라며 지방에 내려가 있다. 학교 캠퍼스를 함께 거닐었던 것이 엊그제 같지만 어느새 우리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뿔뿔이 흩어져 있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이처럼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것일까?

햇빛이 비치는 어느 하늘 위에 떠 있는 비행기를 촬영한 사진. 사진 오른쪽 아래에는 ‘생각보다 괜찮은 외로움’이라는 기사 제목이 쓰여 있다.

최신유행처럼 대학생들은 외국에 간다. 목적도 기간도 다양하게, 많은 학생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다. 왜 그렇게들 뿔뿔이, 그것도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는지, 홀로 지내는 해외 생활이 외롭지는 않았는지 국제적으로 뿔뿔이 흩어진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역만리에 홀로 떠났다가 돌아온 대학생 세 명에게 소상히 물었다. 이름하여 ‘해외판 뿔뿔이 대학생들의 대담’이다.

해외판 뿔뿔이 대학생 대담자, 그들은 누구?
세계지도 중 북아메리카 부분의 지도이다. 땅 부분이 남색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세 명의 사람 모양이 지도 곳곳에 위치해 있다. 위쪽부터 캐나다 워홀러 태희, 미국 왼쪽에 혜교, 미국 오른쪽에 희연의 모습이 있다.
태희(23세, 워킹홀리데이 1년) 영어는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만, 일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만! 무지막지하게 넓은 세상에 퐁당 빠지는 것이 즐거웠던 캐나다 워홀러.

희연(24세, 어학연수 1년) 자연스러운 영어가 최대 목표! 그러나 남들 눈치나 평가에 신경 쓰지 않고 누렸던 진짜 자유가 가장 행복했던 자유로운 미국 어학연수생.

혜교(23세, 교환학생 10개월) 영어공부는 착실히, 여행도 짬짬이, 새로운 경험도 살짝! 정석대로 알뜰하게 지냈던 미국 유학생.

* 시시콜콜한, 그리고 보다 진실한 대화를 위해 대담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으며, 대담은 이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작성했습니다. – 편집자 주

홀로 떠나다

럽젠Q : 세명 다 서로 다른 형태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왔는데, 그걸 선택한 이유가 있어?

희연 어학연수를 선택한 이유? 교환학생을 가려면 토플공부를 해야 하잖아. 토플 준비를 하기 위해 짧게는 반 학기, 길게는 일 년 정도 휴학을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 연계된 학교 커리큘럼이 마음에 드는 것도 하나도 없었고. 외국에 나가고 싶었던 건 영어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어. 절대적으로 영어를 못하는 건 아니었는데 외고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주변 애들이 영어를 정말 잘해서 열등감이 있었어. 영어가 부담스럽지 않고 좀 편하게 느껴졌으면 했고 그래서 진짜 영어 공부를 하러 갔었지.

태희 워킹 홀리데이(워홀)를 선택한 건 순전히 경험 때문이었어. 나는 진짜 영어 공부하기도 싫고 나가서까지 전공 공부하는 것도 싫었어. 가서 입은 떼어야 하니까 어학원에 2개월 다니기는 했어.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세상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다른 건 다 좀 비싸잖아. 워홀은 내가 돈을 어느 정도까지는 벌 수 있으니까 집에 부담도 조금 덜 수 있을 것 같았고.

혜교 나는 교환학생을 꼭 한 번 가고 싶었어. 여행가서 느낄 수 없는 외국 캠퍼스만의 느낌을 느껴보고 싶었거든. 그리고 좀 더 깊은 공부를 해보고 싶기도 했어. 내가 간 학교는 내 전공으로 유명한 학교였어.

어느 모래사장에 찍힌 발자국 하나를 사진으로 찍은 모습이다.

럽젠Q : 혼자 가게 된 외국, 외롭지는 않았어?

희연 나는 어학연수 초반에는 괜찮더니,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표를 끊어놓으니까 어서 빨리 돌아오고 싶어지더라. 처음에 있던 곳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휴양지로 옮겨 거기서 3개월 있었는데 그 도시 특성상 애들이 오래 있지 않는 곳이었어. 진짜 짧은 애들은 일주일, 보통 한 두 달? 처음에 같이 갔던 친구들이 다 집에 가니까 더 외로운 거야. 거기엔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고 한국 식당도 없어서 한국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서 더 향수병을 느꼈던 것 같아.

태희 나 같은 경우는 한국 떠나는 공항에서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비행기에서 밤을 맞는데 갑자기 혼자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 캐나다에서도 밤에 주로 외로웠던 것 같아.

혜교 나는 교환학생이라 일단 혼자였어. 수업도 혼자 들어가야 했고 사람들도 혼자 만나고 사귀어야 했고.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혼자서 다 해야 하니까 그게 너무 힘들더라고.

희연 그리고 나는 친구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엉엉 울었어. 외로워서 서로 의지를 많이 했던 친구들이라 아쉬워서이기도 했고 그 친구들이 떠나면 또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게 힘들더라고. 감정소모가 너무 컸던 거지.

럽젠Q : 다들 이성친구가 있었잖아. 떨어지고 괜찮았어?

희연 답답했지. 일단 시차가 안 맞으니까 전화가 안 돼. 나는 전화 받으려고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났어. 근데 매일 받을 수도 없는 게 미국은 인터넷이 잘 안돼서 계속 끊어지더라고. 그리고 그때 내 남자친구는 군인이었어. 그러니 일주일에 한 두 번 하면 많이 전화하는 거였지.

태희 나는 몸이 멀어지니까 마음도 확실히 멀어지더라고. 점점 서로에게 소홀해지는 게 느껴졌어. 결국 나는 헤어졌어.

혜교 나도 헤어졌어. 내가 연락이 잘 안되니까 그쪽에서 불안해 하더라고. 그걸로 계속 싸우다가 헤어졌지. 그런데 헤어지고 나니 정말 너무 외로운 거야. 내 편이 사라진 느낌? 한동안 정말 힘들었었어. 화해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으니 화해도 안되더라고.

럽젠Q : 계속 만난 건 한 명뿐이네. 그런데 원래 누군가를 만나도 더 외로울 때가 있잖아.

희연 맞아. 차라리 없으면 몰라도, 있는데 못 만나니까 정말 외로웠지. 그래도 난 남자친구가 군인이어서 더 오래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 만약 군대가 아니라 밖에 있는데 연락이 안되면 매일 싸웠을 것 같거든. 그래도 전화 기다리면서 가끔 연락하다 보니 내가 나를 놓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줬던 것 같아.

혜교 그런데 나는 외로운 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재미있게 지내는 것들로 인해서 좀 덜 느꼈던 편이야. 오히려 외롭다기보다는 여유가 있었어.

희연 맞아! 나는 한국에서는 집에서 쉬면서도 여유롭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미국에서는 ‘아, 이게 정말 여유구나’라는 걸 느꼈어.

외로움보다 컸던 건

럽젠Q : 외롭다기보다는 여유로웠다는 거야?

희연 응, 맞아. 내가 해야 할 일의 할당량만 채우면 아무도 날 터치하지 않아. 혼자 뭘 해도 신경쓰지 않지. 한국에서는 해야 할 것을 다 해도 뭔가 또 다른 것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고 주변에서도 들게 한단 말이야. 마음이 쉬지 못하는 거지. 그런데 미국에서는 남의 눈치를 안보고 내 삶을 살 수 있었어. 혼자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졌고.

태희 혼자 다운타운 돌아다니기도 하고 혼자 영화도 보고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잔디밭에 혼자 앉아있기도 하고… 친구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혼자 놀고 싶었으니까 그런 거야. 그걸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어.

어느 풀밭 위, 보라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한 여자가 하늘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럽젠Q : 한국에 다시 들어올 때 걱정되는 건 없었어?

태희 거기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었어. 하고 싶은 대로 살 계획을 다 세웠는데 한국에 들어오니 현실이 갑자기 날 쫓는 거야. 지킬 수 있는 게 다 사라지더라고.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평가를 해. 그게 너무 싫었어. ‘살 빠졌다’, ‘살 쪘다’부터 시작해서 ‘영어 잘 하겠네, 못하네’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평가하니까 갑자기 또 삶의 여유가 없어지는 기분?

희연 한국에 오면 우선 눈치를 엄청 보게 돼. 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사람들 눈치를 보는 게 너무 싫었어. 내가 뭘 하고 어딜 다니든 다 내 맘이잖아. 쟤 어디 간대, 뭐 한대… 그게 왜 궁금하지?

혜교 나는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면서 외국 학교에 처음 갔을 때만큼 걱정이 됐어. 이제 동기들은 거의 다 없고 후배는 모르고… 또 나 혼자 동떨어지는 기분이었지. 그게 제일 걱정이었어.

희연 나도 그런 걱정했지. 동기는 제대를 안 했고 선배들은 졸업했고 후배는 아무도 모르고… 그런데 그건 매 학기마다 하는 걱정인 것 같아. 꼭 외국을 다녀와서 그런 건 아니고.

전화 주문도 못하던 나, 이젠 밥도 혼자 먹어

럽젠Q : 떠나 있던 외국 생활이 너희에게 남긴 건 뭐야?

희연 솔직히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했어. 내가 혼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밥을 혼자 먹는다는 것 말이야. 그런데 미국에서 그렇게 했고, 지금도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영화관이나 카페에 혼자 가곤 해. 혼자 갔을 때 좋은 점도 많잖아. 영화에 집중할 수도 있고, 심심해서 카페에 갈 때 때 꼭 친구랑 시간 맞추지 않아도 되고. 지금은 독강(혼자 듣는 강의)에 대한 부담감도 별로 없어. 예전에는 친구랑 같은 시간표를 짜야 하고 친구랑 시간 맞춰서 같이 다녀야 했었지. 지금은 누군가 옆에 있으면 같이 하고, 없으면 말고.

태희 나는 워홀가기 전에는 굉장히 의존적이었어. 남자친구한테도 의존하고 엄마 아빠한테도 의존하고, 고민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한테 어떡하냐고 묻기만 하고 그랬어. 캐나다 가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가 독립심을 기르기 위해서였을 정도로.

혜교 나도야. 교환학생으로 가서 혼자 살아보면 자립심도 기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실제로 그랬어. 혼자 살아보니 신경 써야 하는 게 너무 많더라고. 하나하나 다 내가 처리하다 보니까 이제는 나름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 같아.

희연 나는 전화공포증이라고 해야 하나? 예를 들어 은행에 전화할 일, 어디에 전화할 일 있으면 무조건 엄마한테 전화했어. 엄마가 다 해줬지. 근데 미국에 있으면 내가 해야지, 별 수가 없잖아. 그냥 막 전화하는 거야. 은행계좌가 잘못됐네, 이름이 잘못됐네 하고 따질 거 다 따지면서. 해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

혜교 거기서 나 챙겨줄 사람이 없으니까. 나 혼자 해야지.

희연 예전에는 엄마한테 물어보면서 ‘결정해줘’라고만 했었는데 이제 내가 찾아보고 결정해.

태희 확실히 독립적이게 된 것 같아.

럽젠Q : 셋 모두 겪었던 것처럼 외국생활은 아무래도 ‘뿔뿔이’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많은 것 같아. 그러면 각자가 겪었던 뿔뿔이 상황이 긍정적인 면이 컸던 것 같아, 아니면 부정적인 면이 컸던 것 같아?

희연 나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컸어. 다녀와서 혼자 할 줄 아는 게 늘어났거든.

태희 음… 나는 고민 좀 해봐야겠어. 독립심은 길렀지만 아무래도 외롭긴 정말 외로웠거든. 그리고 나는 1, 2학년 때 4명이서 정말 딱 붙어 다녔는데 외국 갔다가 돌아오니까 친구들끼리 학기도 안 맞고 각자 맞닥뜨린 상황이 달라서 지금은 같이 못 다니거든. 아무래도 조금 멀어진 것 같아서 슬퍼.

혜교 나한테도 부정적인 면이 적지는 않았어. 나 같은 경우는 학기가 인정돼서 휴학 때문에 엇갈린 건 아니었지만 내가 너무 개인주의에 익숙해지고 그게 좋아지다 보니 친구들한테도 선을 딱딱 긋게 되더라고. 친구들은 서운해하고. 서로 조금 멀어지는 것 같기는 했었어. 그렇지만 그건 나와 친구들이 조금씩 풀어갔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정말 큰 발전이었어. 결국 나한테도 긍정적인 부분이 더 큰 것 같아.

푸른 하늘 위에 비행기가 여러 대 떠 있다. 흰 연기를 꼬리처럼 내뿜으며 날아가는 비행기가 20여 대 정도 되어 보인다.

외롭다. 이역만리에 뿔뿔이 떨어져 사는데, 돌아와봐도 뿔뿔이 흩어져만 있는데 어찌 외롭지 않을 수 있으랴. 그들은 그러나, ‘외롭기는 하지만’이라고 말하며 외로움의 독주에 제동을 건다. 외롭긴 하지만 움츠렸던 스스로의 몸을 일으키고 홀로 서는 과정에 있는, 생각보다는 괜찮은 외로움이라는 것이다. 뿔뿔이 흩뿌려지는 것은 어쩌면 씨앗이 자신만의 흙을 움켜쥐고 자라나는 과정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견뎌내고 자란 꽃들은 다시 서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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