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꿈꾸는 사람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에도 있고, 투르크 막토를 타고 판도라를 활공하는 나비족에게도 있으며, 심지어 피카츄가 ‘백만 볼트’를 외치는 <포켓몬스터> 속에도 있다. 밤하늘 별자리 속에도, 심지어 당신이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속에도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자리한 그것, 바로 신화다. 그리고 이제 신화는 당신을 그 주인공으로 하려 한다.

장 자끄 상뻬의 작품 ‘대혼란’이다. 연극이 끝난 후 무대 위에서 청소부로 보이는 남녀 두 명이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는 그림이다. 무대 위에는 양동이와 빗자루 등 청소도구가 놓여 있고, 객석은 텅 비어 있다. 무대의 왼쪽 문에서는 마찬가지로 청소부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나와서 한 손에는 빗자루를, 한 손에는 총을 들고 무대 중앙의 남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무대 위에서는 잔인한 삼각관계 로맨스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무대 가운데 두 남녀의 진한 포옹과 이들에게 총을 겨눈 한 남자의 모습. 그러나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객석은 텅텅 비어 있고, 무대 위에는 어지럽게 놓인 빗자루와 양동이가 보인다. 게다가 총을 든 남자도 다른 손에 역시 빗자루와 양동이를 들고 있다, 연극의 주인공이라기에 그들의 옷이며 외모는 한참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배우일까? 아니면 극장의 청소부일까? 아무도 보는 이 없겠다, 관객들이 모두 돌아간 텅 빈 무대에서 못다 펼친 프리마돈나의 꿈을 뒤늦게 맛보고 있는 것일까?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의상의 여배우도,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이 버린 쓰레기를 줍는 늙어버린 청소부도, 그들 인생의 무대에선 하나같이 주인공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어느 삼류 치정극보다 더 심장 떨리는, 천재 탐정의 미해결 미스터리 사건보다 더 반전 넘치는 시나리오의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우리만의 신화를 그려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신화를 이룬 사람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신화’라 불리고 있는 폴 포츠. 검은색 정장에 나비 넥타이를 매고 있는 폴 포츠가 위쪽을 바라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폴 포츠, 수잔 보일, 허각. 이들은 모두 ‘인생역전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노래 하나로 세상을 감동하게 한 기적의 목소리라며, 사람들은 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망설임 없이 ‘신화’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뿐인가. 사람들은 툭하면 ‘신화’를 꿈꾼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 분야의 신화를 다시 쓸 거야’, ‘대박 나는 신화를 이뤄야지’ 등등.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를 주인공으로 한 신화의 무대에 스스로를 올려 보고자 애쓰고 있다.

상상 속의 청중

원하는 대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어느 스마트폰 앱의 캐릭터들. 흑인, 백인에서부터 헤어스타일, 눈코입의 모양새까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이미지는 이 앱을 통해 만든 6개의 캐릭터들로, 다양한 생김새의 캐릭터들이 3개씩 2줄로 정렬되어 있다.
우리는 종종 착각 속에 빠져 살 때가 있다. 모두가 나에게 집중하고 있으며, 길을 걷다가 잠시만 삐끗해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그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비록 5센티미터 정도밖에 자르지 않았지만, 헤어스타일만 바꿔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되어 있다. 이른바 ‘상상 속의 청중(Imaginary audience)’을 데리고 다니는 셈이다. 우리는 늘 수많은 청중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들은 내가 어딜 가든, 어디에서 무얼 하든, 항상 나만을 주시하고 있다. 좋은 모습, 완벽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움직이고 통제한다. 하지만 그들은 타인이 아니다. 남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인지하는 또 다른 나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또 다른 나로부터 시시때때로 평가받고 비교당하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낸 똑같은 얼굴의 청중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고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신화가 되다

영화의 포스터와 같은 사진으로, 남자와 여자가 붉은 언덕 위에 서 있고, 언덕 뒤로는 나무가 하나 보인다. 하늘은 푸른빛이 아니라 초록색 빛깔이고, 하늘 한가운데에는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를 주시하지 않는다. 그들의 무대에 우리가 항상 주인공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만의 신화를 만들어가고 그 속에서 자기 자신과 씨름하고 있다. 우리의 미묘한 변화까지 알아차려 주기엔, 그들만의 문제로도 이미 벅차다. 자기 중심성, 죽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자 하는 그 욕망이 우리로 하여금 상상 속의 유령관객들을 만들어내도록 부추기고 있는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스스로가 연예인이라도 된 듯 무대의 중심에서 꽤 자유롭게 행동하는 듯하지만,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시선에 나를 맞추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신화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게 된다. 내가 꿈꾸는 신화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묵묵히 노력한다. 환풍기 배관을 고치며 노래연습을 하기도 하고, 사지가 마비된 채로 연구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렇게 일궈낸 신화는, 비록 올림포스 산 구름 위에 사는 신들의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현실감 있는 감동을 주고 용기를 준다.

여전히 진행중, 나만의 신화

신화는 더 이상 케케묵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여기, 지금 현재 우리는 매일 새로운 신화를 꿈꾸고, 만들고, 이뤄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만이 세상의 중심인 신화 속에서 살고 있고, 어떤 이는 신화를 이루기 위해 남몰래 피땀 흘리는 인내를 겪어내고 있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의 신화 속에서 당신은 불행한가, 아니면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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