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상실의 시대

공부하는 인간에 반기를 든다. 공부는 무슨! 태어나면서부터 노는 게 인간의 본능인 것을. 놀자, 놀자꾸나! 이 땅의 베짱이들이여, 풍악을 울려라.

흔히들 현대를 ‘상실의 시대’라 부른다. 수많은 물질적, 정신적 가치 등 우린 너무 많은 것을 잃으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놀이’의 상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의 발달로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아지고 있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도대체 왜 ‘놀이의 시간’만큼은 단축되고 있는 걸까.

놀이를 잃어버리다

영화 ‘사과’의 한 장면. 남자와 여자가 레스토랑에 앉아 식사하고 있는 모습이다. 남자는 손을 내려놓고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고, 여자는 다소 시큰둥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접시를 향해 포크를 올리고 있다. 모처럼만의 휴일이 와도 휴일 같지 않은 풍경들이 벌어지곤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책가방을 챙겨 부리나케 독서실로 향하는 아이, 그 동안 쌓인 피로에 녹초가 되어 누워있는 아빠, 하루 종일 끝이 보이지 않는 가사일에 힘겨워하는 엄마, 그리고 오늘도 동네 노인정에서 수다로 시간을 때우는 할머니. 이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가족들에게 공통되는 휴일의 모습이다.

여가시간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개개인의 게으름에 관한 문제일까. 충분히 놀 수 있는 여건이 있지만, 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놀지 ‘못’ 하는 것은 아닐까.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놀이’라는 단어는 그저 어릴 적 놀이터에서 하던 소꿉장난이나 술래잡기를 하며 동네를 비집고 뛰놀던 추억의 한 자락이 되었다. 그리고 그 추억 속에 담겨있던 놀이에 대한 순수한 열정마저도, 우리는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20대에게 놀이란? 모든 길은 취업으로 통할 뿐

20대 비경제활동인구의 활동내용에 대한 그래프. 정규교육 기관 통학을 하는 사람이 113,000명, 입시학원에 통학하는 사람이 2,000명, 취업 학원이나 기관에 통학하는 사람이 41,000명,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이 24,000명으로 나타났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청춘은 우리가 생각하던 청춘이 아니었다. 연애는 하늘의 별 따기며, 막상 선택한 전공은 적성과 맞지 않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머릿 속에 남는 것은 지식보다는 미래에 대한 커져가는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졸업한 후에 남는 것은 겨우 대학 졸업장뿐이다.

이 때문에 지금의 20대는 ‘스펙 강박증’에 빠지게 되었다. 봉사활동, 어학공부, 자격증, 학업 등 이 모든 것이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결국엔 자신의 안정된 미래를 위한 ‘울며 겨자 먹기’ 식의 노력인 것이다.

놀이라는 것은 지금의 20대에게 있어 그 어느 세대보다 더욱 절실할 것 같아요. 무언가를 통해 자신이 억압받는 스트레스를 분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대학생들의 놀이 문화는 이전 세대보다 다양해진 것은 맞지만, 정말 ‘한 때’만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20대에게 놀이라는 것은 가끔 틈날 때 즐기는 스마트폰 속 게임이 돼버린 것 같네요.

청춘들에게는 치명적인 대학등록금, 학원비, 심지어 만만치 않은 각종 시험 접수비까지. 생활비도 빠듯한 20대에게 아르바이트는 생활패턴의 필수 요소가 되어버렸다. 무엇을 즐기려 해도 항상 돈이 문제인 것이다. 이 때문에 20대에겐 가장 큰 로망이자 놀이는 ‘여행’이 되었다. 얼마 전 보도된 20대 나홀로 여행객의 급증 소식 또한 이를 드러내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 문화, 관습을 체험해보고 싶은 갈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의 여유가 있는 대학생들 역시 많지 않다. 도전과 모험으로 젊음을 즐겨야 할 20대에겐 당장 먹고 살 문제가 보통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LG전자 채용설명회인 ‘잡 캠프’의 한 장면이다. 카페로 보이는 공간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가장 앞쪽 테이블에서는 두 명의 여자가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테이블 옆에 서 있는 판넬에는 ‘LG전자 Job camp – 선배사원 상담 zone’이라 쓰여 있다.
혹한기 같은 청춘을 보내는 20대들은 오늘도 신음을 하며 ‘을’이 아닌 ‘갑’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싸우고 있다. 그 속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 새벽 내내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도 하고, 학업은 잠시 미루고 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때로는 이성친구와의 메시지로 휴대폰의 작은 떨림에 설레기도 한다. 가치 있는 인생을 고민하는 무거운 시기에 놓여 있는 20대에게 있어서, ‘취업’을 제외한 모든 크고 작은 행동들까지 자신들만의 놀이이자 소소한 행복이 되고 말았다.

중장년층에게 놀이란? 일! 일! 일!

‘일’이라 함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집에서 하는 일, 특히 육아 가사까지 동시에 짊어지는 소위 ‘워킹맘’들은 삼중고를 겪는다. 지난 해, 여성•문화네트워크가 만 18세 미만 자녀를 둔 30•40대 워킹맘 1천 명을 대상으로 ‘워킹맘 고통지수’를 조사한 결과, 워킹맘의 83.7%가 ‘직장과 육아의 병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주로 가사 노동을 여성이 책임지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녀양육과 교육을 위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며 직장생활의 병행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휴식이 허락되는 주말에도 예외는 없다. 가족의 손을 잡고 야외로 향하기라도 하면, 이 역시 그들에겐 일의 한 부분이다.
워킹맘 고통지수 조사 결과 그래프. 집안에서 혼자 가사를 분담하는가 하는 질문에 65%는 그렇다, 17.6%는 보통, 그렇지 않다는 17.4%의 답변을 해 왔다. 육아는 항상 내 몫이다라는 질문에 61.4%가 그렇다, 보통 21.6%, 그렇지 않다라는 답변은 17%였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어렵냐는 질문에는 83.7%가 그렇다, 11.9%가 보통, 4.4%만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얼마 전 발표된 근로시간 관련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2위라고 한다. 반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4개 국 중 우리나라 근로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3위로 나타났다.

저에게 있어 놀이는 그저 편히 쉬는 것, 그게 제일인 것 같아요.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지금까지 워낙 쉴 틈 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까 어느덧 50대가 돼버렸네요. 마음 같아서는 여행도, 새로운 취미도 즐기면서 조금은 여유롭게 살고 싶지만, 사실 저에겐 그럴 여유가 없거든요. 우리 나이 대에 있어서 노는 것은 어느 정도 여유가 되는 사람에게나 허용되는 거라 생각해요.

2012년 연령별 월평균 근로시간 그래프. 노동자 전체 근로시간 그래프는 19세 이하가 110~120시간대, 20대가 170~180시간대, 30대부터 60세 이상까지는 180시간대 안팎이다. 이 중 정규직은 19세 이하에서부터 60대 이상에 이르기까지 평균 180~200시간 사이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반면, 비정규직은 19세 이하 7~80시간대를 제외하고는 20대~60세 이상의 연령대 모두 150시간대를 약간 웃돌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의 한 조사에서도 우리나라의 근로실태를 엿볼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정규직 근로자는 50대, 비정규직은 60세 이상에서 근로시간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많을수록 근로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매일매일이 바쁘고 또 바쁜, 안타까운 현실을 살고 있다. 자녀들을 뒷바라지 하는데 30•40대를 바쳐야 했고, 50대가 되어서는 은퇴 후의 생활을 위해서 계속 일을 해야만 한다.

시대적 변화나 정부의 정책 지원 등에 따라 근로 및 생활 환경이 전보다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여가 생활을 일과 후 실행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불가능하기에 기껏해야 주말에만 마음 편히 자신만의 놀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고단함의 연속인 중•장년층에게 있어서 놀이는 일부에게만 허용되는 사치거나, 제한적인 활동, 가령, 등산이나 영화, 헬스장 등에 국한되게 된다. 대부분의 그들에겐 가만히 앉아 쉬는 것 조차도 ‘노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일과 쉼뿐인 단조로운 인생을 피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직장인 밴드 경연대회, 직장인 축구리그, 직장인 댄스 동호회 등의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들어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 이유다.

노년층에게 놀이란? 노인을 위한 놀이는 없다

노인 100세 시대가 도래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에 준비하기 위해 범국가적으로 노년층을 위한 정책과 각종 프로젝트를 앞다퉈 논의하고 있다. 일부는 직접적인 현금지원을 통해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보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노인을 위한 일자리 제공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등 활발히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명심해야 할 것은 노년층에게 여가 활동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노년층은 시간은 많지만 놀이 문화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로 TV나 낮잠을 택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주요 원인으로는 여가 비용에 대한 부담과 시설의 부족 등이 있다.

마땅히 놀게 없지, 뭐. 어디를 놀러 가려 해도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나는 그냥 집에 있거나 아파트 경로당에 가서 거의 하루 종일 있어. 점심은 경로당에서 다른 할머니들과 같이 밥을 해 먹고. 경로당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냥 수다 떠는 거나 고스톱… 그리고 가끔 낮잠 자거나 TV보는 게 다지 뭐.

일찍이 고령화 시대에 도달한 독일, 일본 등은 노년층의 체력에 맞게 적당히 변형시킨 스포츠 프로그램을 개발한 체육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와 비슷하게 대책마련에 부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노인 복지예산을 늘리면서 각종 시•도별 체육대회를 개최 및 노년층 문화예술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60•70대 이상의 노년층 역시 이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놀이 문화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수의 노년층까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 분이 탁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왼쪽에서 할아버지는 휠체어를 탄 채 탁구채를 잡고 앉아 있으며, 사진 오른쪽에는 할머니가 탁구대 맞은편에서 탁구채로 공을 던지고 있다.
시간의 여유가 있든 없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우리 모두의 일생에 있어서 ‘놀이’는 항상 함께 있어야 할 존재이다. 시대는 더욱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 것이며, 이러한 변화가 가속화 됨에 따라 사람들은 더욱 바삐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놀이 자체가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일과 놀이의 명확한 구분이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놀이’의 점차 빛을 잃어갈지, 아니면 다시 떠오르는 화두가 될 수도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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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선

    각 세대에게 놀이란? 결국 모든 세대가 제대로된 놀이, 순수한 즐거움을 잃은채 현실에만 쫓겨 살아가고 있는거였군요 :( 20대인 지금 저는 직장인이 되면 시간도 돈도 더 많이 생겨 더 잘 놀 수 있을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 왠지 미래가 암담해지네요ㅠㅠㅠㅠ
  • 위풍당당원이

    놀이의 상실이라는 말에 정말 공감합니다. 정말 놀 게 이것밖에 없나 싶을 정도로 놀이의 형태가 빈약한 것 같아요.. 친구들끼리 만나도 별로 할 것도 없고... 물질과 기술의 발달 속에 놀이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잃고 있는 것 같아요...
  • 고은혜

    과연 어느 때가 되면 다시 놀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읽다가 조금은 우울해졌네요. 우리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결코 '생각없이' 놀 수 없는 걸까 하구요. 나중에 놀면 되겠지 하며 놀이를 뒤로 미루고 나니, 막상 나이가 들어서는 공허함에 오히려 노는 법을 잃어버리는 현실이 참 슬프게 다가와요. 열심히 놀 줄 아는 법을 배워야 겠어요. 유후 지금 당장이라도 고잉 아웃?
  • kkpa1055

    저는 잘 논다고 생각했는데
    우리학교 운동장이 없어졌어요
    제 생각엔 노는건 쬐그만 아이들도 힘든거 같아요 요샌.
    저희 어릴적엔 지상파에서 만화영화 많이 틀어줬잖아요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 만화영화들이 노는 방법을 가르쳐 줬던 것 같아요.
    뭘하며 놀지가 아닌 언젠가부터 어떻게 놀지 현명하게, 실용적으로
    이런 인식이 생긴다는게 안타깝네요
    또 막상 놀 시간이 아깝다는것도 안타깝고.
    글 잘읽고 갑니다
  • 유이정

    놀 수 있는 시간이 많든, 적든 우리 현대인들은 여러가지 이유들로 놀지 못하고 있네요. 씁쓸한 현실입니다. 오늘 아침 통학버스를 탔는데, 옆에 앉은 여대생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걸 들었어요. 그 여대생은 오늘 마감인 대기업 원서 쓰느라 두시간 밖에 못 잤다고, 다들 새벽에 썼는지 홈페이지가 마비가 됐더라고 하더군요. 오늘 새벽을 지세운 우리 청춘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공감되기도 하고, 복합적인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 20대 뿐만 아니라, 30대 직장인, 40-50대 아버지어머니 세대, 60대 이상 어르신 분들까지, 모든 연령대가 편히 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인간은 언제쯤 놀 수 있을까요. 일하면서 진정 놀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바로 다음 기획3 기사에 나온다고 알고 있어요~.~ 기대된당~.~ 급홍보로 마무리ㅋㅋㅋㅋ성근기자님 수고했어영 노는인간 테마리포트 뒷풀이도 언능~.~
  • 제대로 놀 수 있는 '놀이문화'가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다고만 생각했는데, 사람들에게는 놀 시간이 없는 건가봐요. 아이러니하네요. 놀 것이 없어서 못노는게 아닌 것 같아요. 막상 즐길 거리들이 많이 생겨도 정작 사람들은 놀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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