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예술의 검증된 진화론

그저 사회로 나가기 위한 당연한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대학. 4년이란 시간은 인생의 ‘배움’이 아닌 ‘흐름’이던가. 안일한 교육의 허리를 바짝 조이기 위한 프로젝트, 미래의 예술가와 인재가 실제 ‘육성’되는 예술 대학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들에게 시간은, 반짝반짝 빛이었다.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바흐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전 세계인이 알만한 음악가가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유럽에서 체계적으로 발달한 예술특화 대학이 비중 있는 요인으로 자리잡은 건 사실이다.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측면에서 진화할 수밖에 없는 절대 궁합을 찾았다.

Why 1 지리적 _ 떼어내려야 뗄 수 없는 삼각 관계

넘쳐나는 과제와 어려운 전공 시험, 거기에 기본 교양 수업은 저절로 대학생의 어깨를 무겁게 하기 마련. 영어는 20대의 주름을 양성하는 요인이 된다. 각종 자격증 공부까지 더해지면, 대학생의 몸은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 아닌가. 이의 해결점으로 대학생이 택하는 것은 바로 ‘스터디 그룹’이다.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고 업무를 분담하면, 훨씬 짧은 시간에 고효율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코와 오스트리아에서 예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인접한 지리적 요건 탓에 자동으로 ‘예술 스터디 그룹’이 형성되었다. 더욱이 체코, 오스트리아와 인접한 독일도 훌륭한 예술가의 걸작이 탄생하였던 바, 스터디 그룹의 핵심 멤버였다. 지리적 요인 덕분에 자발적으로 예술적인 고리가 생긴 그들은, 음악 발달을 위한 각 나라의 노력이 서로의 장점을 배우려는 의지로 이어져 세계적인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독일과 체코, 오스트리아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는 인류에게 큰 선물을 안겨준 것이다.

Why 2 역사적 _ 미래에도 기억될 거장의 전쟁

 

오스트리아 편

18세기 이후 세계 음악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모두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났다.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원에 힘입어 오스트리아 빈을 유럽의 예술과 문화, 사상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세계적인 명곡 역시 이때 탄생했다. 당시 유럽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세계적인 예술가를 오스트리아로 향하게 한 결과, 세계 예술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프란츠 요셉 하이든(1732~1809)
1백 곡 이상의 교향곡을 작곡한 교향곡의 아버지. 70여 곡의 현악 4중주 등으로 고전파 기악곡의 전형을 만들었다. 고전 시대의 규범이 되는 형식을 창조했으며, 1781년 소나타 형식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 프로시안4중주곡 >은 모차르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전 세계인이 아는 천재 작곡가. 3세 때 피아노를 연주하고 5세 때 < 미뉴에트 >와 < 피아노 소품 >을 작곡한 천재로, 35세에 요절하기 전까지 소나타에서 현악곡, 협주곡, 교향곡, 오페라에 이르는 모든 장르를 집대성했다. 40여 곡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6백 곡이 넘는 다작의 거장이기도 했다.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
대표적인 낭만파 작곡가로, 31년의 짧은 생애 동안 가곡을 포함해 교향곡, 소나타, 관현악곡 등 1천여 곡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가곡집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처녀>, 피아노 5중주곡 <송어>, 현악곡 <죽음과 소녀>와 <미완성 교향곡> 등이 있다.

체코 편

17세기 체코는 민족의 암흑기를 걸었다. 전쟁에서 패한 후 체코와 헝가리 국왕의 지위는 강력한 힘을 지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통치로 귀속되었다. 이때 체코의 인구 절반 이상이 학살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체코의 유능한 인재는 이국땅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스메타나(1824~1884)
체코 민족음악의 창시자이며, 처음 보헤미아 민족주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으로는 1866년 첫 오페라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인>, 훗날 체코 최고의 작곡가로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해준 2번째 오페라 <팔려간 신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달리보그>, 프라하의 전설적인 인물의 이름을 따서 만든 <리부셰>등이 있다. 1874년 청력을 잃었지만, <나의 조국>이라는 6곡의 연작교향시를 작곡했으며 현악 4중주<나의 삶으로부터>는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드보르자크(1841~1949)
아버지가 운영하던 여인숙 안팎에서 접한 음악의 영향으로 시골 무도회장 바이올린 연주자로 일했다. 1857년 한 음악 선생은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오르간 학교에 입학을 권유하여 정식으로 음악 교육에 발을 딛게 되었다. 1875년 <모라바 2중 창곡>과 피아노 2중주<슬라브 무곡>을 작곡해 보헤미아 음악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역할을 했으며 그의 명성은 크게 높아졌다. 훗날 <성모 애가>, <테 데움>, <신세계>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에는 보헤미안적 주제를 통해 고국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

Why 3 사회 문화적 _ 예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선 순환적 구조

오늘날까지 체코와 오스트리아가 예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이유는 지리적, 역사적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나라 차원에서 사회 문화적으로 예술특화 대학을 설립하여 인재양성에 힘쓴 덕이었다. 오스트리아에는 빈 국립 음대와 빈 시립 음대, 프라이너 음대, 슈베르트 음대, 비엔나 콘서바토리움 등 지역마다 1~5개의 예술특화 대학이 발달했다. 체코 역시 Damu, Famu, Hamu와 같은 예술특화 대학이 건재하다. 이런 노력은 유능한 인재가 체코와 오스트리아로 몰려들게 했고, 체코와 오스트리아 예술은 더욱 발달하는 선 순환적 구조를 띠게 되었다. 이런 논리로 볼 때,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장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예술이 발달할 수 있는 배경엔 사회 문화적인 지원과 투자가 필수가 되는 셈이다.

체코와 오스트리아는 다각도에서 예술과 함께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한 성장통을 겪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공통분모를 통해 세계적인 예술국가로 자리매김한 지금, 우리나라도 예술특화 대학을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해 현지 사정에 맞게 벤치마킹한다면 모차르트를 뛰어넘는 음악가가 탄생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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