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마리 돼지 아빠

“제 나이가 24세인데, 벌써 자식이 3천 명(!)이네요.” 건장한 체격과 잘생긴 얼굴, 유머 감각까지 겸비한 그는 같은 업계 종사자로부터 일명 ‘핏덩이’로 불린다. 시골과 농업을 기피하는 20대와 다르게 그가 돼지농장의 핏덩이가 된 사연은 무엇일까?

고등학교부터 시작된 돼지농장, 그리고 ‘멘탈 붕괴’

대학가 클럽을 전전해야 할 것 같은 180cm 키의 미남이라니, 그는 상상했던 돼지농장 주인과는 달랐다. 게다가 이 농장 생활이 고등학생 시절부터라고?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취미도 없었어요. 그런데 공부하러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죠.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께서 수술 후 건강 상태가 안 좋으신데다가 농장 일이 겉보기엔 왠지 쉬워 보여서 농장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제 인생이 되었고요.

언젠가 서울대를 나온 농장 컨설턴트가 농장주에게 혼나는 걸 본 후 그는 생각했다. 공부를 잘한다고 어디서든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그때부터 그는 돼지농장으로 최고가 되려고 마음먹었다. 어찌 보면 그에겐 취업도, 학점도 걱정거리가 아니니 많은 압박을 받는 20대보다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인다. 귀여운 새끼 돼지를 키우며 공기 맑은 시골에서 유유자적하지 않던가!

저도 ‘멘붕’을 자주 겪어요. 대학교에 다니는 20대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저도 미팅하거나 과제 때문에 힘들어지고 싶거든요. 돼지 농장 일이 육체적으로 참 힘들어요. 돼지 변을 치우고 축사 청소도 해야 하고 새끼 태어날 때는 새벽에도 일해야 하죠. 최근 아버지의 권유로 배우는 유통업과 함께 육가공이 참 힘겨워요.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고 상처도 많이 났고요. 그뿐인가요? 고용한 노동자에 대한 고민도 있죠. 외국인 노동자는 가끔 일하러 간다고 하고 산을 넘어 도망가거나 돼지를 학대해서 해고하는 경우도 있어요. 한때 우리나라 사람을 고용한 적이 있는데, 임금도 비싸고 근무 시간에 맥주를 마시다가 적발되거나 성실성이 부족하더라고요. 아, 이런 고충을 친구에게 털어놓기도 이상하잖아요?


하지만 그는 역시 팔팔한 20대 농장주, 자랑스러운 돼지 아빠였다. 전국적으로 구제역이 나돌 때도 건강하게 자라는 돼지를 보면서 뿌듯함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넉넉한 수입에 웃음 지었으니. 돼지를 키우며 때론 웃고 때론 우는 그는 아빠 예행연습을 단단히 하는 듯하다. 단 연인으로서는 또 한 번의 ‘멘탈 붕괴’가 온다는데∙∙∙.

좀 불편한 점이라면, 돼지냄새가 나서 대중교통이 꺼려진다는 것? 처음에는 친구들도 놀리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죠. 하루에 샤워를 세 번 넘게 해도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어요. 향수도 뿌려봤지만, 몸에 밴 냄새가 빠지지 않았죠. 연애할 때 저만의 고민거리가 있어요. 저도 다른 커플처럼 요리를 해주고 싶지만, 손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못하죠. 그리고 데이트는 주로 겨울에 많이 해요. 옷을 많이 껴입어서 냄새를 가리는 거죠. 그런데 돼지가 돈을 벌어다 줄 때면 향수 냄새처럼 느껴지는 이 기분, 아무도 모를 겁니다.

공부하고 설계하는 돼지 아빠


20대 농장주는 일찍 농장에 뛰어든 장점을 충분히 살리고 있었다. 한미FTA, 한중FTA 등의 개방 정책에 따라 농민이 단순히 울상을 짓는 상황에서 그는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선 것. 그의 결론은 국산 돼지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한 후 강점을 살려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연신 농담을 하던 그는 마치 전쟁을 앞둔 장수의 비장한 눈빛으로 이글거렸다.

사실상 FTA를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미 진행된 상황에서 농업을 살리겠다고 파기하는 것은 국가 브랜드에도 좋지 않고요. 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수입산이 들어오면 그만큼 판매할 수 있는 범위가 작아져서 농민이 살 길을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국가의 지원만 기다리고 있다가는 망할 것 같아 가격보다는 질로 승부를 걸려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HACCP 인증을 받았고 지금은 친환경축산물 인증을 추진하고 있어요.


우리와는 다른 인생과 다른 미래를 설계하는 김병찬 씨. 앞으로 그는 돼지를 열심히 키워 돈을 많이 번 뒤 소도 키우면서 정육 식당을 차리는 꿈에 부풀어 있다. 농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은 그는 취업난에 허덕이는 20대에게 농장으로 오라고 웃으며 말했다.

농장에는 힘든 작업이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그건 어딜 가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20대는 편한 일만 찾다 보니, 일자리가 부족한 것 같아요. 사실 주변에도 일손이 부족한 곳이 허다하거든요. 배부른 소리는 그만 하고 힘든 일이라도 팔 걷고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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