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로 농사 원정 간 정치학도


정치학도가 알제리 농업 연구소에 있다? 머릿속엔 물음표가 잔뜩 생긴다. 국내도 아닌 해외에서,게다가 머나먼 아프리카 땅에서? 자초지종을 묻자, 그는 아프리카에서 이메일로 기나긴 서신을 보내왔다.

예, 지는 촌에서 올라 온 촌놈입니더

‘유방’이라는 이름에는 농부 기질이 있나 보다.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처럼 대학생 유방 씨 역시 타고난 농부다. 농사는 그에게 일이 아닌 생활이다. 그의 고향은 충청남도 서천. 서천군은 농산 어촌으로 그가 대학교 입학 전까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고교 시절 채식하면서 직접 농사를 지었고, 군대에서도 농사를 지어서 밥을 해 먹었어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도 농사를 짓고 싶은 욕구는 항상 있었죠.

서울로 올라왔다고, 타고난 농부 기질이 도망갈 리 없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면서부터 KOPIA(Korea Project on International Agriculture)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농림수산식품부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 파견 인재 3기 일반 계열에 지원했고, 그 결과 KOPIA-알제리센터 인턴으로 선발됐다.

KOPIA 사업은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 프로젝트로, 기술 외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하는 국가로 바뀌었잖아요? 한국의 ODA가 어떤지 그 현장이 궁금했어요.

농부의 꿈, 알제리 연구소에서 뿌리다


그는 2달 반가량 아프리카 KOPIA-알제리센터에서 보내고 있다. 지난 12월에 문을 연 알제리센터에서는 맥류시험연구, 수경재배사업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데, 그는 기술연구, 세미나 보고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비록 KOICA처럼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이는 사업은 아니지만, 장기 연구의 기본 자료가 되는 일이다.

알제리 사람들이 밀, 채소 등을 쉽게 얻기 위한 연구 및 조사를 돕고 있어요. 해외 의존도가 높은데,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또, 이곳의 건기 때나 사막 지역에서는 채소를 얻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택한 게 수경재배 사업인데, 알제리는 지중해성 기후인 덕에 온난 건조해 습하지 않아요. 물을 통한 균의 감염이 적어 수경재배에 유리하죠.


불어는 잘 못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는 유방 씨. 외국인과도 조금씩 대화를 하고, 재배한 작물로 직접 요리도 한다. 우연히 고향 사람을 만나거나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대면 행복감에 젖어 들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현재에 보람을 느끼지만, 농사일이 그리 쉬운가? 때론 재배 작물이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 해충의 습격 등으로 잘 자라지 못하기도 한다. 기르는 사람으로서는 허탈할 때도 잦은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마주친 낯익은 대한민국의 자화상

알제리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경제적 독립까지 완벽히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밀 수입률이 47%며, 씨감자는 여전히 수입해서 쓰는 형편이다. 수급이 불안정할 때면 감자 가격이 폭등하게 되는데, 폭동도 간혹 일어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하도급 부조리 또한 발생한다. 수확기에는 맥류시험 재배연구소에서도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현지 직원에게 부탁해 18세 고등학생 2명을 일당 1천2백디나(한화 1만5천원)을 주고 이틀 고용했다. 임금을 지급하려고 하자, 현지 직원이 자신에게 달라고 해서 진행했던 게 문제가 생겼다. 그 중간 직원이 35%나 돈을 먼저 가로챈 것. 그 나머지 금액만이 노동자에게 건네졌다. 그는 매우 화가 났으나, 몇몇 사람들은 관례라면서 그냥 넘어갔다. 괜한 부스럼을 만들지 말자면서.

한국에서도 발생하는 일이잖아요.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노동자 아닌가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예비 노동자인 청년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만큼은 ‘갑’으로 취직할 거라고 사는 사람들이 많죠. 하지만, 영원한 ‘갑’은 존재하지 않아요. 인구의 반 이상이 비정규직인데, 다 정규직이 될 생각만 하고 살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21세기에도 모든 것은 농업으로 귀결된다

현재 그와 같이 일하는 학생들의 80%는 농업 관련 학과 출신이다. 이처럼 농업 관련 학과나 대학을 나와 일찌감치 농업에 뛰어드는 젊은 인재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농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농사하면 힘들다.”로 귀결된다. 그나마 생각이라도 해 봤으면 다행이다. 대다수는 무관심이 아니던가.

국내 농업이 안타까운 부분은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단체가 없다는 거예요. 3백만 명도 안 되는 적은 수인데, 단합이 잘 안 돼요. 게다가 대다수 사람은 부모 세대가 농촌 출신임을 알고도 농민들의 문제에 관심이 없죠.

사실 조선 시대에는 농업이 중요했다. 그 시대니까 그랬을 것이란 짐작이다. 현대엔 농업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이 넘쳐나지 않는가? 안일하게 생각하던 찰나, 그는 따끔한 충고를 날렸다. “농업은 모든 산업의 기본”이라면서.

근래 저희 동네 서천 삼거리 굴 칼국수 집에 갔었는데, 가격이 6천원이나 하더라고요. 5년 전에 4천원이었는데. 이게 다 세계 밀 가격의 인상 때문이죠. 한국은 쌀 작물 이외의 식량 자급률이 매우 떨어져요. 러시아나 중국은 국내 밀 생산량에 따라 밀수출 금지령을 내리기도 해요. 그러나 한국은 국제 시장의 가격 변동에 아무런 대책 없이 당하고 있어요. 식량 안보가 위협당하는 것, 그런데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 정말 큰 문제예요.

최근 외국의 값싼 농산물이 들어오면서 국내 농산물의 판매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이뤄지는 경제 논리상 생산량도 이내 줄어드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이런 상태에서 만일 외국 정부가 값을 올리게 되면,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그 가격에 사야 해요. 농업을 하겠다는 것은 국가 기반을 탄탄히 하겠다는 건데∙∙∙ 젊은 세대들은 농사지을 줄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해요.

한국으로 들어오면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정치의 꿈을 펼치고 싶다고 했다. 원래 촌놈이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그에게 매우 당연한 일이라면서. 그는 알제리에서의 농사를 경험한 것이나 농업 문제에 대한 인식은 그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 자부했다.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될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내가 작은 골방에 있더라도 세계를 움직이는 꿈을 꾸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으르신,
이 많은 사람들을
잘 데리고 사는 방법이 뭐요?”
“잘 멕이면 되는 겨.”

영화 <웰컴투 동막골>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 안지섭

    잘 읽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네요^^
    댓글 달기

    손지윤 기자

    꿈꾸는 대로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소챌 스토리 더보기

나의 라임 단골집 2탄 (feat. 동네 맛집 털기)

나의 라임 단골집 1탄 (feat. 동네 맛집 털기)

<카일루아> 윤정욱 작가ㅣ디지털 노마드로 산다는 것

가성비 좋은 푸드트럭 삼만리

서울의 심야식당 3

졸업전시 – 전시 / 공연 / 쇼

집밥 “서선생” – 남은 추석 음식 활용편 –

가을이니까, 소채리가 추천하는 10월 나들이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