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김태호•감독 봉준호•뮤지션 김창완 l 세 남자의 인생 상자

세 남자의 이야기가 일렁이는 봄바람을 타고 가슴에 스며들었다. 이립(而立)의 PD 김태호와 불혹(不惑)의 감독 봉준호, 지천명(知天命)의 뮤지션 김창완이 일궈온 삶에 관한 명제들.

강의명 아레나 A-TALKS
강사명 김태호, 봉준호, 김창완
강의 일시 2011년 4월 5일, 6일, 7일
강의 장소플래툰 쿤스트 할레
PD 김태호 l “한 발짝 물러서고, 고민하는 진중함이 필요하죠.”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PD로 알려진 김태호. 30대 중반을 넘은 그가 전한 삶의 이야기는 바로 ‘진중함’이다. 현장에서 큰 소리 내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다는 지론처럼 그는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할 줄 아는 것을 중요시했다. 무려 7년의 시간 동안 프로그램을 이끌어 온 그의 내공은 뭇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쓸데없이 무게를 잡으라는 진중함이 아니에요. 어떤 일을 하다 보면 분명 마찰은 생기게 되고, 사람 관계도 틀어지게 마련이죠.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 혹은 말투 등을 ‘쉽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이제 와서 얘기지만, 젊은 20대였을 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침착한 태도를 가졌다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는 2001년 입사 후 현재까지 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직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그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장기간의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이것이 정말 필요한 일인가? 내게 어떤 식으로 의의를 줄 수 있을까? 혹은 보는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늘 고민하는 편이죠. 이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이것이 나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고, 앞으로 5년만 더 하겠다는 심지로 버텼죠. 이것이 지금까지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네요.

MBC <무한도전>이 항상 화제가 되는 이유는, 그가 이슈가 되는 사회적인 문제를 시원하게 풀어내는 융통성 때문이다. 특집보다 소소한 거리로 프로그램을 만들 때가 더 재미있다며, 그의 입 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의도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분명히 있는데, 항상 방송 후 화제가 되는 이유는 그만큼 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시청자들과 연기자들에게 고마운 부분이죠. 앞으로도 꾸준히 고민하고 돌아볼 줄 아는 똑똑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감독 봉준호 l “자신의 능력을 좀 더 과신하세요.”


스물 세 살에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청년은 이제 해외 영화제의 미끄러지는 레드 카펫을 밟는 감독으로 당당히 이름을 내걸었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라는 영화 제목보다 ‘봉준호’라는 이름이 더 강렬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여전히 수더분한 차림으로 나타나 말을 이었다.

전 20대 때 정말 사고뭉치였어요. 친구들과 ‘KP’라는 조직을 만들어 하숙집에서 노래하며 기타를 치기도 했죠. 참, KP는 ‘깽판’이라는 뜻입니다(웃음). 지금 돌아보면 그땐 그냥 뭐든지 자신 있었어요.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봐야 했고,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영화감독이 될 거라고 결심한 순간부터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찍었던 걸 보면 참 단순, 무식했죠.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좀 다른 거 같네요. 왜 그럴까요? 자신을 좀 더 믿으시길 바랍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고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라요.

상업영화를 작가주의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봉준호 감독은 불가능한 일을 꿈꾸는 꼬마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항상 매번 받는 질문 중에 같이 작업하는 분들이 제 위치 때문에 의견도 내지 못하고 어려워하지 않냐고 해요. 전 자유로운 소통을 좋아하는데 종종 피드백을 받다 보면 감독님은 너무 능력 밖의 영화를 찍으려 한다는 스태프의 핀잔을 듣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할 수 있는 만큼의 일만 하다 보면 거기까지인걸요.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죠. 젊은 청춘이라면 그 정도의 각오는 해야 하지 않나요?

항상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명인 그는 청춘들에게 이렇게 고하는 듯하다. 도전할 수 있는 시기를 따지기보다 세상 밖으로 미쳐서 나올 준비를 하라고 말이다.

뮤지션 김창완 l “이상은 없습니다. 현실을 봐야죠.”

뮤지션 김창완은 언제나 느릿느릿하게 말한다. 여유롭고 사람 좋아 보이는 외견까지 합하면, 그의 존재를 하나의 ‘여유’란 아이콘으로 보이게 한다. 슈퍼마켓 앞 평상에 앉아 여유롭게 기타를 칠 것 같은 그는 실제로 보니 세 뼘 달랐다. 얼핏 들으면 중얼거리는 것 같은 그의 말 한 마디엔 삶을 꿰뚫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

그는 서울대학교 잠사학과를 졸업했다. 전후에는 유망한 산업이었던 잠사학은 화학섬유의 유행으로 인해 사양 산업이 되어버렸다. 20대의 김창완은 취업난 앞에서 ‘스펙의 부족’으로 좌절하는 대신 음악으로 도피하는 방향을 택했다. 처음에는 동생과 함께 조직한 밴드의 앨범을 홈 레코딩 하는 정도의 방황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앨범은 인기를 끌었고, 김창완은 어느새 인기 밴드인 <산울림>의 멤버가 되었다.

제 친구들은 일반 회사원이나 은행원이 되었어요. 저 역시 음악으로 도피하지 않았으면, 어딘가에서 돈을 벌고 있었겠지요. 실제로 밴드를 한 번 접고, 동생에게 취직을 권했던 적이 있습니다. 밴드가 워낙 미래가 없으니까요. 저 역시 직장을 구해볼까도 생각했죠. 그런데 회사에 취직했던 동생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음악을 하겠다고 나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방황의 일환으로 밴드를 시작했지만, 그 방황의 끝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수 밴드의 리더였다. 철저히 현재를 살아온 결과였다.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를 느낀다는 20대의 젊은이에게 단호히 ‘이상은 없다’고도 말했다.

이상을 좇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습니다. 이상을 좇다 보면 자기 현실을 비관하고 그로 인해 내적 에너지를 소모하기 쉽죠. ‘엄친아’와 같은 단어가 유행하는 것도 다 이런 잘못된 세태를 보여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지금 이 현실입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을 통해서 비로소 이상을 살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안겨준 김창완은 또 하루를 살기 위해 홀연히 ‘술을 마시러’ 사라졌다. 참으로 그다운 선택이다.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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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태진

    @지은님, 자신의 능력을 가늠하지 마세요 ! 우린 포텐이 넘치는 젊은 청춘이잖아요 하하하하..
  • 황태진

    @형진님, 부산에 계셨기 때문에 올라오시지 못하셨군요, 형진님 페이스북 하시지 마시고 어여 올라오셔요
  • 황태진

    @상영님, 김창완씨 말씀이 참 좋으셨죠? 후후 박상영 기자님이 열심히 들어주신 덕분일 겁니다
  • 황태진

    @우리님, 성공한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이는 건 그들이 이미 마음의 여유를 찾아서 일지도 모르겠죠! 삶의 빡빡한 흐름과는 반대로 말이예요, 일상이 고되고 힘들더라도 한 템포 쉬어보는 마음을 갖는 건 어떨까요
  • 이지은

    전 봉준호 감독님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라는 말이 기억에 남네요ㅠㅠㅠ 하고 싶었던 일을 자신이 없어 포기했었거든요ㅠㅠ
  • 으헣

    오호 정말 가고 싶은 파티였는데 ㅎㅎ 글로나마 만나서 다행입니다. ^^
  • 박상영

    "이상을 좇지말라'는 김창완님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닿네요! 좋은 기사 잘봤습니다 ㅋㅋㅋ
  • 남우리

    김태호 피디의 '이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일인가?'라는 물음이 계속 마음에서 울리네요,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여유로움'이라는 것이 그 자체의 여유가 아니라 고되고 빡빡한 삶의 흐름 속에서 갖추어진 여유라는 생각이 이 기사를 읽으며 들었어요, 옳게 느낀건진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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