럽젠톱텐 _ 나 홀로 여기에 2

인생은 결국 혼자라고 했나. 그 쓸쓸한 명제에 뺨을 때린, 럽젠 기자의 맘을 달래준 10가지 기특한 장소.

명동 성당

화장실 거울 앞에선 내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어내며 ‘괜찮다, 괜찮다.’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은 되려 물었다. “정말로?” 가슴 한 켠에 눌러놓았던 고농축 메가톤급 시련이 잘 봉인되어 있다가 쓰나미처럼 내 몸을 덮치던 그 순간. 내가 자체 정화 백신으로도 치료될 수 없는 상태일 때.
난 명동 성당으로 전진했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무조건 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중학교 시절 이후로 성당을 오래 나가지 않은 ‘냉담자(=성당에 오랫동안 나가지 않은 신자)’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간 성당에서 난 숨겨온 마음의 고향을 들킨 기분이었다. 거친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듯한 느낌.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언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날 보듬어줄 곳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알고 있다. 이것이 사랑과 믿음이 부족하면서 위로만 갈구하는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란 것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련이 엄습할 때면 난 본능적으로 성당에 앉아 기도를 드렸다.
이 냉담자는 또다시 이곳에 돌아가겠지. 언젠가 차가워질 겨울 같은 날, 봄비 같은 온기를 찾아서.

Conditions 온갖 풍파와 시련 때문에 지치고 힘들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할 때
Tip 미사 시간을 피해 가면 혼자만의 기도시간을 가질 수 있다. 눈물이 날 수도 있으니, 휴지와 손수건, 거울을 챙겨가면 좋음
Price 무료

나의 방

1년 동안 정상적인 인간의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온 힘을 다해 준비한 시험이 있었다. 시험 당일. 긴장 속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가채점 결과 합격점의 근처에도 못 가는 점수를 얻었다. 한 번에 붙을 거란 기대는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고생이 단 몇 시간의 시험으로 물거품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밀려오는 절망감과 허무함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펑펑 울고 싶었다. 결국 헤매고 헤매다 도착한 곳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내 공간, 바로 나의 방이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치고 과자를 한아름 안고 들어와 침대 위에 늘어놓았다. 그리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공부한답시고 끊었던 만화책을 꺼내 들었다. 침대에 늘어져 과자를 우적우적 먹으며 만화책을 보고 낄낄거리다가 갑자기 울적해져서 울다가, 웃다가••• 정말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그래도, 나의 공간 안에 나 혼자뿐이니 누구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 실컷 감정을 토해냈다. 그러다가 지쳐 잠들어 한잠 푹 자고 나니, 처음보다 한결 기분이 괜찮아졌다.

Conditions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철저히 혼자 있고 싶을 때, 가장 편안한 상태(트레이닝 복 + 봉두난발)로 지칠 때까지 마음껏 울고 자고 먹고 하고 싶을 때.
Tip 문은 꼭 잠글 것, 가족들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일 수 있으므로 방음에 신경 쓸 것
Price주전부리 5천~6천원, 만화 대여료 한 권 당 3백원(신간은 4백원)

관악산 약수터

장고 끝에 내린 유학생활이었다. 딱히 부를 친구가 없는 한가한 주말이었다. 조용히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길을 나섰는데, 허전한 감이 뭔가 했더니 놓고 온 것이 있었다. 떼래야 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지갑과 휴대폰. 하지만, 돌아가야 무엇하리. 걱정을 대신 주머니에 채워넣고 그저 걷기 시작했다. 산은 북새통을 이뤘다. 관악산은 본래 올곧게 솟아 사람들은 그 정기를 좆지만, 나에게는 그럴 여력 따위 없었다. 무감각한 발등과 무릎을 들어 그저 사람들을 쫓기만 할 뿐이었다. 하루가 갈수록 나의 선택이 나의 선택이 아닌 날들이 쌓여가던 참이었다. 관악산의 약수가 졸졸 흐르는 곳에 기어이 닿았을 땐, 눈물인지 안개인지 흐릿한 자국이 눈과 등허리를 감쌌다. 날 지나는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왠지 나 혼자 후퇴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경쾌한 발걸음으로 산을 오르다가 넓적한 바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책 한 권을 펴들었는데 갑작스레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알록달록한 옷을 갖춘 등산객은 바삐 제 갈 길을 갔다. 난 몇 시간 동안, 흐르는 그들 곁에서 혼자만의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왠지 모든 게 괜찮아질 것 같았다.

Conditions 서울에 유학 왔는데 친구가 없을 때, 운동 부족을 온몸으로 체감할 때
Tip 약수를 떠먹을 물통은 꼭 챙길 것, 등산객의 폭풍 수다를 막을 수 있는 MP3 플레이어를 챙겨갈 것
Price무료

독립 영화관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있잖아, 나 그 영화가 너무 보고 싶은데,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어. 그래서 결국 못 봤잖아. 사람들이 이래서 연애하나 봐.” 친구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난 광화문의 조그만 영화관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땐 점심시간이었다. 너무나 바쁘게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난 느림의 미학을 느끼게 하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 티켓을 한 장 끊었다. 홀로 왠지 신선놀음하는 마냥 여유를 만끽하는 시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화 상영 시작 전, 내부의 갤러리 카페에서 사진도 감상하고, 가방 속에 넣어 둔 책을 꺼내 읽으면서 나 홀로 감성을 충전했다. 카페 옆에 비치된 영화 리플렛을 보면서 영화 예습도 했다.
사실 뭐든 처음이 어렵고 어색할 뿐이다. 홀로 들어가는 영화관은 일종의 특권이다. 나의 취향을 스스로 존중하는 일,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감성을 충전하는 일. 난 아무리 바쁘더라도 언제나 말랑말랑해지는 법을 잊지 않았다.

Conditions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지만 갑자기 일탈하고 싶을 때, 인기 없는 영화를 다른 사람 눈치 없이 보고 싶을 때, 바쁠 때 여유를 만끽하고 싶은 반항심이 생길 때
Tip 추억의 영화나 인디 영화제 등 단발성으로 상영되는 영화가 많아 주기적으로 영화관 공식 사이트를 체크할 것
Price조조 상영 5천원, 일반 상영 8천원

석촌 호수

바람 솔솔 부는 화창한 하루, 게다가 그날은 공강이었다. 집에 앉아 멀뚱히 있기도 멋쩍은데, 바람 쐴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그때 떠올랐다. 친구 없이 혼자서도 제대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석촌 호수가.
mp3 플레이어와 한 통의 물통을 들고 호수를 향해 갔다. 도심 속 나만의 호수 공원. 아, 눈앞에 펼쳐진 놀이동산과 사람들의 행복한 비명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호수를 따라 길을 걷다가 벤치에 누워 Postal Service의 <Sleeping In> 을 들으니, 마치 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호수길 중간에는 반갑게 갤러리도 있었다. 멜로디에 취해 있기를 40여 분 되었을까. 문득 입이 심심해 카페 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만끽했다. 좀 더 호수에 날 놓아줄 참이었다. 점점 어둑해지면, 낮과는 다른 석촌 호수만의 매력이 빛을 발할 테니까. 여유로움과 즐거움의 잔잔함을 그렇게 마음속에 조용히 결을 남겼다.

Conditions 날씨도 좋고 시간도 남는데 홀로 마땅히 갈 데가 없을 때, 바람 쐬고 싶을 때
Tip 오후 5~6시경에 가서 야경까지 감상하는 것이 좋음
Price 무료, 카페 이용 시 커피+빵 1만원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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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구박사신박사

    전 일단 해운대 간비오산 봉수대를 추천드립니다...
    부산 기계공고라는 학교가 있는데 그 뒷산입니다.
    산정상에 올라 보면 광안대교와 해운대 전경이 모두 다 보입니다.
    해운대 달맞이길에 있는 팔각정이 연인과 함께 가는 곳이라면 이곳은 정말 혼자 사색을 즐기기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곳도 예전보다 많이 알려져 있어 다소 복잡하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삭막한 감정을 가진 사람도 붉게 물들어가는 해운대 바다의 석양을 보고 있노라면 시상이 절로 떠오를 겁니다.
    머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신하신다면 한 번 쯤 소리내어 펑펑 우셔도 좋습니다~
    전 해 봤어요~ ㅎ
  • 야구박사신박사

    지방에도 좋은 곳 많은데...
    럽젠 독자님들의 댓글 참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거 이벤트 함 하면 안될까요? ㅎ
  • 감성녀 한아름ㅋㅋㅋㅋ 여기서도 감성녀야?
  • 박상영

    @황태진, 그러게요....
  • 서지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덕분에 다시 올려봤다가 빵터졌네요 태진기자님ㅋㅋㅋ
  • 황태진

    언제나 황태진이 문제군요.. 황태진이...
  • 조세퐁

    사진속 황태진기자는 자이로드롭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의 비명을 만끽하고 있는 듯.
  • 이윤애

    불합격녀를 극복할 수있도록 내일 시험은 잘봐야겠어요. ㅎㄱ흑흑흑흑 흑흑
  • 박상영

    이윤애 기자 사진에 나오는 사람 누구죠? 언닌가요? 언니 예쁘시네요
  • 박상영

    별명 누가 붙였는지 몰라도 센스 폭발하네요 ^^
  • 박상영

    전 황태진 기자 콧구멍에 더 눈이 가요. 킁킁
  • 박상영

    박상영도 오천원이면 콜 ㅋ
  • 엄PD

    초딩 시절 바른생활은 항상 '수' 였지만,,,ㅋㅋㅋㅋ 바른생활남,,, 공익광고 찍어야 겠는데 ㅡㅜ
  • 황선진

    네,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웃사이더가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색 다르게 (...!)
  • 황선진

    황태진 물방울 안에 눈빛 죽인다!
  • 이소연

    불합격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웃사이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럽젠집착남

    조조상영은 5천원이군요... 그렇다면 박상영은 얼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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