럽젠톱텐 _ 나 홀로 여기에 1

럭셔리 노래방

평일 새벽 2시 반. 느닷없는 이별 통보 문자를 받았다. 친구들은 모두 자고 있다. 전화를 만지작거리던 난, 잠옷 바람에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럭셔리한 노래방에 들어섰다.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난 사랑에 대한 화려한 마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입구에 놓인 아이스크림대에서 젤라또를 듬뿍 퍼 올렸다. 리필도 무한정 공짜였다.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선 난 소파에 웅크리고 앉았다. 쿠션을 껴안고 이소라의 <제발>을 부르자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청승의 ‘종결자’로서 입지를 다지다가 느닷없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신나는 노래를 선곡했다. 샤우팅 창법으로 한참을 지르다 보니 잔여 시간이 1분밖에 남지 않았다. 성대를 아작내기 위해 크라잉 넛의 <룩셈부르크>를 골랐다. 노래가 끝나자, 앞으로 영영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아뿔싸! 20분의 서비스가 생겼다. 힘겹게 시간을 채우자 또 20분의 서비스•••. 목청은 찢어질 것 같은데, 시간은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 녹은 아이스크림을 야금야금 먹으며 목을 축이지만 소용없었다. 이것이, 지옥인가!

Conditions 너무 답답한데 소리지를 수 없을 때, 발등 찍히듯 느닷없이 연인에게 차였을 때
Tip 공짜 아이스크림과 공짜 팝콘 등 공짜 사이드 메뉴를 체크할 것. 목 건강을 조심할 것
Price 주간 1만5천원, 야간 2만원(2인실 기준)

한강 수중보

유난히 수업이 늦게 마친 금요일, 다가오는 주말에 들떠 친구들에게 전화했는데 이미 그들은 만취 상태였다. 어디냐고 물어보니 집에서 30분이나 떨어진 한 술집. 가자니 몸이 너무 피곤하고, 그냥 집에서 쉬자니 몸이 근질거렸다. 주머니에 휴대폰과 체크카드를 찔러 넣고 길을 나섰다. 마트에 들려 순살 치킨 한 마리와 맥주를 사 들고 간 곳은 집 근처 수중보. 수중보 근처에 도착하자 시원하게 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바람이 느껴졌다. 마치 폭포에 온 것 같은 느낌. 내 주변을 감싸는 물소리는 혼자 먹는 치킨의 민망함을 감싸주기에 충분했다. 헤드폰을 귀에 꽂은 뒤 Damien rice의 의 음악에 빠졌다. 폭포 소리를 안주 삼아 맥주도 한 모금, 하루의 근심이 우주 밖으로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사항. 너무 밤늦게 가면 안될 것 같다. 아저씨들이 “학생, 나도 치킨 한 입만~.”할 때가 있으니.

Conditions 유달리 밤이 긴 어느 날, 혼자 분위기 있게 치킨 먹고 싶을 때.
Tip 새벽 시간은 피할 것. 취객이나 능글맞은 아저씨들의 추파에 찔릴 수 있음
Price 순살 치킨 1만2천원, 캔맥주 2천원

교보문고

화창한 오후, 밖에 나가고 싶지만 친구와 딱히 할 얘기도 없고 돈도 충분하지 않을 때, 난 또 그곳으로 향했다. 언제나 신간이 예쁘게 진열된 내 사랑, 교보문고. 심지어 문제집에 이르기까지, 만화책과 잡지를 뺀 모든 책을 볼 수 있다. 종종 열리는 사인회에는 유명인사를 구경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출출하면 서점 내의 카페에서 요기할 수 있고, 깨끗한 화장실에 기분도 좋아질 뿐 아니라 친절한 직원의 배려에 존중받는 기분이 든다. 혼자 나들이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난 서점 한가운데 라운지에서 주위보다 환한 조명 아래 편안한 의자에 의지해 책을 읽었다. 관심 있는 책을 잔뜩 집어가서 한 권씩 다 읽고 제자리에 갖다 놓으니, 공중도덕을 잘 지키고 마음의 양식까지 쌓을 줄 아는 훈훈한 대학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땡전 한 푼 안 내고 바깥 공기도 잘 쐬면서 다양한 양식을 얻는 이곳. 잠바만 대충 걸쳐 입고 얼른 나가보렴!

Conditions 무료한데 돈이 없을 때, 지적 욕구가 마구마구 끓어오를 때
Tip 앉을 자리가 없을 땐 언제나 한가한 종교 서적 코너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보면 된다
Price 무료

대학병원 중환자실, 장례식장

‘불합격입니다.’ 모니터를 계속 바라보았지만, 화면의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매끼를 삼각김밥으로 대신하며 아꼈던 시간도, 하루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거울 앞에서 스스로 욕했던 순간도 다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렸다. 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그럴듯한 멋진 말은 다 이미 성공한 자의 겉멋 든 수사로만 여겨졌다. ‘혹시’는 ‘역시’가 되고, 계획된 모든 일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맘뿐이었다. 그 순간 울린 전화벨 소리. 친구 아버지의 부고(訃告) 소식이었다. 곧장 달려간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한없이 작은 사람이었는지를 배웠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숙연해진다. 좌절도, 실패도 삶 안에 자리 잡은 것일 뿐, 죽음보다 힘들거나 아프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내뱉었던 힘들다는 엄살을 그만둔 것도, 아버지를 잃은 친구의 슬픈 표정을 본 이후였다. 이제 나는 정말 힘들어서 죽어버릴 것 같은 순간이 오지 않는 이상, 힘들다는 말은 꺼내지 않기로 했다. 아니,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좌절과 실패로 얼룩져 하늘이 원망스러울 때 이곳을 찾는다.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가족과 지인들. 그 간절함이 보내는 기운은 어떤 글도, 말도 전해주지 못한 교훈을 가르친다. “엄살떨지 마.”

Conditions 삶이 힘에 겨워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
Tip 병원 업무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 문상객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문 언저리에서 관찰자적 시점을 유지할 것
Price 무료

모교

폭풍같이 밀려오는 과제의 압박, 이미 망쳐놓은 학점을 되돌리기 위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재수강 행진. 난 학기 중임에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졌다. 그 힘들다는 취업의 문을 두드려 보기 위해 취업정보 사이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마음만 더 답답해지고 말았다. 대학생이 되면 뭐든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미 초심은 사라지고 일탈만 꿈꾸는 나를 발견하다니.
초심이라••• 내가 가장 순수하게, 가장 열심이었던 때를 찾아가고 싶었다.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지만,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여행은 가능하지 않을까. 훌쩍 자라버린 나와는 달리 예전 모습 그대로일 모교가 떠올랐고 그곳을 향했다. 지리적으로 나와 가까운 곳에 있어도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나는 그 모교를.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던 벤치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봤다. 눈에 보이는 곳마다 깃들은 추억이 떠올라 학창시절의 순수한 마음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이 순간 뇌리를 스치는 배움, 지금까지 답답하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모든 것이 별 게 아니라는 것. ‘까짓 것, 열심히 해보지 뭐. 최선을 다해서 후회하지 말아야지.’ 지쳐서 잠시 잊고 있던 나의 꿈, 의지를 되살렸다. 그리고 난 휴대폰을 꺼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이 뜸했던, 나의 학생 시절 친구를 찾아.

Conditions 지금 생활에 지쳐 있을 때, 스스로 초심을 잃었다고 느낄 때.
Tip 사립학교는 뜻하지 않게 아는 선생님과 마주칠 수 있으니 조심할 것. 본인의 신분 보호와 더불어 잘생긴(예쁜) 후배를 면밀히 관찰하기 위해서 선글라스를 착용할 것
Price 무료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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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
  • 럽젠집착남

    @야구박사신박사, 신박사님 서운합니다. ㅋㅋㅋㅋ
    이 기사를 통해 전 진중한 이미지 메이킹을 원했는데 찝적이라뇨 ㅜㅜ
  • 야구박사신박사

    한강 수중보는 남기자님 말씀 따나 늦은 밤 여자분들은 조심 하셔야 할 듯 합니다...
    진기자나 박기자 같은 남성 분들이 찝쩍댈 수 있을 것 같네요... ㅎ
  • 박상영

    @토마토링, 제 마라카스 투혼 보이십니까?
  • 박상영

    @홍석준 기자, yeah~ It's kind of my idea. Do you have special time in Newyork?
  • 와우 ㅋㅋ 이 기사 넘재밌어요^^
  • 한종혁

    wow~ I kinda like this concept~ :)
  • 박상영

    @홍석준 기자, 저랑 럭셔리 노래방이랑 잘 어울린다는 말이죠? 훗
  • 박상영

    @진장훈 기자, 마치 이소연 기자의 피부같은ㅋㅋㅋㅋㅋ
  • 조세퐁

    오ㅡ 5명의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장소들이네요. 글도 그렇구요. 어서빨리 다음편을!!!
  • 럽젠집착남

    무일푼녀 이소연... 쪼리 너무 잘 어울린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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