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의 샘터 혹은 악마의 눈속임

몇 해 전, 한 서울대 학생이 표절 리포트로 수상했다가 뒤늦게 그 사실이 밝혀져 사회적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때였을 뿐, 여전히 암묵적으로 거행되는 대학생의 표절 문제. 우리의 양심은 어디에 팔았을까?


자고로 대학생에게 과제란, 자신의 학문적 사고 과정과 결론의 산물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는 리포트를 포함해 상위 단계인 논문이나 졸업 작품과도 같은 맥락인 셈인데, 이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은 그리 순탄하지 않아 보인다. 당신에게 묻는다. 참고 서적을 그대로 붙여 넣거나 인터넷의 짜깁기 된 자료를 참고하거나, 그 주인이 아닌 지식의 홍수 속에 당신도 암암리에 합류한 게 아닌지. 이런 대학생의 아찔한 표절 문제를 놓고, 여기 당찬 독수리 오형제가 모였다.

럽젠Q : 모두들 반갑습니다. 오늘 저희가 <대학생의 표절>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하려는데,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진용재 : 음, 리포트 사이트의 자료를 짜깁기해서 과제로 제출하는 방법을 표절이라고 생각하죠. 사실 저도 그런 식으로 과제를 제출한 경험이 있고요. 그래서 딱히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아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러지 않나요?

이새롬 : 글쎄요. 저는 좀 회의적이에요. 표절은 다른 사람의 정보나 지식을 아무런 각주 없이 자기가 한 말인 냥 쓰는 것이잖아요. 스스로 고려해서 지식을 창출하지 않고 단지 남의 것을 쉽게 쓰는 요즘 대학생의 문화가, 꽤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이태현 :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어떤 것이 표절이고 인용인지에 대한 확실한 기준부터가 모호한 것 같거든요. 인문학은 특성상 다양한 생각이나 관점을 전개해야 하는 과제가 많은데요. 확실한 정답이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서적이나 자료를 참고하는 등 어느 정도의 인용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자신이 주가 되느냐 남의 것이 주가 되느냐의 문제겠죠.

이아현 : (깜짝 놀라며) 아니, 전 사실 대학생의 표절이라고 해서 무슨 얘길까 약간 갸우뚱했거든요. 과제 제출을 할 때 짜깁기를 한다니, 그런 사이트가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저희는 예술계다 보니 감상문이나 과제 같은 것을 제출할 일이 많지 않거든요. 신기하네요.


유지영 : 저는 표절이 문예창작학과에선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구성이나 흐름 등의 맥락을 비슷하게 이어가는 것도 표절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죠.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거든요. ‘나도 모르게 표절을 하고 있었구나’하고 뒤늦게 알게 되니 얼굴이 빨개졌죠. 그렇게 글 쓰는 사람들에게 표절은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에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럽젠Q : 학과 특성상 아예 생소한 분도 계시네요. 각자 의견도 다르고요. 표절이 팽배한 것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이새롬: 요즘 많이 느끼는 건 리포트 사이트 출처의 자료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학생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수님의 논문도 해당 사이트에 올라오고요. 많은 학생도 그것을 과제용의 소스로서 쓰고 있다는 게 문제죠. 대학생이 표절과 인용의 차이도 모를 뿐 더러 인용할 때 어디에 각주를 달아야 할지 정확한 정보 인식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유지영 : 인식의 문제도 그렇지만, 전 교육적인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전공이나 교양의 교수님의 수업을 들어보면 표절이나 짜깁기 등은 하지 말라고 말씀하세요. 하지만 어떤 것이 표절이고 인용인지, 혹은 각주는 어떻게 달아야 하는지 등의 교육 자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죠. 대학생에게 수준 높은 결과를 요구하지만, 그런 과정의 문제엔 대학에서 수수방관하는 게 아닐까요?


이태현 : 그러게요. 교수님조차도 인터넷 백과사전 같은 곳에서 자료를 가져다 쓰시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교수님부터라도 발표 자료나 논문 등에 제대로 된 표기 방식을 했으면 좋겠어요. 먼저 그분들이 실천하며 지켜야, 학생도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 되면, 학생에게 무리한 과제도 요구하지 않겠죠.

럽젠Q :표절은 인식의 문제에서 시작됐지만, 교육이나 제도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지 않는 현실도 큰 문제 같네요. 공대생인 진용재 학생은 어떤 생각인가요?


진용재 : 공대는 실험 리포트를 쓰는 입장에서 많이 답답한 게 사실이에요. A+짜리 리포트를 3개 정도 짜깁기해서 내는 것과 실제로 본인이 실험한 결과물로 내는 게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결과물을 검토하는 것도 교수님이 아닌 조교들인데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학내 전체적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이 정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문제죠. 게다가 우리나라가 표절 자체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이에 대해 중고등학교 때부터 경험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행위가 왜 처벌받아야 하는 지에 대한 심각성도 우리가 잘 몰랐던 게 아닐까요?

이아현: 저희 분야로 말하자면, 그런 부분(모방)을 딱히 나쁘게 보지 않거든요. 오마주(hommage)라고 들어보셨나요? 방법론적인 문제에서 자기 해석대로 작품을 창조해낸다고 했을 때 예술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디자인이나 예술계는 모방을 기본으로 한 작품의 창조가 인정된다고 할 수 있죠. 그러니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대학생의 표절도 제 입장에선 그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말 그런 부분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아휴, 어려워라(웃음).

이새롬: 사실 글로 결과물을 표현하는 과정이 참 힘든 일이잖아요? 이걸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표절을 쉽게 하는 것 같아요. 한 과목에서 리포트가 한 개 이상만 되어도, 사실 대학생에겐 굉장한 부담이잖아요. 예전에 조교를 했던 적이 있는데, 학생의 리포트를 채점하면 정말 하루만에 뚝딱 만든 티가 굉장히 많이 나더라고요. 짜깁기하거나 표절한 것도 눈에 잘 보여요. 지금 당장 학생의 역량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데, 리포트 중심의 교육으로만 치우친 것 같아 안타까워요.

럽젠Q :표절과 모방의 객관적 기준을 잘 모르는 대학생의 실태도 문제지만, 현실적으로 개선의 여지가 필요해 보이네요. 혹시 이런 표절에 관련해 개인적인 경험담이 있는 분도 있나요?

진용재 : 자꾸 저의 경험을 예로 드니까 민망한데요. 시험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리포트를 쓰게 되었던 적이 있죠. 결국 시간에 쫓겨 짜깁기를 해서 냈는데, 다른 친구도 저와 똑같은 자료를 가지고 냈더군요. 하지만 전 D+, 그 친구는 A+란 점수를 받았죠. 그런걸 보면서 사실 많이 느꼈어요. 낮은 학점에 많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에서 뉘우쳤던 게 옳은 일이었다고.

이새롬: 저는 표절했다가 인용 문구를 다시 다는 작업을 했던 적이 있어요. 겁 없이 그렇게 표절을 했다가 2개월 동안 다시 과제를 해야 되는 상황에 처해보니 정말 후회되기도 했죠. 만일 해당 사항에 대한 법적인 조치가 행해졌다면 굉장히 아찔했을 거에요.

일동: [경악]

유지영 : 이건 개인적인 일은 아니지만, 주변에 보면 리포트 사이트 등을 이용해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도 있어요. 자료 한 건당 1천5백원에서 3천원까지 가격을 책정하고 팔아서 돈을 버는데, 가끔 그런 걸 보면서 부럽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악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럽젠Q :실제로 그런 사례에 대해서 기사화되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죠. 공모전을 예로 들면 어떨까요? 자기 소개서나 기획서 같은 것 말이에요.


이아현: 저희 분야는 공모전에 응하거나 작품을 출품한 경험이 상당히 중요한 편인데, 선배들이 조언하길 공모전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기업 등의 타 기관에 아이디어를 다 뺏긴다고요. 심지어 공모전에 제출하는 아이디어의 저작권은 우리 것도 아니게 된다면서요.

이태현: 공모전의 실태도 심각하지만 기업 등의 자기소개서 문제도 간과할 수 없어요. 4학년은 취업을 준비하기 마련인데, 합격한 자기소개서 같은 자료를 인터넷 사이트에서 모두 똑같이 베낀다고 하더군요. 표절이 표절을 낳고 있는 현실인 것 같아 씁쓸해 보여요.

럽젠Q :지금 사실 학생이 타인의 지식이나 정보를 표절하는 문제도 상당히 심각한데, 그런 것을 이용해서 기업이나 공모전에서 학생의 아이디어를 빼가는 경우도 있죠.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같은 문제에 학생들이 실제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뺏기지 않는 방안이 있을까요?

이새롬 : 저작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겠죠. 자신이 그것에 대해 알고 제대로 적용하려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하다못해 온라인 상의 사진이나 일기 하나를 올리더라도 말이죠. 요즘 하도 표절이 문제가 되어서, 이제부터 경영대도 연구 노트를 쓰자고 했거든요. 사람들이 습관이 되지 않으니까 힘든 부분이 많더라고요. 동시에 자신의 지식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 같다는 태도도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남의 생각도 그냥 가져오는 판에 자신의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할 리 없죠.

유지영 :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해요. 동시에 교수님이 아이디어가 없으면, 영감을 얻기 위해 학생에게 과제를 내고 그것을 가져다 쓰는 일도 비일비재하거든요, 대학생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니, 교수님도 이런 부분을 개선해줄 바람직한 태도를 지니셨으면 합니다.

럽젠Q : 오늘 좌담회에 모이신 분들 덕에 표절에 관한 여러 단상을 보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각자의 의견을 정리하고 이 자리를 마칠게요.

진용재 : 공대 입장에서는 리포트 표절 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게 사실 다 이해되지 않아요.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거든요. 물론 남의 것을 베낀다는 것은 본인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에 자신이기를 포기했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를 인식하고 새롭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아현: 표절과 모방 등에 관한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어요. 저도 앞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요. 다들 말씀을 잘해주신 덕에, 많은 것을 배우고 가네요. 결론은 이에 관한 개념이 잘 선다면, 더욱 발전된 창조물이 나오지 않을까 해요.(웃음)

이태현 : 저는 무조건 표절은 나쁜 거라고 생각해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의문이었거든요. 저 역시 오늘 여러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자리에 참석해서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할 계기가 되어 감사드리고요. 이 글을 볼 다른 대학생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유지영 : 저도 나쁜 거라고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는 현실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학생은 물론 교수님이나 기업이 가진 도둑놈 심보도 꼭 고쳐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요. 그리고 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문제의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개선이 될 거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합니다.

이새롬 : 전 표절과 인용한 뒤 표절이 아니게 된 경우가 굉장히 작은 차이로도 분명해진다고 생각해요. 각주나 문구 하나만 달면 된다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인식 변화가 이뤄지면 잘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커다란 사건 이후에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이나 치료법이 될 수 없고, 사회 제도적인 차원이나 교육 및 인지적 차원에서 표절에 대한 인식의 틀을 만들었으면 해요.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 황태진

    @으헣 님 안녕하세요. 말씀처럼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어요 ^^ 다만 그 경계를 어떻게 잘 조율하느냐에 따라 법에 문제가 되지 않겠죠~
  • 으헣

    어떤 면에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고민들을 계속 해야할 것 같습니다.

소챌 스토리 더보기

나의 라임 단골집 2탄 (feat. 동네 맛집 털기)

나의 라임 단골집 1탄 (feat. 동네 맛집 털기)

<카일루아> 윤정욱 작가ㅣ디지털 노마드로 산다는 것

가성비 좋은 푸드트럭 삼만리

서울의 심야식당 3

졸업전시 – 전시 / 공연 / 쇼

집밥 “서선생” – 남은 추석 음식 활용편 –

가을이니까, 소채리가 추천하는 10월 나들이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