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야구광의 대학가 배팅장 리얼리티

단돈 1천원 안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힐링 스포츠, 야구. 야구광 류 기자는 말한다. 배트와 공이 만나는 순간의 쾌감이란, 가히 군대 시절 휴가 날 아침의 기상나팔 소리를 들을 때와 같다고. 현실적인 스트레스의 노예가 된 류 기자가 행복하게 도망간, 대학교 근처 배팅장 체험기.

싸고 배팅하는 여성이 눈에 띄네 _ 서울대 입구 배팅장


감기 때문에 골골거리며 찾아갔던 서울대 입구의 배팅장. 3월이지만 송곳 같은 바람이 불어오던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배팅하는 모습이 보였고, 탕! 탕! 타격음이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동전이 없는 사정상 지폐를 환전하기 위해 사장님께 여쭤봤다. “사장님, 여기 한 번 하는데 얼마예요? 몇 번이나 칠 수 있어요?” 사장님은 내게 5백원에 18발을 칠 수 있다고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취재가 끝난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서울 대학가 근처 배팅장 중 가장 싼 가격이었다. 배팅케이지(타석) 안에 들어서니, 홈 플레이트가 있어 진짜 경기를 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공의 난이도는 평이한 편. 공이 많이 나오지만, 미리 타이밍만 잘 잡으면 충분히 홈런을 날릴 수 있다. 난이도가 구분되어 있어 처음 입문하는 이들도 서서히 난이도를 올리면서 연습하기 좋다. 이곳의 가장 특별한 점은 여성과 어린이용 배트가 따로 구비되어 있어 다양한 연령대가 배팅장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키 포인트는 배트를 휘두르는 여성들을 비교적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Location 서울대입구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보이는 편의점을 향해 직진 후 골목으로 좌회전
Price 18발당 5백원
Tip 공이 많이 나오니, 조급해하지 말 것
거친 남자의 심호흡과 승부욕이 넘실대더라 _ 흑석동 중앙대 근처 배팅장


흑석동 배팅장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전철역과 버스 정류장 사이에 있어 쉽게 볼 수 있다는 것. 중앙대생들은 등하굣길에 어김없이 이 배팅장을 찾게 된다.
난이도는 조금 높은 편이다. 조금 방심하다가는 처음 몇 개는 제대로 타이밍도 맞춰보지 못한 채 흘려보낼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어려운 것에 도전해 성공하면 성취감이 더 큰 법. 제대로 감을 잡고 치기 시작하면, 그 어떤 배팅장보다 훨씬 큰 쾌감과 함께할 수 있다.
배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든 깔끔한 시설과 좋은 난이도는 배트 마니아 사이에도 소문이 자자하다. ‘양신’이라 불리는 삼성 라이온즈의 레전드인 양준혁과 그가 출연하는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도 이곳을 찾은 것을 보면, 남자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곳으로는 자격 검증이 끝난 셈이다.

Location 흑석역 5번 출구로 나와서 쭉 직진, 왼편에 위치
Price 13발당 5백원
Tip 배팅도 배팅이지만, 앞에 있는 두더지 잡기도 재미있다. 8백점을 넘기면 고수! 기계에서 김건모의 ‘핑계’가 아주 흥겹게 나온다.
맛집도, 번외 놀이 공간도, 여대생도 많더라 _ 남영역 숙명여대 근처 배팅장


남영역에서 내리자 ‘딱콩’하는 경쾌한 파열음 소리가 들렸다. 너무 들떠서 환청이 아닌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놀랍게도 배팅장은 역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2층에 배팅장이 위치해 계단을 찾아 허겁지겁 올라가는데, 과 점퍼를 입은 두 명의 여학생이 대화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놀라웠다. 인생을 배우는 것 같았다.

여학생 A : 아, 오늘은 잘 안 맞네, 되게 신경 쓰이네, 짜증 나. 한 번 더 칠까?
여학생 B : 됐어, 잘 맞는 날도 있고 안 맞는 날도 있는 거야, 오늘은 날이 아니다.

숙명여대 근처인 이 배팅장의 가장 큰 장점은 실내 배팅장을 비롯해 당구장과 탁구장까지 다양한 실내 놀이 공간이 한 건물에 있다는 것. 당구장에서 1시간을 놀면 배팅을 1회 무료로 칠 수 있다. 당구 내기에서 져도, 방망이를 휘두르며 짜증을 털어낼 수 있는 셈이다. 이곳의 보너스 장점은 길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숙명여대 근처 맛집들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점이다. 높은 난이도에 헛스윙만 수차례, 허탈해진 나의 마음을 녹여준 건 다름 아닌 숙명여대 근처 분식집의 끝내주는 어묵국물이었다.

Location 남영역 출구의 바로 앞 위치
Price 13발당 5백원
Tip 공이 무시무시하게 빠르다. 긴장하고 가야 한다. 주위 분식집의 맛이 끝내준다.
두근두근 연인의 사랑 내음이 진동하네 _ 신촌 연세대 근처 배팅장


신촌은 언제 가도 사람이 많은 곳이다. 날씨가 조금 풀린 신촌은 사람이 더욱 많아 보였다. 북적거리는 신촌 거리의 중심에 있는 이 배팅장은 아주 아담한 규모지만, 위치 덕에 많은 사람이 들락날락했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대다수 손님이 실제 연인과 예비 연인(이제 막 불붙기 시작했다)이었다는 점. 내가 들어갔을 때, 한 커플 중 과 점퍼를 입은 한 여대생은 손에 예쁜 장미꽃을 들고 있었다. 갑자기 일기예보의 ‘좋아 좋아’ 가사가 떠오르며, 왠지 모를 감상에 잠깐 젖었다.
신촌 배팅장의 가장 큰 특징은, 좁은 장소의 특성상 기존 배팅장과 다른 ‘스크린 야구’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이다. 공이 짧은 거리에서 투수 애니메이션이 나온 다음에 나오는 것.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어서 스윙도 많이 했지만, 치다 보니까 새로운 재미가 느껴졌다. 두 번째 특징은, 점수제가 있어 승부욕이 점점 붙는다는 것. 공을 때려서 정해진 위치에 맞추면 점수가 올라가는데, 2백 점 이상이면 3번의 보너스구가 나온다.
배팅을 처음 접하거나 생소한 환경에 어리둥절한 이를 위해 벽에 이승엽 선수의 타격자세도 붙여 놓았다. 남자들의 거친 숨소리보다 커플의 사랑 내음이 더 진하게 느껴졌던 신촌 배팅장이었다.

Location 신촌역 1번 출구, 현대백화점을 지나 번화가 쪽으로 쭉 내려오면 위치
Price 12발당 1천원
Tip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공이 나오니, 처음 몇 개는 분명 놓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배팅을 치며 감성에 젖다 _ 대학로 성균관대 근처 새미소사 배팅장


맑은 날씨에 흥해 조금 걸어볼까 싶었다. 삼청동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성균관대 후문까지 걸었다. 그리고 도착한 배팅장. 시끌벅적한 대학로와는 달리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건널목 하나 건넜을 뿐인데, 분위기가 상당히 조용했다. 적막했다. 좋았다.
건널목을 건너 3분만 직진하면 보이는 주차장 2층에 오늘의 목적지가 있었다. 이름부터가 무시무시한 ‘새미(세미) 소사 배팅장’. 새미 소사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강타자로, 90년대 중반 우리에게 빅맥으로 알려진 홈런왕 마크 맥과이어와 함께 한 해 70개가 넘는 홈런을 때렸던 무시무시한 선수였다. 그런데 박찬호 선수에게는 약했던 기억이 난다.
배팅장은 정말 넓었다. 그리고 조용했다. 공 나오는 소리와 공을 치는 소리, 그리고 허공을 가르는 배트 소리, 이 3가지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성균관대 학생들이 많이 찾을 줄 알았는데, 막상 배트를 치는 이는 주위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이들의 짧은 머리를 보니 고등학교 때 눈물 흘리며 보았던 아다치 미츠루 작가의 야구 만화 <H2>가 생각났다. 더불어 델리스파이스의 명곡 <고백>도.
타석에 들어서서 공을 쳤다. 공은 그리 빠르지 않았고, 배트도 그리 무겁지 않아 배팅하기에 아주 좋았다. 가격 대비 공도 많이 나왔고, 앉아서 쉴 공간도 많았다. 그런데 희한했다. 배팅을 치는 이유가 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였는데, 이곳에서 배팅을 치고 나니, 내가 모더니즘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주위에 극장이 많아서 그런가.
결국, 난 배팅장 취재를 끝내고 대학로에서 예정에 없던 연극 한 편을 보았다. 대학로는 참 멋진 동네다.

Location 혜화역 4번 출구, 건널목을 건너 미스터 피자를 지나 20m 정도 직진
Price 13발 5백원
Tip 배팅을 치고, 나와서 이곳저곳 골목길을 쏘다니다가 연극 한 편을 보면 이걸로 감성충전 끝!
아는 사람만 오는, 일종의 성지와 같은 느낌이더라 _ 안암동 고려대 근처 배팅장


여러 대학교와 인접한 신촌이 오히려 대학가의 느낌이 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안암동은 올 때마다 고대를 위한, 고대에 의한, 고대의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붉은색 과 점퍼를 입은 고려대 학생들은 안암역 출구에서부터 배팅장으로 들어오는 골목 근처까지 빼곡히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이들을 보니 뜬금없이 농구대잔치 전성시대 시절이 오버랩됐다. 화려하지 않고 잘생긴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엄청난 카리스마가 느껴졌던 고려대학교 농구부가 떠올랐다.
배팅장은 간판이 없었고,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아 찾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예전에 이곳에 한 번 와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배트는 다른 배팅장과는 달리 상당히 밀도가 있었고, 그 때문에 공 하나를 칠 때마다 굉장히 힘이 들었다. 하지만 내 양옆에 있는 두 고려대 학생들은 이를 악물고 하나 둘 정성껏 힘을 실어 타구를 내보내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간만에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열심히 배트를 휘두르고 나오니, 예전에 놀이동산에서 자주 하던 농구 게임대가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봐서 신기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서니, 우연의 일치였을까? 고려대 농구부의 붉은색 유니폼과 함께 90년대를 수놓았던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가 보였다.
고려대 학생 중에서도 아는 사람만 온다는 이 배팅장. 간판도 없고 찾기도 힘들고 시설도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이곳은 땀방울과 고민의 등가교환이 이루어지는 신성한 성지 같은 느낌이었다.

Location 안암역 4번 출구, 고려대쪽으로 직진, 삼성통닭에서 우회전
Price 13발당 5백원
Tip 왼손타자가 칠 수 있는 타석은 아쉽게도 없다. 대기 좌석은 정녕 따뜻하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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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같은데 보면 보통 술마시고 가거나 야구 좋아하는 남자친구하고 가잖아요
    그래서 못갔어요
  • 야구박사신박사

    홍대 극동방송국 주변에 새로 생긴 배팅연습장은 빠져있네요~^^
    제가 보기엔 서울 시내에서 최고의 시설인 듯...
    다만, 15발 당 천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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