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승효상┃집, 자는 곳 이상의 사유들

사진 제공 _ 명동예술극장

땅 위의 덧대어진 사유와 기억의 역사, 그것은 집이다 – 건축가 승효상

강의명 한국인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강사명 승효상
강의 일시 2012년 3월 19일 오후 7시 30분
강의 장소 명동예술극장

질문이란 좋은 것이다. 단언컨대 질문은 답보다 좋은 것이다. 우리가 질문하는 이유는 대부분 답을 구하기 위해서지만, 답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답을 위한 ‘사유의 과정’이 있기에 이만으로도 질문의 가치는 충분하다.
명동예술극장에서는 <한국인에게 집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필두로 대한민국의 대표 건축가 승효상의 강의가 열렸다. 당신을 품은 보금자리인 집, 당신은 집에 대해서 사유해본 적이 있는가?

승효상은 대한민국의 대표 건축가다. 15년간 김수근 문하를 거쳐 자신의 독립된 공간연구서 ‘이로재’를 설립한 그는 ‘빈자의 미학’이라는 건축 사유를 내세워 작업했다. ‘수졸당’, ‘수백당’, ‘웰콤시티’, ‘파주출판도시’ 등을 지으며 왕성한 건축 활동을 펼쳤으며, 김수근 문화상과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하면서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최고 건축가의 입지에 다다랐다.

건축은 인문학이다

명동예술극장은 여러 극장 중에서도 으뜸가는 시설을 자랑한다. 무대 위로 등장한 그는 지금까지 적지 않은 강연을 했지만, 이런 곳에서 강연하기는 처음이라며 넓고 웅장한 극장을 칭찬했다. 그는 ‘건축은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데도 많은 사람이 잘 모르고 있다.’라고 강연의 운을 떼었다.
현재는 건축대학이 홀로 독립해 있기도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축은 예술대학이나 공과대학에 속해있었다. 그러나 그는 건축이 오히려 인문학에 가깝다고 말했다. 건축은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학문으로 ‘공간’과 ‘삶’을 이해해야 하는 학문이니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고, 역사에 대한 통찰력과 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그가 말하는 ‘삶’이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이며, 그런 삶을 조직하는 학문인 건축은 결국 인문학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양의 건축, 그리고 한국의 건축

그는 서양 건축을 대표하는 주택으로, 팔라디오의 ‘빌라로툰다’를 예로 들었다. 이 주택은 서양 건축의 정수로, 정방형의 평면을 십자형 통로로 나누고 가운데는 둥근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다. 가운데에 위치한 원형 공간을 중심으로 사방에 둘러싸인 외부공간은 적으로 인식되어 지배 대상으로 여겨진다. 베네치아 남부의 도시 ‘팔마노바’도 마찬가지다. 팔마노바의 구조는 모든 길이 도시의 중심부로 집중된 방사상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중심에 있는 이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도시 의 주변부는 죄다 적으로 간주하는 것. 르네상스 인은 이런 단일 중심의 도시를 ‘이상 도시’로 여기고 유럽 곳곳에 건설한 바 있다. 이 도시들은 근대에 이르러 ‘계획 도시’의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어 도심과 부도심으로 나뉘어 주거 지역과 상업 지역을 갖가지 색으로 나뉘는데 영향을 끼쳤다. 과학적 수치와 효율성, 합리성으로 점철된 마스터플랜으로 명명되어 이른바 계획 도시의 역사가 시작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이상 도시’로 여겨지던 서구의 이러한 마스터플랜은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프루이트-이고 주거단지’가 바로 그것. 지금의 아파트와 거의 유사한 건축물로 ‘가장 좋은 아파트’로 평가받으며 새로운 주거개념으로 추앙받았지만, 천편일률적인 공간의 특성으로 각종 범죄와 인종분규, 갖가지 갈등이 끊임없이 야기되는 공포의 공간으로 변모한 까닭이다. 결국 1972년 주정부에 의해 폭파 철거되었고, 새로운 시대와 이상적 삶을 바라보았던 건축은 그렇게 무너졌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진짜 문제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을.

바로 서구에서 실패로 끝난 이 마스터플랜이 우리의 땅에 맹목적으로 수입되어 무분별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산과 분당과 같은 신도시가 그러하고, 오랫동안 살아왔던 옛 도시의 재개발, 재건축이 대표적인 예죠. 서울의 옛 지도를 보면 지도이지만 참 아름다워요. 한양을 둘러싸는 산세와 굽이 흐르는 강은 단연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죠. 서양의 도시는 평지 위에 세워지기 때문에 랜드마크가 필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산’이 곧 랜드마크인 셈이죠.”

그는 두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왼편에는 1백 년 전의 마포 사진이 있었고, 오른편에는 현재 서울 한 도심의 사진이었다. 강과 산 그리고 오밀조밀한 기와주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당시의 마포는 흔히 우리 건축에서 이야기하는 곡선의 아름다움과 자연과의 조화가 오롯이 담겨 있다. 반면, 현재 서울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삐죽삐죽 솟은 아파트와 무분별하게 지어진 빌딩으로 어지럽기 짝이 없다. 살고 있음에도 인식하지 못한 추함에, 그만 눈살이 찌푸려졌다.

“우리 땅이 지닌 고유의 모습을 모른 채 무분별한 건축이 자행되는 것은 분명한 범죄입니다. 또한 흉악하고 끔찍한 테러입니다.”

비움에서 채움을, 나눔에서 더함을

그는 ‘LESS AESTHETICS MORE ETHICS(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다.)’라는 문구를 보고 적잖이 놀란 바가 있다. 이는 지난 2000년, 베네치아에서 열렸던 <제7회 국제건축비엔날레>의 포스터 문구였다.

“포스터를 보고서 적잖이 놀랐어요. 서양건축에서 ‘윤리’가 언급된 것은 굉장히 생경한 일이었거든요. 오히려 윤리는 우리의 옛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었죠. 집을 짓기 전 주어진 땅과 건축 사이의 윤리를 따지고, 건축과 사람 사이의 윤리를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의 건축은 주변과 조화를 이룰 수 있었어요. “

15년을 섬기던 스승 김수근에게서 독립하여 이로재를 설립할 시절, 그는 자신만의 건축 철학은 무엇일까 숙고하였다. 오랜 장고 끝에 그는 ‘빈자의 미학’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이 사유는 지금은 사라진 금호동 달동네를 거닐다 깨달았다.

“경제적으론 풍족하지 않은 사람이 모인 곳이지만 그들이 형성한 공동체는 나눔의 공동체였어요. 비탈진 지형을 깎지 않고 그대로 살려 그 위에 집을 짓고, 그 옆의 집도 지형대로 공간화하여 이뤄져 있습니다. 결코 한꺼번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조금씩 덧대어지면서 형성된 것이죠. 집들 사이의 골목은 드나드는 통행로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의 이야기 터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에겐 놀이터로 이용되며 시시때때로 변할 수 있었어요.”

이런 금호동 달동네에서 느껴지는 검박한 아름다움과 세월이 주는 역사를, 그는 ‘빈자의 미학’으로 묶었다. 뭇 사람들은 흔히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을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동네라고 예를 들지만, 그는 금호동의 달동네를 이야기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금호동 달동네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포크레인으로 할퀴어지고 스러진 지 오래다. 그 자리엔 효율성과 획일성을 추구하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아파트에 사는 우리는 파란색 대문의 집, 건넛집 박 씨가 아닌 201호 혹은 207호로 불리고 있다. 단순한 이 호칭 속에는 어떠한 따스함도, 관계도 느낄 수 없다.

터무니 있는 삶


땅은 장대하고 존엄한 역사서이며,
그래서 귀하고도 귀하다.
이름 ‘지문地文, Landscript’이라고 하자.
지문은 끊임없이 변하는 생명체이며,
스스로 무엇을 덧대어 달라고 요구하는 기운체이다.

– 그의 책 <지문 지문地文, Landscript> 중

그는 자신이 만든 용어라며 ‘지문地文, Landscript’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든 땅에는 고유한 무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문’ 혹은 ‘터무늬’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터무니없다.’라고 사용하는 말 속의 ‘터무니’가 바로 ‘터무늬’에서 온 것이라면서. 땅 위에 새겨진 ‘터무늬’는 자연의 세월이 만든 무늬이고, 그 위에 사는 인간이 만든 무늬이기도 하다. 이것은 땅 위에 새겨진 역사이며, 기록이고, 이야기이며, 기억이다.

우리의 건축은 이러한 터의 옛 무늬를 밝히고 그와 관계하여 새로운 무늬를 덧대어야 해요. 건물을 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이 지어질 땅을 생각하고 그 무늬를 생각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We shape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건축이 다시 우리를 짓는다.

– 윈스턴 처칠

그는 건축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것도, 그들이 한 집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했기 때문인 것처럼. 건축은 즉각적이진 않지만, 천천히 더딘 속도로 우리의 삶을 바꾸고 완성한다. 그가 지향하는 건축의 목표는 집 속에 담기는 사람의 삶이다. 그래서 그는 건축을 보존되는 개념이 아니라 덧대어지고 변화하는 형태로 본다. 과거의 달동네는 덧대어지고 수리되며 조금씩 변화가 이루어졌지만, 그 속에는 삶의 풍경과 기억이 공유되고 ‘집’이라는 공간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의 강의가 끝나고, 건축에 대한 사유보다는 삶의 대한 사유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가 이야기한 건축에 대하여 반추하다가 ‘그의 건축은 이러한 것이다.’라고 단정 짓지 않기로 했다. 그의 건축 또한 하나의 생명처럼 변화하고 성장하고 또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남는 것은 그가 했던 건축, 그것에 대한 기억뿐이다.

연극 없는 명동연극교실명동예술극장에서는 운영하는 ‘명동연극교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명사들의 강연 시리즈다. 강연 예매는 전석 무료이며. 예매는 명동예술극장 홈페이지(www.mdtheater.or.kr) 및 전화(1644-2003)로 가능하다. 자, 자고 일어나니 여름인 5월의 명사는 누구일지 궁금하다면 클릭 혹은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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