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디 오써The Author>┃ 연극이 난도질한 현실의 궤적

깨끗하게 정리된 공연장. 준비된 좌석에 앉는다. 무대가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거리는 즈음, 이미 술렁이는 관객을 눈치챈다. The Author(이하 디 오써)에서는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다수의 관객 속에 파묻혀 눈앞에 재현되는 타자의 삶을 배짱 좋게 관람하는 일? 없었다. 극이 진행 될 무대가 없고, 좌석은 상대방과 마주 보는 구조로 그 간격이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간혹 홀수로 의자가 배치되어 있어 자칫하면 연인과 떨어져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쓸 법도 했다. 기존 극과 또렷한 변화들이 눈에 띄는 가운데, 공연 시작 전 흘러나오는 이름 모를 재즈 선율이 어리둥절한 상황과 대비되며 관객들의 불안감과 신선함을 가증시켰다.

같은 공간, 관객은 곧 배우가 된다

객석에는 관객뿐만 아니라 배우도 함께 앉아 있다. 극을 쓰는 작가와 이를 연기하는 2명의 남녀 배우, 그리고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 총 4명의 배우는 서로 반대편에서 앉아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독백할 때면 조명이 드리워지지만, 관객과 배우의 경계선은 전혀 없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사라진 구조, 그 가운데 관객은 극을 다채롭게 조명하고 구성할 수 있었다. 본인의 선택에 따라 독백 중인 배우를 봐도 되고, 그 배우의 독백에 반응하는 관객을 봐도 상관없다. 하지만, 관객은 동시에 극에 반응하는 본인의 모습이 다른 관객에게 노출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이때 관객은 곧 배우로 돌변한다. 배우가 던지는 심각한 이야기에도 차분하게 수용하는, 친절하고 고급스러운 관객처럼 보이려고 노력하기에. 본인의 반응을 검열하고 포용력 있는 역할을 연기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각인되는 현실의 자화상

극을 이끌어가는 화두는 폭력과 전쟁, 추악한 성적 욕망 등 인간의 비윤리적이고 야만적인 슬픈 자화상이다. 공론화시키지 않았다면 사장될 법한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회자한다. 배우는 잔혹한 모습을 행동으로 연기하진 않지만, 그동안 매스미디어에서 각인된 이미지를 상기시키기엔 독백의 호흡과 어투가 매끄럽게 발현됐다.
하지만 이건 연극일 뿐이잖아? 배우가 아무리 신선한 육성으로 현실을 구성한다고 해도 말이다. 전쟁, 폭행 등은 단지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닐까? 야만적인 세상에 대해 자위하며 안도의 한숨을 쉴 찰나, 배우가 말을 건다. ‘이런 얘기 불편하진 않으세요?’, ‘그만 할까요?’라고. 이로 인해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영화 <인셉션> ‘킥’처럼, 관객은 연극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엄연히 그들의 이야기가 현실에 존재하고 있음을 절감한다. 극 중간에 이어지는 배우의 질문은 민감한 이슈에 거리를 두고 냉철한 이성으로 현실을 보도록 했다.

청각이 남기고 간 선명한 자국

기존 연극은 배우의 움직임과 무대 소품들로 이미지를 만들지만, 디 오써는 주로 배우의 목소리로 소통을 이어간다. 심지어 암전되어 말만 들리기도 하고, 앉는 자리에 따라 배우의 뒷모습만 볼 수도 있다. 형식의 파괴를 통해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그려내진 않지만, 청각을 통해 현실을 구성하고 인식하도록 호소한다. 배우의 목소리는 관객 몸의 구석구석 선명한 자국을 남긴다. 마치 종이에 써지지 않는 잉크가 다 닳은 펜이 선명한 자국만 남기듯이.
디 오써는 잘 정리된 자신의 세계를 보호하고 그로 인해 세상을 편식해서 바라보는 이들에게 다양한 세상의 맛을 전해준다. 누구는 불편한 마음을 이고, 혹자는 반성의 낯빛을 비추던 배우이자 관객은 가슴 속에 허구가 아닌 선명한 현실을 모두 각인하면서 자리를 떴다.

연극 <디오써>는 팀 크라우치Tim crouch가 직접 대본을 쓰고 출연, 연출한 작품으로, 2009년 영국 로열 코트 극장에서 첫 무대를 열렸다. 연극의 숨은 저력을 끌어올린 이 작품은 연출가 김동현에 의해 재해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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