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성|마지막 귀갓길

여(女)
막차를 타고 돌아가는 인적 드문 새벽의 어두운 골목길. 늘 지나던 곳이지만, 오늘따라 왠지 처음 오는 곳인 것인 양 낯설어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음산하게만 들린다. 이 순간 문득 뒤쪽에서 뚜벅, 뚜벅 무거운 구둣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 실체가 설령 아침마다 인사하는 이웃집 아저씨일지라도 당장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머릿속 위험감지기가 켜진다.

남(男)
오랜만에 늦게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몸은 피곤하지만 뿌듯한 마음에 경쾌하게 구둣발 소리를 내며 걷고 있는데 저 앞에서 걸어가는 여자가 자꾸 불안한 듯 뒤를 돌아본다. 요즘 세상이 흉흉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선량한 나를 치한으로 오인하는 듯해 화도 난다. 억울한 마음에 앞서 지나가려고 속도를 내서 걷는데 여자도 덩달아 빨리 걷는다. 그러더니 소리를 치며 달아난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늦은 귀갓길, 누구나 한 번쯤 느껴 보았을 보편적인 공포와 보편적인 억울함. <마지막 귀갓길>은이런 감정을 매끄러운 스릴러로 극화한 작품이다. 귀갓길 여성을 상대로 한 잔인한 강력 범죄가 판치는 흉흉한 사회 속에 범인은 겉모습만으론 판단할 수 없는 선량한 인상의 보통 사람이다. 게다가 이런 불안감은 우리 모두를 범죄자로 만드는 불신을 조장하기도 한다. 김준성 감독은 20분의 짧은 영상을 통해 음울한 사회상과 사람의 불안 심리를 치밀하게 구성하는데 성공했다. 자, 러닝 타임을 가늠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 속으로.

새벽 1시, 으슥한 천변 다리 밑. 풀숲에 버려진 휴대폰에서 파헬벨의 <캐논>이 을씨년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곁에 쓰러져 있는 여자. 그녀는 어떤 사연이 있길래, 바로 이곳에 누워 있게 된 걸까.

야근을 마치고 돌아가는 귀갓길. 선영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 막차에 탄다. 자유로를 달리는 급행 버스는 쉬지 않고 선주를 집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그때 걸려온 동생 선주의 전화. 늦게까지 술자리에 있다가 취해 아무 버스나 탔는데 집 방향이 아니어서 성급히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내려보니 난생 처음 와보는 인적 없는 교외 시골 마을.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하냐며 발을 동동 구른다.

자꾸,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다고 겁에 질린 선주의 말에, 선영은 위치 파악을 위해 영상 통화로 주변을 비춰보라고 한다. 그때, 휴대전화 액정 한 켠에 나타난 양복을 입은 남자의 형상.

선영은 깜짝 놀라 선주를 부르고, 선주 역시 등뒤에 있는 남자의 인기척을 느낀다. 공포감에 휩싸이는 두 자매. 선영은 다급하게 선주를 부른다.

그러나, 영상통화는 종료되고 선주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선영은 걱정되는 마음에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내려달라고 통사정을 해보지만, 급행 버스이기 때문에 내려줄 수 없다고 한다. 선주는 급기야 남자를 피해 도망치다가 넘어져 남자 앞에 앉아 있는 꼴이 되는데•••.

남자는, 차바퀴가 구덩이에 빠져 밀어줄 사람을 찾던 중이라고 상황을 설명한다. 이상한 사람이 결코 아니라며 선주를 걱정하자, 선주는 남자가 차를 빼는 것을 도와주고 집까지 남자의 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뒤늦게 선주의 전화를 받은 선영은 낯선 사람의 차에 타지 말고, 경찰에 신고하라며 선주를 만류한다. 하지만 다리도 다치고 휴대폰 배터리도 다 떨어진 선주는 괜찮다며 그와 동승하게 된다.

결국 남자의 차에 올라탄 선주. 자동차에 아기 사진도 있고 선량해 보이는 남자여서 괜한 의심을 했나 싶은데••• 남자는 자꾸 ‘백미러’로 힐끔힐끔 선주를 살핀다. 이때 경찰이 앞에서 음주 단속을 하자, 급격히 좌회전을 하고 속도를 높이는 남자. 그는 돌잔치에서 술을 마신 것에 대한 노파심에 돌아가자고 했지만, 차는 계속해서 인기척 없는 낯선 길을 헤맨다.

끝없이 불안감에 휩싸인 선주. 이때 남자가 코트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하자, 선주는 흉기라 짐작한다. 반면 평온한 선영의 버스 안, 선영은 선주가 걱정되어 안절부절 못한다.

남자가 꺼내려던 것은 담배였다. 선영은 괜한 의심을 한 것에 우물쭈물해 한다. 남자는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받았다는 사실을 알자 불쾌해하는 기색.

* Profile

중앙대학교 영화과 졸업
2007 <박영철 씨 칠순잔치> 제6회 SHIFT U 영화제 대상
2009 <마지막 귀갓길> 제46회 대종상 영화제 단편부문 최우수 작품상
2010 <마지막 귀갓길> 제9회 미장센 단편영화제 4만 번의 구타 부문 최우수 작품상

* 그를 만나고 싶다면

35015@hanmail.net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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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를 읽고 찾아서 영상을 보았답니다, 좋네요
  • 이지은

    오 재밌을 것 같네요. 왠지 결말은 그녀를 다치게 한건 자기 자신의 두려움이었다, 이런 것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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