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종로의 기적>┃나, 20대 대한민국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는 것

검은 샤스커트를 입고 빨간 하이힐을 신은 여대생과 모노톤의 피케 티셔츠를 입은 남자 대학생이 시야에 들어왔다. 동성을 사랑하는, 24세의 두 젊음. 그들과 함께 30대 게이를 다룬 영화 <종로의 기적>을 감상하자, 의외로 밝고 당찬 동성애자의 삶이 보였다.

지난 6월, 조금은 파격적이고, 조금은 일상적인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동성애자의 커밍아웃 스토리를 담은 <종로의 기적>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서는 고독한 존재의 순례기로, ‘자유롭게 살 권리’라는 당위적이지만 쉽지 않은 ‘기적’을 발견한다.
이 영화는 성적 소수자 인권단체 ‘친구사이’와 ‘연분홍 치마’가 제작을 맡았으며, ‘친구사이’가 주최하던 ‘커밍아웃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영화감독인 이혁상과 주연 배우 모두 커밍아웃한 게이로서, 영화는 그들의 군대와 결혼, 에이즈 및 죽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인 만큼 현실적으로 게이의 삶을 현실적으로 조명해 차별과 편견 속에서 배척당하는 그들의 삶을 묵직하게 보여준다.

영화 <종로의 기적>, 그리고 20대 동성애자

두 명의 동성애자와 함께 영화 <종로의 기적>을 보고 나왔을 때, 여름의 포문을 여는 듯한 매미소리가 터져 나왔다. 녹음이 짙은 거리에 선 그들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점점 그것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깨닫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고민의 결과란 걸 알게 됐다.

럽젠Q : 영화 잘 보셨어요? 발랄한 포스터와는 달리 영화가 비교적 어둡게 전개된 것 같은데, 한국 동성애자의 삶을 잘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J : 전 ‘친구사이’에 소속되어 있어서 제작 당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출연 배우도 다 아는 형이고요. 다큐멘터리 형식인 만큼 게이의 삶을 잘 다루는 것 같지만, 2011년의 이야기를 담은 것 같진 않아요. 사실 이 영화가 우여곡절이 많아서 개봉 시기가 많이 늦춰졌거든요.

박하 : 전 아무래도 양성애자(바이섹슈얼)이기 때문에, 영화가 오직 게이의 삶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쉬워요. 남녀 동성애자와 양성애자의 삶까지 총체적으로 다뤄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죠.

럽젠Q : 영화가 게이의 커밍아웃 스토리를 담은 만큼 두 분들의 스토리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박하 : 전 고3 시절, 동성 친구를 좋아하게 되어서 그 아이에게 고백한 것이 첫 커밍아웃이었어요. 다행히 그 관계가 잘 이뤄져서 제 정체성을 편안하게 인정할 수 있었고, 이후 가족에게도 알리게 되었어요. 어머니께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이셨다면, 아버지께서는 처음엔 거부감을 가지시더라고요. 현재 집에서 나와서 친구와 2년째 동거 중인데, 이제 아버지께서도 이해해주시죠.

J : 저도 박하 씨와 비슷하게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사람에게 고백한 게 처음이었어요. 이후에 가장 친한 남자 친구에게 제가 동성애자임을 고백했고요. 아직 가족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차차 알릴 생각입니다.

럽젠Q : 영화 내부에선 동성애자가 직장 내부에서 정체성을 숨기는 고충이 다뤄졌습니다. 앞으로 꿈을 이뤄가는데 이런 성적 지향이 영향을 미칠 것 같나요?

박하 : 저는 우선 제 전공인 여성학을 연구하면서 지금 하는 인권단체 활동을 계속 전개해나갈 생각이에요. 저희 분야에선 오히려 저와 같은 성적 정체성을 가진 것이 더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서요.(웃음) 꿈을 이루는데 제가 양성애자라는 것이 큰 제약이 있거나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J : 저도 제 전공인 작곡 분야에서 더 공부할 생각입니다. 제가 실력이 모자라서 고민이라면 고민이지, 동성애자인 것 때문에 딱히 불편한 점은 못 느끼고 있어요.

럽젠Q : 두 분은 정체성도 확고하고, 각자 분야에서 당당하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대체로 다른 대학생 동성애자의 삶도 그런가요?

J : 말씀하신 대로 저희는 좀 특별한 경우이고, 일반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실제로 많은 친구가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죠. 또 아직 사회적으로 떳떳이 커밍아웃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100% 자유로운 동성애자는 없는 것 같아요. 거의 모든 대학마다 동성애자가 모인 단체가 있을 뿐이죠. 게이는 평일엔 일반인과 함께 살다가 주말엔 종로나 이태원 같은 집결지에서 편하게 놀곤 합니다.

박하 : 레즈비언은 게이보다 사정이 더 좋지 않은 편이에요. 게이 커뮤니티가 종로와 이태원 등지를 기점으로 ‘집결’하는 형식이라면, 레즈비언 커뮤니티는 그 존재 자체가 희미합니다. 함께 어울려 놀 곳이나 연대할 만한 공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죠. 남성 동성애자와 여성 동성애자 사이에도 불평등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몹쓸 편견과 무지 사이, 미래는 있다


럽젠Q : 게이와 레즈비언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때문에 곤란하거나 불쾌한 경험은 없나요?

J : 불쾌했다기보다는 너무 피상적으로 전체를 단정 짓는 경향은 있는 것 같아요. 흔히 생각하는 ‘게이 남자친구’의 이미지는 <섹스앤 더시티>와 같은 영화에 나오는 게이 캐릭터에 국한된 경우가 많아요. 물론 영화에서처럼 패셔너블하고 화려한 게이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또 남성들은 게이를 ‘섹스’라는 행위에 국한 지어서 포비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똑같이 사랑하는 존재로 그 대상이 ‘남성’일 뿐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거죠.

박하 : 레즈비언을 바라보는 시선도 역시 성적인 판타지에 갇힌 경우가 많아요. 포르노에 등장하는 레즈비언 캐릭터를 그 집단 전체로 파악하는 것이죠. 어떤 남성은 ‘남자 하나만 끼면 되겠네!’와 같은 말을 하니까요. 레즈비언 역시 내 주변의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철저히 타자화시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무지에서 오는 오해죠.

럽젠Q : 동성애자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가지고 사는 두 분입니다. 아직도 성적 정체성의 문제나 커밍아웃 때문에 고민하는 이 땅의 젊은 성적 소수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J : 너무 절망하거나 비관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는 분들은 혼자 끙끙 앓거나 자기연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고민이든 나누다 보면 가벼워지고, 결국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커밍아웃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밖으로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시작인 것 같아요. 따지고 보면,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인간이라면 모두가 ‘커밍아웃’할 수 있는 공평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박하 : 저는 비교적 일찍, 그리고 안정적으로 제 성적 정체성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고민하는 분의 심정을 전적으로 이해하죠. 전 커밍아웃한 이후 ‘퀴어문화 축제’를 직접 갔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미래를 보았죠. 나이 많은 레즈비언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밝게 살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것을요. 어린 나이에 적절한 롤모델을 찾을 수 있었기에, 지금의 제 삶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진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세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삶을요.

럽젠Q : 앞으로 동성애자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나요?

박하 :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이 현재는 벌어지고 있어요. 앞으로 10년만 있으면 동성애자 커플이 이성애자 커플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J : 영화 <종로의 기적> 속 인물과 같은, 바로 앞 세대가 열심히 길을 닦아놓아서 저희와 같은 젊은 게이는 더욱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게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던 10년 전을 생각하면, 지금의 현실 역시 ‘기적’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 때문에 저는 <종로의 기적>이라는 영화가 정말로 기적의 여정을 담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여름이 깊어갈수록 녹음은 점점 짙어간다. 그 한 가지에서 난 나뭇잎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멀리서 보면 모두 푸르게 빛난다. 이처럼 각자 다른 존재가 모여 세상은 더욱 푸른 게 아닐까? 모두 달라서 비로소 모두 아름다울 수 있다는 명제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기꺼이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이에게 영화 <종로의 기적>을 추천한다.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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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영

    @토마토링, 퀴어영화 전문가에게 인정받다니 기분 좋네요 ㅋㅋ 다른 좋은 작품 있음 추천해주세요!!ㅋ
  • 와, 우! 동성연애 관련 영화를 다 본 학생으로서! 기자님 글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어려운 내용일텐데 유쾌하고 쉽게풀어쓰신것같아요!! 저두 짝짝짝
  • 박상영

    @이소룡 그 마음을 알아주시는 독자가 절실하죠 +_+)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 삼다

    마음이 담긴 기사네요^^
  • 박상영

    @럽젠 편집실, @코리아나 이 기사는 섭외부터 취재, 원고작성까지 단 한순간도 허투루 할 수 없는 기사였어요ㅋ 많은 인권단체에 전화를 걸며, 또 섭외 메일을 돌리며 우리가 되지 못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을 절감했습니다. 또 제 평생 이렇게 생각깊고 진실한 인터뷰이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만큼 좋은 인터뷰이들이 나와주셨어요. 저랑 동갑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던, 생각 깊고, 순선했던 그들과 좌담회를 할 때에는 친구처럼 내내 웃고 떠들었던 것 같은데, 녹음된 파일을 다시 돌려들을 때에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답니다. 그들의 진정성 어린 말과 진실했던 눈빛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기사를 고치고 다시쓰고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꽤 긴 시간동안요. 그들을 알리기 위해 기사를 쓴다고 생각했는데 되레 그 시간동안 저와, 세상을 보는 제 시야가 한뼘쯤 자란 것 같습니다 ^^ 원고를 송고할 때까지 만족할 수 없었던 기사였고, 그래서 사고치는 막내 아들처럼(?) 왠지 아쉬움이 남는 기사였어요. 인터뷰이의 주옥같은 말을 제대로 주워담지도 못한 모자란 기자에게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장마가 끝나면 세상의 많은, 다르게 생긴 푸른 잎들이 한층 더 푸르러져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 럽젠 편집실

    좋은 글은, 무엇이든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행동이든지, 생각이든지요. 이 글을 읽을 당시, 가슴은 심심치 않게 뛰었고 머리는 수많은 생각으로 얼퀴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런 의미에서 상영 기자, 짝짝짝이요.
  • 인터뷰이들에게서 끊임없는 의심으로 쌓아올린 확고한 자의식이 느껴져서 기사가 너무 좋네요. 비정상적이다, 라고 하는데 그 생각이 어쩌면 '보편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그 밖의 '비 보편적'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치부할 뿐인게 아닌가, 스스로도 의심해볼 좋은 기회였던것같아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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