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GPS, 어디까지 닿았을까?

하늘색의 대한민국 지도 형상이 있다. 지도에는 빨간 점으로 여러 곳에 표시가 되어 있다. 이미지 오른쪽에는 ‘청년GPS, 어디까지 닿았을까, 대한민국 곳곳에 숨겨둔 그곳 위치추적’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해외 여행은 넓은 견문을 주지만, 국내 여행은 깊은 견문을 만든다. 국내 곳곳에 수놓아진 대한민국 청년들의 발자취엔 어떤 의미와 이야기들로 깊이를 더하고 있을까?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 감성의 위치를 추적해 보았다.

위치 추적 1. 레알 여수 밤바다에서 생긴 일 : 전라남도 여수 오동도

대한민국 지도 중 전남 여수의 지도를 짧게 오려놓은 사진이다. 사진 오른쪽의 ‘한려해상국립공원’ 부분에 노란색 박스로 표시를 해 두었다.
최원호 학생(원광대학교 경영학과)의 일이다. 그는 대학교에 진학하며 뿔뿔이 흩어지게 된 고등학교 친구들과 새벽에 바다로 가는 계획을 세웠다. 전주역에서 다같이 모여 새벽 기차를 타고 여수에 가는 일정이었다. 새벽 바다를 보며 백사장에서 즐길 폭죽놀이에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최원호 인터뷰이가 여행 당시 촬영한 사진. 어두운 밤의 바닷가지만 바닷가다운 모래사장과 바다는 보이지 않고 마치 여느 동네 같은 배경이다. 친구 한 명이 서서 불꽃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친구들이랑 새벽 기차를 탄다는 일로 신났어요. 무엇보다 백사장에서 폭죽놀이를 할 생각에, 겨울이었지만 맨발로 뛰어다닐 생각이었어요. 여수 오동도에 도착해서 마신 새벽공기가 참 맑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여수 오동도엔 백사장이 없다는 거였어요. 부둣가와 바다만 있었을 뿐이었죠. 모두가 다 당황해서 폭죽놀이를 어디에서 해야 할 지 고민을 하다가, 부두 끝까지 걸어가 바다 위에 있는 것처럼 신나게 터뜨렸어요.

최원호 학생은 일출을 보고 싶었지만 유난히 안개가 자욱했던 그날의 실패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여행이었음에도, 친구들과 같은 목적지로 가는 기차에 탔다는 것에서, 그들과 어떤 하루를 함께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아로새기고 있었다.

위치 추적 2. 가을바다 렌탈 서비스 : 충청남도 태안 안면도

대한민국 지도 중 충남 태안의 지도를 짧게 오려놓은 사진이다. 사진 왼쪽의 안면도, 태안해안국립공원 부분에 노란색 박스로 표시를 해 두었다.
어떤 의미에서 바다는 ‘관람의 매력’을 주기도 하고 ‘빠짐의 매력’을 주기도 한다. 임현채 학생(연세대학교 경영학과)은 2011년 초가을 안면도로 여행을 떠났다. 군대 가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여름 관광객들이 다 빠져나간 탓이었는지 안면도 바다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바다를 아예 단독 렌탈한 셈이었다.

바다를 통째로 빌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정말 좋았어요. 특히 이제 군대에 가게 되면 자주 볼 수 없는 친구들과 시간을 내어 간 여행이라 의미가 남달랐어요. 그때 노을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고요한 밤이라는 시간마저도 통째로 빌린 기분이 들었죠. 저에게 안면도가 특히나 더욱 의미있는 건, 작년 겨울에 친구들과 함께 또 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또 겨울이라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바다를 대여해준 안면도에서 추억을 덧칠할 수 있어 좋았어요.

자연이 주는 시간을 한 몸에 안고 느낄 수 있는 추억이라면 더욱 값진 시간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곳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았을 때의 기분은 ‘첫’ 느낌보다 더 남다를 것이다. 계절마다 다르게 그려지는 바다라는 공간, 나만의 바다가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위치 추적 3. 답답한 가슴 뚫기 : 강원도 춘천 구봉산 전망대

대한민국 지도 중 춘천 구봉산의 지도를 짧게 오려놓은 사진이다. 사진 가운데 부분의 구봉산 부분에 노란색 박스로 표시를 해 두었다.
낯선 풍경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한 작품의 ‘명화’와도 같지 않을까. 여행지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에 그 공간의 의미를 색칠할 수도 있겠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사는 곳에 남몰래 숨겨둔 풍경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수미 학생(한림대학교 국제학부)은 춘천 구봉산 전망대를 꼽았다.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이는 그곳에 오르면 춘천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는 것 같다고 한다.

구봉산의 전망대 모습. 하얀 색으로 칠해진 3층 높이의 탑처럼 생긴 전망대다. 가장 꼭대기에는 파란색 동그란 지붕이 귀엽게 얹혀 있다.

구봉산 전망대에 오르면 정말이지 춘천 시내가 한 눈에 쫙 내려다 보여요. 특히 야경을 볼 땐 최고인 것 같아요. 그곳에 가면 ‘산토리니’라는 카페가 있어요. 가족끼리 가서 커피도 한 잔 하고 아무 걱정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안식처라고 하는 곳이 있다면 저는 주저없이 구봉산 전망대를 꼽아요. 가끔 머리가 지끈 아프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밤바람을 맞으러 가요. 특히 야경은 정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인 것 같아요.

높다란 건물 사이로 빼곡히 들어찬 카페보다, 어쩌면 산이 보이는 카페가 더 나을 때가 있다. 머리 아프고 가슴 답답할 때마다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도 행운이 아닐까? 너무 익숙해서 몰랐던 곳이 자신에게 큰 의미로 새겨져 특별해질 때, 공간의 가치는 더욱 의미 있어질 것이다.

위치 추적 4. 공간의 재탄생 : 대구광역시 삼덕상회

대한민국 지도 중 대구광역시의 지도를 짧게 오려놓은 사진이다. 사진 가운데의 시내 부분에 노란색 박스로 표시를 해 두었다.
이수헌 학생(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은 반대로 낯선 곳의 풍경을 오래 간직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단 시절, 기자단 친구들과 함께 대구 골목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삼덕상회’라는 곳을 들렸다. 공간 자체가 의미 있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카페 ‘삼덕상회’의 입구를 촬영한 사진. 나무문에 유리창이 뚫린 문이 입구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앞에는 작은 화분이 놓여 있다.

대구 골목 여행 중에 공구상들만 모여 있는 공구상사거리에 갔었어요. 카페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삼덕상회’가 있었거든요. 대구 북성로 재발견 프로젝트를 통해 노후된 건물을 카페로 변신시켰다는 사실에 인상이 깊었어요. ‘삼덕상회’는 옛날 목조건물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아기자기하게 인테리어를 해놓은 공간이었어요. 당장 집 앞으로 가져오고 싶을 만큼 예쁜 풍경이었죠. 뜻밖에 보물을 찾은 기분도 들었어요. 골목골목 보는 재미가 있었던 대구여행 중에 쉬어갈 수 있는 아기자기한 이색 카페에요.

의미 있는 공간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재미가 더해질수록 그곳에 대한 기억은 선명해진다. 카페 없는 동네가 없을 만큼 카페는 많아졌고, 빨리 생기는 만큼 빨리 없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삼덕상회’는 오래된 시간을 보존하면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태어난 공간이 되었다.

위치 추적 5. 경건한 눈물의 방 : 전라북도 전주 전동성당

대한민국 지도 중 전북 전주의 지도를 짧게 오려놓은 사진이다. 사진 가운데의 한옥마을에 있는 전동성당 부분에 노란색 박스로 표시를 해 두었다.
공간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것도 좋지만, 때로는 환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되는 것도 좋다. 마치 꿈만 같았다는 추상적인 비유만이 방법 없는 공간에 대한 기억은 더더욱 잊을 수 없다. 어떤 감정에 매몰된다든지, 그 공간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에 지배될 때 가능하다. 노승현 학생(창원대학교 영어영문학과)은 작년 여름날에 찾았던 공간이 어렴풋이 기억나면서도 너무 생생하다고 전했다.

전주 전동성당의 모습. 중세 시대의 건물같이 생긴 전동성당이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다.

혼자서 전주로 여행을 갔었어요. 그때 집안에 굉장히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거의 도망가다시피 전주에 갔는데 전주의 명소이기도 한 전동성당에 갔어요. 주말이라 주말미사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저는 종교가 없지만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았어요. 사람들의 경건한 표정들, 엄숙한 분위기, 시계 종소리 같은 것을 접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요. 지금 생각하면 주책이지만, 창문의 알록달록한 셀로판지조차도 아름다워 보이고 왠지 저에게 아무런 잘못도 없으면서 힘들어 하고 있는지 묻는 것 같았어요. 너무 창피해서 눈물을 닦으며 황급히 성당을 빠져 나왔어요. 그리고 나서 정말 신기하게도 개운했어요.

아무런 조건 없이 찾아간 전주의 명동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노승현 학생은, 마음이 무거워진다면 다시 그곳을 꼭 찾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자주가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공간의 분위기와 자기만의 특별한 시간이 서로 끌어안고 포옹하는 시간에 어쩌면 눈물이 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위치 추적 6. 꿈에 탑승해야 갈 수 있는 섬 : 전라남도 고흥 화도

대한민국 지도 중 전남 고흥 화도의 지도를 짧게 오려놓은 사진이다. 사진 오른쪽의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화도 부분에 노란색 박스로 표시를 해 두었다.
이한솔 학생(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은 교회에서 떠난 단기선교 활동의 일환으로 전라남도 고흥에 있는 화도라는 섬에 갔었다. 2011년 여름과 2013년 겨울에 갔었는데, 그때의 기억들엔 수많은 색들이 가득하다. 마치 방금 막 환상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들이 있었다고 했다.

전남 고흥 화도라는 섬엔 주민이 50명도 채 되지 않아요. 아주 작은 섬인데, 대부분 할아버지나 할머니만 살고 계세요. 혼자 사시는 분들도 많고. 여름에 갔을 때 기억이 가장 남아요. 뙤약볕 아래서 집집마다 돌며 저희가 페인트 칠을 했어요. 그때 고생한다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주신 수박이나 주스를 먹었을 땐 어떤 음식보다 특별한 맛이었어요. 페인트 칠을 다 마치고 나서 알록달록해진 마을을 보면서 잠시 지중해에 온 것 같기도 했어요. 4박 5일 동안 영원히 늙지 않는 꿈을 꾸고 온 것 같았어요.

‘영원히 늙지 않는 꿈’ 처럼 아름다웠던 화도라는 섬의 기억은 이한솔 학생이 몸과 마음이 창백해질 때마다 떠올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아무도 손 내밀지 않았던 담벼락에 색색의 페인트가 칠해지고, 동화 속 알록달록한 풍경처럼 다시 태어난 화도라는 섬도, 이한솔 학생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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