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거닐다, 우리는 윌리엄스버그의 분위기를 사랑해

윌리엄스버그의 한 길가에 가득 그려진 벽화를 촬영한 사진
이지민 작가의 소설 『청춘극한기』 속 화자 옥택선은 서울 시내가 어지럽고 시끄러운 이유로 ‘수많은 연인들이 남겨둔 옛 추억들이 떠돌고 있어서’라고 말한다. “어쩌면 모든 거리는 연인들의 기억의 유실물 보관소일지도 몰랐”기 때문. 뉴욕, 그 중에서도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는 여기에다 한 가지를 더해야 할지 모른다. 비록 가난하고 주목 받지 못했을지라도 마음만큼은 꽉 차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열정과 꿈 말이다. 윌리엄스버그의 거리는 이들이 만들어낸 특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윌리엄스버그의 한 길가에 가득 그려진 벽화를 촬영한 사진.

뉴욕은 예술가들을 따라 움직인다

뉴욕시는 맨해튼, 브롱크스, 스태튼섬, 퀸즈, 브루클린이라는 총 다섯 개의 자치구로 이루어져 있다. 윌리엄스버그는 브루클린의 한 지역으로 베드포드 에비뉴Bedford Avenue역 근방을 가리킨다.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하던 지역이었는데, 낮은 집세 때문에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모습과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뉴욕의 젊은이는 금융회사 직원 아니면 예술가”라는 말이 있는데, 그 이야기가 헛말이 아님을 증명하듯 젊은 예술가들의 이동에 따라 지역의 분위기가 바뀌는 현상이 생겨났다. 그 시작은 소호Soho였다. 지금 뉴욕에서 낭만적인 장소 중 하나로 꼽히는 소호는 과거에 경공업을 축으로 형성된 공장지대였다. 중심 도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지대를 찾아 예술가들이 몰려들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문을 닫은 공장의 넓은 공간과 확 트인 천장은 예술가에게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렇게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이후에 갤러리, 카페, 상점, 고급 옷가게가 생겨나면서 소호는 지금과 같은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자 임대료는 자연스럽게 올라갔고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다시 이동했다. 그들이 선택한 곳이 바로 브루클린이다. 과거 소호가 그랬듯, 윌리엄스버그는 각국에서 온 사람들의 독특한 문화에 젊은 예술가들의 참신함과 모험정신이 더해져 맨해튼을 비롯한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도심과는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곳, 일상에서 예술가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 각기 개성을 간직한 아기자기한 공방과 상점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변모한 것이다.

윌리엄스버그 거리 모습. 벽에 그려진 그림, 바닥 맨홀 뚜껑 위에 붙은 스티커 등이 알록달록하다.
윌리엄스버그에서는 지금 당신이 밟고 서 있는 곳이 미술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곳곳에서 예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저렴한 땅값 때문에 뉴욕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고 하기엔 윌리엄스버그가 지닌 매력은 꽤나 복잡다단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을 직접 만나 윌리엄스버그의 매력을 물었다.

Mini Interview 1
“It is close to the city, but away from the city” – 윌리엄 이든

사진작가인 동시에 의상디자이너이며 오토바이를 사랑하는, 윌리엄 이든William Eadon. 그는 한국의 낯선 대학생 기자가 제안한 인터뷰에 너무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자신은 인터뷰를 약속한 그 날 오토바이 애호가들이 여는 축제에 있을 테니 그곳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다른 날로 약속을 변경할 수 있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그를 쫓아다니게 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윌리엄 이든의 모습. 흰색 민소매 셔츠에 한국 접이식 부채를 들고 있으며, 긴 곱슬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치렁치렁한 장발, 덥수룩한 수염, 잠자리 선글라스, 팔뚝이 훤히 드러나는 민소매, 그리고 대나무가 그려진 한국의 전통 부채.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이 조합, 묘하게 어울린다.

럽젠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사진작가,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합니다. 저는 여러 사람들과 제 자신,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 일합니다. 요즘에는 패션 브랜드 ‘신시아 로리’Cynthia Rowley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럽젠 Q 자신에게 윌리엄스버그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약 10년 동안 윌리엄스버그에 살았는데요. 무엇보다 좋은 점은 도시와 가까우면서 동시에 도시와 떨어져 있다는 점(It is close to the city, but away from the city)이에요. 그리고 오래 살다 보니 아는 사람도 많아졌고 좋아하는 식당, 카페, 상점은 다 이곳에 있죠. 최근에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있는데, 그게 조금 걸리긴 합니다.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죠.”

럽젠 Q 윌리엄스버그에서 가 볼만한 장소, 예를 들면 카페, 베이커리, 식당, 술집을 추천해준다면?

“첫 번째로 Grand Street의 Bliss Café를 추천하고 싶어요. 채식전문 식당인데, 샌드위치를 꼭 먹어보세요. 두 번째로는 Bedford Avenue의 Allswell예요. 저의 친구이자 주방장인 스미스의 환상적인 요리 솜씨를 느낄 수 있어요. 세 번째는 Berry Street의 La Superior인데, 윌리엄스버그에서 가장 맛있는 타코를 맛볼 수 있습니다.”

윌리엄 이든의 모습. 오른쪽 사진은 그의 명함이 바닥에 놓여 있는 모습이다.
‘자유를 위해서 일한다’는 윌리엄 이든. 그는 ‘문자 그대로’ 정말로 자유롭고 즐거워 보였다.

Mini Interview 2
“Most of all, neighborhood is here” – 렉시 올리베리

빈티지 숍 ‘앙투아네트’Antoinette의 주인이자 뉴욕패션기술대학교(FIT)의 교수인 렉시 올리베리Lexi Oliveri. 그녀와 옷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의상디자인을 전공했고 ‘갭’Gap을 비롯한 패션업계에서 십여 년간 일했으며 2014년 1월부터는 FIT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2011년 5월 1일부터 시작한 빈티지 숍 앙투아네트 곳곳에 옷과 소품에 대한 그의 안목과 애정이 담겨있다.

올리베리찡의 사진. 매장 안에서 찍은 것으로 양 옆에 판매중인 옷가지들이 걸려 있다.
모르긴 몰라도 렉시 올리베리는 많은 사람에게 해사한 미소로 기억되지 않을까. 그는 보는 사람을 절로 기분 좋게, 편안하게 하는 밝은 미소를 지녔다.

럽젠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윌리엄스버그에서 빈티지 숍 ‘앙투아네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가게를 여는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결정적이었어요. 어머니는 오랫동안 빈티지 아이템을 모아왔고 그걸 바탕으로 가게를 열었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며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럽젠 Q 자신에게 윌리엄스버그는 어떤 의미인가요?

“태어난 곳은 뉴저지예요. 윌리엄스버그에서 살기 시작한 지는 십 년 정도 되었어요. 윌리엄스버그가 소중한 이유는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사람, 그러니까 이웃이죠. 여기에는 크고 작은 커뮤니티가 많아요.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등 출신의 다양한 사람이 모이죠. 카페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서로 돕고, 많은 걸 공유하곤 합니다. 최근에는 관광객이 많이 오면서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럽젠 Q 윌리엄스버그에서 가 볼만한 장소, 예를 들면 카페, 베이커리, 식당, 술집을 추천해준다면?

“무조건 Bedford Avenue의 Lucky Dog이라는 술집이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예요. 그리고 개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장소가 될 거예요. 개를 데리고 갈 수 있거든요. 가격도 저렴하고요. 다음으로는 Bedford Avenue의 Sweet Chick이에요. 맛 좋은 와플과 치킨을 먹을 수 있어요.”

앙투아네트 내외관의 모습이다. 허름하지만 정감 있는 외관, 선반 위에 놓인 여러 소품들, 이를 지키고 있는 렉시의 사진이 다양하게 보인다.
‘앙투아네트’는 모두를 위한 가게인 동시에 렉시 올리베리 자신을 위한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그가 엄선한 빈티지 옷과 소품 사이 한 켠에는 어린 시절 추억이 오롯이 담긴 그림카드 망원경, 지구본, 비디오테이프가 놓여있다.

윌리엄스버그에는 이야기가 있다

“거리는 연결보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경험의 배경, 공간적 장치로서 더 의미가 있다. 길이 이동과 도착이라는 목적 지향에 충실하다면, 거리는 경험이라는 과정 지향적 성격을 띤다.”
– 이경훈,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中

윌리엄스버그 거리 풍경. 카페의 외관,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보인다.
윌리엄스버그의 거리는 상점과 사람이 ‘따로 또 같이’ 만들어낸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곳을 들른다면 우연히 눈이 마주친 사람에게, 예쁜 소품을 따라 들어간 상점의 주인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보면 어떨까.

윌리엄스버그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거리’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더 정확하게는 ‘이야기가 있는 거리’다. 윌리엄스버그의 거리 속 이야기 중에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여러 가지 색이 조화를 이뤄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무지개처럼, 서로 나름의 고유함을 유지하며 질서정연하게 들어선 상점과 주민 저마다의 활기가 그 사이사이를 채우며 어우러져 거리는 자연스럽게 오색찬란한 빛을 띤다. 이곳에서는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사지 않아도, 거리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 되는 것이다. 만약 뉴욕에 들른다면, 윌리엄스버그를 꼭 가보기를 권한다. 윌리엄스버그에서는 걷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하루가 되니 말이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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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스버그 제가 정말 사랑하는데 그 곳만의 분위기를 이렇게 글로 잘 표현해주셔서 재밌게 읽었어요 인터뷰이들 컨택은 어떻게 하셨나요? 이경훈 작가님 말도 와닿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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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오

    오 윌리엄스버그 정말 좋더라구요. 우연히 책에서 보고 연락드렸어요~ 이경훈 작가 책도 한번 읽어보세요~ 정말 좋습니당

  • 최동준

    윽ㅠ 윌리엄스 버그.. 가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쉽네요. 윌리엄스 버그 자체도 그렇고 인터뷰이 분도 참 독보적인 분위기를 가진 거 같습니다ㅎㅎ
    댓글 달기

    김종오

    그쵸 인터뷰도 정말 친절하게 해주시고~

  • 윤수진

    우와 윌리엄스버그의 분위기가 기사에 잘 녹아있는듯해요~ 저도 가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는...ㅠㅠ 기사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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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오

    다음번에 뉴욕을 가게 된다면 꼭 ㅋㅋㅋㅋㅋ

  • 뽀뽀리

    느낌있네요 저두 가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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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오

    뉴욕 가시게 되면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합니당~~

  • 윌리엄스버그 ~ 저도 실제로 거닐어 보고싶네요 ^^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죠~ ㅎ
    댓글 달기

    김종오

    언젠가 꼭 한번 가보시길 바라겠습니당~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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