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꼴은 나를 말하네

썸네일
글꼴은 당신 곁에 항상 있다.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에서부터 길거리의 간판에도 가득하다. 글꼴은 우리 곁에서 큰 소리 없이 말을 건다. 소리 없이 깊게, 글자 뒤에 숨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 ‘헬베티카’의 한 장면. 글꼴을 만드는 듯 알파벳이 여러 개 중복된 금속의 활자가 보인다.
우리는 생각도 못 하는 사이 무수히 많은 글꼴과 마주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헬베티카(Helvetica> 스틸컷)

글씨체는 나를 말하네

글꼴은 한자로 서체(書體), 영문으로 폰트(font)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글자의 모양’을 의미한다. 글자의 모양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와의 만남과 비슷하다. 글자엔 자연스레 만든 이의 의도와 취향이 담기기 마련인데, 글자가 풍기는 특유의 질서와 모양으로 그 사람의 성향을 일부분 가늠할 수 있다.

왼쪽 사진은 아이돌 그룹 레인보우 지숙의 손글씨, 오른쪽 사진은 배우 현빈의 손글씨를 촬영한 사진이다.
손글씨로 화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가수 레인보우 지숙의 손글씨와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선보인 배우 현빈의 손글씨. (이미지 출처 : 왼쪽은 레인보우 지숙 블로그, 오른쪽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 중)

브랜드의 얼굴이 된 글꼴

글꼴은 누군가의 정체성을 일부 나타낸다. 이 점은 브랜드에도 적용된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브랜드 아이덴티티(BI•Brand Identity)를 나타내는 데 글꼴이 활용된다. 글꼴은 강력한 마케팅 도구로 브랜드를 알리는 데 유용하다. 글자 모양만 보아도 특정 브랜드가 뇌리를 스친다면 성공한 홍보 전략일 것이다.

현대카드의 브랜드 정체성을 나타내는 유앤아이서체 이다.
폰트 회사 산돌커뮤니케이션이 개발한 현대카드의 유앤아이 서체. 기업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활용되었다. (이미지 출처 : 산돌커뮤니케이션)

한 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는 기업의 개성을 담은 글꼴을 직접 개발해 배포한다. 기업의 대표이자 한나체 개발자인 김봉진 씨는 더 많은 사람이 글꼴을 보고 브랜드를 떠올리길 바란다. 유용한 브랜드 홍보 수단으로 글꼴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사례다.

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 우와한 형제들이 자체 제작한 한나체이다. 한나체를 사용한 포스터 문구 ‘씻고 자자’가 눈에 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 ‘우와한 형제들’이 자체 제작한 한나체.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프로그램의 개성을 담은 자막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케이블의 한 프로그램은 특정 서체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다.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는 서체 선택은 시청자로 하여금 보는 즐거움을 증폭시킨다. 알맞은 글꼴 선택은 시청자의 몰입과 방송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만남에 있어 첫인상은 중요하다. 시간을 두고 그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기 전에 첫인상은 상대를 판단할 강력한 기준이 된다. 글꼴은 첫인상과 비슷하다. 글자 모양은 단번에 인상을 결정 짓는다. 짧은 시간에 나를 말할 때 글꼴은 유용한 첫인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시대의 얼굴을 나타내는 글자의 모양

글꼴은 시대의 얼굴을 나타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영문 서체의 국제 기준이 된 ‘헬베티카(Helvetica)’를 들 수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헬베티카의 포스터이다. 헬베티카 폰트가 배열 돼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헬베티카>의 포스터.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헬베티카 폰트는 당시 디자이너의 이상(理想)이었다. 1950년 세계 전쟁이 남긴 것은 무질서와 혼란이었다. 당시 유럽의 디자이너들은 서체 디자인의 새로운 규칙을 갈망했다. 이 바람은 스위스의 막스 미딩거(Max Miedinger, 1910-1980)를 통해 실현된다. 헬베티카는 중립성을 지향한다. 어떠한 꾸밈 없이 활자가 전하는 내용만을 오롯이 드러낸다. 이러한 특징으로 누구나 이 폰트를 사용하는데 거부감이 없었고 전 세계인의 인기를 얻는다. 개발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국제적인 표준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헬베티카의 포스터이다. 헬베티카는 지하철과 쓰레기통 등 공공디자인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공디자인에서 브랜드까지, 거의 모든 곳에서 만날 수 있는 헬베티카 폰트. (이미지 출처 : 영화 <Helvetica)> 중)

그러나 영원한 권력은 없는 법.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독주에 대응하는 조짐이 보인다. 1970~80년대에 들어 헬베티카의 정체성을 비판하는 디자이너들이 생겨났다. 헬베티카의 강점이었던 중립성과 깔끔함은 디자이너의 개성과 대립하기 시작한다. 세계적인 서체 디자이너 에릭 슈피커만(Erik Spiekermann)은 “헬베티카는 군대와 다르지 않다.”며 그의 몰개성과 절대성을 비판했다. 이후 많은 디자이너가 폰트에 개성을 반영하기 시작한다. 서체가 지켜야 할 규칙을 깨고 글꼴엔 정답이 없음을 소리치기 시작한다.

영화 ‘타이포매니아’ 중 일부이다.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는 지금, 글꼴은 무수한 개성을 담는 그릇이다. (이미지 출처 : 영화 <타이포매니아> 중)

글꼴에 관한 논쟁 이후 약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양한 글자의 얼굴이 시대를 말하고 있다. 헬베티카처럼 군더더기 없는 완벽함을 지향하는 글꼴이 있는가 하면, 어디로 삐칠지 모르는 손글씨도 존재한다. 정답은 없다. 다양한 모양으로 자신을 부르짖는 수많은 글꼴이 있을 뿐이다.

나는 글꼴을 선택한다, 고로 존재한다 – 글꼴 취사선택을 위한 가이드

글꼴은 나를 표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글꼴을 직접 디자인할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글꼴 선택’은 서체 디자인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 표현이다. 흔히들 좋은 패션 감각을 논할 때 ‘TPO’를 말한다. 옷을 입을 때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까지 고려하면 개성을 넘어 탁월함에 도달한다. 글꼴도 마찬가지다. TPO에 맞는 글꼴 선택으로 개성과 감각을 겸비해보자.

* 해당 폰트는 ‘네이버 무료 폰트 자료실’을 통해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 선정한 폰트의 라이선스와 사용 범위는 각 폰트마다 다르므로 사용 전 확인 바랍니다.

① 깔끔하고 분명한 전달을 위한 본문용 글꼴
본질을 잊지 말자. 활자의 목적은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긴 내용의 글은 읽기 수월한 서체를 택하는 게 좋다.

* 추천 상황 : 격식이 필요한 발표, 보고서, 논문, 에세이 등
* 추천 대상 : 뭐니뭐니 해도 깔끔한 게 최고! 깔끔함의 미학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읽기 편한 글씨체를 좋아하는 사람

위에서 아래로 총 5가지의 서체가 있다. 나눔바른고딕, KOPUB돋움, 조선일보 명조, 바른바탕, 대한체가 그것이다. 모두 돋움, 바탕, 명조체의 변형으로 깔끔하고 전달력이 높은 게 특징이다.
위에서 아래 순으로 나눔바른고딕, KOPUB돋움, 조선일보 명조, 바른 바탕, 대한체.

네이버의 나눔고딕이 새롭게 태어났다. 나눔바른고딕(네이버) 폰트는 기존 나눔고딕보다 각이 진 것이 특징이다. 특히 모바일에서 가독성이 높다고. KOPUB돋움(한국출판인회)체는 한국출판인회에서 만든 서체. Korean Publishing에서 ‘KOPUB’이 되었다. 비례와 균형의 완성도가 높여 최고의 가독성을 지향한다. 조선일보 명조(조선일보)는 조선일보와 서체디자인업체 산돌커뮤니케이션의 합작품으로 조선일보사의 공식 서체이다. 바른 바탕(대한인쇄문화협회)체는 언제 어디서나 활용이 가능한 서체. 개인, 상업용 모두 무료로 사용이 가능한 글꼴이다. 대한체(윤디자인)는 서체디자인회사 ‘윤디자인’이 온 국민의 사용을 목적으로 개발한 서체다.

② 제목에 쓰면 좋은 포인트 글꼴
가독성만 고려하면 자칫 지루할 수 있다. 포인트 글꼴을 활용해 중요한 부분을 강조해보자. 독자의 머리에 핵심이 쏙쏙 박힐 것이다.

* 추천 상황 : 프레젠테이션 발표의 제목으로 쓰고 싶을 때, 포스터 혹은 현수막 제작 시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포인트가 필요할 때
* 추천 대상 : 눈에 띠는 글씨체를 찾는 사람, 주목이 필요한 텍스트를 작성하는 사람

위에서 아래로 총 4가지의 서체가 있다. 옛날목욕탕, 참명조, 파도소리, 빅체가 그것이다. 글자의 굵기가 두껍고 마무리가 분명해 주목성과 전달력이 높은 게 특징이다.
위에서 아래 순으로 옛날목욕탕, 참명조, 파도소리, 빅체.

옛날목욕탕(아시아소프트) 체는 이름대로 7~80년대 목욕탕에서 보았을 법하다. 아날로그 감성이 돋보이며 깔끔한 마무리로 시선을 끄는 폰트. 참명조(아시아소프트) 폰트는 명조체는 다소 밋밋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버리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반듯한 마무리와 높은 가독성으로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파도소리(아시아소프트)는 살짝 기울어진 활자와 끝 마무리가 파도를 닮았다. 발랄하고 경쾌한 느낌을 살릴 수 있다. 빅체(아시아소프트)는 두툼한 글꼴이 겹친 것이 매력인 서체다. 반듯한 마무리도 시선 고정에 한 몫한다.

③ 꼬마의 순수함과 귀여움을 담아
어린 아이의 얼굴을 글꼴로 표현한 것이 이와 같을까. 통통하고 둥그스름한 모양은 어린 꼬마를 떠오르게 한다.

* 추천 상황 : 발랄하고 귀여운 이미지가 필요한 발표에, 혹은 어린이를 위한 상품 혹은 공간의 제목을 달 때
* 추천 대상 : 섹시, 청순, 발랄함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귀여움이 최고라 생각하는 사람, 평소 애교가 없지만 글자로 귀여움을 드러내고자 하는 삶

위에서 아래로 총 3가지의 서체가 있다. 라디오사연, 러블리베이비, 기린체가 그것이다. 끝 마무리가 둥글고 부드러워 친근하고 발랄한 느낌이 강하다.
위에서 아래로 라디오사연, 러블리베이비, 기린.

라디오사연(훈디자인)은 중학생 소녀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다면 정말 이런 글씨를 쓸 것처럼 귀여운 것이 매력적이다. 러블리베이비(210) 폰트는 두껍고 둥근 마무리가 친근한 귀여움을 더한다.
기린(아시아소프트) 체는 정말 기린처럼 길쭉하다. 자음이 모음보다 큰 것도 특징이다.

④ 삐뚤빼뚤한 손글씨의 맛
타자로 메일 보내고 스마트폰 위 엄지로 소통하는 게 익숙한 시대다. 손글씨가 주는 아릿한 감성이 그리운 지금, 반듯하지 못한 글자로 당신의 마음을 전하면 어떨까.

위에서 아래로 총 3가지 서체가 있다. 편봉체, 큐트신민상, 쫑알공주도희체가 그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편봉체, 큐트신민상, 쫑알공주도희.

편봉체(아시아소프트)는 펜 글씨의 잉크의 균일하지 않음을 살려낸 폰트다. 큐트신민상 체는 실제 손글씨를 연상시키는 느낌이 두드러진다. 쫑알공주도희(모은영)는 엄마 아빠의 곁을 일찍 떠난 도희의 글씨체로, 병마와 맞서는 아이들을 위해 제작된 서체다.

⑤ 담담하게 써내리는 지난 추억
때론 격한 울부짖음보다 무심한 듯 아픔을 말하는 담담함이 슬픔을 도드라지게 한다. 지난 추억을 말하려거든, 그리고 그곳에 담담함이 필요하거든 활용해보자.

위에서 아래로 총 4가지 서체가 있다. 위에서 아래로 엄마의 편지, 심플함의 미학, 경필고딕, 시네마 체가 그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엄마의편지, 심플함의미학, 경필고딕, 시네마.

엄마의편지(아시아소프트) 체는 이름처럼 엄마에게 받은 편지를 연상시키는 수수함이 특징이다. 심플함의미학(혜움) 체는 깔끔하지만 리듬이 있어 지루하지 않으며, 경필고딕(DKKOREA) 체로는 일반 고딕에 지루함을 느꼈다면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시네마(아시아소프트)는 실제로 옛날 영화 자막에 자주 쓰였을 것처럼 생겨 재미있다.

⑥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아! 개성충만한 글꼴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강한 인상이 특징인 서체들. 어디에 쓰이냐에 따라 납량특집의 제목이 될 수도, 많은 이가 주목하는 매력적인 제목이 되기도 한다.

위에서 아래로 총 3가지 서체가 있다. 위에서 열정, 이건만, 해탈 체가 그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열정, 이건만, 해탈.

열정(아시아소프트) 폰트는 쓰이는 목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게 큰 매력이다. 이건만(이건만) 체는 디자이너 이건만의 서체로 여러 선을 모아 글자를 만든 것. 해탈(아시아소프트)체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을 때 유용하다.

⑦ 서체에 부는 복고 바람
과거의 유행이 다시 도는 것을 복고라 하는데, 이 흐름을 글꼴에서도 읽을 수 있다. 6~70년대 포스터에서 보았음직한 서체는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나타났다.

위에서 아래로 총 4가지 서체가 있다. 위에서부터 콤퓨타세탁, 오복상회, 대한늬우스, 새마을운동체가 그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콤퓨타세탁, 오복상회, 대한늬우스, 새마을운동.

콤퓨타세탁(Design210) 체는 예전에 정말 ‘콤퓨타세탁’이란 간판을 단 세탁소가 있었다면 이렇게 생겼을 것만 같은 폰트다. 오복상회(Design210)는 오복상회에서 만난 철수와 영희가 대화를 나눈다면 이런 느낌일 것도 같고. 대한늬우스(아시아소프트)는 오래 전 뉴스 화면에서 볼 법한 폰트다. 새마을운동(훈디자인)은 커다란 자음이 복고에 귀여움을 더한 폰트다.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수많은 방법 가운데 글꼴이 있다. 글꼴은 나를 넘어 브랜드와 시대를 나타내는 얼굴이 되기도 한다. 글꼴은 조용하지만, 강력하기 때문일 터다. 컴퓨터 타자와 스마트 폰으로 나를 드러내는 요즘, 자기소개서를 손글씨로 써내리는 상상을 해본다. 꾹꾹 눌러쓴 글씨는 당신의 전부는 아닐지언정 지워지지 않는 진한 밑줄을 그어낼 수 있지 않을까.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대학생 집콕러를 위한 월간 소비

편지가게 글월,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게 언제예요?

비전공자를 위한 교양서

비전공자를 위한 전공자의 교양서 큐레이션

일본어 번역가 강민하 | 마음까지 전하는 번역

VEGAN ESSAY 의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입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식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먹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입문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