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제로 – 아픔을 딛고, 기억하는 공간


어느 국가이건 간에 가슴 아픈 역사적 상처를 가진다. 그 상처가 비교적 최근의 것이든, 아니면 아주 오래된 것이든 이를 경험한 사람들은 상처를 내면으로 공유하며 살아간다. 다만 그 상처를 값비싼 교훈으로 승화시켜서 더 성숙해진 모습을 보이는지, 아니면 그냥 잊은 채로 의미 없이 잊어버리는지에 따라 그 상처는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진다.

미국 구 세계무역센터의 테러 직후 사진. 두 쌍둥이 빌딩에서 거대한 검은 연기가 솟아나오고 있다.
세계무역센터 테러 당시의 모습. (이미지 출처: wikipedia)

테러의 아픔을 딛고, 그라운드 제로

2001년 9월 11일, 미국 자유주의•세계화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에 각각 두 대의 여객기가 충돌했다. 충돌의 주범은 알카에다, 명백한 반미 테러 행위였다. 테러 발생 후 불과 2시간 만에 두 빌딩은 붕괴했고 약 3,000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세계 4위 높이를 자랑하던 세계무역센터의 잔해는 보통 건물 15층 높이에 달했고, 현장 일대는 충격파와 먼지 폭풍에 초토화됐다. 유례가 없는 이 초대형 테러 사건의 현장을 미국은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고 이름 붙였다.

‘21세기의 시작을 알린 사건’으로 불릴 정도로 미국은 물론 세계정세에 큰 파장을 끼친 9•11 테러. 그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지도 어느덧 13년이 흘렀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 조금 더 변했을 동안, 미국은 그라운드 제로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기억으로 남겼을까?

잠깐!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란?
본래 핵무기가 폭발한 지점이나 피폭 중심지를 뜻하는 군사 용어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피폭지점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됐다.

세계무역센터의 잔해 앞에 서있는 인부의 사진. 거대한 잔해를 보며 마음이 심란한 듯이 팔을 허리에 대고 있다.
테러 이후 그라운드 제로의 현장 모습. (이미지 출처: flickr@U.S. Army)

테러 잔해를 수습하고 미 정부는 ‘신 세계무역센터’ 재건 계획을 발표한다. 신 세계무역센터 프로젝트는 그라운드 제로에 총 7개의 새로운 세계무역센터와 위령 장소, 지하 상업시설, 뉴욕 지하철, 터미널 시설을 건설함으로써 테러의 아픔을 기억하는 동시에 더 힘찬 도약을 상징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자 함이었다.

새롭게 그 모습을 드러낸 ‘자유의 타워’, 그라운드 제로의 1WTC

신 세계무역센터1 건물의 전신 사진. 푸른 외관으로 하얀 구름이 또렷하게 반사되고 있다.

세계무역센터 역에서 나와 고개를 들면 찬란한 위용을 뽐내고 있는 1WTC(One World Trade Center)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WTC의 지붕 높이는 이전 세계무역센터와 같은 417미터지만, 첨탑의 높이까지 합하면 총 541미터. 이는 미국의 해방일인 1776년을 기념해 1776피트(541.3미터)에 맞춰진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전경. WTC1을 중심으로 주변 고층 건물들이 보이고 거리에는 많은 인파가 지나가고 있다.

신 세계무역센터 프로젝트의 메인인 1WTC는 8년간의 착공을 마치고 2014년 9월 11일 부로 정식 개장됐으며 일반 시민들은 100층부터 102층의 전망대를 이용할 수 있다. ‘13’이라는 숫자를 불길하게 여기는 미국인들은 하필이면 개장 년도가 9•11 테러 13주기여야만 하는지 불평하기도 했다고. 나머지 여섯 개의 WTC는 2020년 안에 모두 완공돼 오피스, 호텔, 쇼핑몰 등 대규모 상업•관광지구로 기능할 예정이다.

말 탄 기수 동상의 배경으로 신 세계무역센터1이 우뚝 서있는 사진. 동상 옆 좌측 성조기의 붉은색이 눈에 띈다.
미국인들은 1WTC에 ‘자유의 타워’라는 애칭을 붙였지만 테러집단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정부는 여전히 1WTC를 정식 명칭으로 설정하고 있다.

1WTC는 테러의 잔해를 딛고 일어난 자유주의의 상징인 만큼 또 다시 테러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미국은 막대한 자금과 기술력을 투자해 다시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1WTC의 하층부는 차량 돌진, 폭발 테러에도 전혀 위험이 없도록 견고한 콘크리트로 감싸져 있고 상부 구조 역시 두께 91cm에 달하는 콘크리트 벽 설계와 철저한 소방시설을 갖추고 있어 여객기가 정면으로 충돌해도 붕괴되지 않는다. 1WTC의 건설 비용은 무려 한화 3조 8,950억 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건축물에 속한다.

옅어질지언정 지우지는 못하리, 상처를 잊지 않는 사람들

본래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두 자리에는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거대한 공원과 인공 폭포가 설치됐다. 희생자와 유족들의 눈물을 형상화한 이 폭포는 24시간 쉬지 않고 흐르며,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둘레를 감싸고 있다. 이곳은 관광객과 유가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 희생자의 이름 위에 말없이 꽃을 두고 가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라운드 제로 폭포의 모습. 거대한 사각형 폭포 안에 또 다른 사각형 구멍이 보인다.
면적 1220평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인공 폭포.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곳엔 무지개가 뜬다.

그라운드 제로는 이제 더 없이 쾌적한 공원으로 자리잡았지만 옅게 흐르는 슬픔과 긴장감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이 공원에서 크게 웃거나 떠드는 행위는 상당한 실례로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살 수 있으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테러를 대비해 보안 요원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라운드 제로를 배경으로 무언가 취재를 하고 있는 모습도 잦아, 9•11 테러의 상처가 여전히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라운드 제로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네 장의 사진. 명패에 꽃인 꽃, 그라운드 제로를 배경으로 하는 영상취재, 시민들을 지켜보는 경호원, 폭포의 전신을 모은 사진이다.

폭포 근처에는 테러의 폭풍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배나무가 여전히 푸른 잎을 뽐내고 있었다. 이 나무는 테러의 상처로부터 생존과 회복을 상징해 미국인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외에 테러에도 붕괴되지 않은 세계무역센터 지하의 ‘살아남은 계단’이 조만간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일명 ‘살아남은 나무’의 사진. 나무를 지탱하기 위해 몸통에 끈 장치가 달려 있고 둘레로 울타리가 처져있다.
9•11 테러 당시 현장에서 훼손되지 않았던, 이른바 ‘살아남은 나무’다.

9•11 테러 희생자는 세계무역센터 근무자도 있지만, 시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건물에 뛰어든 소방관들이 가장 큰 희생을 당했다. 그라운드 제로 한편에는 용감한 소방관들을 치하하는 기념물을 볼 수 있으며 주기적으로 소방관들을 추도하는 행사가 개최된다.

소방관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벽 기념물의 사진. 중앙에 ‘DEDICATED TO THOSE WHO FELL AND TO THOSE WHO CARRY ON’이라고 써져있다.
‘순직한 분들, 그리고 계속 임무를 수행하는 분들에게 바칩니다.’

최근엔 9•11 테러 기념 전시관이 개장돼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이곳은 세계무역센터의 역사와 재건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고 비행기 잔해, 희생자 유품 등 의미 있는 기념물들이 전시돼 있다. 테러 당시 각 기관 교신과 희생자의 통화 녹음은 급박했던 당시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했고, 검은 연기에 휩싸인 세계무역센터와 창문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사진은 테러의 참혹함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전시관 한편에는 가족들이 실종자를 애타게 찾는 전단지가 나열돼 있어 관람객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기념 전시관 내부 전시물들 사진. 실종자포스터, 신 세계무역센터 조감도, 당시 소방 근무복, 전시물을 살펴보는 여인 등 총 4개 이미지의 파노라마 샷.

9월 11일 그라운드제로의 비극. 비록 쉽게 아물지는 못할 역사의 상처지만, 미국인들은 이 상처 위에 더 위대한 결과물을 쌓아 올렸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만반의 준비 태세도 갖췄다. 그리고 동시에, 이 아픈 기억을 세대가 지나도록 전수하기 위한 겸손한 태도 역시 잊지 않았다. 어느 국가이건 간에 가슴 아픈 역사적 상처를 가진다. 이미 일어난 사건은 안타깝게도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기억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새로운 조치를 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기부금 모금 상자, 그리고 기부를 하면 나누어 주는 메모리얼 팔찌가 담긴 통이 클로즈업되어 찍힌 사진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신 세계무역센터 재건을 위해 모금하고 있는 시민들의 기부금. 기부를 한 번 할 때마다 ‘9/11 MEMORIAL’이라고 쓰인 기념 팔찌를 증정하고 있다.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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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9.11이 발생하고 오랜시간이 지났네요.
    그래도 세계정세는 아직 안정되고 있지 않은거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안전과 사고에 철저를 기해야겠습니다
  • 민영 :)

    그라운드 제로는 정말 몇번이고 갔었지만 갈 때마다 항상 느낌이 새롭고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월가 쪽을 가면 항상 빼먹지 않고 그라운드 제로를 들러서 묵념을 하고오곤 하는데 이렇게 자세히 기사로 접하니까 더 좋네요. 그라운드 제로가 유독 좋다고 하셨던 이배운 기자님의 이번 기사를 접하니 정말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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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배운

    민영님 덕분에 더 좋은 추억을 쌓은 장소이기도 하죠! 기사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 :D

  • 해춤

    9.11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 삼다

    기사 잘 봤습니다. 십삼년전 일이지만 어제처럼 생생하게 그 아픔을 기억하도록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에요. 우리 주변에 산재한 아픈 것들도 두고두고 기억하고 추모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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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배운

    우리나라도 기억해야할 과거는 마땅히 기억하고 치유해가야겠죠. 삼다님 감사합니다 :)

  • abcd

    무고한 희생자가 많이 발생했고 충격적이었던 사건인 만큼 아직까지 기억되고 있는거 같아요..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안좋은 일들이 많이 발생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거 같아요 이런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기사인거 같아요 잘봤습니다
    댓글 달기

    이배운

    abcd님 좋은의견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 아이앰쌤

    https://www.facebook.com/#!/lee.yongseok.735
    역사는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몇몃 가슴아픈 사건들이 있었는데요.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고, 미래에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유비무환의 자세를 가져야겠네요. 이러한 값진 내용을 담은 좋은 기사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생각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겨서 살아가겠습니다. 정말 감명깊은 기사였습니다.
    댓글 달기

    이배운

    세상 어느곳이던 가슴아픈 사건의 발생을 완벽히 막을 수는 없죠. 하지만 아이앰쌤님 말씀대로 항상 유비무환의 자세로 비극이 최대한 적게 일어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 이비

    몇달 전, 모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했던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집에서 재방송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잊고 있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아픔을 경감시켜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합니다.그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미어지는 아픔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게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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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배운

    이비님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 :)

  • 솔레미오

    오랜만에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네요. 9.11 테러당시 초등학생이였던 제게 지금 다시 보니 그 당시 얼마나 참혹했고 가슴아팠던 기억으로 미국인들에게 남아있는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가슴아픈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곤 하는데 모두들 힘내시고 이러한 일들이 다신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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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배운

    다시는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다 하고, 항상 기억하는것이 중요하겠죠. 팡스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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