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녕했습니다

양심에 대한 경례. 지금부터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약 1분 간 명상을 시작합니다. 지난 몇 달, 나는 과연 안녕했는지?
노란색 바탕 안에 ‘나는 괜찮지가 / 나는 안녕하지가 / ……..했습니다’ 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안부 인사는 대자보를 타고

고려대의 어느 대자보 게시판 위에 붙은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을 알린 최초의 대자보. 커다란 두 장의 종이에 손으로 빼곡히 쓴 대자보가 눈에 띈다. 대자보 글귀 안에는 중요한 부분에 파란색 펜으로 밑줄을 긋기도 했다.
약간의 시비조이기도 하고 겉치레 인사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곱 글자 속에는 묵직한 성찰이 담겨 있기도 했다. 대자보는 그런 애매한 인사인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되고 있었다. 정치, 경제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대학생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이 짧은 대자보는 고려대를 시작으로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그동안 안녕하지 못했던 수많은 대학생들은 꿈틀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과연 안녕치 못했는가

하얀 종이 위에 볼펜으로 여러 겹 덧쓴 듯한 글귀가 쓰여 있다. 글귀는 ‘안녕들 하십니까’로,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쓰여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안부를 묻는 그의 질문에 ‘나도 사실 안녕치 못했다’며 하나 둘씩 응답해 오기 시작했다. 대학 곳곳에 대자보가 붙기 시작했고 각종 SNS를 통해 대자보와 거기에 담긴 학생들의 불만과 안타까움이 연일 퍼 날라졌다. 사람들은 대자보 내용은 물론 ‘안녕들 하십니까’ 이미지를 만들어 공유하기도 하고 그 동안 참아 왔던 분노와 설움을 글로써 폭발적으로 쏟아 놓기도 했다. 철도 민영화 이슈와 함께 이 양상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고 학생들은 광화문에 모여 집회를 하기도 했다.

집회 몇 번에 무언가 크게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또 대자보 몇 개로 현 시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리라 여기지도 않고요. 하지만 적어도 관심은 끌 수 있었으니 그걸로도 긍정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누군가 터뜨려 주기를 기다리며 그동안 내내 불편한 채로 살아왔던 우리에게 일종의 도화선 역할을 하기도 했고요. ‘안녕들 하십니까’는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에 불을 당긴 사건이었어요.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ㄱ씨는 이번 사건을 통해, ‘지금 대학생들은 자기 살기에 바빠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깰 수 있어 좋았다고도 말했다. 취업에 지쳐 꿈을 잃어가고, 멘토를 갈구하며 힐링을 찾는 우리에게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에, 대학생으로서 당연히 고민해왔던 시국에 대한 걱정들을 대자보라는 수단을 통해 시각화할 수 있어 좋았다고도 했다. 아마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을 거라며.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꽤 안녕했습니다

어느 대학교 건물 내 실내 대자보 게시판을 촬영한 것. 다양한 광고 포스터와 함께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의 일환으로 보이는 대자보가 흐릿하게 붙어 있다.

취업을 앞둔 막학기 학생으로서 솔직히 정치에 무관심했던 게 사실이에요. 집이 잘 사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장 생계를 걱정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기에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에게 큰 타격은 없었으니까요. 때문에 정치는 늘 나와 몇 걸음 떨어진 다른 세상 얘기처럼 생각했어요.

영문학을 전공하는 ㄴ씨는 느닷없이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오히려 불편하다고 말했다. 앞길을 헤쳐나가기도 바쁜 와중에 나라 걱정까지 떠 안는 것이 좋을 수만은 없다며, 너무 편향적인 의견 표출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구석으로 내몰게 된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괜찮았어’라고 말을 꺼냈다가는 뭇 학생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 돌을 맞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어느 스케치북 위에 사인펜으로 쓰여진 글을 촬영한 사진. ‘안녕하시다구요? 왜 안녕한지 말해주세요’라고 쓰여 있다.
사실 대자보가 ‘안녕들 하십니까’에서 비판하는 대상은, 그 동안 정치에는 눈과 귀를 꼭꼭 닫아 두었던 ‘무늬만 대학생들’이기도 하다. 심심하게 건네는 안부 인사 속에는 ‘당신은 나처럼 불편했는가, 혹시 편하지는 않았나’라는 질책의 눈초리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너도 나도 ‘나 역시 불편했다’고 화답하자, 그런대로 편하게 살아오던 사람들, 현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 성향의 대학생들은 페이스북같은 공론의 공간에서 자취를 감춰야 했다. ‘그래, 나는 안녕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대들었다가는 흔히 말하는 ‘일베충’으로 낙인 찍혀 영영 사회적으로 사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녕하지 못했다는 거짓말

그러나 이 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난감한 이들이 있다. 아니, 사실은 더 많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지지하면서도 더 이상 발을 담그지 않는 이들, 무언가 잘못된 건 알았기에 그동안 관심 있었던 척 불편한 듯 연기를 하는 이들, 혹은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대자보가 말하는 깨우침의 소리에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이다.
책상 위에 놓인 카메라 렌즈를 클로즈업해 촬영한 사진. 카메라의 렌즈가 커다랗게 보이고 있다.

시국에 대해 약간의 관심은 있었지만 그리 크지 않았고, 나라 걱정에 앞서 당장 내 걱정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크게 안녕하지도, 안녕치 못하지도 않았어요. 다만 마음 속 한 구석에는 늘 약간의 불편함과 울분을 간직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행동하는 이들에게 동의하면서도 그 이상 관여하는 것은 꺼리게 돼요. 취업도 해야 하니까.

의류학과 ㄷ씨는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절대 시국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끼리도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갈등을 만들기 십상이었고, 좋자고 만난 자리를 어색한 분위기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페이스북에 이번 사태에 관련한 단 하나의 글도 올리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의 경우 그런 것들이 취업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 무언가 커다란 고질병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당장 내 먹고 살 길을 찾는 일만도 벅차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를 캡쳐한 사진. ‘안녕? / 2월 22일 오후 1시 구로구청 대강당’이라는 안내 문구가 쓰여 있고,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를 소개하고 있는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외치려 합니다!’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얼마 전 ㄹ씨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누군가 무료로 배포한 ‘안녕들 하십니까’ 이미지였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퍼뜨리고 있는 이런 이미지들을 카톡이나 페이스북 메인에 게재함으로써 소위 ‘개념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이 대자보 인증샷을 트위터에 올리며 ‘개념 연예인’으로 회자되기 시작하자, ‘정치에는 관심도 없는 무심한 인간’으로 오해 받기 싫었던 많은 이들은 서둘러 SNS에 대자보 사진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런 반강제적인 공유 현상에 동참은 하면서도,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도대체 무슨 현상인지 파악할 수 없어 마음이 무거웠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해서 깨어있지 않은 청춘으로 치부되는 일만은 막을 수 있었으면 했다고 실토했다. 한 번은 용기를 내 한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현 사태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글을 게시한 적이 있는 ㅁ씨는 수십 개의 날 선 댓글들에 곤혹스러웠던 경험을 털어 놓았다.
어느 육교 아래 인도 옆을 장식하고 있는 그래피티들. 인도가 있고, 오른쪽에 서 있는 벽에는 형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그래피티 작품이 가득 그려져 있다.

솔직히 대자보를 보고 많은 것을 반성했어요.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지고 싶어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 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조심스럽게 몇 가지 질문들을 올리고 설명을 부탁했더니, ‘답답하다’, ‘지금까지 뭐 한 거냐’, ‘조금만 공부하면 금세 알 수 있는 것인데 부끄럽지도 않냐, 낯짝도 두껍다’, ‘대학생 맞냐’, ‘이런 사람들이 있어 지금 나라 꼴이 이 모양이구나’, ‘반성 좀 해라’ 등의 댓글이 단 몇 분 새에 수십 개가 달리더라고요. 다음부터는 무서워서 함부로 글 하나 쓰질 못하게 됐어요.

한 사람의 만 걸음보다 만인의 한 걸음을 위해

안녕한 이들, 혹은 안녕했는지 아니었는지 난감한 이들을 변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김새가 다르듯 대학생이라는 같은 꼬리표를 달고는 있지만, 우리는 저마다의 관점으로 이 상황을 해석하고 있을 것이다. 그 방식이 옳든 그르든 중요한 것은, 아픔의 시대를 공유하는 2014년의 대학생들이 수십 년 전 그들의 선배들이 그러하였듯 여전히 잘못된 현실에 분노하고 낙담하며 피 끓는 외침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고려대에서 시작된 두 장의 대자보를 통해 우리는 그 희망적인 사실을 두 눈과 귀로 목격하고 있다.
어느 인도 블록 위에 새겨진 ‘안녕’이라는 뜻의 여러 언어들. 위에서부터 ‘안녕’ ‘Hello’, ‘Hola’ 등 다양한 언어로 쓰여진 단어들이 보인다.
세상에 완전함은 없다. 100%라는 말도 어쩌면 이상 속의 수치일 뿐이다. 설령 99%의 대학생들이 안녕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1%의 다른 누군가는 예전부터 줄곧 안녕해왔다. 어디를 향할 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분노의 화살을 그들을 향해 퍼붓기보다는, 그런 그들조차 동의하고 인정할 수 있는 성숙한 의견 개진과, 비폭력적이며 준법적인 단체행동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외침이 20대 청춘 특유의 일시적이며 폭발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든 세대들에게 공감시킬 의무가 있다. 어쨌든 우리도 그들과 함께 이 사회를 책임져야 할 구성원이기 때문에.

더불어 무관심으로 일변해온 많은 대학생들이, 보다 참여적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의견을 내밀 수 있도록 공론의 장에서 치열한 감정다툼을 지양하고 객관적인 사실과 논리로 무장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이마에 ‘소시민적인 인간들’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 단체로 비난하는 행위는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딘가 자취를 지워 버린 그들도 결국 우리와 함께 미래를 가꾸어 나아가야 할 동료이자, 시대를 공유하는 우리는 운명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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