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여, 오라

해가 없어지고 어둠이 내리면 낮과는 또 다른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다. 하늘과 땅 사이 출렁이는 인공의 빛, 어둠에 취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빠른 발걸음. 우리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오늘도 낮보다 화려하고 뜨겁다.

어느 밤의 도시 모습을 촬영한 사진. 큰 도로에 차들이 지나다니고, 도로 양 옆으로는 높은 건물들이 서 있으며 건물 곳곳에는 사람이 있는 듯 불이 켜져 있다. 가로등과 곳곳의 가게에도 불이 켜져 있어 밤이지만 매우 밝은 느낌이다.

잠든 새벽을 깨운 그들의 정체

시계의 발명 이후 ‘시간’에 의해 사회는 구조화되었고 우리의 생활 패턴 역시 시간에 맞춰 변화되고 진화되어 왔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 한국 사회의 고속성장 아래, 사람들은 점차 밤과 낮의 제한을 두지 않고 ‘시간’을 하나의 자원으로써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 단연 돋보이는 현대인의 모습 중 하나가 바로 심야형 인간에서 일부 변종된 신유형의 인류, ‘호모 나이트쿠스(HOMO NIGHTCUS)’의 출현이었다. 이는 마치 온전히 하루를 소비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에 발맞춰 탄생한 결과물과도 같았다.

“낮에는 학교 다니랴, 저녁엔 과제하랴 매일이 바빠요. 그러다 보니 제 취미활동을 즐기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졌죠. 그때부터 자연스레 새벽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조금 적응이 안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익숙해졌어요. 무엇보다 버려질 수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어요.” – 김민성 (23살, 상명대학교)

24시간 영업중인 한 패스트푸드점의 모습. 밤이지만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한 남자가 통유리로 된 매장 안쪽의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일어나 활동하는 소위 ‘올빼미 족’과는 달리 ‘호모나이트쿠스’는 밤과 낮의 구분이 따로 없다. 아침과 저녁, 주중과 주말의 시간 경계선이 더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그들에게 있어 24시간 중 낭비할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수면을 갖는 것이 그들의 선택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눈 속엔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세우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겠으나, 그들은 그저 수많은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며 입을 모은다.

사실 과거 유럽의 고대인들에게 있어 밤은 어둠과 연계되어 악의 힘이 번성하는 부정적인 시간으로 묘사됐었다. 어두움이 인간의 본질적인 고통과 두려움을 자아내는 원천과도 같았던 것. 하지만 시간이 흘러 우리의 밤은 고대의 사고와는 정반대의 양상을 띠게 됐다. 낮을 위한 종속적 개념에 불과했던 밤이 되려 생산활동의 중심으로 변천하며 신문화까지 양산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견고하게 조직화된 사회의 현실 속, 개인의 자유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저항의 몸짓이 잠든 밤을 깨웠으리라 짐작해본다.

밤을 마케팅하다

약 6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국가안보 수호와 사회 공공질서 확립이라는 명분 아래 전국적으로 ‘야간통행금지’가 도입됐었다. 그러나 이후, 지역별 강제적 시간 규율의 순차적인 완화에 따라, 지난 1982년 야간통행금지 전면 해제를 시작으로 네온사인 금지 해체, 심야영업 규제 폐지 등의 시공간적 제한이 누그러지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러한 일상의 자유는 본격적으로 밤거리 문화를 조성하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결국, 야간시간의 활용도가 높아짐과 동시에 라이프스타일의 디테일한 발전이 현재의 밤 소비 시장의 길을 열게 됐다.

각종 가게의 24시간 영업 안내 간판. 위에서부터 아래로 세 가지의 카페, 분식점 등의 ‘24시간 영업’, ’24 Hours Open’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

이러한 현상을 발 빠르게 포착한 기업들은 이를 겨냥, 개점을 앞당기거나 마감을 연장하는 등의 유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는 일종의 ‘타임마케팅’인 것이다. 길거리 모퉁이에 즐비한 24시간 편의점을 시작으로 지금은 음식점, 헬스장, 헤어숍, 카페 등으로 그 추세가 확대되고 있다.

기업들은 세부적인 타깃에 따라 저마다의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기도 했다. 실례로, 커피샵 중 최초로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탐앤탐스가 야간 시간대를 공략한 반면, 스타벅스는 얼리버드 족을 위해 개점 시간을 오전 7시로 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늦은 시간에 머물 공간을 원하는 소비자는 점점 늘어나는 것이 현재의 시점이다. 이는, ‘밤을 소유하려는 수요자의 부단한 증가가 공간의 공급을 창출한다’는 명제가 성립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밤은 단순히 이윤 창출의 새로운 공급처 역할만 담당하진 않는다. 지난 12일부터 9개 노선으로 확대된 서울시의 심야전용 ‘올빼미 버스’ 역시, 늦은 귀갓길에 오르는 시민들의 발이자 든든한 동행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변화는 수도권에서 점차 주변부 지역으로 뻗어나가는 중이기도 하다.

경복궁 야간개장 당시 모습. 밤의 경복궁에 조명을 쏜 듯 입구 건물이 빛나고 있고, 사람들이 입구를 가득 메우고 사진을 찍는 등 구경하고 있다.

또한 세종문화회관을 비롯, 역사박물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등이 개관시간을 심야로 확대하는가 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야간 문화프로그램에 재정을 지원하면서 우리의 밤 시간대를 더욱 풍요롭게 빚어내고 있다. 이는 본래 밤을 즐기던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바쁜 일상에 치여 여유가 결핍된 이들의 고달픔까지 보듬어주는, 도심 문화의 밤꽃을 활짝 피어나게 했다.

내일은 또 내일의 달이 뜬다

혹자는 말하길, 21세기는 이른바 ‘밤의 식민화’가 이뤄지는 24시간 사회라고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를 놓고 바라본다면 정확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밤의 변화가 도심 번화가에만 한정되지 않고 지방 구석구석까지 24시간 사회로의 변모를 꾀하는 중이다.

질적인 팽창 역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특히 편의점의 경우 과거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에서 탈피해, 우편과 은행업무를 포함한 온갖 행정서비스까지 처리하는 복합공간으로 거듭났다. 이는 속도성과 공간성에 첨단화가 더해지면서 더욱 촘촘하고 세밀해진, ‘완벽한 24시 시스템’을 향해 내달리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만큼,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24시간 사회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강남역 인근에서 촬영한 새벽의 거리 모습.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각종 가게 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사람들이 몇 무리 걷고 있다. 새벽보다는 조금 늦은 저녁인 듯 사람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 불빛이 꺼지지 않는 사회가 우리 생활의 편리를 증가시킨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린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밤 문화의 향유는 곧 끊임없는 소비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양적이든 질적이든, 밤시간을 더 잘 소비하기 위해선 결국은 더 많은 노동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이는 자칫 개인과 사회 전체의 탈진 증세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의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어느 카페의 새벽의 모습.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양 옆으로 늘어선 카페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곳곳에 많이 앉아 있다.

혹자는 우리가 과로사회 현상에 갇혀있다고 말했다. 이는 야간 산업의 발전이 여가의 발달을 이끌었으나, 다시 이윤극대화라는 욕구의 톱니바퀴와 맞물려 결국은 무한한 소비생활의 촉진으로 이어져버린, 이 ‘악순환의 고리’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걱정이 조금은 지나치게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사실 그들이 말하는 피로한 사회의 문제점을 아무리 소리 높여 지적해봐야 바뀌는 건 없다. 24시간 사회는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자 미래이기에 이 속도를 늦출 수도, 멈출 수도 없다. 단지, 그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있음은 분명하다.

이 밤이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인 자아실현의 장일 수도, 생계를 위한 뼈아픈 하루의 시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자신을 구속하려는 이 현실사회에 끊임없이 투쟁하려는, 기분 좋은 ‘성장통’의 한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시간의 연속성에 떠밀려 흘러가는 자신을 잡기 위해, 자신의 삶에 있어 주체성만큼은 잃지 않기 위해 어둠 속에서 쉼없이 움직이는, 현대인의 멋진 뒷모습으로써 말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이 밤을 한번쯤은 과감히 즐겨보길, 당신에게 감히 고하는 바다. 일과 삶의 불균형이 고착화된 불안감 속, 당신을 해방시킬 유일한 탈출구가 오늘의 밤이 될 지 누가 알겠는가. 시간이 지나 되돌아봤을 때 의미 없었던 그 날의 밤으로 기억되어도 좋으니, 즐기자. 내일은 또 내일의 달이 뜰 테니까.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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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벅스가 오픈하는 7시..까진 아니더라도 매우 일찍 스벅에 가본 적이 한번 있는데, 정말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 곳에서 생각 정리할 것도 좀 하고, 간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더랬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왔지만 다들 혼자 공부를 한다든지, 노트북을 한다든지 하거나, 단체로 왔다 하더라도 영어스터디모임을 진행하더라고요ㅎㅎ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아침을 즐기고 있었어요. 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24시간 카페 등에서 자신의 밤을 나름의 방법으로 즐기고 있는 것 같고, 또 그런 사람들이 요즘 부쩍 늘어난 것 같네요. 새벽감성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죠ㅋㅋ 밤에만 할 수 있는 생각과 말이 있잖아요. 오늘만큼은 그 시간을 한번 즐겨보렵니다. 내일은 내일의 달이 뜨니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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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성근

    ㅋㅋㅋ 유이정 기자가 사는 노원에서 신나게 밤을 태워보고 싶네요 ㅋㅋㅋ (찡긋)

  • 이유진

    아침부터 읽은 '밤' 기사라 조금은 몽롱하지만 더 선명하게 다가왔어요. 저도 호모 나이트쿠스가 되고 싶지만 그저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족 인 듯...! 진정한 호모 나이트쿠스에게는 24시간이 모자라겠네요. 우리나라 만큼 밤문화가 융성한 나라도 없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벽시간을 즐기는 이유가 뭘까요? 오히려 밝은 낮에는 자신을 숨기고 어두워질수록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것 같기도 해요.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낮보다 화려한 밤인 이유는 그런 면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ㅎㅎㅎ 재밌게 읽었습니당 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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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성근

    괜스레 늦은 저녁이나 새벽이 되면 누구나 감성적인 기분에 젖는다고 하죠. 이유진 기자도 페북에 감성돋는 글을 쓰곤 하잖아요? ㅋㅋ 보고있자면 정말 ㄱr슴으로 눈물을 흘ㄹㅣ게 되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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