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의 역습

‘표절’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이 단어의 등장 빈도가 더욱 잦아졌다. 장르를 막론하고 ‘표절 논란’, ‘표절 시비’, ‘표절 사태’의 수식어는 이미 여러 차례 화젯거리가 되어 왔고, 수많은 심판도 거쳤다. 새로움이란 한계 속에서 교묘한 수법으로 쉽게 결과물을 얻는 ‘표절’, 진짜로 복제되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피아노 건반이 원처럼 둥글게 말려 있고, 그 건반을 연주하려는 손이 건반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의 이미지이다. 이미지 아래에는 ‘표절의 역습’이라는 기사 타이틀이 쓰여져 있다.

표절이라는 용의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어야 하는 창작과 관련된 장르에서는 늘 표절이라는 이슈가 족쇄처럼 존재한다. 때문에 표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 창작자가 용의자로 둔갑하곤 한다. 표절에 대해 다소 정확한 비교 우위가 있고, 기준이 확실한 대학 논문 및 연구 자료에 관한 표절은 확실한 책임을 묻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문화 쪽으로 건너오면 사정은 다르다. 애매한 기준과 제대로 표절의 시비를 가려줄 만한 제도가 마땅치 않아 이를 악용하는 용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SNS의 사용 범위가 다방면으로 확대되면서, 개인의 생각이나 게재하는 글, 사진을 도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SNS가 가지는 ‘자유’가 그 규제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손쉽게 생각을 훔치는 일들이 빈번한 상황. 모르게 일어난 표절 역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알면서 교묘하게 표절을 선택하는 용의자들은 시간을 공소시효처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진주 유등 축제의 현장 사진이다. 숭례문과 같은 커다란 문에 전체적으로 불이 켜져 있고, 양 옆으로 이순신 장군, 조선시대 사람들을 형상화한 인형이 조명을 받으며 서 있다. 성 아래로는 사람들이 축제 구경을 위해 지나다니고 있다.
최근에는 ‘연등 축제’의 원조를 가리는 시시비비가 일어나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진주시가 지역의 활기를 더하며 숙원 사업으로 진행해온 행사인 ‘진주유등축제’를 서울시에 뺏겼다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진 것. ‘지역 고유의 것’을 주장하는 진주시와 ‘한국의 보편적인 축제’라고 반박한 서울시의 이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야경 속에서 물을 곁에 두고 아름답게 빛나던 축제 뒤엔 이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상승세를 타던 가수의 타이틀 곡이 기존 다른 가수의 곡과 흡사하다는 논란도 있었다. 대중이 듣기에는 거의 원곡과 흡사할 정도의 수준이었음에도, 시비를 가리는 등의 별다른 대응은 없었다. ‘케이블 베끼기 논란’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출발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도 있다. 시청자들의 아우성 속에 차별화를 찾아가고 있지만, 논란 자체를 지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규제의 모호성은 숙제
“표절의 문제는 창작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는 법정 분쟁이 성립하지 않지만, 최근에는 인터넷 환경이나 SNS의 보급으로 표절 의혹이 대중들에게서 먼저 제기된다. 그만큼 표절이 노출될 기회가 많아졌다. 표절, 즉 저작권 침해를 판단하기 위한 법적인 중요한 요건은 ‘접근’과 ‘실질적 유사성’에 있다. 표절을 판단하는 데 ‘접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질적 유사성’이다. 이것이 저작권 침해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며 저작권 관련 판결문을 보면 이것을 매우 중요한 판단 사항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병성, <The Musical> ‘표절과 창작의 줄타기’ 중에서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 여러 음표가 그려진 악보 한 줄이 원형으로 둥글게 말려 있다. 실제로 법안에는 표절이 저작권 침해에 속하게 되는 기준이 명시되어 있다. 음악을 예로 들면, 가락과 리듬, 화음의 3가지 요소의 실질적 유사성 여부가 그 기준. 개별적인 음표의 유사성보다는 그 음표가 어떻게 결합되어 연속되었는가가 중요하다.

대중문화의 경우, 대중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감시하는 역할을 자연스레 맡게 된다. ‘비슷한 것 같다’, ‘살짝 바꾼 것 같다’라는 식의 의심은 두 가지의 콘텐츠를 비교하는 영상이나 게시물을 게재하고, 다른 대중에게 먼저 묻고 공유하며 표절 시비를 가리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표절과 저작권에 관한 법안은 아직 애매한 부분이 많아 실제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표절을 인정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등의 행동을 하는 자와, 암묵적으로 ‘시간이 약’이라는 형국으로 행동을 하지 않는 자가 있다. 표절을 심문하는 것은 대중이지만, 대중과 법의 거리감은 사실 멀기 때문에 이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사례는 사실 많지 않다. 또한, 원작자가 아닌 이상 많은 비용과 시간을 소모하면서까지 표절을 확인하려는 경우도 많지는 않다.

창작품이 가지고 있는 작가의 사상과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가시화하는 일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 유사성을 비교할 수 있는 표본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표절을 규정하는 사람도, 표절을 제기하는 사람도 결국 법 앞에서 아주 오랜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명확한 결과를 기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소녀시대와 비슷한 콘셉트로 데뷔한 중국의 걸그룹 아이돌 걸스. 9명의 아이돌 걸스 멤버가 소녀시대가 입었던 하얀색 제복 스타일의 옷을 입고 일렬로 선 채 팔짱을 끼고 정면을 보고 있다.
실제로 국내 아이돌의 노래나 안무, 의상, 콘셉트 등을 교묘하게 베낀 타국의 아이돌이 동남아를 비롯한 자국에서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모습도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똑같다’라는 느낌이 절로 들지만, 국제적인 거리 탓에 규제가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면서 선뜻 표절에 관한 시시비비를 가리기 힘들어졌다.

새로운 규제, 표절에 대한 예방접종

‘샘플링(Sampling)’은 기존에 나온 창작물의 일부를 빌려다 쓰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원작자에게 저작권에 대한 값을 지불했는지, 사전의 합의가 있었는지 등의 여부이다.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기존의 창작물을 빌려 쓰는 이 방식은 무분별했던 표절을 하나의 수단으로 재인식하고 합법적으로 해결한 방식이 될 수 있다. 패러디 또한 샘플링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패러디는 복제된 결과물이 어떤 상업적인 목적과 사회적으로 그 의미를 해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경우엔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 대놓고 베끼되, 그 결과물로 이루려는 목적의 높낮이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Cut&Paste라는 글자 위로 빨간색 원 위에 줄을 그은 ‘금지’ 표식이 되어 있다.
하지만, 표절에 관련한 새로운 규제는 여전히 더 필요한 상황이다. 처벌을 강화해 표절을 방지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지만, 저작권과 창작물의 유대관계를 이끌면서 기존의 좋은 것은 합법적 지불을 통해 빌리고, 새로운 것을 도출해내는 순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순환 속에서 환기를 시켜줄 다양한 방침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관점에서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대학 논문에 관련한 표절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는 경우를 살펴보자. 실제로 논문 표절 문제로 많은 유명인들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기도 했다. 학위를 판가름하는 논문 심사는 많은 이들의 숙명이자 숙제지만, 이미 많이 발표된 논문이나 관련 서적의 소스를 빌려 부담을 덜려는 부분에서 표절이 시작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논문 전체를 입력하면 표절 여부를 판가름해주는 표절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많은 교육 기관에서 참고용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대에서도 논문 표절을 막기 위해 ‘논문 표절 검색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축적된 DB를 통해 유사 문장 등 표절로 간주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 빠르면 내년 2월 졸업예정자의 논문 심사부터 시스템을 활용할 방침이라고 하니, 좋은 본보기가 될 경우 다양한 교육 기관에서 정식 도입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표절

‘표절은 곧 범죄’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주어진 상황과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범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창작물에는 창작자의 고통이 따르지만, 모든 복제품에는 용의자의 고통이 따른다. 대중을 상대로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결과물의 표절만이 문제는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일상과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SNS에서의 표절 또한 개인의 사적 영역 침해, 무단 도용의 문제 등이 늘 따른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 일러스트가 각기 다른 모양, 다른 색깔로 표현되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고, 그들의 창작물 또한 각기 다른 것임을 나타내고자 하는 이미지이다.

수법은 더욱 교묘해지겠으나 표절을 규제하는 방침은 아직도 모호하다. 표절 문화가 용인되지 않도록 대중의 날카로운 시선을 필요로 할 때가 많아질 것이다. 결국 대중은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물에 박수를 보낸다. 시간이 오래 걸릴 지라도 정면 돌파가 답인 것이다.

표절의 역습으로 국내의 논란들은 질타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논란만을 남겼을 뿐, 어떠한 결과도 내지 못하고 시간을 약으로 하며 사라진 표절 사건도 많다. 표절을 가리는 싸움보다, 창작의 열정에 빛나는 싸움을 기다리는 건 언제나 대중이고 창작자 자신이다. 따라 하는 길엔 대중이 있을 수 있지만 창작자 자신은 없을 것이다. 올바른 규제와 창작자의 정신이 더 나은 길을 개척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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