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밤은 더 이상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지 않다

2011년 9월 15일, 대한민국이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이후 ‘9.15 대정전 사태’는 전기 수요가 가장 급증하는 여름이나 겨울이면 항상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단골 이슈가 되었다. 정부의 대대적 홍보에 따라 국민들 역시 제2차 대정전 사태를 막기 위해 더욱 전력소비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덥고 어두컴컴해진 불편한 생활은 마치 원시시대로 회귀한 듯한데, 정부는 국민에게 지금보다 더 전기를 아끼라고 말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영화 베니싱의 한 장면 캡처. 어두컴컴한 공간에 오른쪽 멀리 한 줄기 빛이 내리고 있다. 빛줄기 나래로 한 사람이 서 있는 모습으로, 블랙아웃 이후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룬 영화다.

대정전 사태, 왜 일어나나

7월 9일 전력거래소 홈페이지의 전력예보 화면. 제일 왼쪽에 예보단계가 ‘관심’으로 표시돼 있고, 가운데에 피크 예상시간이 14~15시로 체크돼 있다. 오른쪽에는 최대전력과 예비전력이 나타나 있는데, 최대전력은 7,020만kW이며 예비전력은 395만kW의 5.63%로 예보돼 있다.

전력거래소에서 관심단계가 자주 발령되다 보니 사람들은 무감각해져 버렸지만, 사실 관심단계는 위험한 상태이다. 여기에서 예비전력이란 최대 전력 공급량에서 수요를 채우고 남은 전력량을 말한다. 전력거래소는 예비전력량이 500만kW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할 때, 준비단계에서부터 관심→주의→경계→심각 순으로 각 5단계의 전력경계경보를 내리게 된다.

과거 국내에서 발생한 2011년의 대정전 사태는 전력비상경보단계가 가장 높은 ‘심각’의 수준에 도달했었다. 이는 최근 급증한 ‘전력의 과소비’가 국내의 모든 발전소의 가동을 멈춘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국내 전체의 예비 전력량이 떨어지면 각 발전소는 최대 전력량을 생산하려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하나의 망으로 연계되어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때문에 한 발전소에서 과부하가 걸리면 해당 발전소의 운전이 멈추게 되고, 이 현상이 마치 도미노식으로 다른 발전소로 옮겨지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마비되어 대정전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전기’하면 무조건 한국전력의 탓이다?

대정전 사태와 더불어 전기요금 인상, 그리고 전력 공급의 부족 현상까지. 매번 ‘전기’와 관련된 사건이 터졌다 하면 국민의 불평불만 화살은 한국전력으로 쏠려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발생한 원전 비리 사건까지, 한국전력은 항상 따가운 눈총에 눈치 보기 급급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말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한국전력만의 탓인 걸까?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 시스템은 전적으로 한국전력이 담당하지 않는다. 지난 2001년, 전력산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정부 개편에 따라, 공기업인 한국전력에서 6개의 발전 자회사를 분리하고 민간기업의 참여를 확대시켰다. 정부가 어느 정도의 전력 민영화를 염두하고 이러한 모델을 만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전력의 독점적인 운영 방식에서 전력의 생산-거래-공급 구조로 바뀌게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생산자(발전회사)가 만든 상품(전력)이 경매장(전력거래소)에 나오면, 이를 상인(한국전력)이 값을 주고 사와서 사람들에게 되파는 식이다.

SBS 8시 뉴스의 한 장면 캡처. 왼쪽에 아나운서가 ‘데이터 허브로 발돋움’이라는 타이틀로 뉴스 멘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kt 그룹 마크와 함께 한국과 일본의 국기가 나란히 하고 있는 자료 사진이 보인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국내에 짓기로 계약했다는 내용의 보도이다.

이렇게 한국전력을 통해 우리에게 돌아오는 전기의 가정용, 산업용 요금 모두 OECD 국가 중에서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이 ‘산업용 전기요금’에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실제 전기요금의 원가인 103원에도 못 미치는 약 92원에 판매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 역시 낮은 산업용 전기가격으로 인한 공장들의 무분별한 전력 과다 사용이 전력 대란을 일으킨 근본적인 주범이라고 강조한다.

EBS 지식채널 e ‘전기생활자’ 중 한 장면 캡처. 왼쪽 그림은 2011년 한전 고객 수를 나타낸 원그래프로 주택용이 71.2%를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은 2011년 용도별 판매전력량을 나타낸 원그래프로 한전 고객 수를 대부분 주택용이 차지하는 데 반해, 실제 주택용이 사용한 전력량은 18%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극심한 전력난에 미소 짓는 민간발전사들

전력난으로 기업과 국민 모두가 불안해 할 때, 유일하게 웃는 이들이 있다. 바로 ‘민간 발전사’다. 전력난이 심각해질수록 이들은 오히려 높은 수익을 올리고, 다시 전기요금을 인상한다.

이 기이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전기 생산과정의 일부를 알 필요가 있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의 주원료는 원자력, 석탄, LNG 등 다양하며 이들의 가격 역시 다르다. 전력거래소는 처음엔 연료 원가가 낮은 원자력이나 석탄을 이용해 만든 전력을 구매하다가, 전력 수요가 높아지면 어쩔 수 없이 LNG 등의 비싼 원료 가격을 가진 전력을 차례로 구매하게 된다.

알다시피 최근 2년간 전력수요는 높은 속도로 증가했었다. 모자란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 한국전력은 값비싼 원료 단가의 전력을 구매해야만 했고, 이로 인해 비싼 원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까지 포함하여 국내 민간 발전소가 모두 가동됐었다. 그리고 이것이 기업들의 엄청난 수익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MBC 프로그램 ‘PD수첩’ 중 ‘전력 대란의 감춰진 진실’ 편의 한 장면 캡처. SMP(계통한계가격) 적용 방법을 표시한 그림으로, 왼쪽부터 A발전소 170원/kW, B발전소 180원/kW, C발전소 140원/kW, D발전소 200원/kW으로 표시돼 있다. 결과적으로 생산 단가가 가장 높은 D발전소에 맞춰 가격이 책정된다.

이는 ‘SMP(계통한계가격)’라는 독특한 전력거래 가격산정방식에서 기인한다. SMP란, 전력거래소가 각각 다른 가격의 원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들 중 가장 생산 단가가 높은 발전소(좌측 사진의 D발전소)의 전력가격을 기준으로 하여, 다른 발전소 역시 동일한 가격(200원/kW)으로 구매해 주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년 SK E&S의 경우 저렴한 천연가스의 원료를 통한 발전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최근 2년간 전력난이 더욱 심해질수록 민간 발전소들은 굉장한 호재에 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재 민간발전사가 과도한 수익을 가져간다는 비판이 있지만, 정부는 추가로 발전소를 건설하여 2020년까지 전체 전력생산의 30%를 민간 발전소에 의해 생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막연히 시장에서 민간기업의 참여를 높이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효율의 극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미국 CNN 방송 중 한 장면 캡처. 블랙아웃 상황으로 세상이 온통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여있다.

이는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캘리포니아 블랙아웃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완전한 전력시장 규제 완화가 도리어 민간회사의 시장 조작을 야기했던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최근 발생한 원전 비리 사고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설비의 유지 및 안전관리가 굉장히 소홀하다.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력사업의 효율화를 위해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바로 ‘규제’라는 사실이다. 극단적인 민영화와 더불어 정부의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대규모 정전사태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더 아껴야 합니까?

5월 31일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 및 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윤상직 산업통상부 장관의 모습. 카메라 앞에 서서 올여름 최악의 전력난에 대비한 절전 규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정부는 똑같이 ‘전기절약’이란 말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지난 5월 산업통상자원부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원전 3기 정지로 인한 올여름 최악의 전력난이 닥칠 것을 대비하여 절전 규제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역시 국민에게 ‘절전’만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 절약이, 모든 국민이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이자 생활 방식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의 단순한 습관으로 인해 범국가적 변화를 만들어 내긴 어렵다. 이젠 정부가 필히 나서야 할 때이다. 정부는 전력 대란의 1차적인 책임이 바로 ‘정부의 정책’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

1979년 2월 16일 자 매일경제의 신문기사. 세로 형태의 옛날식 신문 인쇄 화면 가운데 ‘한 집 한 등 끄기’라는 문구가 보인다.

9.15 정전사태 이후 2년이 지났지만 전력난은 여전히 심각하다. 전력수요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갑작스러운 ‘순환 정전’이라 불리는 강제 단전은 오히려 시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제2의 대규모 정전사태에 오늘도 사람들은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밤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것일까. 국민들의 전기절약 노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정부가 만약 이 현실을 알고도 끝까지 외면한다면, 우리의 밤은 더 이상 아름다운 밤이 될 수 없을 것이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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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전력문제 심각한거 같아요 ㅠㅠ '에이, 내가 쓰는 거 뭐 얼마나 된다구' 이런 마음가짐은 버리고 다들 조심씩만 노력하면 훨씬 살기좋은 나라가 되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ㅠㅠ ㅎㅎ 다들 좀 덥고 그렇지만 조금씩이라고 아껴보아요~~
  • 별B612호

    물이나 전기나 펑펑~ 낭비하지 않고 아껴야한다는건 공감하지만...
    아침부터 찜통 지하철에 시달리고 도서관에서 땀 삐질삐질~ 흘리며 공부하다보면 화가나욤=3=3=3
    무슨 문제만 생기면 힘없는 국민들이 봉이니까요...ㅠ.ㅠ
  • 유이정

    짱이당!!!!! 엄청 훌륭한대여????? 여태껏 나온 성근기자님의 기사들 중에 최고라고 하면 그동안은....?ㅋㅋㅋㅋㅋ 농담이고 진짜 고퀄리티 기사네요. 우선 제목이 정말 맘에 들고요. 어려운 전력난 문제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셔서 진짜 좋았어여 ㅎㅎ 산업용 전기요금이 이렇게 싼지도 몰랐네요.. 항상 무슨 문제만 생기면 국민이 절약해야한다, 요금인상은 어쩔수 없는 방침이다 하는 것들이 민간기업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 물론 우리도 실생활 속 작은 실천들을 해야하겠지만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 제도 변경이 필요할 것 같아요!! 경제학도 민성큼 짱짱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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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성근

    정부의 정책도 바뀌어야겠지만, 기업과 일반 시민들도 계속 노력해야하는 건 당연하겠죠? 유이정 기자님도 안쓰는 전기는 OFF ^^

  • 이미선

    전기, 블랙아웃, 민간발전, ... @o@ 정말 어려운 내용을 기사로 잘 풀어내셨네요! 산업전기 요금이 지나치게 저렴하다는 것에 살짝 동의를 표합니다! 외국기업이 데이터센터를 지을 정도라니 어쩐지 좋아보이지만은 않네요 :( 올해 전력난은 더욱 똑똑하게 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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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성근

    이번 여름에도 걱정이 되지만, 그나마 중부는 장마가 지속되어서 전기수요가 그나마 예상보단 적게 유지될 것 같네용 ㅎㅎ

  • 고은혜

    오호... 전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는군요? 수업시간에 들었는데 전력난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원자력 발전소 추가 운영이랬어요. 지금 있는 것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공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구요. 결과적으로 새로 지어야겠는데 사람들은 님비를 외치며 결사반대하고 있고. 그러니 결국 한정된 전력에서 수요를 충당해야 하니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거구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인식이 다른 어떠한 재난 재해보다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참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부터 절약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도 맞는 것 같아요. 알게 모르게 펑펑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셔서 감사해요 두뇌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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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성근

    에너지 생산에는 언제나 그에 따른 대가가 있기 마련이죠. 전기의 과다사용.. 더 이상은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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