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맨스 사용설명서

짙은 우정이라고 할까? 사랑은 아니지만 깊은 남자들의 속사정일 수도 있는 ‘브로맨스(Bromance)’. 신조어까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무엇일까?
미국 영화 '토이 스토리'의 주인공 우디(왼쪽)와 버즈라이트(오른쪽) 장난감이 정면을 바라보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 두 남자 캐릭터를 통해 브로맨스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정의 농도에 대하여

‘브로맨스’는 ‘브라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의 합성어다. 2명의 남성이 가지는 친밀함을 표현할 때 쓰는 신조어다. 통상적으로 여자들의 우정은 친밀하다. 친한 친구끼리 손을 잡고 걷거나 팔짱을 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남자들의 우정은 그 친밀함이 과격함으로 둔갑하거나 표현을 숨기기도 한다. 남자들끼리는 조금 ‘남사스럽다’고 느끼는 관습적인 고정관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출연자 대기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장수 아이돌’ 그룹 신화의 모습. KBS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의 공식 의상인 파란색 찜질복을 입고 친밀감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최장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컴백한 가수 신화를 예로 들면, 브로맨스의 의미를 좀 더 자연스럽게 해석할 수 있다. 시간이 쌓아 올린 정과 멤버들 사이에 형성된 돈독한 친밀감. 신화 멤버들은 방송에서도 자연스럽게 애정을 표현하거나 낯간지러운 행동, 말들로 그 변하지 않은 우정을 보여줬다. ‘최장수 아이돌’의 수식어를 성립하게 한 그들만의 우정은 평소에 고정관념처럼 생각했던 관례를 깼다

행동과 표현의 양식에 따라서 ‘브로맨스’라고 호명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해롤드와 쿠마>는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두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간다. 두 남성의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영화 ‘덤 앤 더머’가 시초였을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두 남자의 우정과 그 농도가 표현된 예이다.

최근 ‘브로맨스’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영화와 드라마, 방송가 등에서 남자들의 우정이 돋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 남자들 간의 애정 어린 행각은 보기 드물었던 대중문화에서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우정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브로맨스’는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 브로맨스 했어요

KBS 드라마 '학교 2013'의 한 장면으로 극 중 두 주인공인 이종석과 김우빈이 방 안에 상을 펴고 앉아 라면을 먹고 있다. 장면은 이종석이 김우빈에게 라면을 먹여주고 있는 모습.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학교 2013’에서 고남순(이종석 분)과 박흥수(김우빈 분) 역시 브로맨스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갈등과 오해를 눈 녹이듯 녹여가며 비로소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는 캐릭터를 열연했다. 일부 시청자 사이에서는 두 사람의 ‘애정’을 논할 만큼 아주 가까운 사이로 그려졌다. 어릴 적 단짝 친구의 모습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시청자들은 이를 특별하게 여겼고 열렬히 환호했다.
본격 ‘브로맨스’가 등장한 예. 위의 사진은 영화 ‘신세계’의 한 장면으로 황정민과 이정제가 함께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래 사진은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한 장면으로 왼쪽에 송중기와 오른쪽의 유아인이 얼굴을 가까이 마주 보고 있다.
‘브로맨스’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은 건 올해 흥행한 영화 <신세계>였다. 누와르라는 무겁고 어두운 장르의 영화 속에서, 형제보다 진한 동료애를 열연한 황정민과 이정재는 브로맨스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의리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표현된 애틋하고 절실한 감정은, 기존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우정보다 진했다.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남남커플’로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한 이들도 빼놓을 수 없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유아인과 송중기다. 서로 티격태격하는 양극의 캐릭터가, 한 사람을 빼놓으면 드라마의 흐름이 깨지는, 긴밀한 역할을 연기했다. 서로의 집안 배경이 달랐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위하고 생각하는 모습은 많은 여성팬의 환호를 사기에 충분했다.
한편, ‘브로맨스’의 영향력을 인지한, 미국 ‘드라마피버 어워드’에서는 드라마 <각시탈>에서 열연한 주원과 박기웅에게 ‘베스트 브로맨스’ 상을 수여하기도 있다.

브로맨스에게도 적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을 위해 만든 ‘공식’이라는 비평도 나오고 있다. ‘브로맨스’의 정확한 정의는 사실 모호하다.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서도 다르기 때문이다. ‘여심’을 휘어잡기에 용이한 도구로 ‘브로맨스’가 연출된다는 점에서도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마케팅의 일부일 뿐이라는 해석은 생각의 여지를 주기도 한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포스터 세 장. 왼쪽부터 각각 주인공인 김수현, 박기웅, 이현우가 메인으로 있는 포스터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남성 간의 긴밀함이 단순한 우정이나 의리로만 표현되었기 때문인지, 그 통념을 깬 깊은 관계에 이목이 끌리는 것은 사실이다. 문화적으로 남성 캐릭터가 작품 속에서 연기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관객이나 시청자가 볼 수 있는 장면, 스토리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의미도 동반한다.

브로맨스가 역사로부터 기인한다는 네티즌의 재미있는 해석도 주목할 만하다. 정조와 정약용이다. 시대적 상황과 세력의 여파, 고난과 역경 속에 서로의 신임을 잃지 않고 행보를 이어나간 정조와 정약용의 관계를 ‘브로맨스’의 시초로 보는 독특한 시각이 나오기도 했다.

브로맨스 활용법

작품을 접하는 관객 혹은 독자의 관점에서 ‘브로맨스’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확실한 정의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끈끈한 우애가 느껴지는 관계,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관계, 화해와 갈등을 오가는 친구 관계 등 브로맨스의 갈래는 다양하다.
영국 아이돌 밴드, 원 디렉션 앨범 자켓 사진. 다섯 명의 멤버가 화면을 향해 모여 있는 형태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브로맨스’를 오해해선 안 된다. 다양성을 존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브로맨스’는 작품을 위한 연출일 뿐이다. 그러나, 영국 유명 아이돌 밴드 ‘원 디렉션(One direction)’은 팀 멤버간의 애정 행각을 무대에서 장난스럽게 드러내며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다. 연출이었다는 해명으로 끝난 헤프닝이었지만 보는 시각은 아직 ‘브로맨스’를 경계하는 면도 있는 것이다.

너무 심각하게 이해하려고 하면 ‘브로맨스’는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로 치솟을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며, 그들만의 끈끈하고 각별한 우정이라고 생각하면 또 별문제가 될 것은 없다.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면 어떨까. ‘브로맨스’라는 새로운 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어쩌면 이미 있었던 관계, 감정이었으므로 특별히 달라지게 보이거나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결국엔,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가는 일부일 뿐이다. 혼자가 아닌 둘일 때 더 값지고 빛나는 감정에 대해서, 두 남성이 알게 모르게 만들어가는 ‘브로맨스’를 앞으론 더 새롭게 주목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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