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 대한 초록 눈의 연애들 part.2

국가와 국가를 잇고, 사상과 사상을 연결하는 일. 한글로부터 태생한 이들의 가교 역할은 세계 평화의 핵심축에 있다. 한국인이란 자긍심까지 돈독하게 하는, 두 체코 교수의 명징한 한글 사랑 이야기.

동양 사상에 심취한 서양 선비

한국학을 공부하다가 같은 한국학 전공자인 아내를 만났고 한국학을 공부하며 행복한 삶을 얻은 이 사람. 동양인보다 더 동양적인 사상을 가진 초록 눈동자의 주인공, 체코 찰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토마스 호락이다. 인터뷰 내내 ‘물 흐르듯이’, ‘욕심을 버리면’, ‘어쩌다 보니까’ 등 으레 스님 같던 그의 동양 사상에 대한 관심은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리학을 전공하려던 고등학생 호락은 우연히 접한 동양 사상에 심취하고, 운명적으로 한국학에 도전하게 되었다. 자신의 내면 사상과 딱 맞는 한국학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앞으로도 한국과 함께할 계획이다.

불교, 도교와 같은 동양사상이 제겐 너무도 매력적이었죠. 하지만 중국은 공산권국가이기 때문에 불교와 도교 사상이 억압을 받지 않을까 우려했고, 한국과 일본 중엔 한국에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고등학생 때 북한 사람에게 배운 태권도 정신도 한국에 끌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거리상으로도 먼 나라, 마음도 가깝지 않은 나라 체코에서 생경한 한국학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 주변 가족과 지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반응을 보였을 것 같다. 게다가 한국과 관련한 자료를 얻기도 쉽지 않았을 터, 쉽지 않은 길을 택한 그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가족과 지인 모두 제가 진로를 결정하는데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한국학과 1학기를 마친 후 집에 갔더니 아버지께서 전공이 뭐냐고 물어보시던데요? 지금은 아마 아시겠죠?(웃음) 지인들은 종종 ‘왜 하필 한국이야?’라고 물어보긴 하죠. 전 그때마다 ‘내가 하고 싶어서’라고 답합니다. 물론 한국학을 배우기는 쉽지 않았어요. 외국어는 빨리 배울수록 좋은데 전 18세가 되어서야 ‘가나다라’를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열심히 연구하다가 한국학의 매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요.

그는 지난 1994년 21세 때 처음 한국을 방문했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9개월간 한국학을 배웠다. 10번도 넘게 방문한 한국은 그의 제2의 고향이 아닐 수 없을 터, 제주도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웬만한 곳은 다 돌아봤지만, 여전히 급변하고 사람 많고 소란스러운 서울에서는 적응하기 힘들다고 했다. 자연과 함께 유유자적하고 싶은 조선 시대 선비처럼.

한국학이 이어준 20대 시절의 내 가족

그가 20대로 돌아갔을 때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흥미진진한 대답을 기다릴 찰나, 그는 물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없습니다.”라면서.

해보고 싶은 일은 다 해본 것 같아요. 연애도, 운동도, 취미도, 공부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20대에 미련도, 후회도 없습니다. 사실 대학 시절 친구가 많지 않아요. 한국처럼 동아리나 서클 활동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끼리만 알고 지내거든요. 그런데 아는 사람도 적은 상황에서 제 아내도 만나게 되었으니, 20대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같은 한국학을 전공한 아내는 학문에 집중할 수 없었다. 3세까지는 아이를 직접 키우는 체코의 문화 특성상 3명의 자식을 3세까지 키우는데 10년을 바쳤기 때문이다. 아내가 10년의 공백을 극복하고 복귀하기까지 힘든 과정이었지만, 최근엔 용기를 내어 외부강사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2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키운다며 ‘딸바보’를 인증한 호락 교수는 최근 딸이 한국드라마에 빠져서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가끔 집에서 아내를 ‘여보’라고 부르기도 해요. 둘 다 한국학을 전공했기에 가능한 농담이죠. 아이들에게 한국학을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미리 할 필요는 없잖아요. 놀고 싶으면 놀고, 책 읽고 싶으면 책 읽고.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간첩, 대놓고 한국 전문가

호락 교수는 삼국시대부터 근현대시대까지 이르는 유구한 역사와 시, 소설, 시조 등 다양한 방면의 문학은 물론 현재 한국의 이슈까지 두루두루 알고 있는 한국 전문가다.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사건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체코에서는 호락 교수에게 자문한다. 또한 대통령이나 장관, 정치인 등 고위급 인사의 통역과 미팅을 통해서 한국에 대한 지식을 더욱 넓힐 수 있다고 한다.

전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제 견해를 표출하기보다 개괄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정도입니다. 천안함, 연평도 포격 사건도 마찬가지죠. 작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 사과 요구를 했잖아요? 물론 한국을 응원하고 싶지만, 특정 견해를 가질 수는 없어요. 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유감입니다.

호락 교수는 국내외 굵직굵직한 사항 외에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사회적 문제를 조금 거리를 두고 제 3자 입장에서 볼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지는데, 안타까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발전을 거듭해 아주 부유해졌죠. 그런데 예전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제가 우연히 70년대 사진을 봤는데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었어요. 그땐 가난했지만, 차라리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려서부터 경쟁을 강요 받고, 대학생들은 직업을 구하고 먹고 살 걱정을 하기 바쁘죠.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결론적으로 한국 사회에는 여유가 부족한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욕심과 강요로 이어지고, 아이들은 곧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이는 결국 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청소년 자살문제로 돌출되고 있다는 안타까움 역시 전했다. 남들이 한다고 따라가는 삶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욕심을 버리면 좀 더 행복한 한국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호락 교수. 그는 한국학 교수이기 이전에 한국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착한 사람이면 누구나’라고 답한다. 경쟁과 걱정으로 뒤덮인 한국사회가 배울 점이 많은 리더임이 틀림없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많이 공부하고 생각하고 더욱 한국적인 마음을 품은 호락 교수는 체코와 한국의 연결고리인 동시에 행복전도사였다. 체코인으로부터 배운 한국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한국보다 훨씬 더 멋진 곳일 것이다. 훗날 호락 교수가 바라본 한국은 ‘행복한 나라’이기를 바라본다.

호락 교수의 행복 사전 3계명

양심을 지키는 선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봐요.

나의 행복은 중요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1. 걱정과 근심하기보다는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아갈 때
2. 무조건적인 경쟁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품을 때
3. 승리에 대한 집착과 욕심보다는 패자에 대한 배려를 먼저 생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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