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 대한 초록 눈의 연애들 part.1

국가와 국가를 잇고, 사상과 사상을 연결하는 일. 한글로부터 태생한 이들의 가교 역할은 세계 평화의 핵심축에 있다. 한국인이란 자긍심까지 돈독하게 하는, 두 체코 교수의 명징한 한글 사랑 이야기.

60여 년,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잘 아는 체코인

네, 제가 푸체크입니다.


그와 주고받은 몇 통의 이메일. 프라하의 까를대학교에서 진행하기로 정한 인터뷰 전날, 영어 회화를 되뇌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안고 확인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몇 번의 통화연결음 이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어! 어눌한 듯 구수한 음성이었다. 그건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의 느낌과 흡사했다.

블라디미르 푸체크 교수는 체코의 명문대학 까를대학교의 한국학과 교수다. 지난 2011년 한글 발전과 한국어 보급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청와대에서 수여하는 한글 발전 유공자 훈장을 받은 그는 1950년 창설된 까를대학교의 한국학과에서 1966년부터 한국어를 가르쳤다. 1972년부터 2004년까지는 한국학과 학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1952년부터 2013년에 이르는 지금까지 무려 60년이 넘는 세월을 한국어 연구에 바친 블라디미르 푸체크 교수. 한국어를 이리도 오래 사용하고 연구했으니, 반갑고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는데, 5학기를 보내던 22세에 처음으로 북한을 가게 되었어요. 체코의 보건복지부에서 청진에 있는 체코슬로바키아 적십자로 언어 유학을 보내주었는데, 1955년 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북한에 머물렀어요. 제가 있던 곳은 함경북도의 도청 병원으로 그곳에 머무는 동안 많은 한국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면서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서 습득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죠. 그것이 제 첫 한국 방문이었고, 더 깊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 전쟁의 가슴 아픈 현실을 느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죠.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학업을 마친 그는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무역 부서Czechoslovakia Trade Department와 평양에 있는 체코대사관에서 일했다. 당시 체코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문학이나 역사서가 거의 없었는데, 많은 체코의 동양학 교수들이 한국어 번역에 대해 유념하고 있던 터였다. 졸업 논문으로 한국의 신경파 문학에 대해서 쓸 정도로 한국 문학에 큰 흥미를 가진 그는 1961년 신경향파의 대표 작가 최서해의 <혈흔>을 번역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학술 진흥재단과 한글학회의 지원으로 나도향, 김동인, 황순원 등의 다양한 단편 문학과 고전문학, 심지어 ‘흥부와 놀부’와 같은 34편의 한국의 동화들을 번역하기도 한 그는 수십 여권의 한국문학 번역집과 저술집을 냈다. 그가 제일 애착을 둔 번역본은 김만중의 <사씨 남정기>라고 했다. 1964년에 번역한 이 책은 2004년에 2쇄를 찍었다.

애정이라는 씨줄, 열정이라는 날줄


수많은 한국의 문학을 번역하고 많은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그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인 ‘한국어’라는 숲 속을 걸어왔다. 그가 오랜 시간 한국어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분명 어려움도 겪었을 것이다.

한국어와 체코어는 유형과 문법 구조에서 많은 차이가 있어요. 기본적으로 체코어는 굴절어이고 한국어는 교착어이기 때문이죠. 어순도 체코는 ‘주어-서술어-목적어’ 순이고, 한국어는 ‘주어-목적어-서술어’예요. 한국의 풍부한 존칭과 높임말도 역시 체코와 다른 언어 체계이기 때문에 충분한 공부가 필요해요. 한국어를 공부하는 체코 학생들 또한 한국의 다양한 어미들을 학습하느라 어려움을 겪기도 하죠.

판이한 어순부터 다양한 어미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한국어를 그토록 오래 연구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험심과 호기심이었다.

저는 어렸을 때 보이 스카웃 활동을 했었는데 여행을 떠나는 것, 알려지지 않은 곳을 가길 좋아했어요. 여름방학마다 친구들과 함께 텐트 하나만 짊어지고 슬로바키아나 다른 먼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죠.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체코어를 배우러 온 한국학생들과 이야길 나누며 다양한 대화를 나누곤 했어요.

이런 그였기에 22세 때 북한으로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에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떠날 수 있었고, 중국과 베트남의 다양한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현지의 다양한 문화와 생활양식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이런 모든 경험이 나중에 한국어를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호기심은 한국어에 관한 연구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것은 결국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을 의미한다.

애정과 열정, 인내심 없이 그토록 오랫동안 한국어를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또한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그 학문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흥미와 열의를 가지도록 고무시켜주는 것 또한 중요하죠.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해요.

그의 애정과 열정 덕분에 오랜 세월을 한국어를 연구하며 자국의 학생과 국민에게 한국을 알리게 된 것이다.

국가와 국가를 잇는, 매료된 평화의 전도

한국과 체코의 사람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의 관계를 친밀하게 잇는 다리에 조그만 벽돌을 놓을 수 있어서 전 참 행복해요.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언어에 관해서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특정한 지식을 습득한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와의 관계가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와 역사를 학습하며 그 나라의 문화를 습득하고 나아가 그 나라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호기심과 학문의 시작은 국가와 국가 사이를 이어주는 자그만 실이 되고, 이 실이 늘어나면 나라와 나라를 이어주는 견고한 다리가 된다. 튼튼한 다리가 더욱 늘어난다면 총부리를 겨누는 잔인한 전쟁 또한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자네가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가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돕는다네’

파울로 코엘료의 대표 소설 <연금술사>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한국어 연구에 평생을 바친 푸체크 교수는 자신만의 업적을 차근차근 쌓으며 자아를 실현했다. 올해 한국 나이로 81세인 그는 나이와 건강 때문에 먼 곳으로 여행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한 번 더 여행한다면, 한국에 꼭 가고 싶다고 했다. 학문적이거나 공식적인 목적이 아닌 오로지 여행 목적으로만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까를대학교 내의 역사적인 공간들을 소개했다. 푸근하고 사려 깊은 푸체크 교수와의 작별 인사 후 본 그의 뒷모습은 ‘이제 언제 다시 그를 볼 수 있을까?’라는 기약 없는 물음을 떠오르게 했다. 그와의 이번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가슴을 할퀴었지만,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가 보여준 한국어에 대한 우직한 열정과 뜨거운 순수함이 오래도록 가슴 안에 남을 것, 그리고 이는 아픈 물음에 대한 조그맣지만 명징한 대답이란 점이었다. 언젠가 인연이 닿아 그를 다시 한 번 만나게 된다면,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아닌 새파란 젊은이와 지긋한 할아버지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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