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빨간 버스> l 토닥토닥, 냉혹한 현실 속 내 삶을 응원해


연극 <빨간 버스>의 주인공 ‘세진’은 평범한 여고생이다. 하지만 그녀가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상은 그녀를 못된 여고생, ‘미혼모’라 낙인 찍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더럽힌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세상은 세진 주변에 쇠창살을 들이민다. 하지만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단지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 결실을 본 것뿐이 아니던가. 세상이 그녀에게 내린 판결에 대하여 세진은 자신의 선택이 ‘무죄’임을 당당하게 변호한다. ‘이건 아니야’란 많은 이의 외침이 있더라도, 자신에게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면서.

우리의 오만은 끝이 없어 아주 간단한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선택에 간섭할 수 없을뿐더러 자신이 내린 결정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단순한 진리 말이다. 연극 <빨간 버스>는 누구보다 자신이 행복하길 기도하는 연극이다.

연극계의 거장, 박근형 연출가의 응축된 한 수

연극 <빨간 버스>는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첫 창작극으로 한국 연극계가 가장 주목하는, 박근형 연출가가 직접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한국 연극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박근형 연출가는 예술과 삶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극’의 양식과 소극장 연극 모델을 이루어냈다. 특히, 일상의 재현을 넘어 새로운 현실을 생성하는 연출가의 독특한 감각은 금기와 모순을 의뭉스럽고 능청스럽게 표현하며,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고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박근형표 연극을 만드는 그의 행보에 <빨간 버스>는 더욱 밀도 높게 제련된 작품이다. 연극 <청춘예찬> 이후 13년 만에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 작품은 그간 뜨겁게 달아오른 응축된 감각으로 달구고 두들긴 각고의 흔적이 깃들여있다. 박근형 연출가가 끄집어낸 청소년에 대한 시선은 모순된 이미지로 출발한다. 매일 아침 학생들이 타는 상큼한 노란 버스가 사실 문이 닫힌 상태로 불타는 ‘빨간 버스’라는 것. 제목만으로도 의지에 반하는 관성처럼 학교로, 사회로 막 질주하는 무모한 버스 속에 갇힌 학생의 절규가 귀에 맴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아이를 품는다

연극 <빨간 버스>에 등장하는 ‘여고생 미혼모’의 콘셉트를 보고, 이 연극을 청소년 일탈을 다룬 그렇고 그런 이야기의 속편쯤이라 생각할 수 있다. 고등학생을 주 관객 타깃으로 삼아 ‘학생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라는 금기의 경계와 훈계식 교훈을 적당히 버무린 연극이랄까. 하지만 이 연극은 ‘여고생 미혼모’의 화두를 뛰어넘는다. 청소년 극의 경계를 넘어 금기를 들어내고 당당하게 세상과 맞선다. 미혼모인 ‘세진’이 과감히 세상과 어깨를 마주하는 과정은 오히려 관객에게 위로를 건네며, 이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한다. 세상의 무자비한 시선에 난도질당한 상태에서도, 주인공 세진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아기’의 존재는 우리가 마음 한켠에 간직한, 지키고 싶은 신념이나 절대적인 가치를 하나의 존재감으로 자리 잡게 한다. 비뚤어진 세상이 자신을 밀치더라도 끝까지 ‘너나 잘해’라고 말할 수 있는 원동력, 우리는 모두 그런 ‘아이’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

무대 뒤 배우의 성장통

연극 <빨간 버스>가 더욱 주목되는 것은 극이 담은 심연 외에 실존하는 듯한 캐릭터에도 있다. 연극의 성공 여부는 배우가 연출가의 캐릭터와 얼마나 합일점을 이루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박근형표’ 연극에서는 배우와 함께 만들어가는 캐릭터를 추구한다. 연출가가 ‘이런 캐릭터의 배우를 연기해줬으면 좋겠어.’라고 요구하기보다 그 배우가 창조한 캐릭터를 수용하는 것이다.

연극 <빨간 버스>만 보더라도, 배우에겐 완벽한 대본과 캐릭터의 이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본은 배우의 입에 더 편하게 수정되고, 캐릭터의 이름은 배우의 본명 그대로를 사용한다. 하지만 기성복을 입는 것이 아닌 자신의 신체 지수를 일일이 재고 필요한 원단을 재단하는 과정은 사실, 배우에게 무척 고된 시간이기도 하다. 요구된 바가 확실한 상태에서 캐릭터를 찾아가는 것은 한결 쉬울 수 있지만, 그것이 모호해진 상태에서는 자신으로부터 철저히 답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배우의 성장과 직결한다. 박근형 연출가의 손을 거친 윤제문, 고수희, 박해일, 김영필 등 배우의 독특한 자기 영역은 이런 고민에서 비롯된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 연극도 배우로 인해 극장 공기가 달라져야 산다.”라는 그의 말처럼 무대를 채우는 것은 오로지 배우의 몫이라고 인정한다. 배우의 존재감과 연극의 현장감을 극대화한 그는 그만큼 배우를 괴롭히지만 성장시키고, 덕분에 배우가 고대하는 연출가로 손꼽힌다.

MINI INTERVIEW
연극 <빨간버스>의 트로이카, 노란 고등학교 합창반


“이 절망적이고 답답한 꽉 막힌 세상을 지성, 미모, 유머로 무장한 세 명의 숙녀들이 음정 박자 화음의 노래로 기필코 세상을 정화시키리라!”

지성, 미모, 유머! 팀에서 자신의 역할을 소개하는 아이돌 그룹처럼, 노란 고등학교 합창반 삼총사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연극에 다양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교수와 제자, 배우와 연출가로 만난 인연이 모여 ‘박근형 빨간 버스’에 탑승한 그녀는 캐스팅 당시 연극 <빨간 버스>의 간단한 시놉시스 밖에 없었다고 한다. 완벽한 대본조차 없던 불완전한 상태였지만, 박근형 연출가는 배우들에게 보험과도 같은 존재! 이 미완의 순간은 불안이 아닌 위대한 연극의 비상을 위한 예열의 시간이었다. 노란 고등학교 삼총사의 합창에 뜨거움이 넘친다.

럽젠Q 배우의 실제 나이와 연기할 여고생의 나이가 차이가 있는데, 캐릭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 실제로 약 10년 정도의 차가 있다.

봉련(이봉련) : 여고생을 연기해야 하니깐 자연스럽게 주변의 고등학생 친구들을 관찰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 여고생의 모습을 따라 하게 되면 오히려 헤매게 되고, 이런 연기는 관객이 금방 눈치채요. 그래서 똑같이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느낌을 살려서 거듭 고민했죠. 극 중 인물의 상징성, 판타지와 실제 여고생의 모습 사이에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세진(신사랑) : 주인공 ‘세진’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요. 단지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거죠. 전 어렸을 적 사진을 자주 찾아보고, 여고 시절의 제 이미지에서 ‘세진’과의 접점을 찾았어요. 그때 제 꿈이 혁명가였거든요. 부당한 것을 참지 못했고, 모든 일에 당당했고 주체적이었죠. 한편, 임신, 미혼모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임신백과사전을 보면서 정신적, 신체적 변화와 고통을 머리로 이해했죠. 일단 최대한 조사를 했어요.

정민(김정민) : 캐릭터를 연구하면서 우선 고등학생의 모습은 이래야 한다는 정의를 내리지 않았어요. 극 중 정민은 담배도 피우고 날라리에 가까운 친구인데, 제 고등학교 시절은 무척 평범했거든요.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의 일탈을 떠올리면, 고등학교 첫 ‘야자’ 때 아무 이유 없이 가방을 들고 학교에서 나온 적이 있어요. 그냥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정말 싫었고, 뭔가는 하고 싶었는데 정작 그게 뭔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복잡한 시기였지만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싶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서 주체를 못했던 것 같아요. 전 젊은이의 뜨거운 모습이 반영되도록 노력했어요.

럽젠Q 극 중에 등장하는 ‘아이’는 절대적인 존재, 신념, 가치, 지키고 싶은 무언가 등 다의적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데, 여러분에게도 자신 속의 아이가 존재하나요?

세진(신사랑): 전 정말 뜨거웠던 시간을 지키고 싶어요. 혁명가를 꿈꾼 고등학교 시절에 전 어른이 된 줄 알았죠. 그땐 정확하게 표현할 순 없지만, 불명확하면서도 명확한 고민이나 신념이 공존했던 것 같아요. 세월이 흘러 여러 작품을 하고 누구를 만나면서 그런 뜨거움의 온도가 점점 식고 있는데, 그 당시 뜨거웠던 마음을 지키고 싶어요.

봉련(이봉련) : 저도 비슷해요. 가장 뜨거웠을 때의 온도를 잊지 않는 것이죠. 제가 뜨거워졌을 때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을 때에요. 사실 고등학교 땐 땅만 보며 걷는 소극적인 아이였죠. 하지만 사람을 조금씩 만나면서 가슴이 데워졌고, 그게 연기를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어요.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저 사람의 마음이 어떨까?’ 고민하고, 그와 나의 고민을 공유하는 과정에 끊임없이 온도가 뜨거워졌죠. 요즘은 예전처럼 들끓긴 힘들지만, 기운이 좋은 배우를 이렇게 매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있어요. 그 온도를 기억하는 거죠.

정민(김정민) : 저는 ‘동심’을 지키고 싶어요. 저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인간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행동과 사고가 상대적으로 더 필요한 ‘배우’라는 직업과 사회적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가 있어요. 어떤 문제를 나도 모르게 사회적 판단이나 편견에 매몰되어 해결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땐 ‘나도 어쩔 수 없이 사회에 길드는구나.’라는 생각이 엄습해오죠. 그럴 때마다 큰 힘이 되는 것은 ‘동심’이에요. 사회적 판단을 넘어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할 때 오히려 문제의 해결점을 찾기 쉬웠고 그렇게 해결되는 경우도 더 많았고요.


럽젠Q 연극 <빨간 버스>에 바라는 점이나 관객의 관전 포인트가 있을까요?

봉련(이봉련) : 청소년 극이라고 해서 ‘애들아 이러면 안돼, 이건 이래야 한다.’는 정형화된 교훈, 인물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 같이 만든 연극, 배우의 캐릭터 자체로서 관객에게 어필하는 연극이었으면 좋겠어요.

세진(신사랑) : 개인적으로는 관객이 제 연기를 보고 단순히 표면적인 의미보다 관객 역시 극 중 배우의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그 상황에 이입하면서 보았으면 좋겠어요. 제 대사가 일상 언어라기보다는 시적이라 그 안에 함축된 의미들이 많거든요. 일단 제 연기가 관객에게 잘 전달되어 배우가 말하려는 정서와 생각이 관객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으면 좋겠어요.

정민(김정민) : 저는 이 연극이 관객에게 많은 여지를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연극은 일종의 ‘박근형 연출가의 동화’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대사도 시적이고 상징과 은유도 굉장히 많이 포함되어 있어요. 따라서 사람들이 어떠한 것에 취해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져갈 수 있는 연극이죠. 청소년뿐만 아니라 대학생, 성인들도 이 연극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 최지원

    저도 절 응원하고싶었는데.. 힘받았습니닷!
    댓글 달기

    엄PD

    시간 되면 연극 꼭 보세요! 연극 보시면 더 힘을 받을거예요^^

소챌 스토리 더보기

우린 이렇게 한겨울을 견디곤 해

어느 통학러의 빡친 하루

‘신박한’ 효과가 실화? 한 남자가 체험해봤습니다.

[파인다이닝] 서윤후 시인, 글 쓰는 청춘을 다독이다

사회초년생의 기본예절

사진 좀 찍는다는 그들의 미러리스 카메라

배틀 로드, 샤로수길 VS 망리단길

캠퍼스별 떡슐랭 가이드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