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 사람이 보았다, 체코 인형극 <돈 지오반니Don Giovanni>

세계 최고의 공연이 집결한 체코와 오스트리아. 그곳에 성스러운 미션이 있었으니, 바로 본토 공연을 접수하라는 것! 24년간 대전과 삼척, 부여를 주 무대로 뛴 안지섭 기자는 체코 인형극을, 20년간 마산 토박이로서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최지원 기자는 오스트리아 오페라를 접수했다. 고결한 희생자인가, 촌 사람의 선구자인가? 과연 그들의 행로는?

나에게 공연은 군대에서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며 보았던 KBS < 뮤직뱅크> , MBC < 쇼! 음악중심> , < SBS 인기가요> , Mnet < 엠카운트다운> 이 전부였다. 대학생의 지갑으로는 부담스러운 뮤지컬이나 콘서트는 음악을 좋아한 나에게 가깝고도 먼 당신이었다. 문화생활 하나 없이 메마른 시골 대학생으로 살고 있던 어느 날, 체코 인형극 < 돈 지오반니> 관람이라는 특명이 내려졌다. 처음 접하는 체코의 공연 문화라니, 극의 대사나 음악 따윈 들리지 않을 게 뻔했다. 설렘보다는 걱정이 우선이었던 그때, 공연 시작과 함께 다양한 음악이 귀를 압도하고 그에 맞춘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인형의 움직임에 몰입도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렇다. 고백한다. 1막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형극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촌 사람을 대표해 관람한 < 돈 지오반니>는 숱한 감동을 선물했고, 그 선물은 앞으로 용돈 일부를 공연을 위해 할애하겠다는 부메랑으로 날아 왔다.

인형극 < 돈 지오반니Don Giovanni >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 돈 지오반니 >를 각색하여 만든 인형극이다. 1991년 초연을 시작으로 현재 3천5백여 회의 공연과 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명실상부 체코의 대표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 스토리     젊은 귀족 호색가이자 무신론자인 돈 지오반니는 사랑의 편력을 하던 중, 돈나 안나와의 사랑의 모험을 위해 저택에 침입하다가 그녀의 아버지인 기사장의 질책을 받고 결투 끝에 그를 찔러 죽인다. 그 후에도 시골 처녀 체를리나의 결혼식에서 그녀를 유혹하는 등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른다. 그는 묘지에서 기사장의 석상을 보고 만찬에 초대하였는데, 그날 밤 집으로 찾아온 석상을 보고도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마침내 수많은 죄로 인해 싸여 지옥으로 떨어진다.
| 작곡     모차르트
| 대본     로렌츠 다 폰테
| 시대     17세기
| 배경     스페인의 어느 거리 러닝 타임 2시간(인터미션 20분)
| 공연 장소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 바로가기

#1

국립 마리오네트극장 입구가 보인다. 첫 해외방문, 해외공연으로 몸과 마음은 최고조로 긴장한 상태다. 입구 옆에 배치된 수많은 팸플릿을 보다가, 반가운 글씨를 만났다. 바로 한국어 팸플릿이다. 왜일까. 나의 긴장감은 오랜만에 마주한 한국어 앞에서 한여름의 눈처럼 녹아 버렸다.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 입구에는 한국어로 된 팜플렛이 배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국과 < 돈 지오반니 > 공연과의 인연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한국과 < 돈 지오반니 >의 첫 만남은 2005년 의정부 국제음악극 축제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배려는 공연의 천국인 체코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연 중 하나인 까닭에서 비롯됐다.

#2

여느 공연장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기념품 가게와 매점을 볼 수 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마리오네트 인형, 모차르트 앨범 등 공연과 관련된 다양한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매점에서는 각종 술과 음료, 과자 등 공연 중에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를 비롯해 공연과 관련된 사진과 그림, 엽서가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다. 다양한 구경거리로 공연을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할 틈이 없다.

이곳에 모차르트 앨범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787년 모차르트는 프라하만을 위한 오페라 < 돈 지오반니 >를 작곡하였고 스타보브스께 극장에서 초연을 직접 지휘하였다. 이 공연을 통해 모차르트는 체코인에게 사랑받는 최고의 스타로 명성을 떨쳤으며, 그 역시 프라하를 사랑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모차르트하면 빈이나 잘츠부르크를 떠올리겠지만, 프라하 역시 모차르트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공연 중간에는 모차르트 퍼핏 인형의 익살스러운 지휘를 볼 수 있다. 공연에 대한 간단한 정보는 미리 알아가는 게 좋다. 남과는 다른 시선으로 공연을 더욱 즐길 수 있을 테니까.

#3

공연 시작 5분 전, 객석은 가득 찼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막이 오르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2층으로 된 공연장은 총 1백50석 정도가 마련되어 있다. 공연장 오른쪽 벽에는 모차르트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공연 시작 전, 공연장의 사소한 것을 찾아내는 잔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 공연 관계자를 통해 자세한 안내를 받거나 < 돈 지오반니 > 스토리가 담긴 팸플릿을 구매해도 좋다. 이 역시 한국어로 번역되었으니, 공연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공연장 내에서 신기한 것은, 좌석 배치가 따로 없다는 점. 오로지 먼저 앉는 사람이 자리 임자일 뿐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공연의 감동을 하고 싶다면, 누구보다 먼저 공연을 기다리는 인내심과 누구보다 빠르게 좌석을 향해 가방을 던질 수 있는 스킬이 필요하다.

#4

불이 꺼지고, 무대가 밝아온다. 모차르트가 등장해 익살스러운 지휘를 펼친 뒤 < 돈 지오반니 >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m 크기의 인형과 조종하는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 보여주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모차르트가 직접 작곡한 매혹적인 음악의 조화는 뭣도 모르는 촌 사람이 빠져들기에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다만 문제는 대사가 체코어라는 점이다.

공연을 보기 전, 반드시 < 돈 지오반니 >의 스토리를 미리 알아둘 것.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5백90코룬이라는 거금을 낭비하면서 2시간 내내 의미 없는 움직임과 우주에서 온 체코어 때문에 곤란할 수 있다. 공연의 스토리를 알고 본다면, 정교한 인형의 움직임과 아름다운 선율로 이루어진 지상 최고의 공연을 만끽할 수 있다.

#5

공연 내내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한 것은 바로 관객들의 태도였다. 삼각대를 설치한 뒤 대놓고 사진을 찍는 아저씨, 화장실을 수 차례 들락거리는 아줌마, 공연 내내 우는 아기, 그밖에 자유로이 먹고 마시며 공연을 보는 사람들.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 없이 공연은 그렇게 흘러갔다. 내가 잘못된 것인가, 이들이 잘못된 것인가?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각자의 문화이기 때문에. 덕분에 체코의 신선한 공연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공연장에 있는 모든 것이 자유롭다. 연기하는 인형도, 조종하는 사람도, 관람하는 관객도. 무대 위에선 익살스러운 애드리브가 펼쳐지고, 사소한 실수 따윈 웃어넘긴다. 관객 역시 큰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사진을 찍든 볼일을 보러 가든 모든 것이 허락된다. 체코인들은 공연을 즐기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인간의 생리적 욕구는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건가. 어찌 되었든 공연이 꼭 엄중해야 한다는 발상은 전환할 필요도 있을 듯하다.

Fin.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감동이 차올랐다. 2시간 동안 눈을 잡아둔 인형과 귀를 사로잡은 모차르트 음악은 지구 상의 어떤 언어로도 표현하기에 부족한 무언가를 가슴에 가져다주었다. 언어 외 수많은 소통을 통해 < 돈 지오반니 >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미스터리를 남기며, 프라하를 떠나는 마지막 밤 < 돈 지오반니 >를 당신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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