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데이팅 | ‘수녀’님, 그녀의 사정

Day 1 오, 신성한 이 시대 ‘수녀’님이시여

여자는 여중-여고-여대 라인이다. 그녀는 바로 ‘수녀 라인’을 걷고 있는 ‘수녀’님. 그 때문에 인맥 좀 넓혀보겠다고 닥치는 대로 미팅 자리를 해치웠다. 그러나 좋게 끝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여고 출신인 여자는 동성 친구들 앞에서 털털한 성격 덕에 인기가 많았지만, 남자 앞에서는 벙어리 삼룡이였다. 심지어 신입생 시절 때는 편의점이나 카페의 남자 아르바이트생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뻔하지 않은가. 그 여자의 심드렁한 태도 탓에 어느 미팅 자리에선 ‘미팅남’으로부터 이런 수모까지 들어야 했다. 그의 한 마디, “저기, 집에 안 들어가세요?”

Day 2 수녀원 직행인가, 소셜 데이팅인가

어느 해 3월 14일. 학교 앞에는 무슨 남자들이 그렇게 많은지. 다들 사탕 한 바구니씩 끼고 멀대같이 서 있다. ‘연애질’은 학교 말고 다른 데 가서 하라고! 여기에는 왜 오고 난리야! ‘솔로천국 커플지옥’을 나지막이 외치고 있던 찰나, 운명처럼 여자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모 캠퍼스 매거진에 대문짝만 하게 실린 한 광고, “20대 청춘인 두 남녀를 이어 드립니다.”
여자는 비웃었다. 온라인을 통해 20대 두 남녀를 이어주는 ‘소셜 데이팅’이란다. 솔직히 ‘없어’ 보였다. ‘누가 이런 걸 해?’ 하지만 여자의 시선은 광고에서 탈출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여자는 주변 친구들과 달리 혼자 쓸쓸히 봄을 맞을 자신을 떠올린다. ‘이러다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수녀원이 나의 길인가?’ 엘라스틴을 쓰지도 않은 머리를 휘휘 내젓는다. 말이 씨가 될까 봐 두려워하면서.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구나.

Day 3 타닥타닥, 연애에 다가가는 첫걸음

여자는 모니터 앞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셜 데이팅 사이트 앞이다. 일단 재미 삼아서, 프로이트의
방어 기제 중 하나인 합리화가 발동한다. 이곳에서는 매일 오후 12시 30분, 오늘의 이성 사진이 뜬다. 그러나 개인정보를 일부 공개하는 사이트라 절차가 꽤 복잡하다. 스마트폰에서는 가입이 안 되고, 홈페이지에서 직접 가입해야 한다. 여자는 사이트에 사진을 올리고, 프로필과 거주지, 소속, 성격, 취미 등을 초스피드로 적어 내려갔다. 혹시 모를 신상 보호를 위해, 사는 지역은 비공개로 처리했다.(아, 똑똑해) 이름과 휴대폰은 상대방과 연결된 후에 공개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낮이었으면 못했을 텐데, 지금은 감성이 충만한 새벽녘이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승인을 기다리는 일뿐. 연애야~ 이리 온!

Day 4 질투의 부아가 승인의 나락으로

지난 밤, 소셜 데이팅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여자. 자고 일어났더니, 후회가 군단처럼 몰려왔다.
오밤중에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신상정보가 다른 곳으로 유출되는 건 아닌지, 아는 사람이라도 보면 어쩌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에서, 승인 메시지가 날아왔다. 오그라든 손발을 억지로 펴고 있는 여자. 그만둬야겠다고 다짐하나 그런 여자의 결심을 산산조각내는 이가 있었으니, 딩동! 바로 친구의 메시지였다. 수업 끝나고 남자친구와 놀러 간다고 자랑하는 그녀를 보자, 부아가 치민다. 내가 아까 치킨 먹자고 할 때는 바쁘다더니, 그 남자친구와의 시간은 어디에서 떨어졌대? 질투는 나의 힘! 여자는 어마어마하게 거만한 자세로, 승인 버튼을 누른다.

Day 5 첫 문자, 난 한우 몇 등급인가

오후 12시 30분이다. 드르륵! 내 휴대폰에 이성의 프로필이 뜬다. 그리고 남자의 쪽지가 이미 와 있다. 여자는 열어 볼까 말까 심히 고민한다. 사진상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일단 OK 클릭! “안녕하세요” 그의 문자다. 여자는 설레면서도 무서우면서도, 대차게 학교와 거주지 등 간단한 통성명을 건넸다. 글로 전해져 오는 이 어색함을 어찌할꼬. 남자는 자신의 학교도 같은 호선에 있다며, 나름 공감대를 끌어 내보고자 생난리다. 여자는 신기하기도 하다. 이렇게 사람을 만날 수 있다니! 오, 나의 성스러웠던 지난날은 안녕! 그런데 남자의 질문이 좀 요상하다. 다른 사진은 없느냐는 둥, 성형한 적 있느냐는 둥 사생활 침해의 레드카드를 보이고 싶을 정도로 꼬치꼬치 캐묻는다. 음, 뭐 자신에게 자신감이 엄청난 사람인가 보지. 음, 날 한우등급 내기는 건 아니지?

Day 6 수녀에겐 범죄 사실이 있으니∙∙∙

“지금 뭐하세요?” 그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어제 노골적인 그의 질문에 살짝 불쾌하긴 했지만, 여자는 그래도 재밌다. 벌써 연애하는 기분이 샘솟는다. 동성 친구들에게는 소개팅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냐, 어떻게 하게 됐냐, 멀더 수준의 날카로운 질문이 여자를 불편하게 한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둘러대니, 왠지 범죄라도 저지른 기분이다. 여자의 연애사를 들은 지 오래인 친구들은 드디어 수녀원에서 탈출한 여자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여자, 왠지 진땀이 난다.

Day 7 누, 누구세요? 어디 갔어? 외마디 외침

만나기로 한 당일이다. 만나는 날을 뒤로 미룰까 싶다가도, 얼른 해치우자는 심경이다. 멋을 좀 부려봤다. 신발장에 고이 모셔놓은 구두님을 꺼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홍대 역. 집에서 1시간가량 걸려서 왔다. 오후 5시 50분. 그를 만나기 전 10분 전, 여자는 이미 장소에 도착했다. 생판 모르는 남자와의 만남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20분 후, 10분 가량 늦은 한 남자가 계단 위로 올라온다. 사진상의 그와 비슷한 그가 참 현실에서 도피하게 만든다. 닮은꼴 연예인보다 더 심하다. 설마 저 사람이겠어?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만세 삼창처럼 속으로 외치는 순간, 그가 전화기를 든다. 그리고 이내 여자의 휴대폰은 어김없이 울린다. 뜨악. 천천히 그가 다가온다. “OO 씨세요?” 여자는 눈빛으로 묻는다. 누, 누구세요? 사진에 있던 분, 대체 어디 갔어? 어디 갔어?!

그날 이후 ‘만나서 영화 보자.’는 그의 말에, 여자는 잠적을 결심한다. 이제 와서 여자는 말한다. 그 날의 기억만 떠올리면, 자다가도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할 것 같다고. 역시 사람은 밝은 데서 만나야 해! 하하하. 우리 서로 각각 양지에서 만나자. 부탁이 있어. 혹시 길가다가 마주쳐도 그냥 지나쳐줘. 나도 너 모른 척해 줄게. 우리 서로 좋게, 좋게 갑시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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