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만든 인문학의 새로운 빛

“위기다!” 지난해 여기저기 매체와 대자보를 물들였던 섬뜩한 표현의 주인공, 바로 인문학이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거친 땅에서 피어난 한 줄기 새싹처럼 인문학은 기초학문으로의 소양, 기술과 감성의 결합, 스토리텔링 등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인문학의 봄날, 과연 올 수 있을까.


최전방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인문학 전문가,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실천해온 과학 전문가, 광고 속에 인문학을 녹여내는 광고 전문가와 대담을 나눴다. 전혀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진 그들은 놀랍게도 한결같이 인문학의 중요성에 입을 모았는데••• 인문학은 기나긴 겨울을 깨고 희망의 빛을 꿈틀 수 있을까?

사진 전경미/제16기 학생 기자(중앙대학교 국문학과), 한종혁/제16기 학생 기자(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과)

럽젠Q : 얼마 전 중앙대와 건국대에서 실용학문 위주로 학제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이 사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실용성은 대학 교육이 지녀야 할 기능 중의 하나에 속하죠. 또한 대학에 따라서는 철저히 실용성만을 추구하는 대학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경우 그 대학은 종합 대학(university)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전문 대학 혹은 단과 대학(college)의 길을 택했다고 보면 됩니다. 중앙대와 건국대에서 실용성을 전제로 학제 개편을 단행한 것으로 보아 전문대학으로의 길을 걸으려는 게 아닌가 싶지만, 설마 그렇겠어요. 아마 사회변화와 너무 동떨어진 것을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경영자의 생각이 학제 개편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대학이 너무 상아탑이라는 울타리 안에 안주해 있는 것 같네요.
그 점에서 보면 인문학의 입장에서도 반성의 여지는 많습니다. 이른바 ‘학문의 순수성’이라는 이름 아래 인문학의 실천적 측면에 대한 성찰이 적었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 말입니다. 사람의 생각도, 사람 사는 세상도 변하는데 사람을 연구하는 인문학도 변하지 않을 수는 없죠. 그리고 이른 바 학문 혹은 인문학의 순수성이라는 것도 배타적인 순수성, 그 어떤 변화에도 끄떡없는 그런 순수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강요하는 획일적인 가치에 저항하는 그런 순수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그 순수성의 내용 자체도 세상 변화와 함께 변화하면서 실천적인 힘을 갖는 것이죠.

럽젠Q : ‘대학 내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꽤 오래전부터 언급됐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문학을 장려하는 모습은 두드러지지 않아 보입니다. 교수님이 생각하는 인문학 위기의 원인과 그 대안은 무엇인가요?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의 위기는 단순히 학문의 위기나 대학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실용성’이라는 단 하나의 유일한 가치관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현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인식과 가치관이 다원화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와 더불어 평면적인 사고가 아니라 입체적인 사고를 갖는 것도 필요합니다. ‘기초’라는 단어에서 건물을 연상해보면 입체적인 사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모든 건물에는 실용적인 측면이 있어요. 거실, 화장실, 강의실, 이 모든 것들이 실용성에 의해 기능을 분류해 놓은 것이죠. 하지만 그런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기초 없는 건물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죠. 기능성과 실용성만 보고 기초를 무시하는 것은 건물 전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건물이 지닌 실용적 기능과 그 기능을 받쳐주고 있는 ‘기초’는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이라는 개별적 분야의 위기가 아니라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우리 인식의 위기입니다.


럽젠Q : 인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기울여야 할 노력은 무엇일까요?

교육은 ‘국가 백년지대계’입니다. 정치 논리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중요한 게 교육입니다. 복합적이고 장기적이고 유기적인 사유를 가지고 교육 전체 문제를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학도 역시 유기적인 사유를 가져야죠. 기초학문과 실용학문, 그리고 전문학문은 서로 경쟁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그 중 어느 쪽을 중시하기 위해 다른 쪽을 희생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맺어져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관계입니다.

럽젠Q : 만약 대학에서 인문학이 사라진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리라 생각하나요?

그런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죠. 인간이 사라지지 않는 한. 혹은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는 한.

럽젠Q : 인문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요?

나는 한 마디로 그 무언가를 정의하는 데 소질이 없는데••• 글쎄요, 솔직히 말할까요? 나에게 인문학은 밥줄이다!

럽젠Q : 최근 문제되는 ‘대학 내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원인과 대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근본적인 인문학의 위기는 변화하는 사회에 인문학이 너무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너무 둔감했다고나 할까요? 그런 점은 스스로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대안을 생각하자면, 인문학이 원래 어디에서 출발했는가를 잘 떠올려봐야 하죠. 옛날 중세시대에는 인문학이 굉장히 실용적인 학문이었어요. 신학이 얼마나 돈이 되는 학문이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동양도 마찬가지고요. 조선 시대를 떠올리면 인문학은 과거 급제의 필수 요소이자 입신양명의 기본 척도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인문학이 과거의 것을 그대로 고집하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인문학자들도 스스로 개혁과 변화를 이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럽젠Q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인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정부가 국가의 운용을 위해 돈벌이가 되는 분야에 지원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인문학에 대한 최소한의 불꽃을 꺼뜨려서는 안돼요. 인문학에 대한 일정부분의 재원을 마련해서 훌륭한 인문학자들의 명맥을 이어나가게 해야지 않겠어요? 대학 또한 너무 돈벌이에만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대학도 잘 나가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겠지만, 대학이 학문의 마지막 수호자 역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학이 학문의 마지막 수호자 역할을 포기하면 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학생들의 측면을 살펴보자면, 사회에서 인기 있는 분야를 택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자신이 선택한 분야를 더 잘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적 소양을 높일 필요가 있어요. 인문학은 기본소양으로서 갖추어야 할 요소라는 것을 기억해야죠.

럽젠Q : 교수님께서는 학문 간 ‘통섭’의 개념을 이야기해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인문학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측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최근 과학 분야의 기업체에서도 인문학적인 상상력을 원하고 있습니다. 과학을 다루는 사람들의 아이디어만으로는 새로운 생각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인문학이나 예술과 같은,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상상력을 갈수록 원하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공학자나 엔지니어들도 인문학적인 소양을 키울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진정한 리더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럽젠Q :포항공대에서의 과학-인문학의 컨버전스(융합) 현황은 어떠합니까?

포스텍에서는 인문학에 대한 교육을 두 배로 늘리고 교수진도 대폭 강화하고 있어요. 전반적으로는 과학사, 과학철학 등의 강의를 주로 하고 있고요. 또 포스텍과 한예종이 과목 교류를 하는 신선한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과학의 산책’, ‘예술의 산책’이란 수업을 통해 예술 분야의 학생에게는 과학 수업을, 과학 분야의 학생에게는 예술 수업을 들을 기회를 제공하죠. 과학의 창의성과 예술의 창의성은 통하는 부분이 많아요. 앤디 워홀, 백남준 같은 아티스트가 도구나 장비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은 과학적 지식과도 상통하는 것입니다.


럽젠Q :만약 대학에서 인문학이 사라진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까요?

만약 인문학이 도태되고 사회가 요구하는, 흔히 ‘잘 나가는’ 분야만 키웠다고 가정해 봅시다. 잘 나가는 사람만 모아 놨다고 해도 그 사회 안에서 반드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때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열쇠로 인문학이 다시 등장하지 않을까요? 마치 바리데기 설화처럼, 버린 자식에게서 오히려 구원을 얻는 경우가 생길지도 몰라요. 그들이 버린 학문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시대 말이에요.

럽젠Q : 인문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요?

인문학은 가장 오래된 학문 그 자체입니다. 모든 학문의 기본이에요. 그러나 좋은 것은 다들 파생되어 나갔기 때문에, 집 지키는 사람 꼴이 되어 있는 것이죠. 잘나가는 것은 다들 나가서 새집을 만들었는데 못 떠나는 사람만 남아서 없는 살림을 꾸려 나가는 꼴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원래 모든 학문은 전부 인문학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말이에요.

럽젠Q : 얼마 전 중앙대와 건국대에서 실용학문 위주로 학제개편을 단행했는데, 인문학의 존재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인문학이 필요하냐는 질문은 바보 같은 질문인 것 같아요. 마치 공기가 필요하냐의 질문과 같을 수 있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제 생각에는 대학에서 꼭 공부해야 할 게 인문학이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하면 더 좋고요. 프랑스는 인문학 점수를 따야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데, 그만큼 굉장히 중요하다는 이야기거든요. 실제 업으로 이어지는 음악, 미술, 광고, 건축, 공학에서 전문지식을 배우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대가가 되거나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인문학이 반드시 필요해요. 결국 Good과 Great의 차이인데 Good에서 Great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문학이에요. 그래서 실용주의 학제개편보다는 대학에서 전문지식과 더불어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죠. 사람이 양약과 한약 모두 필요한데 인문학은 즉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한약 같은 것이죠.

럽젠Q : 창의적인 광고를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데, 광고 분야의 스토리텔링과 인문학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학자는 아니지만, 저는 인문학이 사람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근거했을 때 광고도 같은 일이죠. 과거의 판매자 중심 시대에는 물건을 단순히 자랑하는 것이 광고였어요. 하지만, 시대가 성숙해지면서 소비자, 브랜드 중심이 되자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기능 외에 스토리로서 차별화를 두고 있어요. 결국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사는 시대라고 할 수 있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의 기법이 강조되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검증된 방법이 스토리입니다. 결국 이 스토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인문학적 지식이 있어야죠. 북부의 전설, 단군신화, 박경리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같은 인류의 재능아들이 펼쳤던 이야기, 즉 문학을 알아야 해요. 또 사람의 마음을 읽는 철학이 필요해요. 한 아주머니가 과일을 떨어뜨린 것을 줍고, 꼬마가 넘어진 것을 일으켜주는 장면을 보여줬던 ‘사람을 향합니다.’란 광고는 우리는 사람이 착하다는 걸 믿는 걸 의미해요. 그것은 결국 철학에서 말하는 성선설이죠. 결국 광고에도 인문학적 요소가 존재합니다.


럽젠Q : 그리 중요한 인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앞으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분야로는 컨텐츠 분야입니다. 컨텐츠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그래서 인문학이 중요하고 국가적으로 길러야 해요. 시나리오, 스토리 메이킹 전문가가 필요하죠. 대학에서는 어떤 과를 가더라도 필수적으로 1, 2학년 때는 인문학을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공학을 하는 사람도 인문학이 필요해요. 단순히 못만 잘 박으면 되는 공학자가 아니라 질문하고 사유할 줄 알아야 합니다.

럽젠Q : 만약 대학에서 인문학이 사라진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문학이 사라지는 순간, 저 세상이 되는 거죠. 디스토피아 영화처럼 뇌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가득한 세상이 된다고 생각해요. 생각을 하지 않는•••

럽젠Q : 인문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요?

계속해야 되는 것, 쭉 해야 하는 것•••. 음, 질문이 사람을 존재하게 한다고 생각해요. 불안정에 대한 허기가 질문을 만들어내고, 질문은 생각하는 고통을 가지고 오죠. 그래서 인문학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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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그것을 응용한 컨텐츠의 전쟁인가요
    곧 인문학의 붐이 다시 일어나길 ...! 좋은 기사 입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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