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여우비┃비현실에서 나온 현실의 위안

뮤지컬 <여우비>는 현실을 지워버린 채 현실을 위로하고 있었다.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인 그들


뮤지컬 <여우비>는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그들은 저마다 한국의 불안한 젊음을 대변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나광년과 이름 없는 배우 서대협, 작가 김우진, 그리고 디자이너 어시스턴트 강민경까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지 않은, 소위 비정규직인 이들. 한없이 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그들이지만, 이들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공무원 준비생인 나광년은 시종일관 옆집으로 건너가 놀기 바쁘다. 다른 인물 역시 별다른 현실감 없이 그저 밝고 긍정적으로 일상을 영위해나간다. 현실적인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채 그저 긍정적인 이들은 다소 대책 없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들의 상황이 캐릭터 속에 녹아있다기보다 단순한 소품으로 다뤄진 것으로 보인다.

한없이 동화적인 사랑 이야기

우진과 민경은 오래된 연인으로, 뮤지컬 <여우비>는 주로 이들의 사랑을 주축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굳건해 보이는 그들의 사랑에 난관이 등장하는데, 바로 ‘불치병’이다. 소재의 진부함을 차치하고서라도, 보통 남자로서는 도대체 왜 우진이 이 병을 숨기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민경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지만, 그가 하는 거짓말이 그녀에게 훨씬 더 큰 상처가 되는 듯했다. 둘의 관계를 보는 내내, 연애하면서 겪게 되는 진실과 배려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대협과 광년 커플의 이야기는 유쾌해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둘의 관계가 설득력 있던 것은 가볍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도 고명처럼 현실적인 사랑의 난관이 다뤄졌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배우들의 호연(특히 나광년 역을 맡은 김보라)이 돋보였다.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된다.

무조건적이고 진실한 사랑은 참 아름답지만, 동시에 무척 어렵다. 일상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겐 현실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조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감정 하나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던져버리기엔 너무 커버린 ‘보통 사람’에겐 이 뮤지컬은 다소 비현실적인 동화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뮤지컬 <여우비>가 의미 있는 이유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처한 주인공이 진실한 사랑을 통해 그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며, 이것이 곧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한없이 천진하고 비현실적일 만큼 긍정적이었던 이들이 역설적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부분을 대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랑과 사람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이라는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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