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화┃꽃으로 말하는 남자

화려한 꽃 대신 친근한 들꽃이 박스와 냅킨, 포장지와 같은 일상적인 소재에 수채화로 물들여져 있다. 길가에 핀 것처럼 수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 그 주인공은 장애를 가진 초로의 노인, 안동화 작가였다. 믿을 수 없었다.

고요와 소란이 공존하는 작업실

세련된 카페란 인상이 짙었다. 그의 복층 공간은 그와 딸 안혜성의 공동 작업실 겸 주거지로, 하얀 외벽에 창문이 많아 전체가 밝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원목 재질의 검소한 가구를 보자, 묘한 기시감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 아를르에 있는 고흐의 방이었다. 고흐의 방에 파스텔톤 커튼을 달고 넓은 창을 내면 그의 집이 되리라 생각했다.
공황장애가 있는 그를 배려해 조심스럽게 발을 들이자, 고즈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런데 고요한 평화도 잠시, 이내 다섯 마리나 되는 고양이들이 우당탕 몰려와 집안을 난장판으로 어지르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한두 마리 거둬오던 유기묘들이 어느새 다섯 마리에 이르게 되었던 것. 동반자이기도 한 부녀는 모두 동물 애호가이며, 안혜성 작가는 동물자유연대에 속해 있기도 하다.
고양이 중 한 마리가 그림 그리는 안동화 작가의 무릎에 사뿐히 앉았다.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구출해왔다는 ‘준’이라는 회색 고양이는 유달리 그를 따른다. 낯선 사람의 등장에 표정이 굳었던 그도, ‘준’을 보자 이내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말없이 고양이를 쓰다듬던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얀 도화지에는 그의 미소를 닮은 수수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그림으로 말하고, 그림은 그를 숨쉬게 한다

‘동화’라는 세련된 이름은 부친의 벗이었던 춘원 이광수 선생이 직접 지어주었다. 안동화 작가의 부친은 당대의 앞서가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언어장애가 있는 아들의 미술적 재능을 발견한 뒤 프로 작가의 화실에 아들을 문하생으로 보냈다. 결국 안동화 작가는 정규적인 교육과정을 밟는 대신 그림을 그리며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먼저 깨우치게 되었다. 그의 삶이 그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남들이 말할 때 그는 붓을 들며, 남들이 들을 때 그는 그저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의 그림이 한없이 투명하고 진실한 건, 어쩌면 가감없는 그의 인식방법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그림은 숙명과 같은 것이기도 했다. 26세에 결혼해 두 명의 자녀와 가족을 꾸린 그는 만 3년 만에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장애가 있음에도, 그는 가계를 이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야만 했다. 장애를 이유로, 사람들은 그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인격적인 모독을 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세파에 시달리던 당시에도, 안동화 작가는 일기를 쓰듯 매일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그림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이며, 일상의 기록이고, 삶의 이유였다.

꽃은 자유이며, 치유다

과거에 아버지는 유화 물감을 사용해 굉장히 어두운 추상화를 그렸습니다. 일상의 상처가 고스란히 그림에 묻어나는 것 같아 그림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어요.

안동화 작가의 당시 화풍을 설명하며, 딸 안혜성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꽃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5년경 부터다. 자식들의 권고로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그는 수채화 붓을 들었다. 그리고 무섭게 꽃을 그려나갔다. 작업실이 있는 북촌 일대의 화단이나 길가에 핀 야생화를 샅샅이 관찰하고 그리면서, 마음에 있던 앙금 역시 조금씩 해소됐다.

아버지가 꽃을 그리는 것은 내면을 치유하는 과정이나 다름 없습니다. 꽃 그림을 그리며 아버지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버지의 꽃 그림을 보는 사람 역시도 그림을 통해 위로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안동화 작가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를 묻자 ‘처음으로 그림이 팔렸을 때’를 꼽았다. 단 한번도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했던 그가 그토록 바라던 ‘경제적 독립’을 꽃 그림을 통해 이뤄낸 것이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그의 꽃 그림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건, 상처를 보듬는 순수함이 그림 속에 담뿍 담겨있기 때문 아닐까? 그림을 통해 부단히 시도했던 안동화 작가의 ‘세상에 말 걸기’가 비로소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 같다. 상처의 치유라는 위대한 결실을.

Profile

1939년 9월 9일생
2008년 9월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칠순 기념 첫 번째 개인전 개최
원서동의 동네커피 등 북촌의 카페 및 갤러리에서 5회 개인전 개최
2011년 파리와 도쿄에서 개인전 개최 예정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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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영

    네??? 황기자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ㅋ 실생활에서처럼 리플에서도 이해되지 않는 드립을.....ㅋ
  • 황태진

    상영님 직접 집에 찾아가셨다고 하더니 아아 선물은 받지 않으셨나요 !!!
  • 박상영

    @이소연 기자, 소연 기자도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찾으셨으면 좋겠네요. 예를들면 뒷담화?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박상영

    @토마토링 정말 감탄을 자아내는 작가님이죠, 인터뷰하는 저도 감동했답니다.
  • 이소연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작가님이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 ^^
  • 우.와.
    이말밖에 안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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