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시리아를, 우리를, 희미한 옛사랑을


4 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중

불이 뜨겁다는 것을 알면서도 날아들 수밖에 없는 불나방처럼 제 몸이 바스러질 것을 알면서도 평화를 위해 횃불을 들게 되는 것이 억압 속 자유를 꿈꾸는 인간의 본성일까.
평화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희망보다 묵직함이 먼저 느껴지는 단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어딘가에서는 총소리가 들리고 피로 흥건히 젖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억압에 대한 투쟁의 역사가 세계 근 현대사의 오롯한 단면이란 것, 그리고 그 현대가 바로 오늘날이라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투쟁 중이라는 의미다.

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는 시리아의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고발 극이다. 연출가 오마르 아부 사다가 현 시리아 정권, 아사드 부자의 통제국가에 대해 고발하기 위해 마련한 것임이 분명한 이 극은 그가 실제로 시리아 정부의 통제 아래 불법 구금을 당했을 때 만났던 수많은 수감자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극은 정부의 불법 구금에 구류되었던 시위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이 ‘당했던’ 정부의 억압, 비인권적 태도에 대해 낱낱이 진술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아마추어 영화감독으로 수감자의 증언을 담아 다큐멘터리 작품을 만드는 ‘노라’는 다소 시니컬한 태도로 진술자를 대하는 것 같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때 묻지 않은 신념이 자리 잡아간다.

묵직함보다는 가벼움이 각광받는 요즘, 연극은 가볍지 않은 정치란 주제를 다루며 마치 ‘묵직함을 봐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 듯하다. 얼마 전 큰 대선을 치르고 20년 전에는 이보다 더 큰 정치적 투쟁이 있었던 우리나라에서 이 연극이 남다른 의미인 것은 틀림없다. 시리아의 현재 통제 정부의 모습이 그 어느 날 우리나라 정부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 자체를 연극이란 허구의 틀로 대체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리아 현 정부의 행태를 직설적으로 배우의 입을 통해 말함으로써 연극은 그 어떤 장치보다 확실하게 정부를 비판하고 고발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불편하다. 국가 기제 속에 있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미 국가의 통제 기제 속에 스며들어 있고 본능적으로 투쟁사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결국 이 불편함이란 극 속과 시리아의 현실에서처럼 억압하는 정부 권력에 대항하는 시위자, 그리고 똑같이 그 억압 속에서 살지만 혁명을 꿈꾸는 시위자를 신고하는 시민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원형의 판옵티콘 세상에서는 수감자가 같은 수감자를, 시민이 시민을 감시할 수밖에 없다. 통제의 극점 단계라고 할 수 있는 판옵티콘의 통제구도는 주변의 이웃, 가족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도록 구석으로 밀어 넣는다. 이것으로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고 자기 스스로 감시하면서 이 통제 기제는 권력층이 의도한 대로 작동하게 된다.
이런 판옵티콘 세상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권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연극은 ‘보여 주기’보다 ‘말하기’ 방식을 통해 긴 호흡으로 끌어가지만 너무나 직접 ‘말하기’ 때문에(실제 수감자의 진술이라니!) 과거 우리 사회의 투쟁사를 모르지 않음에도 가슴 속 깊숙이 들어오지 않고 감동이 반감되면서 오히려 또 다른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투쟁사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시위자, 혁명가에 대한 권력층의 비인격적 태도를 고발함으로써 권력을 가진 세력의 악랄함을 고발하는 행위는 던져주지만, 너무도 보편적인 투쟁사의 단면만을 말해주기에 시리아 특유의 정치적 상황은 관객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그저 세계의 수많은 투쟁사 중 하나로 남고 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말하기’ 방식 장치는 제목이 <카메라를 봐주겠습니까?>임에도 불구하고, 불법 구류를 당했던 수감자가 겪었던 감옥 안에서 일어났던 비인격적 대우에 대해 낱낱이 고발해 줄지언정, 정작 시리아를 지배하는 커다란 전체 권력의 힘을 그려내지는 못한다. 그로 인해 우리(4.19 혁명을 겪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은 한국 사람)에게 수감자가 하는 진술은 우리가 이미 겪었던 아픈 감정의 실체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순간, 이 연극이 가지고 있던 시리아라는 특수한 장치는 소멸해버리고 진부함만이 남는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는 것은 상당히 노골적이며 다분히 의도적인 미장센이다. 카메라를 봐달라고 하는 것(연극에서 배우들의 시선은 카메라 정면을 향한다)은 주목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시리아 정치 상황에 대한 노골적인 관심 촉구임에도 그런 시선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별똥별을 언제 보고 보지 못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우리에게 이 연극은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이고 ‘희미한 옛사랑’이다. 잊고 있었던, 혹은 체감하지 못했던 옛사랑의 기억을 짚어주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관련 도서 _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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