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염쟁이 유씨>┃만일 내가 ‘염’을 당한다면?

이 모든 것은 가정으로부터 시작했다. 연극 <염쟁이 유씨> 속 유씨로부터 내가 ‘염’을 당한다면?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

연극 <염쟁이 유씨>의 찬란한 브리핑
유씨는 평생을 염을 하며 살아온 ‘염쟁이’이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일생의 마지막 염을 하게 되고, 자신을 취재하러 왔던 어떤 기자에게 연락한다. 유씨는 기자에게 수시, 반함, 소렴, 대렴, 입관에 이르는 염의 절차와 의미를 설명하며, 염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염쟁이로서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폭 귀신과의 일, ‘장사치’라는 장의대행업자와의 일,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가족 이야기까지 말이다. 마지막 염을 마친 후 유씨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라.’라고 얘기하며, 연극은 끝난다.

잠이 든 것 같았는데, 누군가 내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내 몸은 탁자 위에 올라가 있었고, 이상하게도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죽은 것이다. 내 육체는 죽어 염을 당하고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채원 기자(이하 이): 왜 이렇게 저의 몸을 구석구석 주무르고 계신 거예요?

유씨(이하 유): 시체가 굳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 자아, 이제 됐다. 가만있자… 구멍을 막아야 하는데.

이: 제가 죽었는데, 왜 말하고 있죠?

유: 육체와 영혼의 죽음은 다를 수 있지. 구멍도 막았고. 그래! 사자밥을 준비해야겠다.

이: 사자밥이요? 설마 저승사자를 말하는 건가요?

유: 그래. 죽은 이의 길을 잘 위로하는 것이 염쟁이의 일 중 하나야. 잘 죽는 것이 잘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거든. 그나저나, 자네는 삶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나?

이: 네… 또렷이 기억나요.

유: 그래? 이제 소렴 과정으로 들어갈 텐데, 어디 자네 얘기나 해보게나. 자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었던 사람은 누군가?

이: 저는 어머니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23년이라는 짧은 인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서인지, 생활 습관이나 성격이나 대부분 비슷한 게 참 많아요. 그런데 커가면서 이런 닮은 모습도 싫어지고 괜히 엄마한테 짜증만 부렸던 게 가슴에 남네요. 항상 내 편이라고 생각하고, 마냥 편해서인지 투정만 부렸거든요.

유: 대부분 죽을 때 그런 말을 하곤 하지. ‘자기 부모님한테 더 잘해 드렸으면 좋았을걸.’이라고 말이야. 나도 처음부터 염쟁이가 되려던 건 아니었네. 하지만 우리 아버지가 염쟁이였고, 잠깐 도와준다는 게 평생 직업이 되어버렸지 뭐야. 아버지가 그만 쓰러지셔서, 내가 아버지를 염했거든.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몰라. 내가 아들을 낳아보니 알겠어.

이: 아… 그런데 지금 저한테 수의를 입히시는 건가요?

유: 맞아. 소렴으로 들어왔다네. 요새 사람들은 수의를 준비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지만, 마지막 삶을 준비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게야.

이: 그러면 아저씨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예요?

유: 나? 나도 역시 가족 같네. 우리 아버지께서는 항상 말씀하셨지. 좋은 삶은 좋은 죽음과 같다고. 잘 살려는 것이 다 잘 죽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이야. 지금에야 그 뜻을 알 것 같아. 그리고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은 내가 염을 했어. 그래, 나보다 먼저 갔지. 그놈이 말이야. 하지만 난 그 녀석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야. 살아남은 사람에게 잊히는 것이 진짜 죽음이지. 그나저나, 너무 내 얘기만 했군. 자네 형제는 있었나?

이: 네, 언니가 한 명 있어요.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언니와 중학교 때 주고 받은 메일을 봤는데, 정말 저렇게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나 싶어 웃음이 나더라고요. 어렸을 때에는 많이 싸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의지하게 되었어요. 언니가 없었다면, 왠지 세상에서 홀로 떨어진 외로운 느낌이 들었을 것 같아요. 언니한테 조언을 구할 때도 많았지만, 제가 챙겨줄 수 있는 부분도 많았는데, 저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을는지… 언니가 결혼하는 것도 보지 못했네요.

유: 내가 아까 뭐라고 했나? 죽음에 대해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는 것, 그거야. 자네는 그걸 했고. 자. 이제 대렴으로 옮겨가야겠군. 요새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건지 염 절차를 자꾸 간소화시키려고만 해. 원래 소렴이 끝나고 동틀 녘에 대렴을 하는 것이 맞는데, 요새는 소렴이 끝나면 바로 대렴을 하려고 하네.

이: 아, 그러면 대렴이 끝나면 입관을 하는 거죠? 아저씨와의 대화도 더는 할 수 없겠네요?

유: 관에 들어가면 그렇게 되겠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거나 묻고 싶은 게 있나?

이: 네. 사실 저는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잘 살려고만 애썼어요. 바쁘게, 욕심부리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제 주변 사람에게는 소홀했던 것 같아요. 그냥 항상 내 편일 거라고 생각했고, 특히 가족에게는 무관심으로만 일관했죠. 더 살갑게 하고 관심을 가질 걸, 제일 아쉽고 후회가 되네요.

유: 그래. 이제 그만 후회는 털어버리게나. 그래도 염을 통해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나? 염이라는 것은 죽은 사람을 잘 위로해서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마지막 길을 닦아주는 거거든. 그만큼 정성이 필요하고, 그래서 나에겐 의미 있는 일이야.

이: 유씨 아저씨 말처럼, ‘죽음’ 자체를 무서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유: 그래. 잘 사는 것이 훨씬 어려워. 잘 가게나.

이: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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