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키드>┃솔직한 악녀가 아름다워

올해 5월 내한 예정으로 들썩이는 <위키드>는 1인자인 주연보다 2인자인 조연이 빛나는 뮤지컬이다. 2인자 글린다의 매력으로 필터링 된 뮤지컬 <위키드> 살짝 맛보기.

참고 사진 _ 위키드 공식사이트(http://www.wickedthemusical.com)

<오즈의 마법사>를 기억하는지. 간단히 요약하자면, 허리케인에 휩쓸려 오즈의 나라에 가게 된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양철 로봇과 겁쟁이 사자, 허수아비와 함께 사악한 서쪽 마녀를 무찔러 마침내 착한 동쪽 마녀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뮤지컬 <위키드>는 이런 원작을 한껏 비꼬아, 왜 서쪽 마녀는 사악하고 동쪽 마녀는 선한 존재가 되었는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다. 사실 서쪽 마녀 엘파바와 동쪽 마녀 글린다가 학교 동창에 절친이었다는 재미있는 가정에서 출발해 두 사람의 인생이 왜 이렇게 꼬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우여곡절 사연을 소개하면서 선과 악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뮤지컬 <위키드>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어찌 보면 뻔한, 첨예한 대립 체제로 시작한다. 미운 오리새끼인 엘파바와 인기 만점의 글린다. 부조리한 세상과 맞서 정의로움을 위해 싸우는 우리의 주인공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의 괴상한 외모라는 것도 잊게 할 만큼 멋지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엘파바가 극 중에서 아무리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정작 관람객은 그녀가 곧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독차지할 주인공임을 눈치챈다. 반면 아름다운 인기 최고의 금발 미녀인 글린다는 당장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더라도 엘파바에게 모든 것을 주고 쓸쓸히 퇴장해야 할 조연임을 그동안 습득한 미디어를 통해 이미 직감하고 마는 것이다.

이후 극의 전개는 고정관념을 깨뜨릴까? 하나 반전은 없다. 모든 게 우리의 예상대로 흘러간다. 글린다는 심지어 그냥 조연이 아니라 악역인 조연의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한다. 그녀의 꿈인 오즈의 ‘셀러브리티’가 되기 위해 동물에게 비윤리적 행위를 자행하는 마법사의 수하가 되고, 사랑하는 피예로를 빼앗아 간 엘파바를 이기기 위해 어린 소녀 도로시를 납치해 글린다를 처치하도록 속이는데 일조한다.
이리 보면 뻔한 답처럼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때 뮤지컬 <위키드>의 진미는 다른 곳에서 발휘된다. 바로 캐릭터에 반전의 매력이 숨어 있는 것. 관람객은 2인자이자 극의 조연인 글린다에게 1인자인 엘파바의 매력 이상으로 마음을 빼앗기는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

극 중 글린다의 매력은,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친구가 된 엘파바의 머리를 빗겨주며 너도 아름다워질 거라며, ‘셀러브리티’로 만들어 주겠노라 노래하는 글린다. 여기서 노래를 멈췄다면 그냥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을 그녀는 꼭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 정도는 아니겠지만’이라고. 이처럼 다소 백치 성향이 있는 글린다는 숨겨도 될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겉으로 숨김없이 드러낸다. ’난 너무 예뻐, 난 피예로를 좋아해, 난 셀러브리티가 되고 싶어!’ 사실 악惡보다 더 혐오스러운 것이 위선이 아니던가. 만약 글린다가 겉으로 착한 척하면서 진짜 욕망을 숨기는, 시커먼 속내를 감춘 음흉한 악녀였다면 결코 마음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Wicked 중, Popular(Carmen Cusack & Katie Rose Clarke)

글린다는 마치 사탕이 먹고 싶어서 몰래 커터칼로 저금통을 뜯다가 오히려 제 손이 다치는, 미워할 수 없는 철없는 막내 동생 같다. 나쁜 짓인 줄은 알지만,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갖는 글린다의 모습은 누구나 공감할만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위키드>의 사탕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 주인공 피에로가 뻔하게 엘파바를 선택했을 때, 관람객은 한 켠으론 아쉽고, 한 켠으론 진부하다는 반발심이 일게 된다. 극에서 노력하는 악녀가 보상받는 모습을 볼 순 없는 걸까? 물론 측은한 감정과는 별개로 저금통을 뜯었으니, 마땅히 글린다도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글린다라는 존재 자체가 뮤지컬 <위키드>가 전하려는 진짜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위키드>의 주제가 <오즈의 마법사>의 무 자르 듯 구분된 선악의 판단을 뒤집자는 취지였듯, <위키드> 자체 에서도 선악의 이분법적인 존재를 모호하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로써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악녀 글린다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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