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목란언니>┃­“삶이 곧 불신이요, 불신이 곧 내 삶이니.” by 태양

“믿습니까?”라고 목청 높여 소리치는 성직자부터 “오빠 믿지?”라고 속삭이는 남자친구까지 우리는 믿음을 강요하거나 혹은 강요당하고 있다. 그만큼 사회는 불신不信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 불신으로 시작해서 불신으로 끝나는 연극 한 편이 있다. 바로 연극 <목란언니>이다.
연극은 목란의 불신으로 시작한다. 브로커에게 속아 정착금과 보증금까지 사기를 당한 목란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불신을 느끼게 된다. 목란의 뒤를 이어 태산, 태강, 태양 삼 남매는 각자의 상황 속에서 사랑과 사회에 불신을 가지게 된다. 연극을 보는 내내 수없이 많은 불신을 마주치게 되는 우린, 문득 깨닫게 된다. 극중 삼 남매가 가진 불신은 우리가 가진 불신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았다는 것을. 지금 연극 밖에서 <목란언니> 삼 남매에 빙의한 기자의 ‘불신不信에 대한 3막’이 갓 열렸다.
시놉시스

평양에서 아코디언을 전공한 조목란은 뜻하지 않은 사고에 휘말려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다. 북에 있는 부모를 탈출시켜 서울로 데려다 준다는 브로커에게 속아 정착금과 임대아파트의 보증금마저 사기당한 목란은 한국에서의 삶에 크나큰 회의를 느낀다. 마침 청진에서 온 탈북자로부터 공훈예술가인 부모가 수용소가 아닌 청진으로 추방되어 지방 예술단체에서 활동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녀는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태양에게 불신이란?
나와 너, 우리 사이의 필요충분조건
 

“이게 무슨 소설입니까? 아니 녹취록이라도 주시던가요. 아님 최소한 녹음자료를 주셔야 해요. 부족합니다. 이 정도로 어떻게 자서전을 씁니까? 아니, 자서전이 소설입니까? 왜 나였어요? 아~ 한 장이라서? 내가 싸서? 내가 싸니까?”

한 여자가 씩씩대며 무대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다. 조대자 집안의 막내, 시나리오 작가 허태양. 말이 좋아 시나리오 작가지, 현실은 의원 자서전의 블라인드 작가에 불과하다. 그녀가 쓴 글이 좀 더 액티브하면서도 컬러풀했으면 좋겠다는 황당무계하고 애매모호한 요구에, 그녀의 화는 머리끝까지 차올라 소용돌이친다. 결국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따지기 시작하는 태양. 이렇게 그녀의 불신은 자신의 실력을 비관하고 믿지 못해 스스로 ‘한 장짜리’로 만든 순간으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재료가 부족한데 어찌 맛있는 요리가 나올 수 있으랴. 이는 곧 그녀의 변명이 아닌 충분한 이유다.

“그러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긴 한 거니? 사랑하는 척하면서 이용한 거야?”

극 중 한국남자와 북한여자는 베트남 정글 한복판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마주 서게 된다. 그녀가 쓰는 전쟁영화의 시나리오의 장면이다. 이념과 사랑의 대립과 갈등 아래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허태양의 시나리오에는 이렇게 불신이 가득하다. 하지만 불신이 가득한 허태양에게도 믿음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는, 바로 그녀의 남자 오감독이다.

“오감독. 전화 좀 받아. 전화 좀 받으라고!!! 각본/감독에 오영환이 뭐야? 이건 최소 공동각본으로 올라가야 하는 건데… 돈은 그냥 안 받으면 그만이야. 근데 너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어떻게 나를 버릴 수가 있냐고!!!”

그렇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믿었던 남자의 배신이다. 그녀가 유일하게 믿어온 사랑이었는데, 사랑마저도 배신으로 다가왔다. 그녀에게 쌓인 불신의 벽은 더 이상 깨지도 못할 만큼 두꺼워졌다. 하지만 배신과 불신으로 이뤄진 그녀의 시나리오는 1천5백만 관객이 찾는 대박 영화란 결과물을 낳는다. 불신이 관객을 자극한 걸까. 그만큼 불신을 옹호하고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진 걸까.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인 영화는, 우리에게 적당한 불신은 용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섭게도.

“사장님 녹취록 같은 건 만드실 시간이 없으시겠죠? 자료가 부족하긴 하지만, 써봐야죠. 저 괜찮죠? 그럼 한 장 더 주세요.”

불신에서 배신으로 이어진 그녀의 삶은 다시 원점이다. 좀 더 나아진 것이 있다면, ‘한 장짜리’ 시나리오 작가에서 ‘한 장 더’를 구걸하는 배짱이 생긴 것. 뭐든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뎌지듯 태양은 자기도 모르게 글마저 불신으로 가득해진 사실을 안고 겨우 풀칠하며 살아간다.

나와 너, 사이 혹은 무수한 관계에서 가장 기본인 것은 바로 신뢰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불신하는데 너무 익숙해 있다. 세상도 온통 믿지 못한 것으로만 가득 차 보인다. 최악인 것은, 불신이 믿어야 할 것조차 보지 못하게 가려버린다는 점이다. 나와 너 사이에는 무엇을 잃었기에, 얼마나 더 많은 걸 되찾고 싶기에 불신이란 단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걸까. 언제쯤 신뢰가 회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태양처럼 늘 그 자리에서 허우적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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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을 보았을 때 그녀가 가진 불신은 반전이었어요 ㅠ 배신당할지 생각지도 못했는데ㆍㆍ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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