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미친 것에 미쳐라

상아탑과 싸이, 그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만남은 의외로 신선한 자극제였다. ‘잡생각’과 ‘미쳐라’의 두 단어로 정렬된 그날의 강연은, 꿈에 미친 자와 꿈을 가지려는 자의 공감이 두둥실 했다.

강의명 잡생각의 값어치
강사 싸이
강의 일시 2011년 6월 2일(목) 오후 3시 30분
강의 장소 서울대학교 83동 506호
함성 없이 손뼉 치는 소리, 오랜만이네요

예사로운 등장은 아니었다. MBC <무한도전> 촬영을 끝마치고 막 도착한 그는 하프 팬츠와 블랙 재킷의 차림이었다. 여기저기서 “생각보다 날씬하고 탄탄하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수백 회의 공연을 거친 재간둥이, 하지만 어떤 말을 할지 한참 고민하고 왔다는 그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다른’ 싸이를 보여줄 참이었다.

이 강연은 핵심교양수업 ‘청년기 생애설계 심리학(담당 교수 : 곽금주)’의 수업 일환으로 진행된 것으로, 청강생까지 합쳐 2백 명에 달하는 사람이 바닥과 통로까지 가득 메웠다. 다른 강의마저 포기하고 왔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가운데, 모두는 그의 표정과 입에 집중했다. ‘딴따라’ 아닌 ‘강연자’ 싸이의 시간이 막 시작할 찰나였다.

잡생각, 내가 가진 최고의 보배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0여 년, 10년간의 연예계 생활을 한 그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대학생도 잊고 지냈던 고등학교 교과 과정의 이야기였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다라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새’로 입을 턴


그에게서 가정법 IF의 문법 지식도 술술 나왔다. “우와!”하는 탄성에 맞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외우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입에 붙는 것들이 있죠. 여러분은 12년의 정규 교육을 잘 받았으니 대학교에 있는 거잖아요? 나보다 암기력 하나는 죽인다, 이거지. 그러면 상상력은 어때요?

국민학교 시절 가정 통신문에 ‘산만한 학생입니다.’를 달고 다녔다는 그는 제도권 교육 안에서 평가절하되는 상상력이 그가 가진 가장 큰 보배였다고 말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선생님, 제가 남산만 한 학생인가요?”로 받아들인 그의 능력은 ‘1+1은 2입니다.’를 천편일률적으로 외치는 입시 교육에는 맞지 않았던 것.

튀려고 튄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행동하는데 튀는 게 얼마나 좋았겠어요. 나를 틀에 맞출 것인지, 있는 그대로 살 것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유학하면서, 좀 더 자유로운 사고를 하게 됐고요. 내가 하고 싶은 작곡 공부도 찾고, 거기서 내 잡생각을 펼치면서 나에게도 꿈이 있는 걸 느꼈으니까요.

걸으면서도 말장난 삼아 읊조린 것이 ‘원숙하고 성숙하고 성격은 들쑥날쑥 하고 어느 날 쑥하고 커버린 소녀 아리따운 그녀의 이름은 숙녀(Thank you 가사 중)’ 같은 재미있는 가사를 자주 만든다고 했다. 특이한 인생이 30년을 넘기자 특별한 사람이 됐다는 그. 그때의 잡생각이 없었다면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친구들 말로는 나이트클럽 같은 곳을 운영할 것 같다네요(웃음). 그런 걸 해도 엄청 재미있고 제대로 했겠지. 내가 TV에 나와서 노래도 하고 방송해도, 연예인을 전문 직종이라고 생각해요.

미쳐라, 끝까지 끝까지

그의 이름, 싸이. ‘박사장’과 ‘싸이’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는 그는 쌍시옷 발음과 그 의미가 더 강렬한 싸이로 결정했다 미친 자, 동시에 한 분야에 미쳐 전문가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 별명에 한 교수님이 하시던 말.

근데 ‘코’는 왜 지웠냐고 하시더라고요. ‘심의 때문에’라고 말하지 않고, ‘저와 함께하는 팬클럽 이름이 ‘코’인데 전부 같이 미치자는 의미입니다.’라고 했더니, 웃으시더라고요. 여러분도 다 미쳐야죠, 안 그런가(웃음)?

싸이는 거의 모든 작사, 작곡을 오직 감에 의지해 한다. 좋은 글귀가 생각나면 적어두고 이런 것을 모아 한 곡을 완성한다. 심지어는 잠자기 직전에 번뜩이기도 한다.

강한 느낌의 여가수가 데뷔하는데 곡은 나왔고 가사를 써야 하는데 도무지 생각이 안나는 날이었어요. 어떻게 해볼까 새벽까지 뒤척이면서 ‘잠 못 이룬 새벽 난 꿈을 꾸고 있어.’로 시작하는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을 흥얼거리는데, 딱 느낌이 왔어요. 그래서 얼른 일어나서 바로 썼죠. 렉시의 ‘애송이’는 그렇게 나왔죠.

화성악은 배운 적도 없는 그이기에 작곡은 더욱 어렵다. 그는 앞에 키보드와 건반을 놓고 몇 시간씩 씨름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좋은 멜로디가 떠오르면, 그걸 컴퓨터로 옮기는데 몇 시간씩 걸려요. 흥얼거리던 것을 악보로 그리려면 키보드로 한 음씩 눌러보고 컴퓨터로 입력하고 다시 한 음 누르기를 반복하니까 얼마나 어려워요. 그런데 그래도 해야죠.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그만큼 노력도 안해?

한 학생이 던진 ‘남이 좋다는 직업’과 ‘내가 좋아하는 일’ 사이에 대한 고민에 그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답변을 했다. 현명한 그의 모습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진 순간이기도 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 말은 맞아요. 다만 이 사회와 현실이 귀천을 둬버리잖아요. 당장 나부터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행복에는 귀천이 없어요. 그건 확실하거든요. 내가 행복하면 그게 좋은 직업이죠. 잘해야 한다고요? 좋아하는데 잘하지 못하는 게 뭐가 있을까요? 관 닫는 날 후회 안하려면 후회될 일을 만들지 마세요!

가수와 작곡가, 어린 시절 한결같던 꿈을 이룬 그의 다음 도전이 궁금했다.

멋진 공연을 하고 싶어요. 뛰어든 시점이 빨라 공연계에서는 동년배보다 안정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죠. 여러분도 인정하죠? 그런데 제 목표는 최고의 공연을 만드는 겁니다. 외국에서 친구가 놀러왔을 때 ‘너네 나라에서 제일 재미있는 쇼가 뭐냐?’라고 물으면 제 이름이 튀어나올 때까지 열심히 뛰어보렵니다.

한참을 이야기한 그는 처음에 이야기하던 IF 구문 이야기를 다시 꺼내며 강단을 내려갔다.

나이가 들고 생각이 많아지면 젊을 때만큼 쉽게 행동하지 못하게 돼요. 계산할 것이 자꾸자꾸 생각나니까. 유식해지는 것도 좋지만, 젊을 때가 아니면 언제 무식하게 용감한 일을 해보겠어요? 여러분은 Unless가 아닌 IF를 생각할 때입니다. 도전하는 당신이 되십시오.

언젠가 대학교 축제 무대에서 꼭 보자는 그, 우리는 어디에 얼마나 그만큼 미쳐봤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다.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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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구박사신박사

    황기자의 선견지명???
  • 직접 가본 듯 생생한 기사 감사해요^^
  • 황선진

    @야구박사신박사 허허, 그렇죠? 오늘도 행동하는 젊은 날이 되도록. 모두 응원해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
  • 야구박사신박사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사람과 행동을 한 후에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기만의 생각은 분명 필요한 것 같습니다~
  • 엄PD

    "행복에는 귀천이 없어요!" 싸이 형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네요^^
  • 서지희

    무한도전에서 부랴부랴 간곳에 여기군여 ㅎㅎㅎ 잘읽었습니다 덕현기자님 ㅋㅋ
  • 럽젠집착남

    윤애 기자님 저랑 똑같은 위안을 얻으셨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 이윤애

    싸이를 여기서 보다니!! 잡생각의 값어치라는 강의 주제 흥미로워요! 이제 시간 낭비라는 죄책감없이 잡생각할 수 있을 듯 ㅎㅎ
  • 황선진

    @molecko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다른 댓글 보셨군요^^ 시험이 아직 많이 남아서(...) 감사합니다!
  • 싸이만 봐도 너무 재미있네요^^ 잘 읽고 가요 황덕현 기자님+_+
    시험공부도 화이팅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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