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경 강사|차별에 대항한, 굴지의 비혼 추적기

강의명비혼 제너레이션의 등장과 여성 세대 경험이 차이
강사명 전희경
강의 장소2011년 4월 8일 오후 7시
강의 장소 가톨릭 청년회관 3층 바실리오 홀

“연애하는 분, 손들어 보세요!“ 전희경 강사가 질문하자, 몇 명의 여성 수강생이 손을 들어 답했다. 그러자 강사 왈, “아 근데, 연애는 남자랑?“ 연애를 꼭 여자와 하란 법이 없다는 그녀의 암시엔, 페미니스트가 전하는 여성학 강의의 낯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지금은 비혼 제너레이션의 시대

그룹 소녀시대가 ‘걸스 제너레이션’을 주장하는 현재, 우리 시대의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비혼 제너레이션’을 선언했다. 과거엔 혼기를 지났다고 생각되던 20대 후반~30대 여성은 더는 ‘노처녀’라는 낙인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비혼 사실을 숨기려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

비혼을 하나의 세대로 명명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에 비혼 여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소수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수 없었죠. 결혼하지 않은 삶에 대한 모델이 전혀 없었을 그 시절, 비혼은 외롭고도 특이한 케이스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결혼하지 않는 여성이 너무 많아져 특이 사항이 아닌 거죠. 비혼이라고 왜 결혼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힘겹게 자기 증명을 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비혼이 하나의 일반 현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이 시점에서, 비혼 여성의 삶도 해피 엔딩이냐고 묻는다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비혼 여성들은 개인적인 비난에서 해방된 대신 사회적 비난에 직면한 탓이다. 출산율 저하, 고령화 문제의 주범으로 여성들의 혼인 거부가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실재로도 ‘저출산, 고령화’는 여성의 삶의 방식 변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입니다. 저출산은 여성들이 늦게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않거나, 혹은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문제죠. 고령화는 생산인구의 감소에 따른 생산력 저하로 말미암아 자연히 따라오는 현상이고요.

그렇다면 여성들은 이 사태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 무조건 반성해야 할까?

여성의 희생을 바라는 불공정 게임

혹 ‘25세 정년제’를 아는가?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존재했던, 여성에 한한 ‘급한 은퇴’ 제도였다. 지금의 1829세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주먹을 불끈 쥐며 차별적인 제도에 반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갖고 있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고려하면 이해할만한 제도이기도 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여자는 남자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어요. 어릴 적엔 공부하는 오빠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공장과 사무실을 전전하며 힘겹게 노동하고, 25세인 결혼 적령기가 되면 다시 가정으로 돌아와 산업역군이 될 남편과 아들의 원활한 생활을 위해 봉사했죠.

여성에게 결혼은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던 시절. 여성은 적령기에 반드시 결혼해야 했고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25세라는 연령 제한은 다분히 상식적인 상한선이었다. 하지만, 왜 여성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만 했던 걸까? 여성은 그저 사회가 원활히 굴러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걸까?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불공정한 교환이었습니다. 여성에게 불리한 것이었죠. 물론 여전히 그 일면이 남아 있고요. 맞벌이해도 여성에게 살림이나 육아 부담을 지우니까요. 혼자 밥 하나 못해먹는 주제에 밥도 하고 일도 하는 여자와 결혼하려는 남자들이 대다수인 게, 말도 안 되는 현실이에요.

이런 현실을 자각한 여성이라면 누가 선뜻 결혼하고자 할까? 이미 대다수 여성이 결혼이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것으로 인식해버렸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사회는 앞서 말한 저출산•고령화의 주범으로 비혼 여성들을 꼽고 있다. 불공정 게임을 공정 게임으로 전환하지도 않은 채, 그저 여성이 변해서 사회가 이리되었다며 남의 탓만 하는 것이다.

비혼 제너레이션의 도약

어머니의 딸, 아버지의 딸, 그리고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여성의 달라진 역사를 반증하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딸은 80년대까지의 여성입니다. 가족을 힘겹게 부양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청춘을 바쳐 고향에 돈을 부치고 종래에는 스스로 어머니가 되는 이들이죠. 아버지의 딸은 과도기적 여성입니다. 무조건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를 보고,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외치며 아버지처럼, 남자처럼, 남자의 세계에서 인정받겠다는 딸이에요.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어머니의 아들은 아들과 딸을 따로 차별대우하면서 키우지 않았던 우리의 어머니들로부터 비롯됩니다. 어머니의 아들은 남녀가 다르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어머니의 아들이 바로 지금 1829세대를 말하는 게 아닐까? 지금의 여성들은 이미 남성과 함께 배우고 경쟁해왔는데, 더 이상 어느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불합리한 결혼 제도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결혼 제도와 표준화된 여성의 생애에 대한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려고 진통 중이다. 이 가운데 회자하는 비혼 제너레이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오래전부터 차별을 없애기 위한 그 굴지의 역사적 산물이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 비혼이 자유로운 선택이 될슈있을때 이성애주의를 강요받는 세상에서도 해방될슈있을것같아요 ㅋ 좋은기사 잘읽엇습니다:D
  • 이윤애

    @코리아나 그러게 말입니다.ㅠ 강의를 들으면서 맞는 말이다 하며 공감되었던 부분도 있지만은 만약 저게 틀림없는 현실로 나한테 다가오면 정말 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흠. 뉴욕에 한번도 가본적없는이가 뉴욕 지리에 대해 얼추 남에게 설명할 수는 있다해도, 뉴욕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남에게 말할수가 없는법이죠. 결혼은 분명히 서로의 희생까지 사랑하고 싶은 개인과 개인이 하는 일인 것 같거든요. 쉬는날에도 애들과 놀아주느라 편할날 없는 남자와 어두운 새벽에도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어둠속에서 애기를 안고 있는 여자, 처럼 결혼은 원래가 둘다 왕창 얻으려고 계약관계를 맺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 시스테마틱하게 자리잡은 구석이 있다고 해도, 지는 게임이라는 말을 보니 슬퍼집니다. 이해득실과 일반화, 합리적 사고만 갖고 바라본다면 대체 생판 타인과 타인이 함께 살기로 계약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소챌 스토리 더보기

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

궁궐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11월 11일에 빼빼로는 그만

잠 못드는 당신을 위해

<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 이밤수지∙맨드라미최 부부 | 우도에 책방이 산다

놀랍게도 이 영상은 LG V40ThinQ로 촬영되었습니다

LG 올레드 TV AI ThinQ 궁궐 문화유산을 담다

돌아왔다, 2018 가을 단풍 뿜뿌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