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 문화, 역사의 중심 워싱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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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 해서 낮에는 사람들, 밤에는 네온사인으로 가득 차 24시간 시끌벅적한 뉴욕만 떠올려서는 안 될 일이다. 화려함의 대명사 뉴욕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수도 워싱턴으로 눈을 돌려보자. 24시간 통화하면서 바쁘게 뛰어다니는 뉴요커들 대신 이른 아침부터 조깅을 즐기는 이들이 반겨주며, 여기저기로 난 복잡한 골목길 대신 한가롭게 널찍한 길을 걸으며 찬찬히 미국의 정치, 문화, 역사의 산실을 둘러볼 수 있는 워싱턴만의 매력은 확실히 다르다.

위풍당당함과 선명한 붉은빛이 인상적인 내셔널 몰의 한 건물을 찍은 사진.
학구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내셔널 몰의 한 건물.

위풍당당함의 극치, 자유와 해방의 상징 링컨기념관

현존하는 가장 높은 기념비, 워싱턴 기념탑에서 리플렉팅 풀(reflecting pool)을 건너면 눈 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신전. 헨리 베이컨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본떠 설계하였으며, 링컨 서거 당시 미국을 구성한 36개 주를 상징하는 36개의 대리석 기둥이 지탱하고 있는 이곳. 사실 누구나 다 아는 위인은 많다.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만큼 전 세계의 존경을 받는 인물은 결코 많지 않다. 가난한 가정에서 홀로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고 또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노력은 물론, 노예 해방을 통해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보시킨 그의 업적은 이미 무한한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링컨 기념관에 위치한 링컨의 동상을 확대하여 찍은 사진.
기념관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링컨의 동상. 온화하게 펼쳐진 손과 결연하게 꽉 쥐어진 다른 손이 리더의 양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뒤에 새겨진 글귀에 주목해보자.


‘In this temple
As in the hearts of the people
For whom he saved the union
The memory of Abraham Lincoln
Is enshrined forever
(이 성전에는 미합중국 국민들의 마음을 담아 미국을 구원했던 아브라함 링컨에 대한 기억들이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2000년 초에 리메이크되었던 <혹성탈출>에서는 바로 이 링컨의 동상을 본뜬 시저의 조형물이 등장해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트랜스포머3>에서 디셉티콘은 워싱턴D.C.로 날아와 이 석상의 머리부터 파괴한다. 이처럼 아브라함 링컨 동상의 파괴는 줄곧 지구 전체의 위기를 단적으로 상징해왔는데, 이 석상에 단순한 미국의 전통을 넘어 전세계의 저유, 해방, 민주주의의 정신이 깃들어있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글귀에서 말하는, 그러나 기념관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어 자칫 놓칠 수 있는 ‘아브라함 링컨에 대한 기억들’을 찾아볼 시간이다.

링컨기념관을 장식하고 있는 두 편의 연설문과 그 위의 벽화를 찍은 사진.
위쪽은 게티즈버그 연설문, 아래쪽은 재취임 연설문. 두 연설문의 상단에는 각각 ‘재결합’, ‘해방’이라는 제목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두 그림 모두 프랑스 화가 쥘 게렝에 의해 그려졌다.

① 석상의 왼쪽 벽에는 게티즈버그 연설문이, 오른쪽 벽에는 링컨의 재취임 연설문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전자는 남북전쟁 당시 승리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전투가 발발했던 게티즈버그 지역에서 열린 연설에서 링컨이 읽었던 것으로,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 연설문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연설이 되기도 했다.

시계 방향으로 기둥 위에 새겨진 주의 이름 중 일부, 링컨이 깔고 앉은 성조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연설의 현판

② 앞에서 언급한 36개의 기둥 위에는 48개의 미국의 주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기념관을 둘러싸고 있는 기둥을 세어가며 주의 이름을 확인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다. 현재 50개의 주 중에서 빠진 두 개는 하와이와 알래스카이다.

③ 기념관에 성조기가 있다면 믿을 수 있는가? 성조기가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부는 물론, 지붕까지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링컨이 앉은 의자를 덮고 있는 이 깃발이 바로 성조기라고.

④ 마지막으로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1963년 8월 28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연설한 곳에서 정확히 ‘I Have a dream’의 현판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 링컨기념관의 바로 맞은편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현재 집무를 보고 있으니, 백인과 흑인이 동등한 위치에서 공존하기를 바랬던 마틴 루터 킹의 목사의 꿈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한눈에 보는 미국 역사의 현장, 미국 역사 박물관

시한가로운 역사 박물관 앞의 모습. 운치 있는 꽃과 분수.

길을 따라 직진하면 내셔널 몰을 따라 늘어선 대(大) 박물관 단지, ‘스미소니언’. 항공 우주 박물관, 국립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 등 방문객들에게 꽉 찬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치면 어느 하나 빠뜨릴 게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시간은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이 지나온 시간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싶다면 럽제니는 단연 미국 역사 박물관을 추천한다. 이곳은 ‘전쟁과 정치’, ‘미국의 이상-민주주의’, ‘교통과 기술’,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으며, 다른 박물관들과 마찬가지로 입장과 모든 관람은 무료이다. 그 중 ‘박물관의 꽃’으로 손꼽히는 세 가지의 대표적인 전시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화폐 전시관에 배치되어있는 각종 화폐, 동전들을 촬영한 사진.
Stories on money의 이모저모.

1층 동쪽에서 전시되는 ‘Stories on money’.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화폐의 발전과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낸다. 메인 섹션인 ‘미국의 화폐’에서는 식민지 시기와 골드러쉬, 대공황을 비롯한 격동의 시기, 그리고 현재 돈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보여준다. 실제 사용되었던 지폐와 동전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19세기와 ‘화폐의 르네상스’라고도 불렸던 20새기 초의 동전 디자인을 직접 대조해볼 수 있다. ‘자유의 힘’이라 불리는 섹션에서는 자유의 이념과 여성의 인권 신장이 반영된 디자인이 배치되어 있다. 이 전시관에서는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확대해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배치하여 피상적인 관람 그 이상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A penny for your thoughts?’라는 투표 코너에서는 방문객들이 직접 미래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화폐에 대하여 의견을 게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음식 전시관의 이모저모를 담았다.

역시 같은 1층 동쪽 방면에서는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미국의 식탁 위 변화를 알 수 있는 ‘Food Exhibition’이 보인다. 이 전시는 전쟁 후 놀라운 기술의 혁신이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미국에 끼쳤던 영향을 찬찬히 되새겨보고 이것이 한편 음식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는 어떻게 작용되었는지 보여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중앙에 놓여진 커다란 식탁을 보면서 그 동안 우리의 머릿속에 축적되어 온 음식에 관한 생각과 경험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교통 전시관에서 남자 마네킹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모습.

26,000제곱 피트의 면적과 총 340개의 전시물을 자랑하는 최대 전시관, ‘America on Move’. 사실 교통은 역사의 어떠한 측면에서도 빠질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1876년 캘리포니아 타운의 철도 건설부터 1999년 로스앤젤레스를 달리던 오토바이까지, 미국 교통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두었다.

수많은 일들이 결정되는 곳, 국회의사당

돔 끝에 뾰족한 기둥이 솟아 있는 국회의사당을 멀리에서 바라보고 촬영한 사진이다.먼 곳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국회의사당의 풍채.

내셔널 몰 끝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그곳, 수많은 영화들의 배경이 되었던 그곳, 바로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1800년부터 의회가 열린 이래 전세계의 민주주의의 가장 잘 알려진 상징인 국회의사당은 새롭게 인정된 주들과 함께 의원들의 수도 늘려나가면서 지속적으로 발전을 꾀했다. 천장은 역사적인 순간을 그린 이미지로 채워져 있으며, 홀 역시 오랫동안 기릴 만한 사건과 사람들을 표현한 석상들로 가득하다.

자유의 석상이 박물관 한가운데에 서 있는 모습.

돔 위에 세운 동상의 원형, 자유의 석상(The Statue of Freedom)은 현재 방문자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있는 홀의 정가운데에 놓여있다. 좌중을 압도하는 석상의 위엄 있는 표정과 풍채는 이제 국회의사당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한번은 찍고 가야 할 ‘명소 속 명소’가 되었다.

국회의사당의 천장을 촬영한 사진. 삼각형과 점 등 여러 무늬가 보인다

자유와 권리를 증진시켰던 역사적 순간을 기리는 석상들도 물론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지만 국회의사당의 백미는 천장에 있다. 수많은 기하학적 무늬와 따뜻한 색감이 방문객들로 하여금 미소 짓게 만든다.

국회의사당의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싶다고?
국회의사당 투어 프로그램은 방문자 센터의 아래층에 위치한 오리엔테이션 상영관에서 ‘Out of many, One’이라는 13분짜리 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미국이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정부를 설립하게 되었으며,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의회가 차지하는 역할, 그리고 전반적인 건물의 구조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주요 목적이다.
시간 오전 8시 45분~오후 3시 30분
가격 무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사전에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해 예약하여 패스를 받아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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