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이 끝나도, 야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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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시즌이 끝나고, 충전을 위한 휴식에 접어드는 계절 겨울이 왔다. 매년 어김없이 반복되는 일이지만 아쉬운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올해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친 팀의 팬은 ‘내년에도’ 하는 기대로, 올해 성적이 저조했던 팀의 팬은 ‘내년에는’ 하는 희망으로 내년 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마냥 봄이 오기를 바라기에는 겨울이 너무 길다. 이 기회에 조금 색다르게 야구를 즐기는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현실의 야구가 아닌 책과 영화 속 야구를 즐기는 것이다. ‘야구 시즌’은 끝나도 ‘야구’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기록의 경기, 야구! 숫자로 만나는 야구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영화 <머니볼> &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

누가 정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야구는 ‘기록의 경기’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어떤 스포츠든 기록이 따라다니지만 야구는 조금 더 특별하다. 축구와 농구가 만들어내는 기록이 동네 도서관이라면 야구의 기록은 대학교 도서관이다. 타율, 출루율, 방어율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 타자의 경우 아웃이 되는 땅볼을 쳤을 때 주자가 진루했는지, 투수에게 몇 개의 공을 던지게 했는지, 어떤 볼카운트에서 타격했는지, 타구가 주로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등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 기록된다. 그리고 이는 감독과 전문가에게는 선수와 팀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며 야구팬에게는 야구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포스터와 책 표지 사진. 왼쪽은 ‘머니볼’, 가운데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책 표지, 오른쪽 사진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영화 포스터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머니볼>과 2004년 서점 종업원이 올해의 책으로 꼽은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소설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머니볼>(2011)은 ‘기록 야구’의 정수를 보여준다.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Oakland Athletics의 단장 빌리 빈Billy Beane의 성공을 영화로 풀어냈다. 그는 ‘머니볼 이론’에 기초한, 철저하게 기록에 기반을 둔 야구를 한다. 그가 선수를 볼 때 최우선의 가치는 출루율과 장타율이다. 주변의 반대와 비난에 부딪히지만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실천으로 옮긴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을 거둔다. 비록 최종 목표인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야구는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2004)는 제목에서 살짝 드러나듯 노수학자와 스물여덟 살의 미혼모 파출부, 파출부의 열 살짜리 아들 루트의 이야기다. 박사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기억하는 기능을 잃어버렸다. 박사의 기억은 1975년에 멈춰 있으며, 사고의 후유증으로 새 기억은 아무리 노력해도 금세 사라져버린다. 30년 전의 일은 똑똑히 기억하지만 새로운 기억은 80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없어진다. 그래서일까, 그는 세상 만물을 수식과 숫자로 바라본다. 파출부가 찾아온 첫날 그는 파출부의 신발 사이즈를 묻는다. 24라고 대답하자 그는 “오오, 실로 청결한 숫자로군. 4의 계승이야.”라며 감탄한다.

영화 스틸컷. 왼쪽은 ‘머니볼’의 한 장면으로 남자 주인공이 야구 팀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장면, 오른쪽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한 장면으로 한 노인이 어린 아이를 업고 옆에서 한 젊은 여자가 이들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그 안에서 쌓이는 공감과 우정은 숫자로 헤아릴 수 없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두 작품의 공통점은, 첫 번째로는 당연하게도 야구가 등장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야구를 숫자와 수학을 통해서 본다는 것이다. 빌리 빈(브래드 피트)은 피터 브랜드(조나 힐, 실제 인물은 폴 디포테스타Paul DePodesta)를 부단장으로 고용한다. 브랜드는 예일대 경제학을 졸업했고 야구 통계의 전문가다. 둘은 새롭게 팀을 짠다. 앞서 말했듯이, 이들은 자신들만의 기준인 통계와 기록으로 선수를 판단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선수를 영입한다. 시즌 초반엔 패배를 거듭하지만, 이내 항간의 우려와 비난을 날려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메이저리그 신기록인 20연승을 기록한다.

파출부와 루트는 신문의 스포츠란에 실린 기록과 카드를 통해서만 야구를 알고 있는 박사에게 실제 야구경기를 보여주고 싶어한다. 셋은 1992년 6월 2일 히로시마 대 한신의 경기를 관람한다. 박사는 야구장에서도 어김없이 수학자의 면모를 보인다. “다이아몬드는 한 변이 27.43미터인 정사각형이다.” 경기장에 들어서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이다. 이어서 마운드의 정확한 높이, 베이브 루스와 행크 아론의 홈런 기록, 투구 모션의 속도 등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과 기록을 정확히 꿰고 있다. 옆의 사람이 그의 모습을 보고 감탄할 정도다. 이렇게 셋의 우정은 매일매일 차곡차곡 쌓여가고 루트가 성인이 되어 중학교 수학 교사가 되어서도 계속 이어진다.

빌리 빈과 박사의 관심은 온통 숫자, 수학, 통계, 기록에 가 있다. 그 외의 것에는 일절 신경 쓰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빌리 빈이 팀 성적에 도움되지 않는 선수에게 방출 소식을 전할 때 매정하게 느껴질 만큼 냉정하게 말하는 모습과 박사가 수학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누가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벼락같이 화를 내는 모습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이런 둘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빌리 빈은 선수들과 대화하기 시작하고, 박사는 파출부와 루트와 함께한 작은 일조차 기억하려 애쓴다.

어쩌면 두 작품이 진짜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가치의 중요함과 소중함인지 모른다. 빌리 빈은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받는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단장이 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고 오클랜드의 단장으로 남는 걸 택한다. 이 행동은 어떤 정교한 수학과 통계로도 들이대도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선택의 변은, 박사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파출부의 말로 그 답을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10만 자리 수나 되는 거대한 소수와 수학의 증명에 사용되는 가장 큰 수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수, 무한을 넘어서는 수학적 관념에 대해서도 배웠지만, 그런 것들을 아무리 많이 동원해봐야 박사와 함께 지낸 시간의 밀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99%의 픽션, 야구보다 더욱 진한 이야기
영화 <스카우트> &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영화 포스터와 책 표지. 왼쪽은 임창정이 어떤 야구선수의 등에 매달려 있는 ‘스카우트’의 포스터, 오른쪽 사진은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책 표지다. 영화 <스카우트>와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내용과 형식,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눈물과 웃음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YES24)

이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10일 간의 이야기다. 그리고, 99% 픽션이다.

– 김현석, <스카우트> 中

영화 <스카우트>(2007)와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은 모두 픽션이다. <스카우트>의 첫 장면에서는 영화를 ‘99% 픽션’이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오히려 백분율이 아니라 ‘만분율’로 따졌을 때 저만큼이라고 느껴질 정도. 영화가 너무도 현실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 다만 영화는 아주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고 때로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두 작품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각각 1980년 광주와 1982년 인천으로 향한다. Y대학교의 스카우터 호창(임창정)은 고교 최고 투수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가 동분서주하고, 인천에 사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주인공 ‘나’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탄생한 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열렬한 팬이 된다.

‘스카우트’의 한 장면.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마주보고 있고 뒤에서 한 중년의남자가 이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광주에서 재회환 호창과 세영. 그리고 이 둘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비광’ 곤태(박철민).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광주에서 호창은 세영(엄지원)과 재회한다. 대학 시절 둘은 연인이었다. 이소룡이 죽던 날 세영은 홀연히 호창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호창은 세영의 도움으로 선동열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이를 기회 삼아 선동열과 계약 직전까지 간다. 거기서 호창은 선동열이 입고 있는 줄무늬 유니폼을 보고 깨닫는다. 며칠 전 세영이 자신에게 한 얘기의 의미를 말이다. “형은 야구복이 제일 잘 어울려요. 줄무늬만 아니면요.”

“바야흐로, 프로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프로야구는 ‘어린이에겐 꿈을! 젊은이에겐 낭만을!’이라는 희망찬 구호와 함께 출발했다. 하지만 꿈과 낭만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만년 꼴찌 ‘삼미 슈퍼스타즈’는 아니었다. 당연히 삼미의 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 옆에는 조롱과 무관심뿐이었다. 삼미는 1982년 3월 27일 프로야구 개막전부터 해체되는 1985년 6월 21일 마지막 경기까지, 프로야구사에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전무후무한 발자취를 남긴다. 물론 하나같이 승리와 환호와 기쁨과는, 1위 팀과의 성적 차이만큼이나 거리가 먼 기록이다. 삼미가 해체된 날 밤 ‘나’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한다. 삼미는 적당히 안타도 치고, 적당히 삼진도 잡는 야구를 했다.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만한 야구다. 하지만 항상 꼴찌였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결론은 프로였다.” 그러니까, 1982년은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르는 기점인 것이다. 세상은 “이젠 프로만이 살아남는다.”, “프로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 아닙니까?”, “하루빨리 프로가 되게” 따위의 복음으로 넘쳐났고 이제 막 프로로 전향한 신인들로 가득했다.

다시 <스카우트>로 돌아와서, 호창은 선동열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후,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세영을 탈출시키기 위해 경찰서로 달려간다. 그날은 1980년 5월 17일이다. 기적적으로 세영은 경찰서에서 도망친다. 하지만 호창은 결국 경찰에게 붙잡히고 만다. 호창의 도움으로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의 비극을 피한 세영은 나지막이 말한다. “그는 선동열을 포기한 대신 나를 구했다. (…) 그 사람을 다시 보지 못했다. 가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인연은 닿지 않았다. 하긴 선동열이 없었더라면 그 봄날의 짧은 재회도 없었을지 모른다.”

결국 선동열은 Y대학교의 라이벌 K대학교에 진학하고 훗날 한국 최고의 투수가 된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식으로 말하자면, 프로의 세계에서도 당당히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한편, 자신을 스카우트하겠다는 호창의 꼬드김에 혹해 선뜻 선동열이 있는 곳을 알려준,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광주일고의 포수 조봉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호창의 말대로 Y대학교에 스카우트되었을까, 프로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의 환호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누볐을까.

야구를 통해 본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 소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포스터와 책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표지. 실제 야구선수 감사용의 일화를 그린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과 2004년 ‘서울대 야구부’가 1승을 거둔 것을 모티브로 한 소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이미지 출처: 네이버)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지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이십등, 삼십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 박완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어느 스포츠에든 1등이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꼴등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철저하고 정교하게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이 세워진다. 그리고 관심 대부분은 1등 또는 2등에게 향한다. 순위의 아래쪽에 있는 선수에게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주 가혹하리만치 말이다. 외로움과 고독만이 꼴찌와 함께한다. 하지만 꼴찌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2004)과 소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2011)은 바로 그런 꼴찌의 이야기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투수 감사용 선수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과장의 무시와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감사용(이범수)는 공개 투수 모집에 응시해 정식으로 프로야구팀의 투수가 된다. 얼마 전까지 공장에서 일하던 그가 프로야구 선수가 된 것이다.

프로의 세계는 녹록지 않았다. 그에게는 출전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고, 출전한다 해도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어 포기하는 경기에 등판하는 패전처리용이었다. 패전처리 투수는, 영화 속 해설자의 표현대로 “회식 끝나고 혼자서 설거지하는 거랑 다름없는, 제일 하기 싫고 잘해도 별 티가 나지 않”는 역할이다. 그가 마운드에 올라갈 때는 이미 관중의 반쯤이 빠져나간 상태고 상대 팀 또한 짐을 싸 경기장을 떠날 채비를 시작한 지 오래다.

‘슈퍼스타 감사용’의 한 장면. 야구장 안에 남자 주인공인 야구 선수가 손에 글러브를 낀 채 서 있다. ‘이기고 싶다’는 간절함은, 늘 그를 마운드 위에 서게 만든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비웃음과 무관심 속에서도 감사용은 계속 던진다. 비록 끝내기 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당대 최고의 투수 박철순과 당당히 맞대결을 펼친다. 경기장에 홀로 남은 그를 찾아온 은아(윤진서)를 보고 감사용은 나지막이 말한다. “이기고 싶었어요. 나도 한 번 이기고 싶었어요. 이길 수 있었어요.”

257전 1승 256패. 이런 경이적인(?) 기록이 실제로 가능할까. 서울대 야구부는 그것이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몸소 보여준다. 서울대 야구부는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이 만든, 야구를 가장 못하는 팀이다.

소설은 주인공 지웅이 회사에서 해고된 다음 ‘서울대 야구부’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만들겠다고 결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야구부의 주장이었던 태성 형을 만나야 했다. 그는 예전에 자신과 함께 야구를 했던 사람을 하나하나 찾아 그의 근황을 묻는다. 하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부산에서 태성 형과 만나게 된다. 그는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의 2군에서 뛰고 있다. 아직까지 야구를 하는 이유를 묻자 태성은 대답한다. “그냥 야구가 좋았다. 2군이라도 롯데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서는 걸로 충분하다. 여기까진 기라.” 그는 이어서 이제 은퇴할 것이며, 며칠 뒤 마지막 경기가 있다고 말한다.

지웅은 서울로 올라가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태성의 마지막 경기가 열리는 날, 경기장에 ‘서울대 야구부’ 모두가 모인다. 경기 시작 전 고별인사를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태성은 말한다. “저만큼 경기에서 많이 져 본 선수도 없을 겁니다. 패배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패배를 반복하면서 꿈을 잃고 열정이 식을까봐 두려웠습니다. (…)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포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었으니까요. 이제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까 희정을 만난 뒤부터 꼬인 마음에 술기운까지 겹치면서 말이 곱게 안 나갔다.
“누가 형을 알아줘요? 아무도 형이 롯데 선수인 줄 모르잖아요? 여기 손님들이 알까요?”
형은 흔들림 없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나를 인정하면 된 거 아이가?”

– 이재익,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태성은 2군 선수다. 지웅의 말대로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 뒤에서 비웃을지도 모른다. 실패자라고 말이다. 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또한 비슷한 상황이다. 빌리 빈은 주변 사람으로부터 곧 잘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듣고, 파출부는 돈 때문에 박사에게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호창은 “왜 선동열을 데리고 오지 못했느냐”는 문책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테고, 회사에서 잘린 ‘나’에게 선배는 “자식, 잘 나간다 싶었더니 삼천포로 빠졌구나”라고 비아냥거리고, 감사용은 팀 동료에게마저 “네가 투수야? 선수 같지도 않은 게”라고 모욕을 당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행복과 꿈을 향해 좇는다. 비록 그것이 자신 외에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남이 보기에는 한없이 하찮은 것이라 해도 말이다.

이들 중 몇몇은 꿈을 이루고 몇몇은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배는 아니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막을 내린다.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진 적 없다는 사실을. 대한야구협회(KBA)의 공식기록으로 서울대 야구부는 단 한 번 이기고 256번을 졌다. 하지만 우리가 했던 경기는 모두 승리였다. 꿈과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패배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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