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현실이 되는 순간, 뉴욕의 ‘몽상가’가 되어

단순히 <국외자들> 속 달리기 기록을 깨기 위해 철부지 어린 아이들처럼 박물관을 시끄럽게 질주한다. <금발의 비너스>를 재현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복장과 춤사위는 물론, 괴상한 기합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후반부에서 이사벨은 자살을 기도하는 그 모습조차 로베르 브레송의 <무쉐트>를 연상시킨다. 영화 <몽상가들>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영화광으로 그려진 이사벨, 테오, 매튜는 일상적으로 명작 속 특정 장면을 그대로 모방하고 감독과 제목을 맞추는 그들만의 유희를 이어나간다.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헛된 상상에 불과하다 해도 그 놀이에서만큼은 영화 속 일부가 된다는, 그야말로 ‘낭만’의 발현이다.

‘몽상가들’ 속 한 장면을 캡쳐했다. 하얀 옷과 선글라스를 걸친 이사벨(에바 그린)이 빗자루를 들고 고릴라를 우스꽝스럽게 모방하고 있다. 그녀의 남동생과 연인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무엇을 모방하고 있는지 유추 중이다. 영화 속 한 장면을 재현하는 <몽상가들> 속 이사벨. 이 순간만큼은 현실 속 그들 모두 영화 속 주인공이다.
(이미지 출처 : 영화 <몽상가들> 중)

혹자는 여성들의, 여성들에 의한, 여성들을 위한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 샬롯, 사만다, 미란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섯 번째 주인공은 단연 뉴욕이라 말한다. 비단 이 드라마에만 해당하는 말도 아니요, 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온 도시를 붉게 물들이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감탄을 자아내는 웅장한 조형물, 전 세계의 선망이 되는 화려하면서도 시크한 스타일. 줄곧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수놓았던 많은 것들이 ‘Made in New York’이다.

언제까지 영화 속 뉴요커들을 부러워만 할 텐가? 이미 뉴욕에 다녀온 적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추억을 걷는 시간을, 다녀오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뉴요커 되기’ 가이드라인을 선물하기 위해 럽제니가 직접 몽상가가 되어 그 낭만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Scene #1. 일상에 지칠 때는 찾아오세요, <섹스 앤 더 시티> 속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당당하게 뉴욕을 활보하던 네 명의 여자들. 이제는 드라마에 등장했던 장소들을 곱씹어보는 ‘섹스 앤 더 시티 투어’가 뉴욕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을 정도로, 한동안 전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의 워너비 스타였던 드라마 속 그들에게도 고충은 있었다. 사랑이 되었든 직장이 되었든 자신의 아픈 몸이 되었든, 무언가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를 때 저절로 ‘Stress out!’을 외치게 했던 것이 있으니, 바로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의 오밀조밀한 컵케이크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여러 색의 컵케이크들의 나열. 노란빛이 도는 바나나푸딩도 있다.

아기자기한 가게 내부와는 대조적으로 진열대를 꽉꽉 채운 각양각색의 컵케이크들. 화려한 토핑과 저절로 눈을 시리게 하는 화려한 색색들이 손을 뻗치게 만든다. 가장 인기가 많은 메뉴는 강렬한 빨간색 브레드와 푹신푹신한 생크림의 대조가 인상적인 레드벨벳, 그리고 최근 홍대 부근 디저트 카페에도 유사한 종류의 푸딩이 생기면서 국내에서도 맛볼 수 있는 바나나 푸딩이다. 그러나 입 안 가득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선사하는 다른 메뉴들이 ‘하루에 하나씩’ 충분히 먹어봄직하다.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 비치되어있는 테이블에서 갖가지 푸딩과 컵케이크를 즐기고 있는 럽젠 기자들.  햇빛이 유달리 화장했던 어느 날, 디저트를 즐기고 있는 럽제니들.

드라마에서 줄곧 캐리와 친구들의 수다의 배경이 되어주던 벤치는 없다. 대신 상점에서 도보 5분 거리 내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로 자리를 옮겨 디저트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일상의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줄 달콤한 컵케이크와 함께라면 캐리 못지않은 멋진 뉴요커가 되는 일, 어렵지 않다.

Scene #2. 가끔 동심이 그리워질 때는, <Big> 속 Fao Schwarz

두 남자가 커다란 피아노 건반 바닥 위에 서서 발로 건반을 연주하듯 서 있다. 영화 〈big〉 중 자신이 취업한 완구 회사의 사장님과 흥겹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신체 나이 30살, 영혼 나이 13살’의 조시. 그들은 손이 아닌 발로 젓가락행진곡을 멋지게 연주한다. (이미지 출처 : 영화 <Big> 중)

조시는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그러하듯, 다음날 눈 뜨면 저절로 어른이 되어있기를 갈망하는 13살의 소년이다. 어느 날 동전을 넣는 기계에 그 소원을 말한 그는 거짓말처럼 30살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자신의 신체를 발견한다. <Big>은 단순히 젊은 톰 행크스의 풋풋한 모습을 담은 영화가 아니다. 이미 순수의 세계를 벗어나 차가운 현실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그러나 불현듯 철없는 어린 시절을 그리운 어른들에게도 제법 묵직한 생각의 여지를 던져준다.

하늘을 나는 것처럼 양팔을 크게 벌리고 한 다리를 들고 선 두 명의 럽제니. 비록 발로 완벽한 피아노 곡을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Big의 인물들 못지않게 행복한 표정. 위 장면을 따라 한 럽제니들. 동심의 힘인 걸까, 젓가락행진곡은 아니지만 함께 ‘도레미’를 누르는 그들의 표정에 잔잔한 기쁨이 떠오른다.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던 덕택에 한 완구 회사에 자료를 입력하는 오퍼레이터가 된 조시. 자신이 일하고 있는 장난감 가게를 둘러보던 중 사장과 함께 ‘발로 치는 피아노’로 젓가락행진곡을 연주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후일 수많은 광고와 드라마를 통해 패러디된 이 씬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터. 젓가락행진곡만이 선사할 수 있는 동심 속 선율, 통일된 모습으로 건반을 누르는 쾌감, 정말 13살로 돌아간 것처럼 천진난만한 그들의 표정은 일명 ‘피아노 씬’을 잊을 수 없는 뉴욕 영화 명장면 중 하나로 격상시켰다.

Fao Schwarz의 이모저모. 건반을 구경하거나 직접 올라서보는 관광객들, 판매중인 미니 피아노, 벽에 붙어 있는 음표 등이 보인다.  어린이들에게는 <big>보다 더 익숙할 영화 <나 홀로 집에>의 촬영장소이기도 한 Fao Schwarz, 그곳의 이모저모. 언제 어디서나 동심의 세계에 빠지고픈 그대를 위해 바로 옆에서 소형 ‘발로 치는 피아노가 판매 중이다.

뉴욕 최대의 장난감 가게 Fao Schwarz에는 ‘발로 치는 피아노’를 동경의 눈길로 바라보는 수많은 ‘조시’들이 눈에 띈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온, 혹은 엄마의 손을 이끌고 왔을 어린아이들이 손님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 피아노만큼은 간혹 지나가는 어른들에게도 매력적인 모양. 건반 하나를 조심스럽게 누르는 순간 들어오는 네온의 빛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바로 어린아이의 그것이다.

잠깐! 서수현 기자의 ‘장난감 병정이 반겨주는 Fao Schwarz 기사 보러 가기, 클릭!

Scene #3. 운명 같은 로맨스가 펼쳐지는 곳, <Serendipity> 속 Café Serendipity

<티파니에서 아침을>, <프렌드 위드 베네핏>, <뉴욕의 가을>, <뉴욕의 연인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뉴욕 아이러브 유>… 많고 많은 도시들 중 그 동안 스크린은 유독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갖가지 로맨스 영화들을 쏟아냈다. 빽빽하게, 누군가에게는 답답하게 들어선 빌딩들이나 바쁘게 통화하며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뉴욕이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라는 주제로 우리의 감성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이 영화들 덕분일 것이다.
두 남녀가 어느 카페 테이블에 마주앉아 초콜릿 아이스크림으로 보이는 음료를 마시며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마법 같은 사랑의 묘약, ‘핫 프로즌 초콜릿’을 마시며 서로를 응시하는 <세렌디피티> 속 두 주인공들. 주위 배경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트리와 따뜻한 조명들로 가득하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세렌디피티> 중)

그 중 단연 압권은 2001년 개봉작 <세렌디피티>. 이름에서부터(세렌디피티는 ‘우연히 발견한 뜻밖의 행운’이라는 뜻) 운명적인 사랑을 직시하고 있는 이 작품은 우연히 찾아왔으나 강렬하게 이끌리는 사랑이라는 닳고 닳은, 그러나 언제나 매력적인 소재를 달콤하게 풀어낸다. 시끌벅적한 뉴욕의 크리스마스 이브, 각각의 연인에게 줄 선물을 둘러보기 위해 동일한 백화점에 들른 조나단과 사라. 첫눈에 서로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대임을 직감하고 이를 시험해보기로 한 두 사람은 불가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우연에 우연을 거쳐 결국 재회한다. 이처럼 영화 <세렌디피티>는 운명은 없다고 애써 부정해온 이들에게도 왠지 뉴욕에서만큼은 필연적 상대를 만날 것만 같은 알쏭달쏭한 인상을 제대로 씌워놓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달콤해 보이는, 생크림이 가득한 ‘핫 프로즌 초콜릿’. 면의 특이한 모양과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마담 버터플라이 파스타’. 대표 메뉴 ‘핫 프로즌 초콜릿’(왼쪽)과 ‘마담 버터플라이 파스타’(오른쪽).

연락처는 물론, 상대방의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카페로 자리를 옮긴 두 남녀. 관객들이 그들의 애틋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에 더욱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사랑의 묘약, ‘핫 프로즌 초콜릿’ 덕분이 아닐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칠맛 나는 짙은 초콜릿과 그 위에 얹어진 풍성하고도 하얀 생크림. 대미를 장식하는 초콜릿 가루,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달콤할 것 같은 이 음료는 명실상부한 ‘세렌디피티’의 대표 메뉴.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가정식 요리, 샌드위치, 샐러드, 오믈렛과 파스타로 든든한 식사가 가능하다.

두 남녀 럽젠 기자가 마주앉아 핫 프로즌 초콜릿을 마시고 있다. 뒤로는 카페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꾸며져 있다. 눈을 마주하며 세렌디피티에서 핫 프로즌 초콜릿 한 잔을 마신다면, 없던 ‘썸’도 생길 것 같다.

어느덧 찬바람이 부는 가을, 가을이 지나 또 겨울.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혹시나’ 하며 따스한 성탄절을 기대하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로맨스의 정석 <세렌디피티>와 함께 폭풍처럼 스며들 사랑에 대한 단단한 마음의 준비를 해두자. 그리고 그만큼 진하고 달콤한 ‘핫 프로즌 초콜릿’ 한 모금을 곁에 두는 것은 어떨까?

카페 세렌디피티의 내외관. 검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밝은 벽에 크리스마스 장식, 60주년 기념 문구 등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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