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장애’에 관한 삼단논법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순간 위험한 상상을 하고는 한다. 옷이든, 밥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하나의 종류만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선택할 수 있는다는 것은 자유가 주어졌다는 의미인 동시에 피곤함과 곤란함을 동반한다.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선택의 괴로움은 증가한다.

한 여자가 옆으로 돌아선 채 손을 펼쳐 보인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고, 그녀의 손바닥 위에 많은 화살표와 물음표들이 그림으로 그려진 것처럼 붕 떠 있다.

우리는 선택에 직면한다, 그리고 고민한다

친구와 카페나 음식점을 갔을 때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 “너랑 똑같은 거 먹을래.”, “아무거나 주세요~”, “인기 있는 게 뭐예요?”. 이는 상대방에게 당황스러움, 때로는 짜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고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매번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 고민에 빠지고 선택하기 어려워하는, 자신을 ‘선택장애’라고 여기는 두 명을 만나봤다. 선택장애는 선택의 순간에 어느 한쪽을 쉽게 고르지 못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결정장애’ 역시 이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Mini Interview
선택장애 case 1. 한동근(23, 동국대학교)

인터뷰이 한동근 씨의 사진. 빨간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쓴 그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으로 찍혀 있다.

럽젠Q 자신이 결정장애 혹은 선택장애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어느 정도는 결정장애라고 생각해요."

럽젠Q 결정하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를 꼽자면 무엇이 있으신가요?

"다양하죠. 음식점에 갔을 때 어떤 메뉴를 선택할지, 집에 갈 때 지하철을 탈지 버스를 탈지, 수강신청을 할 때 어떤 강의를 들을지, 카페에 갔을 때 어떤 음료를 마실지,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럽젠Q 결정하는 데 고민하다가 손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며칠 전 집에 갈 때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고민하다가 버스를 놓쳤어요. 그래서 결국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갔어요."

럽젠Q 결정이 고민되는 순간에 주로 어떻게 행동하시나요?

"혼자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여럿이 함께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이 하는 얘기를 잘 듣는 편이에요. 특히 무언가 결정을 잘 내리는 친구와 함께 있으면 그 친구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되니까 편한 것 같아요."

선택장애 case 2. 김혜임(24, 한양대학교)
인인터뷰이 김혜임 씨의 사진. 흰 니트를 입은 그녀가 정면을 보고 있는 증명 사진이다.

럽젠Q 자신이 결정장애 혹은 선택장애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모든 순간에 결정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제 자신을 선택장애라고 여기기보다는 성격이 좀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럽젠Q 결정하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를 꼽자면 무엇이 있으신가요?

"작은 부분에는 음식이요. 메뉴가 많은 음식점이 싫어요. 냉면이면 냉면, 고기면 고기만 파는 곳이 좋아요. 이런저런 많은 음식을 파는 곳에서는 어떤 걸 먹을지 쉽게 고를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럴 때는 종업원께 어떤 게 잘 팔리는 물어봐요. 그리고 큰 부분에는 진로와 인간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방법과 방향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럽젠Q 결정하는 데 고민하다가 손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어떤 일을 하나 꼽기는 어려운데, 평소에 선택하기 어려울 때 남의 선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둘이 무언가 먹으러 갔을 때 저는 고르기 힘들어서 남이 먹자고 하는 걸 먹었는데 그게 맛이 없거나 생각보다 별로일 때가 종종 있어요."

럽젠Q 선택이 고민되는 순간에 주로 어떻게 행동하시나요?

"방금 말했듯이, 종업원의 추천이나 친구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대신 좀 골라주세요

위의 인터뷰이 두 사람의 경우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실제로 SNS와 인터넷을 보면 두 사람의 고민과 비슷한 “둘 중에 어떤 옷이 괜찮은가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까요?” 등 다른 사람이 대신 선택해주기를 바라는 글들이 많이 등장한다. 잘 모르는 동네에서 밥을 먹으려 할 때 인터넷에 소개된 ‘맛집’이 대단히 맛있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음에도 자연스럽게 ‘맛집’을 검색하는 것은 어쩌면 선택의 고민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인지도 모른다.

다음 카페 중 한 게시판의 모습. ‘골라’를 키워드로 입력해 얻은 결과값으로, ‘골라주세요~’라는 글이 많이 보인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판.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하며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글이 많다.

이렇게 선택에 어려워하는 사람을 두고 선택장애, 결정장애라고 부르지만, 사실 ‘장애’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선택과 결정의 어려움은 거의 모든 사람이 겪는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선택과 결정에 괴로워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 이렇게 광범위한 현상이 되었을까?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하는 우리?

지금으로부터 무려 60여 년 전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1941)라는 책을 썼다. 그는 자유로 인한 불안과 고독에서 도피하고자 심리가 나치즘이 광범위하게 퍼진 이유 중 하나라고 보았다. 물론 나치즘이라는 무시무시한 사건에 대해 분석이지만 현대인의 자유와 그 이면을 비롯해 현대성에 관해 탁월한 통찰을 보여준 그의 연구는 지금 선택과 결정에 고민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에리히 프롬은 중세사회와 근대사회를 비교한다. 중세 신분사회에서 지금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자유가 주어진 사람은 극히 적었다. 신분에 따라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되었으므로 극소수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 사람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종교와 직업을 비롯해 결혼까지 개인의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재해, 폭력과 질병으로부터의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름의 안정감을 누리고 있었다. 인간관계는 긴밀하게 이어져 있었으며 이를 통해 소속감과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직업, 종교, 결혼 등 인생의 중대사를 결정할 자유가 없는 것 역시 한편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앞으로 펼쳐질 삶의 방향에 대해 특별히 고민할 필요 없이, 소위 ‘팔자대로’ 살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시계바퀴처럼 정해진 대로 움직였다.

이러한 중세의 질서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세의 세계관을 붕괴하도록 한 것은 경제 발전이었다. 경제와 상업은 확대되었고, 도시는 성장했다. 속박에서 벗어난,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유로운 개인이 출현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일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현상이 출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개인의 무력감과 고독감이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삶의 계획할 수 있음은 곧 그 선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함을 의미한다. 좋게 말해서 자유지만 이는 “누구나 자신의 목표를 자유롭게 추구하지만(그리고 운이 좋으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지만), 누구나 실패하는 데에도 자유롭다”는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동시에 실패에 대한 불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한다. 즉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 말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자유’,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책 표지들.자유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끔 해주는 책. 지그문트 바우만의 『자유』와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찾아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모습을 ‘자동 순응성’이라고 표현하며 현대사회의 대부분이 타인의 권위와 말에 순응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특수한 메커니즘은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정상적인 개인들이 취하고 있는 해결방법이다. 간단히 말해, 개인이 자기 자신이 됨을 그치고 변화하는 것이다. 즉, 그는 일종의 문화적인 양식에 의해 부여되는 성격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전적으로 동일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자신에게 기대하는 그런 상태로 변화한다. 그와 함께 ‘나’와 외부 세계와의 갈등은 사라지고, 고독과 무력함을 두려워하는 의식도 사라진다. (…) 개인적인 자아를 버리고 자동인형이 되어 주위 수백만의 다른 자동인형과 동일해진 인간은 이미 고독이나 불안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대신 그가 지불한 대가는 혹독하게 비싼 것으로, 그것은 바로 자아의 상실이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157쪽

자아의 상실, 이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습관적으로 누군가에게 선택과 결정을 부탁하고,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것은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자동인형’이 되어버린 것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전적으로 타인의 말대로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취향과 의지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동인형’이 되는 것을, ‘자아의 상실’을 피하기 위해 말이다. 에리히 프롬은 건전한 성격을 가진 사람의 모습을 제시한다. 사랑으로 가득하고, 창조적이고, 이성적이고,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세계와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자신의 주체로서, 자신으로부터 만족을 찾는다.

그가 말하는 건정한 성격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추상적으로 느껴져 당장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쉽게 잡히지 않는 대답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명확해진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없는 만큼,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 자신이 처한 선택과 결정의 상황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의미인지, 피곤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도피하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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