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맛을 찾아서, 워터 소믈리에를 만나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물을 먹고 살았던 옛날 사람들은 물의 각기 다른 맛을 잘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맛있는 물맛을 잃어버린 지 오래, 물에도 맛이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맑고 맛있는 물맛을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가 있었으니, ‘워터 소믈리에’ 자격을 획득한 LG전자 정수기 모듈러 개발팀 이병기 선임연구원이다.

고객들에게 더 좋은, 더 믿을 만한 물을 제공하기 위해

LG전자의 한 연구실에서 물맛 확인 시범을 보여주는 이병기 선임연구원. 회색 재킷을 입은 이병기 연구원이 와인잔에 담긴 물을 코로 가져다 대며 조심스럽게 물 냄새를 확인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물에도 맛이 있는지, 있다면 그 맛이라는 것이 물마다 어떻게 다른 것인지조차 생소하다. 정수기를 개발하면서 무엇이 그를 개념조차 생소한 ‘워터 소믈리에’의 길로 이끌었는지, 이병기 선임연구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검수 요청을 받은 물들이 반투명 흰색 병에 담긴 채 은색 수레 위에 정리돼 있고 이병기 선임연구원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를 손으로 짚고 있다.

“좋은 물맛이야말로 LG전자의 정수기가 성장하기 위한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수기 물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수질, 그리고 맛이죠. 하지만 수질은 어느 회사 정수기나 거의 비슷하게 깨끗합니다. 결국 하나 남은 요소는 맛인데 실제로 민감한 고객들은 미묘한 물맛도 감지해 클레임을 걸기도 하죠. 이런 경우 고객에게 더욱 체계적이고 믿을 만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워터 소믈리에 자격증을 획득했습니다.”

기수마다 다르지만 대개 합격률이 20%에 불과하다는 워터 소믈리에 자격, 이에 이병기 선임 연구원은 함께 일하는 연구원 세 명을 리드해 ‘우리 중에 한 명이라도 붙자’라는 심정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연구원들도 막상 준비에 들어가서는 야근은 기본에 금연, 금주를 실행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을 보였고, 이는 마침내 전원 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정수기 개발자, 그리고 워터 소믈리에

이병기 선임연구원의 워터 소믈리에 자격증. Certificate of Water Sommelier 아래 이병기라는 이름이 크게 쓰여 있고 아래로 ‘위 사람은 한국수자원 공사에서 시행하는 워터소믈리에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상기 자격을 취득하였음을 증명’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물의 흐름을 형상화 한 푸른색의 상장 디자인이 눈에 들어온다.
워터 소믈리에라는 화려한 이름, 하지만 그러한 결과를 완성하는 데는 분명 보이지 않는 어려움도 있었다.

“실기 평가 중에 물맛만을 보고 그것이 어느 종류의 어떤 물인지 맞추는 시험이 있어요. 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리스트에 있는 40개의 물들을 실제로 다 마셔봐야 이를 구별할 수 있는데, 외국 브랜드 생수는 저희 근무처인 창원에서 구할 길이 없었죠. 어떤 생수는 부산에서 딱 한 병을 구할 수 있었는데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던 이들 모두가 ‘자, 이 한잔만으로 맛을 기억해야 해.’라며 비장하게 마신 기억이 있습니다.(웃음)”

상상을 초월하는 브랜드 생수 값에 지갑을 꺼내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 적도 있고, 심지어는 직접 화학 물질을 첨가하여 물의 성분을 직접 만들어 마셔 본 적도 있다는 그들. 이토록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얻어낸 워터 소믈리에 자격, 과연 그에 대한 대가와 보람은 어떤 것이었을까? 정수기 개발자, 그리고 워터 소믈리에로서 이병기 선임연구원이 갖게 된 강점에 대해 물어봤다.

“물맛에 책임을 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수기를 만드는 것은 아무나 가능해요. 하지만 그 맛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은 쉽지 않죠. 이에 인증받은 전문가로서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정수기 개발자로서 ‘물’에 대해 조금 더 전문적이고 완벽하게 마스터해 고객들에게 더 좋은 제품을 제공하고 신뢰를 받을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강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수기 시장은 얼핏 보았을 때는 차별화나 혁신의 방안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에 마련한 방안으로, 스스로 워터 소믈리에가 되어 물‘맛’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라 판단했다는 이병기 선임연구원. 이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본을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동시에 혁신을 이루고자 한 그의 열정이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워터 소믈리에는 물맛을 분석하는 데 있어 어느 경지까지 이르러 있을까? 호기심 어린 가벼운 질문이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정수기 내부는 다양한 부품으로 이루어지고 그 부품에 따라 물맛이 달라져요. 이를테면 ‘이 정수기는 필터로 이 재질을 사용해서 쓴맛이 나고, 저 정수기는 저 재질을 사용해서 조금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기계로는 이 미세한 차이를 정확하게 감지하지 못하는 데다 일반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정도로 그치죠. 저는 이에 대해 정확하고 객관적인 파악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LG에서 새로운 정수기를 출시하거나 부품이 변경될 때마다 저희들의 입을 거쳐 맛에 대한 검수를 해요.“

워터 소믈리에가 말하는 진정한 물맛이란?

물 맛 확인 시범을 보여주는 이병기 선임연구원. 왼쪽 사진은 물이 담긴 와인잔을 높게 들어 물의 색, 기포를 확인하는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물을 마시는 모습이다.
서글서글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인터뷰에 응하던 이병기 선임연구원. 하지만 물맛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 침묵할 듯 진중한 태도로 임했다. “역시 맛있네요.”라는 말과 함께 LG전자의 정수기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병기 선임연구원. 워터 소믈리에가 말하는 진정한 물맛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상표를 가린 생수를 맛보게 하고 어느 생수가 가장 맛이 좋은지 물으면 40% 이상은 우리나라의 생수를 가리킵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저희 집 지하수를 맛있게 마셨지만 지금에 와서 전문적인 지식으로 다시 생각해 보니 그다지 맛있는 물이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생수들을 분석해 보면 사실 구성물은 객관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민감한 입맛은 그 차이를 느끼죠. 즉 맛있는 물이란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자에게 오랫동안 길들여 온 물맛이 제일 좋은 물맛이죠.”

한국, 일본 등 각 나라의 수자원공사는 국민들이 제일 맛이 있다고 느끼는 물을 연구하여 K-index나 J-index 등의 수치로 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우리집 밥이 제일 맛있듯이, 내가 오래 마셔온 물이 제일 맛있는 물이라는 것. 의외로 소박한 답변에 조금 의아했지만, 이는 오히려 물에 대한 조예를 지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누구나 궁금해 할 만한 질문! 한 병에 7~8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브랜드 생수는 과연 일반 생수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 걸까?

“각 브랜드마다 분명 맛의 차이는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평소에 마시는 생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수준이죠. 세부적인 구성물 차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브랜드 생수의 경우에는 ‘세계 2차 대전 중에 마을이 없어졌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우물의 물’, ‘신부의 고질병을 낫게 한 물’, ‘만년설이 녹아서 만들어진 물’ 등 저마다의 이야기와 의미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비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은 나의 생명력

인터뷰 중의 이병기 선임연구원. 두 손을 모으고 진지한 표정으로 카메라에서 살짝 빗나간 측면을 주시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수납장에 물 실험에 필요한 비커, 유리관이 보인다.
한국 수자원공사, 생명과학 회사를 거쳐 LG전자로 온 이병기 선임연구원은 ‘나에게 물이란 생명력이다’라는 말을 했다. 단순히 몸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영양소의 하나가 아니라, 삶 전체의 원동력으로 삼을 정도로 물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각별했던 것. 그런 이병기 선임연구원의 정수기를 향한 최종 목적을 들어봤다.

“저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맛있다고 소문난 모든 물을 마셔보고 싶습니다. 강원도의 유명한 약수, 물맛으로 유명하진 소문난 샘물 같은 것들 말이죠. 물맛에 대한 나만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면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맛있는 물맛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LG전자 정수기만의 혁신을 이끌어 누구나 이 물을 마시고 나면 ‘이거 LG전자 정수기 맞지?’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최종 목표입니다.”

세월이 지나도 정수기의 수요는 줄지 않는다. 게다가 좋은 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토록 우리의 삶 속에서 중요한 물이기에 이병기 선임연구원의 열정과 노력이 더욱 빛나는 것이리라. 하지만 정작 ‘물’ 자체에 관심을 갖는 인재들이 없다는 것에 이병기 선임연구원은 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런 이병기 선임연구원이 원하는 LG의 인재는 과연 어떤 인재일까?

“보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특기를 가진 인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정수기를 개발할 때 오로지 ‘물’, ‘미생물’쪽으로만 지식이 있다 보니 폭넓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틀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야의 임직원과 논의를 하면서 “그게 왜 안 돼?”라는 말과 함께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해결책을 찾아냈고 이에 감명을 많이 받았죠. 이제는 무언가를 생산하는데 지식이 한 분야에만 집중되기 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까지 끌어와 창의성과 혁신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인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검수 대기중인 물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병기 선임연구원. 아웃포커싱 된 물통 들 위로 이병기 선임연구원이 물통 하나를 집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 일상에 너무나 당연하게 자리잡고 있어 오히려 고마움과 존재 자체를 잊기 십상인 물. 하지만 고객들에게 최대한 깨끗하고 맛있는 물을 제공하기 위한 이병기 선임연구원의 열정은 동해 바다의 물을 모두 마셔버릴 기세였다. 0.001%의 물맛을 잡기 위한 그 열정을 생각하며, 오늘 마시는 물 한 잔은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맛을 음미해 보는 게 어떨까?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 서수현

    워터 소믈리에.. 물맛이라니.. 되게 독특하네요 :D 기사 흥미롭게 읽었어요!!
  • 최동준

    저는 미각에 둔감한 편인데, 소믈리에라는 직업은 정말 미각이 뛰어나야 할 거 같네요! 다른 물맛을 느낄 수 있다니.. 저한테는 그저 신기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기사 잘 봤어요:)
  • 좋은 물 맛이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니군요~ 잘봤습니다.
    댓글 달기

    이배운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감사합니다! :) 저는 물맛에 딱히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데 인터뷰 이후로 좋은 물맛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라구요 :D

소챌 스토리 더보기

우린 이렇게 한겨울을 견디곤 해

어느 통학러의 빡친 하루

‘신박한’ 효과가 실화? 한 남자가 체험해봤습니다.

[파인다이닝] 서윤후 시인, 글 쓰는 청춘을 다독이다

사회초년생의 기본예절

사진 좀 찍는다는 그들의 미러리스 카메라

배틀 로드, 샤로수길 VS 망리단길

캠퍼스별 떡슐랭 가이드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