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없이도 풍성한 채식카페의 매력 속으로

어릴 적 냉면 위에 둥둥 떠 있는 오이, 비빔밥 속에 섞여있는 호박을 골라내다가 어머니께 꾸중을 들은 경험이 한 번쯤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채소가 주는 막연한 공포를. 그 아픈 기억을 잊게 해줄, 아니 여전히 채소를 싫어하는 사람도 스스로 걸어 들어갈 ‘맛있는’ 채식카페가 왔다.

밍밍한 풀? No, no, no!

지난 겨울 내내 두꺼운 스웨터 안으로 남몰래 차곡차곡 쌓아온 살들을 보며 그간 꿈꿔왔던 얇디 얇은 파스텔 톤의 봄 옷을 입지 못해 한숨 쉬었던 당신. 다이어트로 인한 강박감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굶는 방법을 택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제는 채식에 주목해 보자.

빈틈없이 빡빡한 생활에 지친 이들을 중독시켰던 ‘힐링’ 광풍의 여파로, 마음까지 담백해지는 채식은 명실상부한 ‘식탁 위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날씬한 몸매와 건강을 동시에 잡기 위해 좔좔 흐르는 기름기와 코를 지배하는 냄새로 무장한 고기를 단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그러나 아직도 ‘밍밍한 풀? 그거 무슨 맛으로 먹나?’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당신이라면 고기 없이도 얼마든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채식카페 세 곳으로 그 매력에 입문해보자.

Slim, Simple, Stylish, 상수동 ‘슬런치팩토리’

유난히 조용한 목요일, 상수동의 한 골목. 한 카페의 문틈 사이로 따뜻한 오렌지색 불빛과 행복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주택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외관 덕분에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한 이곳, 바로 채식인들 사이에서도 일찍이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한 슬런치팩토리다.
식탁 위에 버섯들깨덮밥과 새우 바질 페스토피자가 놓여있다. 버섯들깨덮밥의 뽀얀 들깨소스와 새우 바질 페스토피자의 얇은 도우 위에 얹어진 각종 재료들이 빚어내는 선명한 색상의 앙상블이 인상적이다. 그 옆에는 간단한 샐러드와 피클이 담긴 작은 그릇이 보인다.
불과 몇 년 전에도 누군가의 전유물로 국한되었던 채식카페는 연예인들의 잇따른 채식선언과 함께 홍대, 강남역, 가로수길과 같이 최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상권에서도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vegan’이라는 단어가 적힌 간판이 심심찮게 보이는 요즘, ‘테이스티 로드’에도 방영되는 등 유독 슬런치팩토리가 두각을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바로 메뉴판에 있었다. 아기자기한 메뉴판을 한 장 두 장 넘기다 보면 “이 많은 것들 중에서 대체 뭘 먹어야 하지?”라는 고민에 절로 휩싸이게 된다. 대개 붉은 고기를 제외한 닭고기까지 허용되는 세미(semi)에게는 기름 없이 담백하게 튀겨낸 치킨 크로켓, 생선 및 해산물까지 허용되는 페스코(pesco)에게는 새우 바질 페스토피자, 유제품까지 허용되는 락토(lacto)에게는 버섯 두유크림 리조또, 그리고 동물성 식품을 일절 거부하는 비건(vegan)에게는 버섯들깨덮밥과 슬런치비빔밥을 추천한다. 게다가 채식주의자를 따라 방문한 Non-vegan을 위해서는 매운 소고기덮밥까지 있으니, 알고 보면 상당히 세분화된 채식주의의 모든 단계를 아우르는 ‘막강’ 메뉴들이 아닐 수 없다.
버섯들깨덮밥과 새우 바질 페스토피자 한 조각을 각각 확대하여 찍은 사진을 이어붙였다.
슬런치팩토리를 방문했다면 한 번쯤은 눈여겨보았을 버섯들깨덮밥. 새송이버섯, 양송이버섯, 느타리버섯 등의 각종 버섯들과 들깨소스, 두유가 어우러져 고소함의 극치를 이룬다. 자칫하면 단순한 걸쭉함, 더부룩함으로 느껴지기 쉬운 이 조합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담백함으로 다가와 입 안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혀를 중독시켰던 자극적인 조미료나 육류가 일절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자꾸 숟가락이 버섯들깨덮밥을 향한다는 점. 역시 ‘대표메뉴’답다.

덮밥에 한창 감탄하고 있자면 화려한 피자가 곧 식탁 위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채식 카페에서 피자라니, 왠지 어색한 조합이다. 하지만 새우, 검은 올리브, 브로콜리가 빚어낸 새우 바질 페스토피자의 환상적인 색감은 우선 비주얼에서 합격. 얇은 도우 위에 엄선된 재료와 모짜렐라 치즈만 얹어 구워냈기 때문에 여느 피자처럼 기름지지 않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다채로운 맛이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또 합격이다. 평소에 채식이라면 질색하는 사람도 저절로 감탄하게 만들 다크호스는 다름아닌 브로콜리. 피자의 완벽한 일부가 된 브로콜리의 억세지 않으면서도 아삭아삭한 식감은 최대 매력 포인트이다.
카페로 들어서면 음식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스타일’에도 확고한 철학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컷은 밝은 조명이 비추는 주방과 스크린을 보여준다. 두 번째 컷은 구석에 놓여있는 탁자 위에 패션에 관한 잡지들이 쌓인 모습으로 얼마 전에 막을 내린 '라이언맥긴리-청춘, 그 찬란한 기록'의 액자가 눈에 띈다. 세 번째 컷은 화장실로 이어지는 통로에 자리한 영화 '몽상가들'의 판넬. 마지막 컷은 카페 중간의 벽에 걸려있던 그림으로 그림 속의 남자가 뒤돌아선 모습과 성들이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손님들을 현혹시키는 요소는 비단 ‘맛’만은 아니다. 홍대 미대 출신 주인장의 레스토랑답게 인테리어는 오감을 충족시켜 준다. 한 쪽 구석의 테이블 위에 놓인 ‘라이언맥긴리-청춘, 그 찬란한 기록’의 액자 포스터, 영화 <몽상가들>의 판넬, 그리고 카페 곳곳에서 마주치는 몽환적인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그런가 하면 앞쪽의 스크린에서는 빔 프로젝터를 통해 영화가 사람들의 식사를 즐겁게 해 준다. 목요일 저녁에는 <해변의 폴린느>가 전파를 탔다.

Location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길 38 (상수동 336-18)
Price 버섯들깨덮밥 9000원, 새우 바질 페스토피자 15000원
Open 오후 12시~ 오전 12시
Info 02-6367-9870, 홈페이지 www.slunch.co.kr
Tip 평일 오후 12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식사 시 아메리카노를 2000원에 마실 수 있다. (아이스는 2500원) 또한 홈페이지를 통해 각종 다이어트 프로그램과 슬런치만의 도시락을 주문할 수 있으니 꼭참고하자.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그린 아지트, 대학로 ‘카페 마노’

카페의 한가운데에는 나무가 심어져 있다. 곳곳에는 비치된 건강에 관한 책들과 화분들은 편안하고 건강한 느낌을 준다. 카운터 아래 벽에는 메뉴를 찍은 사진들이 있어 이를 구경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마지막 컷은 피망, 당근 등 바구니에 담긴 선명한 색상의 야채들
우유가 첨가되지 않은 커피를 판매하는 비건 디저트 카페는 깔리고 깔렸다. 그러나 성균관대학교로 이어지는 골목 한 켠에 위치한 카페 마노처럼 비건들을 위한 음료만 해도 그 종류가 20가지가 넘는 카페는 결코 흔치 않다.

선반 위에 갖가지 책들과 시계,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컵들이 놓여있다. 'MANO'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MANO’는 ‘마음과 노는 아지트’라는 뜻.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이곳에서 대학생들은 음료 한 잔을 시켜놓고 책을 읽거나 편안한 자세로 노트북을 들여다본다. 학교 앞 커피전문점의 시끌시끌한 대화와 웃음소리가 지겨웠다면, 늘 주문하는 카페라떼 대신 색다른 음료를 맛보고 싶다면 ‘카페 마노’를 방문해보자. 정말 자신만의 ‘아지트’처럼 각자의 일과 생각에 침잠하기 좋다.

왼쪽 컷은 갓 주문한 와플로 여기저기 뿌려진 달달한 시럽이 구미를 당긴다. 오른쪽 컷은 한 입 베어문 와플과 포크를 담고 있다.
디저트는 단순한 디저트 그 이상이다. 고구마 와플은 유난히 달콤하고 쫄깃쫄깃했다. 버터, 우유, 계란 등의 유제품을 첨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두유, 고구마, 현미, 찹쌀가루를 섞어 와플을 반죽한다. 특별한 재료를 공수해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비율이 쫄깃쫄깃한 반죽을 만들어내는 마노만의 비밀 노하우라고. 와플 위에 얹어진 찐 고구마도 썰어 한 입에 쏙 넣으면 속이 제법 든든해진다.
큰 유리잔에 담긴 소이 그린티라떼가 그 맛만큼이나 진한 녹색을 자랑하고 있다.
디저트에는 음료가 빠질 수 없다. 소이 프라페초코칩, 소이 아이스밀크티, 소이 카푸치노… 하나같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많은 음료들 앞에서 누구나 조금씩은 망설이기 마련. 그 중에서도 녹차, 코코넛, 곡물가루, 두유가 함께 탄생시킨 소이 그린티 프라페는 진한 녹차와 고소한 곡물이 어우러진 맛으로 이미 유명세를 탔다. 갈아 넣은 사각사각한 얼음마저 매력적이다. 그 시원함에 감탄하면서 쭉쭉 들이키다 보면 이런, 벌써 바닥이 보이기 시작한다.

Location 서울시 종로구 성균관로3길 11 (명륜3가 134-2)
Price 고구마 와플 5000원, 소이 그린티프라페 5500원
Open 오후 12시~오후 8시 (주문은 오후 7시 30분 마감), 매주 일요일/새해(1월 1일)/설/추석연휴 휴무
Info 02-747-8457
Tip 디저트 외에도 병아리콩 샐러드, 베지터블 스튜, 2가지의 식사류가 있다. 특히 병아리콩 샐러드가 유명하니 배고픈 점심시간에 방문한다면 식사를 주문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
진정한 공존을 위한 발걸음, 답십리 ‘공존’

최근에 식사를 매개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이른바 ‘소셜 다이닝’이 화제다. 특히 교내 친목 모임이나 회식에서 고깃집에 가면 자동으로 가시방석에 앉게 되는 채식주의자들은 소셜 다이닝에 더욱 적극적이다. 의견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나 한 끼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고충을 즐겁게 달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각자의 학교와 회사의 급식에 채식 식단이 편성되도록 힘을 합치기도 한다.

답십리에 위치한 카페 ‘공존’ 역시 그러한 소셜 다이닝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말 못하는 동물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권리를 취득,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동물사랑실천협회에 의해 운영되다 보니 곳곳에서 동물을 아끼는 마음이 드러난다.
각각 사슴, 곰, 닭이 그려진 그림이다. 그들이 지닌 이미지를 기하학적인 모형과 세련된 색채를 통해서 아름답게 묘사했다.
공존의 위층은 동물사랑실천협회에서 운영하는 유기견, 유기묘의 입양센터인 ‘땡큐센터’로 오픈 행사가 카페 공존에서 열리는 등 두 장소는 한 몸처럼 협력한다. 카운터 앞에는 동물 보호법 개정, 동물 학대 실태조사, 전국적인 동물 구조 보호소 건립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보호 운동을 전액 후원하는 기부 박스가 마련되어 있다.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유기동물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대학생 프로젝트 팀들을 홍보해주기도 하고 식물성 식품을 판매하기도 하는 그야말로 ‘소셜 클럽’의 모범답안이다. 또한 땡큐센터가 정기적으로 주최하는 유기견 산책 봉사활동의 참가자들은 매회 ‘공존’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이 행사는 지난 3월 27일 목요일로 벌써 38회를 맞았으며 참가자 모집은 ‘소셜 다이닝집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동물 보호운동을 전액 후원하는 기부 박스와 식물성 식품들이 가득한 선반. 식품 선반의 옆에는 유기동물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 대학생 모임들의 포트폴리오, 책자들을 전시하는 전용 선반을 두어 적극적으로 홍보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메뉴가 비건 식단으로 구성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전부 ‘풀, 풀, 풀’이라고 판단한다면 오산이다. 우엉 토마토 파스타, 훈제 두부 샐러드, 막장 알리오 올리오파스타, 인도달커리 등 이탈리안 전문 레스토랑 못지않은 다채로움을 뽐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시선을 잡아 끄는 요리가 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스테이크 버거’다. 명색의 비건 카페인데 스테이크라니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포크, 나이프와 함께 접시 위에 놓인 스테이크 버거. 조금 더 확대해 보니 빵 위에 샐러드, 스테이크, 토마토, 파프리카, 호박, 피클 등이 겹겹이 쌓여있다.
외관은 우리가 자주 먹는 수제버거와 아주 흡사하다. 빵을 들어보니 구운 햄, 치킨, 치즈의 자리를 두툼한 파프리카, 피클, 호박, 가지가 대신했다. 빵과 스테이크를 이들과 함께 알맞게 썰어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금방 이 채식버거의 독특한 매력에 빠지게 된다.

공존의 스테이크버거의 안에 들어 있는 패티를 클로즈업해 촬영한 사진. 버섯, 현미, 밀을 넣고 빚은 패티인데 일반적으로 접하는 햄버거의 패티와 비슷한 모습이다.이 스테이크의 내부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채식버거에 대해 가장 궁금한 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허겁지겁 스테이크부터 갈라 음미해본다. 버섯, 현미, 밀을 다져서 빚은 패티의 맛은 육즙이 흐르는 고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비건 메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일반 고기로 착각할 정도. 덕분에 채식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육류 섭취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메뉴라고 한다.

말로만 주장하는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 아니라 실천과 나눔을 통해 적극적으로 그 의미를 실천해가는 소셜 클럽 ‘공존’. 굳이 채식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동물을 진정 아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러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

Location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267-2
Price 스테이크 버거 7500원, 음료는 4000~5000원, 채식 메뉴는 5000~8000원대.
Open 오전 10시~오후 10시
Info 070-5201-5999
Tip 애견 출입이 가능한 카페이다. 공간이 널찍하니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함께 방문해보자.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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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로 ‘카페 마노’ 갔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 좋았어요. 다른 곳도 꼭 가볼게요!!
  • 최동준

    이렇게 채식주의 메뉴로 유명한 곳들이 많았네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한번쯤(?)..은 가볼만 하겠어요:) 그래도 여전히 고기 생각이 먼저 나지만요ㅎ
  • 힘내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상수동 저기 진짜 가보고싶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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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휘주

    그렇죠?ㅎㅎ분위기도 그렇게 음식도 그렇고 짱짱이랍니다!!

  • 가을바람

    다시 채식주의자가 되고싶은데 ㅠ 힘드네요. 기사중에 안가봤던 곳~ 꼭 가봐야겠어요.
    댓글 달기

    이휘주

    요즘에는 비건의 첫 단계부터 돕는 채식주의 전문 레스토랑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맛있는 곳 골라 골라 꼭 가보시기를~

  • 오 이런 카페가 있었다니 다음에 꼭 가봐야겠어요. ^^ 좋은 카페소개 감사합니다~
    댓글 달기

    이휘주

    vegan분들은 물론이고 non-vegan분들이 가셔서 채식을 경험해보기에도 좋은 곳들이더라고요! 특히 첫번째 슬런치팩토리는 강추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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