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사랑도 아닌, 나의 사랑을 위해서

가수 박진영은 사랑을 예찬한다. ‘돈, 명예,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 낫더라’고(‘사랑이 제일 낫더라’ 중). 누구라도 이 말에 동의하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사랑이 무엇일까? 그리고 왜 사랑이 무엇보다 낫다는 걸까?

강의의 시작을 알리는 이남석 강사. 어느 서점으로 보이는 곳에서 희끗한 머리카락에 안경을 쓰고 검은색 점퍼를 입은 그가 마이크를 들고 있고 그의 뒤로 보이는 큰 화면 속에는 '사랑의 인문학'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강의명 ‘사랑의 인문학’ – 대중가요로 살펴보는 사랑의 인문학
강사명 심리학 박사 이남석
강의 일시 2014년 3월 8일 토요일
강의 장소 길담서원(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155
사랑,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인류의 역사는 사랑과 함께 이루어졌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방식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과거에도 인간은 사랑을 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사랑을 나눌 것이다. 하지만 성교육, 연애교육은 받아 봤어도 사랑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과연 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공기, 흙, 물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않듯이, 우리는 너무 가까웠기에 사랑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수많은 영화와 노래가 전하는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받고 즐거워하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은 무엇인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욕망에 꼭 들어맞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연과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그리고 어쩌면 얼마나 많은 탐색이) 필요했던가! 바로 거기에 내가 결코 열쇠를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가 있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중

이제 그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 나설 차례다. 내 욕망은 무엇인지, 그 욕망에 들어맞는 이미지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이 얼마 많은 우연과 필연이 있었는지 말이다. 심리학자 이남석 씨가 그 여정의 안내자 역할을 맡아 ‘대중가요’라는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가깝게 느꼈지만 사실은 잘 몰랐던 사랑과, 멀게 느꼈지만 사실은 우리 옆에 있었던 인문학을 찾아서 말이다.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강연은 일방적인 강사의 강의로 이루어지는 형태가 아니었다. 자리에 참석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청한 노래를 함께 듣고, 함께 생각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객석의 누군가가 신청한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면, 그 순간 노래에 얽힌 각자의 기억과 사연이 장내를 감싼다. 그 순간 노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배경음악이 아니었다. 노래만이 가진 묘한 매력이었다.

이남석 강사가 마이크를 들고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의 앞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뒤로 보이는 큰 화면 속에는 '사랑의 인문학'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가수 이적의 노래 ‘사랑이 뭐길래’를 신청했다. 강의 시작과 어울리는 밝은 노래였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 걸까 아님 그냥 호기심일까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덥석 껴안고 한참을 그대로 있어 봐도 잘 모르겠어 사랑이 뭐길래…” 사랑이 주는 설렘과 궁금증에 관한 노래였다. 이남석 박사는 이를 두고 ‘엄밀히 말하자면 사랑에 관한 노래는 아니다’고 말했다. 혼란과 확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 예상치 못한 답변에 궁금증과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많은 사람이 의욕적으로 손을 들고 곡을 신청했다. 쉽게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틀린 답은 아니었다. 각자의 사연과 생각이 담긴 노래가 쌓일수록 사랑에 대한 생각과 고민도 깊어졌다.

가수 김종국의 노래 ‘사랑스러워’를 신청한 사람도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네가 나의 여자라는 게 자랑스러워~ 기다림이 즐겁고 이젠 공기마저 달콤해 이렇게 너를 사랑해” 노래가 끝나자 강사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시작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 노래에서는 사랑스럽다고만 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아요. 듣기 좋은 말을 한다고 해서 사랑은 아니에요. 사랑은 동사죠. 실천이 없으면 공허한 얘기에 불과해요. 인문학도 마찬가지예요. 책을 보고 익혔으면 행동으로 옮겨야 해요. 알면 알수록 고민은 많아지고, 어쩌면 많이 아는 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제가 이렇게 독설을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조금이나마 고민을 하고 반성을 하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그간 사랑을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사랑이 주는 달콤함은 분명 환상적임에 틀림없지만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지금의 현실과 사회에 두 발을 붙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가장 현실적이고 사회적이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사랑은 영화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대중가요 역시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명세와 음악적 완성도가 아닌 노래의 어떤 부분을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 나에게 어떤 성찰을 주는지 고민해 보는 일이 아닐까.

“밝음을 나누는 사랑과 어둠을 나누는 사랑이 있어요. 둘 다 아픈 사랑은 위험해요. 어떻게 밝음을 나눌지 모르거든요. 각자의 가슴에 칼이 있는데 계속 붙으려고 하면 안 돼요. 서로를 찌를 뿐이죠. 사랑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내 인생도 중요하지만 사랑을 나누는 상대방의 인생도 중요해요.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으로 믿으면 서로 상처를 받잖아요. 조건에 맞지 않으면 냉정하게 결정을 내려야 해요. 그러면서 계속 자신만의 조건을 추가하는 거예요.”

사랑, 사랑이란 무엇일까?
한 개의 육체와 영혼이 분열할 때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염, 기타 각 원소로 환원하려고 할 때
그것을 막는 것이 사랑이다.
–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

전혜린 작가의 말대로 사랑은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무엇일지 모른다.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 하지만 위대한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사랑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치열한 고민이다. 나와 상대방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한 고민. 책과 강의를 통해 머릿속의 빈틈이 하나 둘 메워지듯, 사랑의 빈 칸 역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 그 답은 자신에게 있다.

인문학, 사랑으로 가는 우회로

두 시간 남짓의 강연은 끝나고 이남석 박사를 향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자리에 있는 모두가 철학자였고 자신과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Q.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요?

“인문학은 민주적이에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심입니다. 확신하려고 인문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기 위해 인문학을 하는 거예요. 머리로 꼼꼼히 따져본 후 의심을 견뎌냈다면 가슴에 새기고 발로 옮기는 겁니다.”

Q. ‘썸 타다’, ‘밀당’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그만큼 20대가 사랑을 어려워하고 사랑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뜻일 텐데요. 사랑에 고민하는 20대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해결책은 똑같아요. ‘기대가 경험을 이긴다.’ 버나드 쇼가 했던 말입니다. 아파도 감내해야겠다면, 알아내려면 도전할 수밖에 없는 거죠. 후회는 두 가지로 나뉘어요. 도전하지 못해 남는 사전 후회, 그리고 해 보고 난 후에 하는 사후 후회가 있습니다. 사전 후회가 더 상처가 커요. 끝이 없기 때문이죠. 사후 후회는 시행착오를 남겨요. 그게 다 경험이고 배움이죠. 끝이 있어요. 실패는 생각하는 것만큼 무시무시하지 않습니다. 감내하고 도전해야 해요.”

Q. 감명 깊게 읽으신 책 중 몇 권을 꼽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많은 책이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이 두 권은 읽을 때마다 저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져요. 결국 좋은 책이란 독자에게 좋은 질문을 하는 책이 아닐까요.”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인생 공부’, 당연한 말이지만 인생이 무엇인지 어떤 인생을 살 지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사랑이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사랑은 제일 앞쪽에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따라서 우리는 인생에 대한 공부는 물론이고 ‘사랑 공부’를 해야 한다. 사랑에 대한 공부가 곧 ‘인생 공부’일지 모른다. ‘사랑 공부’에 도움이 될만한 몇 권의 책을 뽑아봤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리퀴드 러브' 책 표지. 한 남자가 담배 파이프를 물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모습의 일러스트 그림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리퀴드 러브』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 중 한명인 지그문트 바우만이 쓴 사랑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서다. 최근 두드러진 개인화, 파편화 현상은 사랑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표류하는 사랑, 우리의 사랑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남석의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 책 표지. 일러스트로 남녀, 그리고 청소년들 여러 명의 그림이 컬러풀하게 그려져 있다. 이남석,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
청소년에게 사랑은 더 이상 어색하거나 창피한 일이 아닌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청소년의 사랑에 대해 물어야 할 시간이 아닐까. 이남석 심리학 박사가 청소년의 사랑 멘토 역할을 맡았다. 훈계하고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과 같은 눈높이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책 표지. 흰색 표지 위에 황토색 단추 두 개,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실이 보인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연애 기술을 말하는 책이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저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사랑의 종류와 사랑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현대의 사랑에 대한 분석이 돋보인다.
 에바 일루즈의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 책 표지. 분홍색 바탕 위에 장미꽃 하나가 흑백으로 놓여 있는 모습이다. 에바 일루즈,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만난다는 점에서 사랑은 가장 사회적인 일일지 모른다. 제대로 된 사랑을 위해서는 서로의 환경과 그 주변과 매개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사랑에도 사회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감정사회학의 대가 에바 일루즈가 그 길을 안내한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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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입부가 좋으네요ㅋㅋ 박진영의 노래 중에 저 노래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한번 들어봐야겠어요~ 언젠가 '사랑'에 관한 글을 쓸 때 저 도입부 활용하고 싶을 정도로 뭔가 임팩트 있고 좋아용ㅎㅎㅎㅎ 사람들은 사랑이야기를 듣거나 보거나 또는 직접 하면서 사랑의 '정의'를 내리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이런 강연이 좀 더 생겨나면 좋을듯! 저도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이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 반가웠어요!ㅎㅎ 앞으로 전공공부하다가 지칠때 종오기자님이 추천해주신 책들로 사랑공부해야겠어요~ 좋은 기사 감사함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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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오

    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 저도 항상 공부를... 근데 저 책들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는 게 문제네요 ㅠㅠ

  • 가을바람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 왜 예전에는 몰랐을까요. 어떤 것보다도 질적으로 풍부한 노력이 필요한 사랑에 대한 공부와 노력. 기사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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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오

    감사합니당~
    어쩌면 정말 너무 당연시 여겨져서 공부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 이지예

    '대중가요로 보는 사랑의 인문학'이라니! 사랑, 인문학이란 키워드 모두 일상에 가깝지만 실천하긴 어려운 주제네요..!
    연사님 말씀 중 '좋은 책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최근 질문을 남긴 책이 있는데, 역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엔 용기와 상처받을 준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_^ 물론 사랑과 인문학도요..! (근데 왜 쓰면서 눈물이 나,..려고 하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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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오

    사랑을 통해서 대중가요를 바라보는 게 참 좋았어요. 그리고 좋은 책은 좋은 질문을 책이라는 말씀도 항상 기억하면 좋을 듯 해요ㅋㅋㅋㅋ
    저도 댓글을 쓰다보니 누..눈물이...ㅋㅋ

  • 최동준

    종오 기자님, 기사 잘봤어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만큼 사랑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이 와닿네요:) 추천해 주신 책 모두 욕심나요!! 시험공부 대신에 사랑공부에 매진하고 싶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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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오

    ㅋㅋㅋㅋ저..저도.. 근데 시험공부 보다 어려운 듯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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