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튀니스까지, 낯선 곳을 여행하는 색다른 방법

에세이 ‘도시와 나’의 표지를 촬영한 사진. 책상 위에 놓인 ‘도시와 나’ 책 안에는 회색 바탕에 땡땡이 두건을 쓰고 주황색 원피스를 입고 작은 배낭을 멘 한 소녀가 두 팔을 넓게 벌리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도시와 나’라는 도서명이 쓰여 있다.
일곱 명의 소설가가 소개하는 일곱 도시의 색다른 매력. 구구절절 여행기가 아닌, 단편소설로 만나는 도시의 모습은 얼마나 매력적일지.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생경한 도시 한가운데를 마음껏 거닐어 보자.

에세이가 아닌 소설로 만나는 여행지

하늘 위에 비행기 하나가 떠 있다. 비행기는 한쪽 날개만 음영으로 보이고, 비행기 날개 위아래로 하늘의 색이 위쪽은 짙은 푸른색, 아래쪽은 노을이 지는 붉은색으로 묘하게 바뀌고 있다.
재미있었던 하루의 경험과 선명한 레스토랑, 카페의 이름들, 그리고 잘 찍힌몇 장의 사진들. 여행 에세이가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나도 명확했고, 간단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여행지로 이끄는 것은 대강 찍힌 한 장의 사진, 혹은 불확실한 어떤 상상들이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야기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낯선 곳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신생 출판사 ‘바람’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도시와 접촉하길 바랐다. 뻔한 이야기에 기대기보다 막연한 인상과 기대감으로 도시를 상상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더불어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해 버린 외국작가들만큼이나 국내에도 뛰어난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기도 했다.

네 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네 도시 이야기

도시와 나’의 북콘서트에서 촬영한 네 작가의 사진. 왼쪽부터 백영옥, 서진, 한은형, 윤고은 작가가 나란히 남색의 테이블보가 둘러진 테이블 앞에 나란히 앉아 있고, 윤고은 작가가 마이크를 들고 무언가 말하고 있다.

한은형 작가가 북콘서트강연단 테이블에 앉아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짧은 커트머리의 그녀는 갈색 가죽재킷 속에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1. 한은형 작가 :튀니스에서 만난 붉은 펠트 모자

이번 ‘도시와 나’에서 백영옥, 서진, 한은형, 윤고은 작가는 각각 뉴욕과 캘리포니아, 튀니스와세비야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다. 직접 가 보기도 하고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상상해서 쓰기도 했다. 한은형 작가는 튀니지에서 생활하던 지인이 튀니스 이야기를 할 때마다 흥분하는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이면서 유럽인 곳, 이슬람 국가지만 여자들은 노출을 즐기고 심지어 아무렇지 않게 술을 사 마실 수 있는 나라였다.

“한 서양인이 쓴 견문록을 읽게 되었는데, 튀니스 사람들은 ‘체치아’라는 붉은색 펠트 모자를 쓴대요. 게다가 재스민을 귀에 꽂기까지 한다더라고요.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이 모자를 쓰면 우리도 유럽인처럼 보일 거야’라는 헛된 기대감을 표현해주는 것 같다며 참으로 촌스럽기 그지 없는 그 모습을 비아냥거리고 있었죠. 거기에 반감이 들었어요. 그들에게는 소중하게 지키고픈 그들만의 미적 감각일 수 있잖아요.”

북콘서트강연단 테이블에 앉아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고 있는 윤고은 작가. 긴 생머리에 큰 링귀걸이를 한 그녀는 목 부분이 살짝 보이는 검은 터틀넥 티셔츠를 입고 있다.#2. 윤고은 작가 :아버지를 찾아 떠난 세비야에서 콜럼버스를 만나다

반면 윤고은 작가는 스페인을 직접 여행하면서 막바지에 잠시 들른 세비야의 모습을 인상 깊게 소개했다. 특히 더위를 피해 낮잠에 빠지는 시에스타라는 시간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갑자기 도심이 한적해지면서 건물들은 진공 청소기처럼 내부로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또한 시에스타의 태양은 햇빛만으로도 귀와 눈을 멀게 할 만큼 강렬했다. 더불어 세비야의 대성당에 묻혀 있는 콜럼버스의 무덤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를 끌었다.

“몇 해 전에 국제적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콜럼버스의 관을 열어 뼈를 꺼내고 DNA 조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무덤의 주인은 사실 콜럼버스가 아니라는 루머가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해두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콜럼버스와 비슷한 성을 가진 유럽인들을 상대로 DNA를 채취해서 콜럼버스의 후손이 누구냐를 밝히려고 했어요. 결과는 실패였어요. 뼈가 너무 오래돼서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거든요.”

그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한 과학자는 ‘과학은 시간으로 완성된다’는 말을 남겼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과학이 더 발전된다면 그 때 또 기회가 있길 바란다는 약간 허무한 결론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처음부터 정답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는 윤고은 작가. 소설 속 주인공이 주소 하나만 들고 아버지를 찾기 위해 세비야 곳곳을 헤맸던 행위 자체가 주인공에겐 깨달음이자 성숙의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서진 작가가 북콘서트의작가 자리에 앉아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 검은 재킷 안에 분홍색 셔츠를 입고 있는데, 체크무늬의 중절모가 눈에 띈다.#3. 서진 작가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여행을 꿈꾸다

수없이 많은 곳을 다녔고 꽤 오랜 시간 머물기도 했던 서진 작가는 ‘캘리포니아 드리밍’이라는 소설로 한 남녀의 이야기를 그려 냈다. 언제 어디서 일어났다고 해도 별 이질감이 없을 평범한 이야기는, 여행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투영된 결과물이기도 했다.

“사실 저는 짧은 여행을 즐기지 않아요. 어디에서고 두세 달 이상 머무는 걸 좋아하죠. 낯선 곳에서 머물다 보면, 평소엔 하지 않던 고민들을 하게 됩니다. 당장 어디에서 잠을 청하고 무엇을 먹어야 할 지 등등. 짧은 여행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커다란 숙제들이 되는 거죠.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사람들은 매일 장을 보고 우유 값이 얼마인지를 계산한다는 사실을요. 결국 여행은 공통점을 찾기 위한 방황이 아닐까 생각해요.”

북콘서트 작가 자리에서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고 있는 백영옥 작가. 검은 가죽재킷에 회색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있는 그녀는 방울이 길게 늘어뜨려진 아이보리색 니트 모자를 쓰고 있다.#4. 백영옥 작가 :뉴욕, 그 남자네 집

백영옥 작가가 뉴욕을 여행하던 2012년은 하필 최악의 허리케인 ‘샌디’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주유소마다 수백 미터씩 차들이 줄을 서고 마트는 진열대마다 텅텅 비어 살 물건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직 허리케인이 맨해튼을덮친 것도 아닌데, 두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재기를 하도록 부추겼다. 그런 그녀에게 뉴욕은 ‘골 때리는’ 도시였다. 약 2주간 집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며 이 소설을 썼던 백영옥 작가는, 소설의 배경이 집이 된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서블렛(sublet)’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등장해요. 주로 유학생들이 집을 빌렸다가, 자신이 집에 없는 동안 단기로 다른 여행객에게 세 놓는 경우를 말하죠.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남에게 빌려 준다는 개념이 독특하게 느껴졌어요. 소설 속 여인은 자신이 짝사랑했던 남자의 집에 서블렛으로들어가 그의 기록을 찾는데, 결국은 그가 사랑했던 여자에게 동화되어 가요. 연애소설로 보이지만 실은 관계 속의 공감, 유대를 표현한 작품이에요.”

낡은 운동화를 신고 떠나는 나만의 여행

우리들 대부분은 도시의 삶을 살아 간다. 크든 작든, 도시라는 단어가 주는 특유의 숨가쁨, 삭막함은 아마 누구나 공감할 공통의 느낌일 것이다. 똑같은 지도와 사진으로 ‘거기에 그것이 분명 있다’는 사실만 확인시켜 주는 에세이로는,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없다. 때로는 목적 없이, 계획 없이, 이제는 사라져버린 오래된 주소만 손에 쥔 채 훌쩍 떠나 보는 건 어떨까. 나만이 정의할 수 있는 도시의 또 다른 면면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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