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달팽이를 찾아서

속도의 우월함도, 편리함도 좋지만 어느 순간 너무 빠른 그 템포가 지겨운 순간은 없었는가? ‘빠르게, 좀 더 빠르게’만을 강조하다 그냥 지나쳐버린 순간이 아쉽지는 않은가? 허둥지둥 고삐를 조이며 지내다 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던 그대, 지금은 조금씩 속도를 낮춰야 할 때, 잊혀진 느림의 미학을 위하여.

남들보다 느리게 살면 그만큼 뒤처지고 손해 볼 것만 같은 세상, 무조건 ‘빨리빨리’를 외치며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현대인들. 그런데 이 속에서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가는 이들이 있다면? 꼭 어떤 단체에 가입해서 사회적 운동을 벌이지 않더라도, 실생활 속에서 느림의 가치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통해 당신의 달팽이를 한번 찾아보자.
애니메이션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의 한 장면. 학교에 가는 듯 뒤에 보라색 백팩을 멘 노란 달팽이 한 마리가 급하게 달려가는 듯 기어가고 있다. 그의 뒤로는 학교 건물과 정원, 나무 등이 보인다.

느림과 함께라면 세상은 너무 아름답죠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느낌을 설명할 때면 늘 빠지지 않는 단어, ‘빨리빨리’. 이러한 외국인들의 시선처럼 언젠가부터 우리나라는 ‘빨리빨리’ 사회의 표본이 되어버렸다. 어딜 가야 할 때도 빠르게 이동하고, 음식을 먹을 때도 빠르게 먹고, 일할 때도 빠르게 행동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시되고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면 몸은 편할 수 있지만, 마음은 어찌된 일인지 불안해진다.

이 불안감에 맞서 일상 속 작은 실천을 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이를테면 이동할 땐 엘리베이터대신 계단 이용하기, 음식을 먹을 땐 이른바 ‘폭풍흡입’보다는 천천히 씹어 먹기, 사진을 찍을 땐 DSLR 카메라 대신 필름 카메라 사용하기. 특히 가까운 거리는 승용차나 대중교통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집에서 서울시에 있는 학교까지 꽤 먼 거리임에도 등하굣길에 가급적 자전거를 탄다는 이상욱 씨(27세,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는 자전거를 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중인 이상욱 씨의 모습. 왼쪽 사진은 하얀색 큰 바퀴의 자전거 위에 패딩 점퍼와 트레이닝 복을 입고 백팩을 맨 이상욱 씨가 후드 모자를 뒤집어 쓰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그가 자전거 타는 중 촬영한 사진으로, 주황색과 초록색이 섞여 있는 자전거 도로 양 옆으로 푸른 풀들이 우거져 있는 모습이다.

“자전거를 타면 얻을 수 있는 장점들이 많아요. 땀에 흠뻑 젖은 나를 맞이할 때의 성취감에 그 어느 때보다 포근한 잠자리를 청할 수 있게 됐고, 반복된 페달을 밟는 활동을 하며 평소 가지고 있던 고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됐죠. 또 평소에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길이었는데, 한강을 따라 직접 바람을 느끼며 달려보니 버스를 타고 감흥없이 바라보던 창문 밖 세상보다 훨씬 더 아름답더라고요.”

돈을 아끼기 위해서도 아니고,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고, 느리게 가면서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버스가 아닌 자전거를 선택했다는 이상욱 씨. 그 선택으로 인해 따라오는 육체적, 경제적 효과는 덤이다. 이처럼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느림’을 따르는 달팽이들을 더 만나보자. 이번에 소개하는 달팽이들은 더 느리고 더 강력하다.

즐거운 달팽이들,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림을 실천하다

즐거운 달팽이 case 1. 김지호 씨
나이 22세
소속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재학
특징 스마트폰 시대에 일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중

스마트폰 가입자 3000만 명 시대, 이젠 스마트폰이 없으면 남들과 빠르게 소식을 주고받는 게 불가능한 시대이다. 그런데 이에 반기를 드는 이가 존재했으니, ‘핸드폰을 없애면 없앴지, 스마트폰으로는 절대 바꾸지 않을 거다’라고 당차게 말하는 김지호 씨의 ‘이유 있는 항변’을 들어보자
2G 폰을 사용하고 있는 김지호 씨의 모습. 왼쪽 사진은 그녀가 책상 앞에 앉아 폴더 폰을 들고 문자를 보내듯 두 손으로 휴대폰을 감싸쥐고 있는 모습이다. 그녀는 흰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휴대폰 화면 속 모습으로, 청록색으로 된 플라스틱 휴대폰 바디 안에 세로로 긴 모양의 폴더폰 액정 화면이 보인다. 화면 속에는 ‘받은 메시지’ 창이 떠 있고, 언니로부터 받은 메시지가 들어 있다.

유이정 기자가 김지호 씨와 주고받은 문자들. ‘테마리포트김지호’라고 쓰인 문자 창에 유이정 기자가 ‘인증샷이 여러 개 있으면 좋을 것 같거든요! 문자나 메일로 보내주심 되고 사진 없으시면 그냥 지금 사용하는 핸드폰 사진 보내주심 고맙겠습니당 ㅠoㅠ’라고 보냈고, 김지호 씨가 ‘사진 보내드릴 수 있는데 저녁에 엄마 스마트폰으로 보내드려도 될까요? 죄송해요 ㅠ_ㅠ’라고 답장한 모습, 다시 유이정 기자가 ‘아아 사진은 오늘 안에만 보내주심 되어요! 기사는 이제 제가 쓰고 나중에 사진 첨부하면 되니깐요! 이런 것 감수해도 저도 일반폰이 더 좋은 것 같아요ㅋ’라고 답장한 문자 메시지들이 보인다.  럽젠Q 스마트폰 시대에 일반 휴대전화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스마트폰을 쓰면 여유를 잃는 것 같아요. 이동 중에도 주변 경치를 즐기거나 책을 볼 수도 있는 건데, 스마트폰이 있으면 그걸로 의미 없는 기사나 영상을 보고 있더라고요.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면서 여유를 즐기려고 아직까지 일반 휴대전화를 쓰고 있어요.”

럽젠Q 일반 휴대전화를 쓰시면서 자신이 느리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시나요?

“진짜 단어 그대로 ‘느리다’라기 보다는 스마트폰 어플 등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편리함을 잘 모른다는 느낌을 받아요. 예를 들면 사람들은 궁금한 게 있거나 모르는 게 있으면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잖아요. 반면에 저는 몇 번 더 생각을 하게 되고 정 궁금하면 컴퓨터를 켜서 알아보곤 하거든요. 친구들이 신기한 어플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아도 흥미가 전혀 생기지 않아요.”

럽젠Q 세상이 빨리빨리 돌아간다고 느끼시나요? 그렇다면 언제 가장 그런 생각이 드세요?

“TV광고를 보면 ‘이 LTE가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 이 스마트폰은 1초에 노래를 몇 곡 다운을 받는다’ 등의 이야기를 하잖아요. 솔직히 이런 게 왜 그렇게 필요한가 싶어요. 만약에 현대인들이 그런 찰나의 순간을 아껴서 더욱 더 좋은 곳에 쓰고 그 시간을 자기 개발에 투자한다면 기술 발달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그렇게 시간을 아껴봤자 다들 그 시간만큼 더욱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가족들과 대화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여유를 즐기지는 않잖아요. 기술을 이용해서 빨리빨리 해결하지 않아도 천천히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이 충분히 많고요. 또 그런 기술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 뒤쳐지거나 고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내 의지가 있다면요.”

즐거운 달팽이 case 2. 여은혜 씨
나이 36세
소속 서울여자대학교 재직
특징 아파트 베란다에 텃밭을 키우는 중
여은혜 씨가 키우는 방울토마토의 모습. 왼쪽 사진은 다소 덜 익은 방울토마토의 열매 사진으로, 스티로폼 박스 안에 흙이 담겨 있고 그 위에서 자라고 있는 방울토마토가 열매의 형태를 갖춘 모습이다. 열매 색은 연두색이다. 오른쪽 사진은 같은 방울토마토가 더 익었을 때의 모습을 찍은 것으로, 주황빛을 띄고 있다.
여은혜 씨의 아파트 베란다 안에서 자라고 있는 고추 사진. 스티로폼 박스 속에 흙과 함께 담긴 고추의 줄기가 보이고, 줄기가 뻗어 나온 끝에는 빨간 색으로 된 고추 하나가 매달려 있다. 럽젠Q 언제부터 베란다에 텃밭을 키우셨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올 봄부터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키우고 있는데요. 아파트에 살면서 흙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너무 삭막하다고 생각했던 터에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모종을 가져오라고 하더라고요. 각자 원하는 모종을 가져와서 어린이집 마당에 심었는데, 이때 ‘우리 집에서도 키우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때부터 저희 집 베란다에 텃밭을 만들어서 고추와 방울토마토 모종을 키우고 있어요. 작물들을 키우며 하루하루 커가는 걸 기다리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빨리 자라지 않아도,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럽젠Q 앞으로도 계속 키우실 건가요?

“물론이에요.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식물들이 더 잘 자라겠지만, 아파트에서도 최대한 햇볕을 많이 쬐어주고, 적절하게 물을 주면서 계속 키울 생각입니다. 농약을 치지 않아 빨리 자라지는 않지만 저는 오히려 그게 좋아요. 어느 날 문득 고추나 방울토마토 열매가 열려 있는 걸 보면 무척 반갑고, 열매들이 기특하기까지 하더라고요.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결실은 그 기쁨이 두 배예요.”

럽젠Q 느리게 사는 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우리들은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화하는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물론 신기술이 주는 편리함과 이로움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참 무서운 일이죠. 이럴 때일수록 너무 앞만 보지 않고 우리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바쁘고 정신 없는 삶 속에서도 자연 그리고 여러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소통하면서 조금은 여유 있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잠시나마 쉬어가면 좋겠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지금까지 소개한 이들 중에 어떤 달팽이가 마음에 드는가? 이들을 통해 당신도 숨겨왔던 달팽이를 찾고 싶은가? 아니면 여전히 토끼처럼 빠르게 달려가고 싶은가? 빠름과 느림, 무엇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빠르게 가더라도 때론 쉬어가는 게 필요하다. 동화 ‘토끼와 거북이’의 결과가 괜히 그런 건 아닐 테다. 잠시 숨을 고르고 돌아보자.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나.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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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와 ㅎㅎ달팽이가 키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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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이정

    ㅋㅋㅋㅋ한번 키워보세요

  • 달팽이 귀엽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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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이정

    ㅋㅋ빨리 가고 싶어하는 달팽이죠

  • ㅅㄲㅇ

    영화보러 갈 때 저는 거의 걸어가는 편이에요 한 40분 정도 걸리죠
    근데 친구들은 절때 걸어가지 않아요 항상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죠
    조금 빨리 나와서 걸어가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다양한데도
    항상 친구들은 상영시간보다 30분은 일찍 가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더라구요ㅋㅋ
    얘기 할 것도 아니면서 왜 빨리 가야하는 건지.. 걸어가다보면 예전에 보지못한 바뀐 풍경도 볼 수 있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볼 수 있는데 참 아쉬워요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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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이정

    40분을 걸어다니시다니.. 정말 대단해보여요*.* 저도 걸어다니고 싶은데 춥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택시를 한번 타 버릇하면 너무 편하더라고요ㅎㅎ 걸어다니면 맑은 하늘도 볼 수 있는데 말이죠! 저 스스로도 많이 깨달은 기사예요!

  • 맞아요 이정기자님! 저도 스마트폰을 갖고는 있지만 2013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고아라폰 유저였는데 말이죠ㅎㅎ핸드폰을 세탁기에 빨아버리는(;)당황스러운 사건때문에 바꾸게 되었어요.알바하면서도 휴식시간에 모두 스마트폰으로 의미없는 터치를 하는데 휴식이 아닌 것 같고 더 피곤하더라고요. 요즘에 충전기가 고장나서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도 충전하기 어려워지니까 좀 더 저 자신의 온전한 세상이 생기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아요.결국에 스마트폰은 다른 세상,정보,사람들과의 연결인데 나 혼자있어야 하는 시간에도 연결이 계속된다면 정말 지치는 것 같아요.공감되는 주제의 기사 잘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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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이정

    우와우 2013년 상반기에 스마트폰으루 바꾸셨다니! 여기 느린 달팽이가 또 있었네영~! 저도 그래요. 특히 스마트폰 카톡 감독이란..^^;; 스마트폰 때문에 자신만의 시간이 없어진 게 분명해요ㅠㅠ 스마트폰과 함께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순 없는 걸까용~!?

  • 빠르기만 하다고 좋은 건 아닌것 같아요 여유를 갖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몬스터 주식회사 달팽이 사진 귀여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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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이정

    요즘 참 생각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부족한 때이죠? 이럴 때일수록 느리게 가보아요 우리! 어려운 일이지만! 몬스터주식회사의 달팽이처럼용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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