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함께 하는 영국 속 소울메이트 이야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세 개 나란히 나열되어 있는 모습. 왼쪽 사진은 폴 고갱의 자화상, 가운데 사진은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오른쪽 사진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이다.
흔히 영혼의 동반자를 일컬어 ‘소울메이트’라 칭한다. 런던에서는 예술의 도시라는 별칭을 스스로 입증하듯 곳곳의 갤러리와 박물관에서 영혼을 공유한 소울메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흐와 고갱,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음악과 미술의 빛나는 하모니를 발견해 보자. 예술과 사랑, 음악이 공존하는 영국 속 소울메이트들의, 그동안 꽁꽁 감춰졌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시작된다.

고갱 & 고흐 : 내셔널 갤러리에서 만난 소울메이트
아를에 오지 않겠습니까? 여기 아주 훌륭한 아틀리에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집의 외벽은 금방 만든 버터의 노란색이고 창틀은 진한 녹색입니다. 내부는 모두 흰색이고 바닥에는 붉은 타일을 깔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 고흐가 고갱에게 보낸 편지 中

반 고흐의 작품 ‘노란 집’. 푸른 하늘과 노란빛의 땅이 보이고, 가운데에 노란색의 집이 서 있다. 집이 여러 채 서 있는데, 가장 앞에 보이는 집은 노란색 벽에 벽마다 창문이 네 개씩 나 있는 이층집이다. 아를의 노란 집. 고흐와 고갱의 짧았던 동거가 이뤄졌던 곳이다. 생전에 동생 테오가 아닌 누구에게도 단 한 점의 그림을 팔 수 없었던 고흐는,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가들로 이루어진 낭만적 공동생활을 꿈꾸었다. 고흐의 제안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마침 파리에서의 생활이 궁핍하게 되었던 고갱이 고흐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둘의 공동생활은 시작된다. 고흐는 이 사실에 꽤 들떴고, 고갱을 맞이하기 위해 노란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해바라기를 장식했다.

고흐와 고갱의 동거 당시 작품들. 왼쪽 사진은 반 고흐의 ‘지누부인’으로, 어느 카페에서 한 여인이 테이블 앞에 앉아 턱을 괴고 앞에 책을 펼쳐두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폴 고갱의 ‘밤의 카페, 아를’로 왼쪽의 고흐 작품과 비슷한 여인이 테이블 앞에서 턱을 괴고 앉아 약간 옆을 바라보고 있다. 대신 고갱의 작품과 달리 그녀의 뒤에서 시끌벅적하게 유흥을 즐기고 있는 다른 손님들이 많이 보인다.
희망에 부풀어 시작했던 그들의 동거는 처음엔 꽤 달달했다. 함께 야외에 나가 풍경화를 그리기도 하고, 같은 대상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고,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 곳곳에서 미묘하게 어긋난 서로에 대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고흐가 자주 찾았고 <밤의 카페>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아를의 한 카페 여주인 ‘지누 부인’의 초상이다. 고흐는 강렬한 배경과 확실한 인물 묘사로, 그녀의 모습을 지적이며 우아하게 그려냈다. 반면 고갱은 술집에 앉아 술잔을 앞에 둔 채, 뒤편으로 보이는 주정뱅이 손님들을 은근히 내려다보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나타냈다. 고흐의 그림에 비해 주인공에 대한 배려가 조금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그림 속 주정뱅이 손님들은 실제 고흐의 친구들이 그 모델이었다. 지누 부인의 시선은 고흐를 향하는 고갱의 시선이기도 했을 것이다.

폴 고갱의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고흐가 앉은 채로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모습으로, 고흐는 한 손에는 팔레트를 들고 한 손에는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의 팔레트 앞쪽에는 시들시들한 해바라기 화병이 놓여 있고, 그의 붓 앞에는 이와 흡사한 해바라기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많은 미술사학자들은 고갱이 고흐에 대해 약간의 우월감을 지니고 있었다고 추측한다.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를 살펴보자. 그림 속 고흐의 얼굴은 행복이나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초췌하기 그지없는 표정의 고흐는 다 시들어버린 해바라기를 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흐의 상징이기도 한 해바라기는, 노란 집으로 올 고갱을 위한 고흐의 선물이었다. 자신을 위한 꽃을 화폭에 담는 고흐의 모습을 고갱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다.

반 고흐의 작품 중 ‘고흐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 왼쪽 작품은 ‘고흐의 의자’로, 노란색의 딱딱한 쿠션과 나무로 이루어진 의자가 붉은빛 타일 바닥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작품은 ‘고갱의 의자’로, 붉은색 나무에 초록색 푹신한 쿠션으로 만들어진 의자가 놓여 있고 의자 위에는 촛불과 책, 편지가 놓여 있으며 바닥에는 편안한 카페트가 깔려 있다.
반면 고흐는 그런 고갱을 존경하고 헌신적으로 사랑했다. 그가 바라본 그의 의자는 딱딱하고 투박하다. 파이프 담배만이 놓여있을 뿐이다. 그러나 고갱의 의자는 장식이 꽤 있고 편안해 보이며, 촛불과 편지들이 함께하고 있다. 결별을 준비하고 있던 고갱을 붙잡고 싶었던 간절한 고흐의 마음이었을까. 그러나 결국 둘의 동거생활은 두 달 만에 끝이 나고 만다. 고갱은 자신에 대한 고흐의 마음을 집착으로 여겼다. 또한 장식적이고 강렬한 붓터치로 복잡한 심리를 묘사한 고흐의 그림과는 대조적으로, 평면적이고 단순한 색채로 표현된 원시적 주제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귀를 도려내면서까지 가지 말라고 붙잡는 고흐를 뒤로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지상낙원 타히티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반 고흐의 작품들. 왼쪽 작품은 ‘붕대를 감은 자화상’으로, 초록색 코트를 입고 푸른색 모자를 쓴 고흐가 귀를 가리기 위해 귀 부분을 붕대로 감고 있다. 오른쪽 작품은 ‘해바라기’라는 작품으로, 노란색 테이블 위에 해바라기 꽃을 꽂은 화분이 놓여 있는 모습이다. 해바라기는 시들시들한 상태다.
얼마 후 고흐는 외로움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타히티에서 그의 죽음을 전해 들은 고갱은 편지를 통해 안타까움을 전했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작품활동을 이어 나간다. 그러던 중 고갱은 1901년, 해바라기 꽃이 놓인 안락의자를 그리게 된다. 저 의자는 누구의 의자였으며, 그가 해바라기를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병을 얻어 말년을 힘들게 보냈던 고갱은 죽어가는 가운데 친구 몽프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해바라기 씨앗을 보내주었으면 하네. 여기에 심어 곁에서 볼 수 있도록.’

폴 고갱의 ‘의자 위의 해바라기’ 작품. 안락해 보이는 갈색 나무로 만든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 해바라기 화분이 놓여 있다. 해바라기는 활짝 핀 것도 있고 조금 시들한 것도 있다. 의자 뒤에는 푸른색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는 창문 밖으로 바다와 그 속에서 뛰어노는 사람들이 보인다. 흔히들 고흐와 고갱의 관계를 두고 주종관계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남성적이고 진취적이었던 고갱과, 여성적이고 여린 감성의 고흐는 애초부터 한 방향의 관계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 그러나 자기애와 자존심이 강했던 고갱에게도 고흐는 일생의 동반자이자 하나뿐인 소울메이트였을 것이다. 그토록 꿈꾸던 원시의 세계 타히티가 자신이 바라던 지상낙원이 아님을 깨달았던 고갱은 안식처를 찾아 고국과 타히티를 오가는 삶을 반복했다. 온전히 인간과 인간의 온정으로 함께 했던 순수한 시간들, 어쩌면 그가 찾았던 파라다이스는 고흐와 함께했던 그 짧은 두 달 남짓한 시간은 아니었을까.

빅토리아 & 앨버트 :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서 만난 여왕의 사랑이야기

빅토리아 여왕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어깨에 청록색의 숄더와 같은 간단한 장식과 면사포 같은 베일을 머리 뒤로 쓰고 있는 그녀가 옆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이끌었던 여왕 빅토리아. 산업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던 19세기 영국을 64년간 통치하며, 그녀는 영국이 자본주의 시대를 선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녀를 그린 초상화나 영화 속에서 그녀는 늘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다. 여왕의 옷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검소해 보인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2대 정당제 의회정치가 시작되었다. 그녀로부터 점점 여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변모하기 시작하고 실질적인 정치는 수상을 중심으로 한 의회에서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여왕의 역할이 적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아직까지는 근대였던 영국에서 여왕은 명실상부하게 나라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처음엔 그저 어린 소녀였던 빅토리아는 국무총리 멜번 경의 가르침으로 점점 군주다운 위엄을 갖추게 된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모습. 수많은 귀족들이 어느 연회 자리에 모인 듯 양쪽으로 늘어서 있으며, 가운데에는 조금 높은 계단이 있고 이 위에 빅토리아와 앨버트 공,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로 보이는 한 무리가 앉아 있다. 그런 그녀에게도 사랑은 찾아왔다. 그녀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외삼촌이었던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의 주선으로 독일 왕자 앨버트 공과 결혼식을 올린다. 사랑은커녕, 사실 그녀는 그에게 관심조차 없었고 그저 존경하던 외삼촌의 말에 그저 순종했을 뿐이다. 그러나 앨버트 공과 함께 지내면서 점차 그가 가진 진중함과 성실함, 깊은 배려심에 반하게 된다. 빅토리아는 이후 모든 회의마다 그를 대동하며 실질적으로 영국의 모든 정사를 그와 함께 의논하며 결정했다. 둘 사이에는 무려 아홉 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의 왕실들과 혼인을 맺으며 빅토리아를 ‘유럽의 할머니’로 만들었다.

수정궁의 설계도와 모형. 왼쪽 사진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수정궁의 설계도로, 흰 종이에 진하게 수정궁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수정궁을 본따 만든 모형으로, 수정궁의 모습을 축소한 듯 정교한 모형이 얇은 나무로 촘촘이 이어져 만들어져 있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모습.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에, 아치형의 창문이 곳곳에 뚫려 있으며 건물 입구 또한 아치형이다. 건물 꼭대기에는 삼각형의 지붕이 서 있다. 외국인이었던지라, 앨버트 공은 영국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인정을 받게 된 계기는 독실한 청교도적 삶을 살았던 정직한 태도와, 1851년 영국에서 처음 열린 만국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추진력이었다. 지금의 엑스포의 기원인 만국박람회는 전적으로 앨버트의 기획과 실행으로 이루어졌다. 각종 과학과 기술 작품들이 전시되었으며, 특히 전세계에서 모은 유물과 수집품으로 넘쳐났던 수정궁은 건물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했다. 통유리로 지어진 이 건물은 당시 영국의 발전된 기술을 상징하며 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관람료 1페니만 내면 신분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관람할 수 있었다. 후에 빅토리아 여왕은 여기서 얻은 16만 파운드 이상의 수익금으로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을 건립해 다양한 분야의 예술작품들을 전시하게 된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빅토리아와 앨버트는 곧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병으로 42세의 젊은 나이에 앨버트가 세상을 떠나고 만 것. 이후 빅토리아는 40년 간 검은 옷만 입으며 먼저 간 앨버트를 추모한다. 그녀는 앨버트 공이 짓고 있었던 콘서트홀을 완성해 ‘로얄 앨버트 홀’이라 이름 붙이고 맞은편에 그의 동상을 세워, 영국의 실질적 리더이자 사랑하는 남편이었던 앨버트 공을 기린다.

‘행복한 내 삶은 이제 끝났다. 세상이 나로부터 멀어져 갔다.’ 남편을 잃은 빅토리아 여왕은 평생을 남편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반추하며 살았다. 앨버트는 그녀에게 있어 훌륭한 군주로 자라게 해 준 스승이었으며, 외로움을 나눈 유일한 사랑이었다. 비록 평생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 둘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울리고 있다.

음악과 미술 : 베르메르 특별전에서 만난 음악과 미술의 유쾌한 조우

친구들 사이의 우정, 연인과의 뜨거운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울메이트의 대표적인 형태다. 그러나 그 범위를 조금만 더 확장시켜 보자. 앞에서도 살펴보았듯, 예술 작품은 소울메이트의 단면을 드러내 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소울메이트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바로 미술과 음악처럼.

베르메르의 ‘버지널 앞에 앉아 있는 여인’ 작품. 푸른빛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피아노와 비슷한 악기인 버지널 앞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여인은 두 손을 버지널 위에 올려놓고 있으며, 버지널 위에는 악보가 올려져 있고 그 위에는 당시 풍경을 그린듯한 풍경화 덮개가 놓여 있다. 버지널 옆에는 첼로가 놓여 있으며 뒤쪽 벽에는 무언가를 그린 큰 그림 액자가 걸려 있다. 여인은 버지널 앞에 앉아 있다. 아름다운 풍경화가 그려진 덮개와 무늬로 가득한 다리가 시선을 끈다. 그보다 여인의 푸른 옷과 밝게 빛나는 흰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햇살 가득한 화창한 오후 한때를 그린 베르메르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은 깜깜한 밤을 풍경으로 하고 있다. 어둠을 밝혀 줄 촛불 하나조차 켜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여인의 옷과 얼굴은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듯 환하게 그려져 있다. 버지널 옆에 비스듬하게 놓인 첼로는, 여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또 다른 연주자가 위치하고 있음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벽에 걸린 그림은 반 바뷔렌의 <여자 뚜쟁이>다. 노란 옷의 늙은 뚜쟁이가 여인을 놓고 한 남성과 거래를 하고 있다.

몰리나르의 ‘가족의 초상’ 작품. 어느 연회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한 가족이 각자의 악기를 잡고 연주하는 듯한 모습이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 기타와 비슷한 악기, 첼로 등을 들고 연주를 하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고, 사진 오른쪽에는 키큰 남자 한 명이 일어나 노래를 부르듯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며 그 옆에는 어린 남자아이가 어른과 비슷한 포즈를 취하며 노래하고 있다. 음악과 미술은 여러 예술작품 속에 공존하며 수많은 천재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음악과 미술은 독립적인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지만, 둘이 만났을 때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화가들은 음악을 내세워 직설적이고 교훈적인 주제를 완곡하게 돌려 말한다. 또한 음악이 주는 즐거움과 화합을 통해, 관람자를 그림 안으로 끌어들이며 눈앞에서 선율이 흐르는 듯한 청각의 시각화를 표현해 낸다.

몰리나르의 ‘연주하는 두 소년과 소녀’의 모습. 세 어린 아이가 앉아서 무언가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왼쪽 남자아이늰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연한 초록색 모자를 쓰고 있고 노란색 재킷을 입고 있다. 가운데 여자아이는 일어선 채로 드럼통 위에 올려진 군모를 두드리고 있다. 오른쪽 남자아이는 빨간색 재킷을 입고 의자에 걸터앉아 오른팔에 장구같이 생긴 악기를 낀 채로 왼손으로 이를 두드리고 있다. 음악은 어린아이들의 순수함 또한 닮았다. 그림 속 아이들은 엄숙하고 무겁기까지 한 귀족들과 왕실의 연주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이들은 평범한 서민의 복장을 하고 있다. 특히 왼쪽 소년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데, 당시 바이올린은 류트, 버지널, 첼로, 비올라 다 감바 등의 클래식 악기가 아닌 무용 반주로 쓰였던 하급 악기였다. 가운데 어린 소녀는 군인의 투구를 드럼 삼아 두드리고 있는데 어깨엔 군인의 갑옷을 둘렀다. 그러나 그 표정은 장난기가 가득하고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심지어 오른쪽 소년은 모자에 닭발을 꽂고 있어 더욱 유쾌하고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불협화음과 시끄러운 잡음만 가득할 것 같은 이 그림은 계급과 고급, 저급의 경계를 넘어 음악이 주는 즐거움과 화합을 보여주고 있다.

붉은 옷을 입고 회색의 챙 넓은 중절모를 쓴 장교가 노란 옷을 입고 머리에 흰 천을 덮어쓴 매춘부를 뒤에서 끌어안으려 하고 있다. 남자의 손은 여자의 가슴 위에 올라가 있고, 그들 옆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서 있다. 한 명은 장교 바로 옆에서 여자를 바라보고 있고, 한 명은 좀 더 앞쪽에 서서 한 손에 악기를, 한 손에 술잔을 든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은 <버지널 옆에 앉아 있는 여인> 속 뚜쟁이 그림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오히려 이들의 거래는 당당하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노란 옷을 입은 매춘부를 두고 검은 옷의 늙은 뚜쟁이와 붉은 옷의 장교가 거래를 하고 있다. 장교의 탐욕스러운 움직임과 여인의 상기된 표정, 그런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뚜쟁이의 미소를 보며, 추악한 욕망에 대해 혀를 끌끌 차며 비판하게 된다. 그러나 한 손에 술잔을 든 채 관람자를 향해 이죽거리는 미소를 짓는 남자의 시선과 마주하는 순간,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너는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는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살펴본 <버지널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은 좀 더 복잡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벽화 속 그림은 욕망과 쾌락 추구에 대해 풍자하며 이를 엄히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도 켜져 있지 않은 캄캄한 방에서 혼자 버지널을 치며 앉아 있는 여인은 연주자를 기다리며 묘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 그녀가 연주하는 버지널이 처녀를 상징하는 ‘virgin’을 뜻한다는 데서 순결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녀의 몸짓과 미소는 오히려 벽화 속 인물들과 더 닮아 있다.

베르메르의 ‘음악수업 – 신사 곁에서 버지널 켜는 숙녀’의 모습이다. 한 여자가 버지널 앞에 서서 이를 연주하고 있고, 그 옆에는 한 남자가 옆으로 서서 그녀를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버지널 위에 달린 거울로 보이는 여자의 얼굴은 남자를 바라보며 약간 붉어져 있다. 그녀 뒤, 그러니까 그림의 앞쪽에는 첼로가 하나 눕혀져 있고, 두꺼운 천이 덮인 테이블이 함께 놓여 있다. 반면 이 그림에서는 여인과 남성의 설렘과 묘한 기류가 포착된다. 여인은 뒷모습만 보여 그 표정을 감추고 있지만, 벽에 걸린 거울을 통해 우리는 그녀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옆에 서 있는 남자를 곁눈으로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노래를 부르는 듯한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노래 부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그녀가 연주하는 버지널의 덮개에는 ‘음악은 즐거움의 친구이자 슬픔의 약’이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음악은 사랑으로 치환할 수 있다. 우리가 이 그림에서 둘 사이의 핑크빛 미래를 상상해 보는 건 어렵지 않다. 음악은 둘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고, 그 순간을 포착한 그림은 순간의 설렘을 영원히 박제하고 있다.

런던을 찾게 된다면 갤러리와 박물관을 들러 보자. 그리고 그 속에서 절절한 사랑과 우정을 나눈 파란만장한 스토리의 주인공들을 만나 보자. 혹시 모른다, 당신도 그곳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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