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찾아 삼만 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에도 있고, 투르크 막토를 타고 판도라를 활공하는 나비족에게도 있으며, 심지어 피카츄가 ‘백만 볼트’를 외치는 <포켓몬스터> 속에도 있다. 밤하늘 별자리 속에도, 심지어 당신이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속에도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자리한 그것, 바로 신화다. 그리고 이제 신화는 당신을 그 주인공으로 하려 한다.

신화는 ‘현대의 나와는 거리가 먼 그 무엇’이 아니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생각보다 신화와 더 쉽게 만나고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게임, 브랜드 로고에 이르기까지, 이런 것도 신화였나 싶을 정도다. 몰라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 모른다고 밥을 굶지는 않지만 알면 재미있는 것들. 상상력의 원천으로 불리는 신화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신화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다, 브랜드 로고와 신화

의류 브랜드 베르사체의 로고와 신화 속 메두사의 머리 이미지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왼쪽의 베르사체 로고는 VERSACE라는 브랜드 네임과 함께 메두사의 머리를 형상화한 이미지가 원형으로 그려져 있고, 오른쪽의 메두사는 여인의 얼굴이 목잘린 채 떠 있고 머리카락이 뱀인 메두사의 이미지를 나타낸 그림이다. 유명한 신발 브랜드 나이키가 그리스 로마 속 승리의 여신 ‘니케(nike)’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 당신은 신화 초급자 수준. 그렇다면 혹시, 지나가는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죽음으로 이끈다고 하는 신화 속 주인공 세이렌에 대해선 알고 있는가? 조금은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의 로고 속 여성이 바로 세이렌이라는 설이 있다. 이 가정대로라면 세이렌이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듯 커피로 고객들을 유혹하겠다는 다부진 각오가 브랜드 로고 속에 담긴 셈이다. 더하여, 그리스 로마 신화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베르사체는 그의 이름을 내건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의 로고로 메두사의 머리를 사용했다. 이는 메두사의 얼굴을 보는 사람이 돌이 된다는 설화를 메두사의 아름다움 때문이라 해석한 것으로, 메두사를 아름다운 여성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본 것이다. 신화에 대한 나름의 심화된 이해가 있어야 하는 베르사체까지 알고 있다면, 당신은 신화에 꽤 관심 있는 사람이라 자부할 만하다.

대놓고 말하기, “나 신화야!”

영화 제목에서부터 이렇게 외치고 있는 영화도 있다. “나 신화를 담고 있어요!” 제목만 보더라도 신화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영화 <아바타>를 살펴보자.

▷ 인도신화 <마하바라타>와 영화 <아바타>
인도신화를 담고 있는 소설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의 책 표지다. 흑백으로 된 사진 속에는 책 2권이 나란히 놓여 있고, 각 책의 표지에는 책 제목과 함께 인도의 고대 민족을 형상화한 듯한 사람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일반인들은 ‘아바타’라 하면 컴퓨터 세상 속 추억의 아바타를 먼저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영화 <아바타>는 그 제목부터 인도 신화적 요소를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또한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 또한 <마하바라타>라는 인도의 고대 대서사시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밝힌 바 있다. 오죽하면 이 감독은 “필생의 꿈이 마하바라타를 영화화하는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해왔을 정도. <마하바라타>가 다소 생소한가? 그러나 <마하바라타>는 이미 세계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만큼이나 주목받고 있는 인도의 고대 신화 대서사시이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마하바라타에 있나니, 마하바라타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없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영화 ‘아바타’의 포스터와 영화 속 장면. 왼쪽 사진은 ‘아바타’의 포스터로 푸른 피부의 얼굴에 분장이 되어 있는 영화 속 종족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오른쪽 사진은 ‘아바타’ 속 한 장면으로, 생명의 나무 에이와를 3D 그래픽으로 사람들이 보고 있는 장면이다. 우선 영화의 제목부터 살펴보자. ‘아바타(라)’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로 화신(化神)을 뜻하는 것으로 신이 다른 모습으로 화하여 드러난 것을 의미한다. 영화 내내 원래 모습이 아닌 가상의 모습으로 활동하는 주인공의 특징만 보더라도 이는 딱 맞는 제목인 셈이다. 또 겉으로 드러나는 가장 큰 특징, 아바타의 피부 색깔을 보자. ‘판도라’의 원주민 나비족이 푸른색 피부를 가졌듯 아바타 또한 푸른색 피부를 갖고 있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역시 그러하다. 파괴의 신 쉬바는 푸른 목을 지녔고 목동의 신 크리슈나와 라마는 몸 전체가 푸른색이기까지 하다. 신화 속에서 악을 물리치는 능력을 지닌 신들이 주로 그렇다. 또한 판도라 행성의 모든 생명을 관장하고 있던 생명(영혼)의 나무를 기억하는가? 이는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반얀 나무와 보리수를 닮아있다. 이는 <마하바라타>뿐만 아니라 인도인들이 거룩하게 여기는 대상이기도 한 나무로, 영원한 삶과 끈질긴 생명력을 의미하며 영생수라 불리고 있다. <아바타>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인도의 신화에서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반갑다 신화야, 너도 신화였니? 애니메이션 속 살아 있는 신화들

제목만 보고는 절대 알 수 없고, 보면서도 그 내용을 짐작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신화가 깨알같이 녹아 들어있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그리고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 <포켓몬스터>이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그리스 로마 신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얼핏 봤을 때 신화적 요소를 찾기가 어렵다. 오롯이 신화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징으로써 신화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이 영화에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많은 그리스 신화의 요소가 담겨 있다.
먼저 영화의 도입부. 치히로가 부모님과 함께 이상한 건물과 언덕을 지나 어떤 강에 이르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짐작했겠지만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강인 스틱스 강을 의미한다. 듣고 보니 이마를 탁 치게 된다. 그 후 그 세계로 들어서서 치히로의 부모님이 빈 가게의 음식을 마음대로 마구마구 먹는 장면이 나온다. 이 모습 또한 익숙하다면, 당신은 어렸을 때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집을 꽤 정독한 사람일 지도. 이는 마녀 키르케의 섬에 도달한 오디세우스의 병사들이 차려진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돼지가 되었다는 오디세우스 신화와 너무도 자연스레 겹친다. 영화의 후반부 치히로가 집으로 돌아갈 때 하쿠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 것이라는 금기를 준다. 이 금기 역시 낯설지 않다. 지옥에서 사랑하는 여인 에우리디케를 구해 지상으로 나가던 오르페우스에게 주어진 금기와 같기 때문. 치히로는 신화와는 달리 결국 뒤를 돌아보지 않지만 이 정도면 이 감독, 그리스 로마 신화에 통달한 듯하다.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와 인도신화 <마하바라타>
인도의 여신 깔리를 그린 그림. 푸른 피부에 화려한 옷을 입고 있으며 머리에는 왕관을, 목에는 악마들의 얼굴로 이루어진 긴 목걸이를 하고 있다. 혀는 길게 쭉 늘어져 있으며 팔이 네 개이다.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방금 막 해치운 듯한 악마의 머리를 들고 있으며, 발 밑에는 남신인 것으로 보이는 남자가 누운 채 깔려 있다.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도 고대 인도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아는가?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 ‘포켓몬’ 속에서, 약간은 괴기한 모습을 지닌 인도 신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마하바라타>의 모습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싶다. 포켓몬은 ‘몬스터’라고 이름 붙여져 있긴 하지만 귀여운 겉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켓몬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의 이름과 특성을 인도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포켓몬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기억을 돌이켜 잠시 추억에 젖어 보자. 잠을 자는 능력밖에 없어 뵈는 잠만보부터 낚시가 취미인 야돈까지. 이들은 소위 ‘바보 포켓몬’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반면, ‘전설의 포켓몬’도 존재한다. 염력을 지닌 케이시라든가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신뇽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인도 신화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다 같은 포켓몬이 아니라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포켓몬들이 공존하는 것이다. 또한 ‘바보 포켓몬’은 진화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예컨대, 야돈은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갸라도스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 이는 가능성이라는 씨앗의 형태로 세계의 기원이 존재한다는 인도 신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대목이다. 덧붙여 포켓몬이 지니는 여러 가지 능력, 염력이나 축지법 등은 인도의 3만 3천 다양한 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적 능력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기까지 하다.

포켓몬스터 속 캐릭터들. 왼쪽 사진은 잠만보의 모습으로, 둥글둥글하게 생긴 통통한 몸과 얼굴에 눈과 입이 줄을 죽 그어놓은 듯 귀엽게 그려져 있다. 한 손에는 바나나 뭉치를 들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신뇽의 모습으로, 뱀처럼 날씬하고 길쭉한 몸 위에 머리가 달려 있다. 이마에는 뿔이, 그리고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천사의 날개 모양이 달려 있다.
이처럼 마하바라타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오랫동안 들어온 옛 이야기에서 최신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접해온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합한 길이의 8배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이 책은 거대한 인도적, 신화적 상상력으로 우리를 잡아끌고 있는 것. 이처럼, 신화는 현대의 이성•과학•종교 제일주의를 넘어서는 원시적인 상상력의 새로운 원천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의 신화를 바라보는 현재의 우리

나이키의 브랜드 로고. NIKE라 쓰여 있고 그 아래 나이키의 시그니처 모양인 부메랑 모양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꾸 신화를 우리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걸까? 먼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유는 친숙한 신화의 이미지를 그대로 자신의 창작물에 입혀 창작물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예컨대 승리의 여신 니케의 이미지가 스포츠 브랜드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신화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유희적인 상상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신화라는 명칭에서 느껴지듯, 신화란 신성하며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환상적인 일이 일어나는 이야기다. 이러한 신화의 특성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다. 소소하게는 학점, 연애, 인간관계 등의 일상에서부터 넓게는 궁극적 꿈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 없는 현실에서, 신화를 통해 우리는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된다. 내가 이루고 싶었지만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하는 것들이 초인적인 힘을 지닌 신화 속 주인공들 사이에서는 너무도 쉽다. 물론 과거의 신화 속에서 내가 학점을 잘 받는 모습이 나타나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결국 온갖 위기를 이겨내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신화를 보며,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모습도 그러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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